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전반적으로 죄책감이 뿌리깊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4학년 미디어수업에서 새로 바뀐 유튜브 스트리밍 정책을 말하며, 왜 14세 미만 어린이들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을까? 물었다.

아이들은

“애들이라 뭘 모르니까요.”

“쓸데없는 거 하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작년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했을 때도 느낀 거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차단당하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남의 아파트를 더럽혀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쓰레기 버리지 말기’ 캠페인을 벌였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이런 식이었다.

매년 500명에서 1천명의 어린이들을 수업을 통해 만난다. 올해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하면 1천 5백명 정도를 수업을 통해 만날 것 같다. 세어 놓고 보니 엄청난 숫자다. 지난 2013년동안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몇 명일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천명은 될 거 같다. 3천 여명의 죄책감은 나를 짓누른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

우리는 잘 못하니까.

우리는 떠드니까.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니까.

우리는 말을 안 들으니까.

14세 미만 아동이 방송규정이 생긴 건 소아성애범죄 탓이 크다. 아이들이 통학로를 돌아가게 된 것은 어른들의 쓸데없는 이기주의 때문이었다. 술 먹고 담배꽁초 버리고 오줌싸는 어른들이 더 많지, 아이들이 버리는 과자 껍질 몇 개는 비할 게 아니다.

오늘 아이들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건 신문에 날 정도의 빈도다. 고의적으로 세입자의 전세금을 떼어먹는 부동산 사기꾼은 방송을 타고 그를 바라보며 동경하고,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건 어른들의 대부분이다. 자기 감정을 실어 아이들을 억압하고 윽박지르고 ‘다 너희가 잘못하니까.’라고 덮어 씌우는 것도 어른들이 잘 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고민할 때, 되물은 것은 어떻게 말을 안 듣느냐는 거다. 누굴 때렸나? 사람을 찔렀나? 동물을 괴롭히나?

기껏해야 이 안 닦고, 벗어놓은 옷 정리를 안 하고, 숙제를 안 하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팔려 과자를 흘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을 억압할 때 “우리가 잘못하니까.”라고 구속과 억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너희는 미숙하니까,

너희는 뭘 모르니까,

너희는 잘못하니까,

너희는 떠들고 지저분하니까.

아이들은 당연히

미숙하고, 뭘 몰라야 하고, 잘 못하는 게 많고, 떠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청결하지 않아야 한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야 언어가 발달하고 잘 못하는 게 많아야 배운다. 뭘 몰라야 궁금해지고 더러 코딱지도 먹어야 사회적 매너를 배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어른이라는 것들은 그저 나이만 처먹은 게 전부이고, 나이가 벼슬일 뿐인데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못된 짓을 머리 굵어졌다고 더 지능적으로 하고, 아이 때 맘껏 하지 못한 더러운 짓을 숨어서 한다.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걸 알아버려서, 어떻게 하면 잡히지 않을까 골몰하고, 들키지 않게 타인을 괴롭히는 일에 익숙해진 어른이란 존재들이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라는 게 “너희가 잘못해서.”인가.

아이가 자유의지로 성관계를 동의했다 하고, 아이의 몸이 커서 성인인 줄 알았다고 하고, 아이가, 아이가, 아이가 따라갔으니 피해자라 말할 수 없다는 그 더러운 어른들이, 결국 너희는 괴롭힐 노리개가 필요한건가.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소아성애자의 타겟이 되는 어린이들에게, 그래도 “너희가 잘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빌어먹을 세상에 더러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이 나라에 아이들이 숨 쉴 곳은 없으니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맞다.

[자본의 풍경]누가 예산을 끌어올 것인가

나는 90년대 노태우정권때 지어진 신도시에 산다. 신도시의 목적은 서울과 타도시와의 연결이니까, 이 도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시고속순환도로를 끼고 있고 고속도로와도 가깝다.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정확하게 나뉜 이 도시는 두 개의 구(區)로 나뉘어 있다. 구도심에도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 있고, 신도심에도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있다. 옛 모습이라고 해봤자 80년대쯤의 가옥들이다.

