낡고 불안한 버스 – 석달간의 공교육 소회

1학년 아이의 알림장 앞에 칭찬스티커 붙이기가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붙여주는 스티커이다. 이런 제도는 이미 보편화 된 지 오래되었고 그에 대한 폐해 및 부작용으로 인해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내 아이는 6학년때부터 태권도에 다녔는데 그 때 처음 칭찬스티커의 존재를 알았다. 스티커를 적게 받아온 날은 울고 불고 난리까지 쳐서 내가 이노무 스티커를 다 갖다 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6살짜리에게도, 나는 가끔 그런 엄마다.

학교를 들어가고 별 다를 일 없는 것처럼 매일 매일 아침 일찍 혼자 학교를 가게 되고 집에 와서 간혹 엄마랑 시간이 안 맞아 혼자 있게 되도 별 탈 없이 지내는 아이는 숙제를 해야 하는 책이나 공책을 안 가져오고 알림장도 다 적어오지 못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마냥 재미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는 매일 국어 10칸짜리 쓰기 공책에 네 바닥씩 그 날 배운 것을 써가는 숙제를 했다. 나중에는 숙제가 빨라지면서 글씨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른들은 그런 사소한 것으로 걱정하지만 지금 어디서 악필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글씨체가 독특한 편이긴 하지만 그건 초등학교때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숙제를 못하면 학교가서 하라고도 하고 그래 뭐 못할 수도 있지 라고 넘겼다. 알림장쓰는 게 어렵다고 호소할 때도 야 임마 엄마 때는 더 했어. 라는 말을 삼키며 어어 그러니 하고 친절한 척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학습지 선생님이나 다른 예체능 수업을 듣거나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아이는 방과후 수업을 죄다 신청해놓고 태권도를 하나 다니는 것으로도 시간이 빠듯하다. 본인이 고른 방과후 수업이 월/화/수/목으로 꽉 차서 석달을 지내더니 이번에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하겠다고 스스로 몇 개를 내려놓았다. 방과후 수업은 유치원때부터 본인이 골라 결정해왔다. 1학년이지만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해주기 때문에 (경기도교육청) 밥을 먹고 나면 12시 40분에서 1시쯤이 되고, 방과후 수업을 하는 날은 2-3시에 끝나는데 일주일에 두 번은 5교시도 있다. 학원을 별도로 안 다녀도 하루 일과가 4시나 5시에 끝나는 생활이 반복된다. 꼴랑 태권도 하나 다니는데 이런 식이라 아이는 늘 하루가 짧다고 투덜댄다.

얼마 전에는 알림장을 4일째 학교에서 가져오지 않으면서 이런 저런 가정통신문이나 종합장에 알림장의 내용을 적어왔다. 알림장의 문구는 맘에 들지 않는다. 한자어가 너무 많이 섞여 있는게 불만인데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말하지 않는다. 알림장을 다 쓴거냐 잃어버린거냐 물으니 잘 모르겠다기에 그럼 새로 하나 만들던가 해야지 이게 뭐냐 하니 알림장 앞에 칭찬스티커가 붙어 있기 때문에 꼭 찾아야 한다는거다. 그럼 니가 요령껏 알아서 찾아오라 하니 그 다음날 바로 찾아왔다.

아이의 알림장에 스티커 개수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엄마들을 만나 얘기를 할 때마다 이 스티커 이야기가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스티커 부여기준이 모호하고 붙여서 개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압수를 당하기도 한다는거다. 하루에 2개, 5개를 떼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 뭐 경쟁하는 사회니까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웃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엄마들은 꽤나 심각했다. 아이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전하는 엄마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다.

오늘에서야 알림장 앞에 붙어 있는 스티커판을 자세히 보니 100개의 스티커까지 붙을 수 있고 우리 아들의 스티커는 스물 여섯 개다. 가장 개수가 많은 아이가 누구인지도 엄마들을 통해 들었는데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내가 아역탤런트 제의 받은 적 없냐고 물을 정도) 여자아이인데 그 아이는 이미 70개를 넘었다는거다. 그래서 그 아이의 엄마는 또 주변의 질투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하단다. 엄마들의 불만은 적게 붙여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 떼어가는 박탈감에 초점이 맞춰진 듯 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예민해지고 경쟁에 몰입되는 것에 우려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다.

엄마들과 참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스티커를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도 이거 스티커 신경쓰여?”

“어!”

“신경쓰지 마.”

“신경쓸 거야.”

“그거 중요해?”

“어. 나만 적어.”

“아까 ㅇㅇㅇ 엄마가 걔는 너보다 더 적다던데?”

“ㅎㅅㅈ 하고 ㅇㅊㅎ 하고 나하고 제일 적은데, ㅎㅅㅈ은 스무개는 넘고 ㅇㅊㅎ은 스무개도 안돼. 나는 스무개는 넘었어.”

“그래? 니네 셋이 제일 스티커 적게 받았구나?” 하고 나는 웃었다.

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고 금방 씰쭉씰쭉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는 아이에게 다시 가서 말했다.

“너 이거 스티커 신경쓸 거야?”

“어. 신경쓸 거야. 나도 스티커 많이 받고 싶어.”

“그래? 그럼 너는 신경써. 그치만 엄마는 신경 안 쓸 거야. 엄마는 너 스티커 하나도 못 받아와도 상관없어. 알겠지?”

“알았어!” 아이는 다시 그림에 몰두했다. 생각해보니 금요일 숙제가 뭔지도 안 물어봤다.

그래 오늘 나왔던 또 다른 한 가지 학부형들의 불만은 숙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알림장 내용이 너무 길다. 라는 것이었다. 반마다 담임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운영하는 학습내용이 다른데, 우리 반 선생님은 받아쓰기도 시키고 수학수행평가도 했다. 쪽지 시험 같은 걸 본 모양이다. 나는 그 내용을 본 적이 없는데 아이가 받아쓰기 공책을 학교에서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안 가져오냐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물론 숙제에 “받아쓰기 틀린 거 다섯 번씩 써 오기” 라는 항목이 있어 이거 숙제 했느냐고 물으면 한 개 틀려서 학교에서 해왔다 라거나 하나도 안 틀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이 아이는 띄어쓰기가 문제가 되지 교과서의 맞춤법은 그럭저럭 해결이 되고 있는 편이다.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는 국어책의 내용을 3번 써오기 정도인데 이런 숙제는 다 해도 두 바닥을 넘지 않는다. 수학의 경우 덧셈식 뺄셈식을 만들어 오기 정도인데 이런 경우는 옆에서 도와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엄마들이 이 정도 숙제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어차피 사교육으로 다 돌리고 있지 않느냐는거다. 사교육 숙제도 치이는데 공교육 숙제까지 해야 하니 골치가 아프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보다 더 들어봐야 할 문제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쯤 되는데 아이들은 9시나 10시에 자는 게 맞다. 8시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아이 숙제를 봐주다 보면 글씨가 느려 시간이 오래 걸리니 아이가 숙제를 마치고 나면 11시에 자는 경우가 많다는거다. 때로는 국어 세 번쓰기, 두 번읽고 싸인받기, 수학숙제 몇 페이지 해오기까지 겹치면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엄마들은 엄마가 없더라도 일단 너 혼자 할 수 있는 쓰기 숙제 같은 경우는 해야한다고 길을 들이고 있고, 여전히 대책 없이 불만을 갖는 엄마들도 있다. 알림장도 다 쓰지 못하면 학급홈페이지를 보고 다 보충을 해가야 하는데 알림장이 5번 6번까지 항목이 있는 경우 아이들이 시간 내에 쓰기가 어렵기도 하고 낱말도 어려운 게 많아서 숙제에 알림장까지 체크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잘 따져보면 아이들이 혼자서 숙제를 해내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집에서 조부모가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직장엄마들이나 전업주부들도 애 하나만 보고 있는 게 아닌 경우가 많아 앉혀놓고 아이의 스케줄을 따라 숙제를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렇다면 모두 사교육을 끊으면 되잖아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난 번 학교 상담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교직생활 20년을 넘어가면서 최근들어서는 학부형들의 힘이 너무 세지고 여러가지 감시를 받는 기분이 들어, 열정을 다 펼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고백아닌 고백을 하셨다. 나도 내 딴에는 위축되어 있는거지. 라고 혼자 읖조리듯 한 그 말이, 20년 넘게 한 직업에서 선생이라는 사명감으로 평교사로 살아온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적어도 큰 폭력사건이 아닌 이상 최대한 교권은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나 이런 저런 반발들과 개인들의 의견을 접할 때에는 내 개인의 의견은 되도록 뒤로 미뤄놓는 편이 낫다고 깨닫는 중이다.