지난주부터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마을에 관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구에 속해있지만 구도심의 모습을 가진 동네다. 아이들과 첫 수업으로 마을답사를 시작했다. 벚꽃이 활짝 피었고 하늘도 맑았다. 지도를 보며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인근 중학교를 돌고 학교 주변 동네로 내려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중학교까지 가는 10여분 동안의 길은 험난했다. 인도가 없거나, 있는 인도에도 주차된 차가 빼곡해 위험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걸으며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제비꽃과 민들레, 명자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거대한 도시순환고속도로가 아이들의 머리위로 지나갔다. 저 도로가 하늘높이 치솟은 이후 그 아래는 단 한 번도 햇빛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에 고속도로를 이고 사는 마을의 횡단보도를 지나 중학교에 도착했다. 축구하기 좋은 잔디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이 깔린 자기네 학교 운동장과 비교하며 중학교 운동장이 좋다고 한참 떠들었다. 중학교 앞에 건물을 짓고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며 계속 앞뒤를 살폈다. 근처에 3층짜리 단독주택이 있었다. 아이들은 멋진 집이라며 감탄했고 동행한 교사도 그 집을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골목길을 살펴보는데 막다른 골목이 나란히 병렬을 이뤘고 80년대에 지었던 전형적인 양옥주택들이 이제는 다세대주택이 되어 철제계단과 작은 현관등을 덧붙여 변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동네에 이상한 아저씨가 많다며 아침 등굣길에 “한 번만 안아보자.”말을 거는 남자 얘기를 했다.

 

“그럴 때는 안돼요. 하지 마세요! 하고 막 도망 오면 돼요!” 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는 예쁜 얼굴이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학교를 둘러친 담벼락 아래 좁은 인도가 있고 그 건너편엔 인도가 아예 없었다. 학교 앞 2차선 도로는 근처 대기업 연구소로 들어가는 차들이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체를 이룰 만큼 가득하다고 담당교사가 전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 아이들을 학교 방향으로 인도하며 가만히 생각했다. 도로 확장을 할 여건이 안되니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고 반대편에 인도를 설치하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통학로를 개선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정리하고 공론화해서 시청 도로교통과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고 정책을 바꾸도록 해야한다. 순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용을 누가 가져올 것이냐에서 걸린다. 인근에 붙어 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지자체에 내는 세금에 따라 행정과 정책이 변경될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의원, 도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결국 누가 돈을 끌어오느냐에 따라 공이 갈린다. 모든 사람들이 찬성하여 안전한 통학로로 바꾸자고 백날 결의한 들, 예산을 따올 수 있는 정치인과 행정력이 없으면 백 명의 의견도 그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서 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가 돈을 가져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시 예산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그저 행정은 결국 예산이 결정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 일개 시민이다. 그 외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돈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본 없이는 애초에 일어날 일도 아니었고 바꿀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잔디밭이 깔린 중학교와, 3층 집도 생각났다. 아, 모두가 돈이 필요한 일이다.

2016. 4. 13.

코코뉴스 [자본의풍경]에 연속 게재하는 글입니다.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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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10. 찰리찰리

다음 주가 마지막시간이다.

몇 몇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에 책을 다 만들었다. 성글게 만든 아이들은 일찍 끝났고 조밀하게 하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대하드라마를 짰다가 난관에 봉착한 아이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건 결과물을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해보는 것이다.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본인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아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선생이 알려주는 대로 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라 자기 뜻대로 진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생각보다, 펼침 9면을 메꿔나가는 일을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기승전결이 있고 위기와 절정이 있는 일을 만드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전문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오래 받지 않은 아이들이 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열 네 명의 아이들을 두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일도 사실 버겁다.

사실은 한 명 한 명 따로 따로 봐줘야 하는 일이다. 알아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선을 잡아주면 잘 따라올 수 있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다.

 

일찍 끝낸 아이들은 각자 간단하게 책만들기 소개글을 만들어 벽에 붙이도록 했다. 상담선생님의 도움이 없으면 매 번 수업을 해내기가 어려워보이지만, 또 막상 선생님이 안 계실 때는 아이들 통제가 잘 되는 편이기도 하다. 이번 주엔 예산이 다 떨어졌는지 간식이 없었다. 아이들이 크게 실망했다.

 

자, 우리 다음 주에 마지막 시간이야.

아이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늘 하기 싫어하는 듯 하더니 은근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음 주에는 상담교실에 있는 각종 교구들을 이용해서 우리 마을을 만들어 보는 걸로 마무리를 할 것이라 했다. 그림책을 다 못 끝낸 아이들은 마무리를 하고 합류하게 될 것이다. 진도가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별도로 맞춤지도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시 학원처럼 소수정예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현관 앞에 앉아 찰리찰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시작되는 분신사바 놀이다. 10살과 11살, 아이들이 공포를 배우는 나이가 아닐까.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은 가위눌림과 귀신을 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찰리찰리를 해봤냐고 물어서 선생님은 그런 거 안해도 귀신이 다 보인다고 했더니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찰리찰리를 하던 은서가 갑자기 막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선생님 같이 가요.

나는 은서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같이 걸었다.

저 다이소 갈거예요.

어디 있는 다이소? 인덕원에 있는 거?

모르겠어요. 같이 가요 선생님.

음. 선생님은 바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같이 못 가겠는데, 대신에 같이 가는 길까지 같이 가자.

은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외숙모네 놀러간 일,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못 잔 일, 사촌동생이 몇 살이고, 그 날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선생님은 왼쪽. 다이소는 저쪽에 있던데, 저기까지 갔다가 집에 혼자 갈 수 있어?

저쪽으로 가면 다시 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돼요. 갈 수 있어요.

그럼 여기서 너는 길을 건너야겠다.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은서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어서 손을 들고 길을 막았다. 은서에겐 위협적이지 않은 거리였지만 아이는 놀란 듯이 바쁘게 뛰어갔다.

길을 건넌 은서가 손을 흔들고 다이소를 향해 갔다.

나는 개천을 건너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갸녀린 팔다리와 무거워보이는 가방, 아이들에게서 나는 큼큼한 냄새.

나는 홍콩할매귀신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의정부 버스터미널 뒷골목의 10살이 되어 서 있다. 내가 빼앗아 타던 상미의 자전거가 생각났다. 앞 집의 미군아저씨가 소풍이라고 가져다 줬던 프링글스가 사각거리는 듯 했다. 나의 열 살은 지독하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도 그런 것만 같아 나는 매번 슬프다.

 

2015. 6. 19.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9. 버터링 쿠키

금요일 독서클럽
오늘은 상담샘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찍 도착.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야기동화책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기대한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9장에 맞춰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맘을 비웠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나눠준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마을교육 방과후 활동엔 간식비가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버터링 쿠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다른 활동시간에 아이들이 먹은 것 같은 빈 박스가 쌓여있다. 오뜨, 마가레트같은 과자박스이다. 왜 아이들에겐 늘 달디단 과자와 설탕이 가득한 음료수를 간식으로 줘야 하나.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붙잡아매는 유혹거리를 보며 속이 불편했다. 내 새끼에게는 먹이려 하지 않는 과자를 숫자대로 나눠주려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았다.
이것부터 바꿔야겠다, 내년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아이들에게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가 나눠줄께요 라고 하며 손을 벌렸다.

은서가 울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은서의 섬세한 그림이 자꾸 맘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에 간 제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니랑 우격다짐을 하며 싸우던 하윤이의 그림책은 제니와 하윤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제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아이들은 꽤 많이 진도를 나가 많이 완성했다. 아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뒷문에 야구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민영이가 있었다.

몇 주전, 엄마가 방과후를 그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라 했다며 독서클럽을 그만두었다. 늘 무기력하던 민영이는 첫 날 독서실 구석에 앉아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민영이에게 선생님도 이 책 되게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었다. 캠코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신이 나서 방방 뜨던 민영이가 평소에 늘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도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어우 어쩐 일이야. 들어올래? 민영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빠?
민영이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학원 가야 되니?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들 만나러 왔어?
아녀. 민영이가 대답했다.
그냥 들렀어요.
지쳐서 금새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
집에 들었다가 영어학원 바로 가야 돼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민영이가 큐브블록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선생님꺼라며 따로 챙겨둔 버터링 7개를 크리넥스에 싸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민영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물을 먼저 주었더니 민영이가 물을 조금 마셨다.