엄마들에게 사교육의 불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강조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엄마들은 늘 아이들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실제로도 아이들이 못 해내기 때문에 다른 방편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쳐지기 때문이라고 하는 엄마들 앞에서 –  집에 와서 더 놀기 위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숙제를 반절이상 해 오거나 공책을 안 가져가면 학교에서 냅다 아침에 급하게 하기도 하고 받아쓰기도 잘 틀리지 않아 추가되는 숙제가 없고 쓰기 숙제는 하라고 시켜놓으면 알아서 하고 있는 아이를 둔 내가,  다른 엄마들에게 사교육을 끊으라고 말하는 건 당신 자식은 알아서 하니 걱정이 없겠지 라는 퉁박을 듣는 것밖에 안된다.

게다가 엄마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의 또 다른 것은 다른 반 알림장과의 비교인데, 다른 반 알림장은 1, 2번에서 끝이 나고 숙제는 거의 없으며 알림장의 내용이 “감기 조심하기” 정도라는 것이다. 아름답지 않냐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기본적인 학습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집에 와서 그 날 배운 것을 돌아보는 의미가 숙제이고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것인데 모두가 사교육을 의지하는 상황에서 나혼자 잘났다고 숙제가 많긴 뭐가 많냐고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거다.

한 때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성향들을 비난한 적도 있으나 그런 비난과 비판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사교육이 공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해소 하는 데 사회적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즉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교는 점점 더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데 학교와 교육청간의 어떤 시스템이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 학교끼리 경쟁이 붙어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아이들은 실적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는 것을 본다. 실업계학교는 취업률을 높여 실적을 만들어야 무슨 무슨 학교로 지정이 되어 예산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문계는 당연히 대학진학률을 높여야 한다. 학교와 교사가 경쟁력이 있어야 사교육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취업률을 만들어야 하는 학교들은 아이들에게 자퇴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어 인근의 정보산업고에서 1학년 자퇴율이 급증하고 그 아이들은 모두 탈학교청소년이 되어 이런 저런 알바를 하며 견딘다. 자퇴를 했다가 다시 복학을 하라는 권유를 받은 아이들은 복학을 했다가 다시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보았다. 20년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학생의 숫자는 대학진학율을 증대시키기 위한 자료의 하나가 되어 아이들의 적성따위 고민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대학에 쑤셔 넣는 게 학교의 기능이었다. 이미 공교육이 자빠지기 시작한 건 20년전, 어쩌면 전교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89년 그 때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전엔 사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했기 때문에 그마나 공교육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지 공교육이 잘 되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학교는 시에서 지원하는 특정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돈폭탄과 다름없는 예산을 지원받게 되고 어떤 학교는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이 된다. 그 외 다른 공기관의 지정학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여러 가지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프로그램에 지정이 되어 학교에 각종 프로그램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인력 확충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교사들로 받아낸 예산을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하니 교사는 아이들의 교실보다 잡무와 프로그램 처리에 대한 서류를 쳐내기에 바쁘다. 프로그램 지정 학교가 되면 가정통신문이 하루에 무려 열장이 나가는 경우도 있고 그 중에 한 두장 회신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교사들의 책상위에 마감날까지 회신이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것을 기다리는 통신문들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다.