버터링 쿠키를 받아든 민영이의 손이 너무 번잡했다.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들고 나와 버터링쿠키를 담아 주었다.

지금 가야 되니?
민영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인 듯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민영이를 뒤에서 살짝 안아들고 다섯걸음을 걸었다. 내 새끼는 40키로에 육박하는데 그보다 한 살 많은 민영이는 30kg남짓인 거 같았다.

우리, 다음 다음주까지 할꺼야.
시간 나면 또 놀러와.
민영이가 배꼽에 한 손을 대고 무겁게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는데 민영이가 뜨거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부모님이 늘 늦게 오세요. 무기력한 편이죠.’ 상담 선생님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눈물이 고여 선생님 책상에 있는 휴지를 얼른 뜯어 눈가에 대는데 아이들이 제가 그린 것들을 들고 와 떠들었다.
아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민영이가 모래위를 터덜거리며 지나갔다.

201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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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8.

은서가 그린 그림.
은서는 집에 가는 길에 늘 화물운송 사무실 앞에 들른다.
거기엔 잘 씻기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산다. 지난 번 마을탐사할 때 은서의 소개로 다 같이 가서 봤다.

오늘은 릴레이동화를 지었는데 은서가 새끼 낳은 개를 그렸다.

미술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은서 생각을 했다.150531_iphone6+ 232

2015. 5. 22.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7.

토요일 초등학교 독서클럽 수업

늘 우는 은서, 교실로 올라가는데 마주쳤다.
기운빠진 목소리로 보건실에 간다했다.
교실에 들어오더니 보건선생님이 안 계시단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상담선생님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안경을 들어올리고 한 손의 소매깃을 길게 빼서 눈물을 연신 훔치며 흐느끼고 있었다. 수업시작 15분 전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
상담선생님이 너무 힘들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여러 반이 한꺼번에 강당이나 시청각실로 움직이는 일이 있을 때 다른 아이들이 밀치거나 신체적인 접족이 있으면 그 날 하루종일 못 견뎌한다 했다. 은서는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매우 갸날프다.
은서가 집에 가버린 교실.
아이들이 약간 반기는 거 같아 씁쓸했다.

오늘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실에 있는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고 교실에 있는 색연필과 크레파스, 매직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가지고 다녀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연필까지 한 자루씩 다 깍아서 나눠줘야 하는 판이다.

주인공은 동물, 사물, 사람 중에 하나씩 골라서 마음속으로 정하는거야.
앞으로 우리가 만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야.
나를 그리라는 게 아니고, 내가 만드는 거야. 나는 오늘 신이다!
자 이제 그럼 마음속으로 정한 주인공을 그려보자!

아이들이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5분이 넘어가면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쟤가 내꺼 훔쳐봐요.
선생님 쟤가 내꺼 베껴요.
선생님 저 안 베꼈어요.
선생님 저 그만하면 안돼요?
선생님 저 다했어요!

다 그린 사람은 옆에다가 주인공의 이름을 지어주고 성격과 특징을 적으라고 했다.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누구랑 같이 살고 있는지,
집은 어디인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색깔,
싫어하는 것
화가 나면 어떻게 하나?
기쁠 땐 어떤 행동을 하나? 등등을 적으라고 했다.

내가 주력한 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수업을 끝내고 자기가 그린 걸 발표하게 했다.
아이들은 부끄러워하며 자기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생님이 구분할 수 있도록 자기 이름을 적어놓고 제출하고 가라 했다.

아이들이 다 간 다음 그림을 모아놓고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사회복지사선생님(상담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솔미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지난 번에도 스토리를 줄줄줄 만들어 냈다. 오늘 솔미는 구미호족을 그렸다. 자기는 주인공보다 악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악당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일반 아이처럼 다니다가 가끔 변신을 하는 구미호인데, 초능력을 가졌고 피가 묻은 꼬리를 백개 넘게 달고 다닌다. 솔미가 말했다.
얘는요, 엄마 아빠를 이미 죽였어요. 악당이거든요. 얘는 델포이에 사는데요, 왕권을 물려받으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죽여버렸어요.

늘 밝게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고 잘 달래주는 유정이가 남긴 그림을 보았다. 싫어하는 것. 술. 화가 나면, 도로로 끌고 가 죽여버린다.