교사들이 미처 해소하지 못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이제 학부형들이 무급으로 동원된다. 학교의 예산과 결제 심의를 맡은 학교운영위원회부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녹색어머니회까지 초등학교 학부형들이 동원되는 경우다. 때로는 학교시험의 공정성을 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미명하에 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감독관을 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행되는 여러 가지 무급 학부형 동원에는 교통정리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학교내 보안과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마미캅, 보람교사, 준비물 정리, 급식모니터링, 도서사서, 각 반의 장을 맡은 연락책의 엄마들, 지역 예절관에 가서 연수까지 받아야 하는 지역사회어머니회, 컵스카우트 걸스카우트 대표, 아람단 대표, 전교어린이회의 엄마들 조직이 있고, 2013년도부터는 경기도의회 조례에 의거한 학부모회의가 별도로 구성되었다. 그 외 자원봉사로 진로코칭교육등에 독특한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 동원되거나 일주일에 한번씩 학부모가 참여하여 각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은 특별히 운영된다. 각 반의 아이들은 이제 30명이 넘지 않는데 20명에서 27명에 이르는 엄마들이 이 역할을 모두 분담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대부분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니 전업주부이거나 출퇴근이 자유로운 엄마들이 하나씩 맡아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그러나 보면 3-4개까지 겹치기 마련이다. 학교일을 많이 맡은 엄마들은 매일 출퇴근도장을 찍는 만큼 들락거리게 되기도 한다. 자기가 잘나서 나서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보다, 선생님이 부탁하니 하는 경우도 있고 넓은 마음으로 돕고자 하는 봉사심에서 우러나는 사람들도 많다.

최근에 안양과천교육지원청 내에서 새로 법적효력을 가진 기구가 된 각 학교 학부모회의의 대표들이 모였는데 하나로 모여진 의견은 학부모회의 예산을 확충하는 문제였다. 학교에서 별도의 기부금을 받지 않으며 그런 절차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학교에 배정된 예산을 가지고 학부모회를 운영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할라치면 예산은 확보되지 않았고 받아낼 절차는 복잡하고 하다못해 의결할 일이 있어 모여도 다과값도 준비되지 않아 누군가 자꾸 사비를 털어내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왜 자꾸 예산얘기들을 하나 의문이 생겼으나 학부모회의는 학교의 교육사업을 지원하거나 새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최소한의 경비는 필요한 것이 맞는 듯도 했다.

내 옆에 앉았던 안양의 모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은 이미 다년간의 운영위원회와 회장경력으로 학교의 학부모참여도를 높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은 일절 학교에서 비용을 걷어서는 안되고 (운영위원회는 통상적으로 학교를 위해 쓰든 자기네 식사를 위해 쓰든 아무튼 걷는 게 일반적이다) 학부모를 통원한 과다한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라 조언해주었다. 그 쪽은 적당히 엄마들이 부담없이 참여하는 선에서 모든 사업을 잡기 때문에 참여도가 상당히 높고 학교측의 협조도 잘 이루어진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학부모회가 학교에 어떤 행사를 제안했을 경우, 결국 처리해야 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이번 학년도에 학부모회의 임원직을 자원해서 맡았는데 내 목적은 학교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동향을 살피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내가 뭔가 제안을 던지는 순간 누군가에게 업무가 되어버린다는 일이 많은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주 소소하게, 1학년 아이의 알림장 앞에 붙은 칭찬스티커의 문제부터, 그로 인해 불거져 나오는 불만들을 처리할 기구가 없다. 학부형들과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대체적으로 하나로 일치하는데 학교는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교는 학교대로 나아가고 학부형과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학교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학교라는 곳에 다시 발을 들이고 깊은 면을 보기 시작한 지 이제 몇 달.

얼마 되지 않는 이 시점에 느끼는 것은 학교가 계속해서 위를 보고 걸어가면 이대로 공교육은 절대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협감마저 들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는 혁명과 혁신자체가 생존에 위협이 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므로.

망가진 채로 망가진 시스템에서 모두가 허덕거리며 굴러가겠지.

고장나고 기름 떨어진 오래된 버스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산을 넘어가는 느낌. 그게 지금의 학교다. 그 버스에는 불안한 학부형들과, 지친 교사들과, 매일 울고 싶은 아이들이 미어터지게 타고 있다.

201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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