귀여운 머리띠를 하고 와서 정말 예뻐서 눈을 떼기 힘든 서희의 주인공은 미완성이다. 화가 나면, 때린다.

어떤 아이는, 얘는 화를 나지 않아요. 화 내는 거 싫어요. 아주 아주 착하거든요.

얘는 화가 나면, 옆에 있는 햄스터가 빨개져요.
본인은 괜찮고? 네. 얘는 표시나지 않아요.

얘는 초능력 눈이 있어요. 화가 나면 눈이 뾰족하게 튀어나와요. 가족이 있는데 혼자 살고 있어요.

어른도 마찬가지, 마음의 비밀은 숨길 수 없다.
모두 다 들통나기 마련.
아이들의 비밀을 엿보는 일이 가슴아프다.

+ 수업중에 아이들과 매번 적잖은 갈등을 일으키는 하윤이가 내 무릎에 앉아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쳐가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기 위해, 더욱 건강해야 한다.

2015. 5. 15. 기록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6.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
조별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다.
상상력이 가득 들어간 지도도 있고
정확한 축척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지도도 있고
곱고 예쁘게 그린 지도도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리고 30분동안 발표했다.
중간에 툭탁대기도 했지만 큰 싸움 없이 정리.

은서는 오늘 울지 않았는데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으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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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5.

아가들 데리고 마을 탐사를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인덕원 지구대에 가기로 했는데 지구대장님이 나와서 안내해주시고 간식도 주시고 총도 보여주심 ㅋ

여경언니도 둘이나 있고 훈남 순경들도 있고 아이들이 이런 저런 거 물어보는 것도 귀여웠다.

오늘도 은서가 울었고 제니도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일이 어렵다. 그게 내가 못하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케줄이 많아 정신이 없고 친구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중요한 모양이다.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쳐다봤고 무슨 뒷담화를 하는 ‘것 같으며’ 나에게 어떤 (말로) 공격을 가했는지, 이게 하루를 지배하는 모양이다.

모두 여자아이들이라 그런가.
어렵다.

2015. 4. 2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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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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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케 수업을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려고 캠코더를 가져가서 돌려놨는데 아이들이 금방 알아차렸다.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독서클럽 회의라며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안건을 냈다.

나는 학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달라고 했으나 아이들은 “잘 없애면 된다”고 하며 웃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아이는 내내 무기력하던 아이인데 저 날은 펄펄 날았다.

세 번째 수업, 아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말을 많이 한 두 번째 시간, 은서가 울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블럭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

“선생님 사진 찍어주세요.” 나는 어디가 문이냐고 물었다.

다음 주에 있을 수업내용을 결정하는 회의를 했다.
다음 주엔 탐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에겐 실내화를 갈아신고 나가야 하는가 실내화주머니를 들고 가야 하는가가 가장 치열한 토론문제였다.
적극적인 발표로 탐사준비회의는 매우 기분좋게 마쳤다.

학교는 앉아 있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지루하고 재미없다.
왜 앉아야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학교는 흡사 동물쇼의 조련실과 같다.
훈련이 잘 된 아이들이 많을수록, 그 학교에 대한 평가는 좋아진다.

아이들이 떠들고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학교는 정녕 불가능한가.

2015. 4. 19. 기록

아이들은 죄가 없다.

1.

남편이 틀어놓은 뉴스와이에 말레이시아 여객기 추락 자막속보 위로 신나는 여름방학이라는 뉴스가 흐른다.
초등학교 1학년들의 첫 방학을 소개하는데 교복을 입은 사립초등학교에.. 방학동안 기대되는 일을 발표하는 아이가 8월에 싸이판 가는데 바다에서 고기 잡을 일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낯설다.
아이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2.

동생학원에 1학년 여자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등록과정부터 부모가 결제는 나중에 할테니 아이 먼저 보내겠다고 하여 동생이 당황했다.
아이가 학원에 와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남자친구가 몇 명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단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왔는데 눈물자국이 있는 상태로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도 엄마가 눈물도 닦아주지 않고 데려다주고 갔단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엄마 아빠는 매일 “야근” 하느라 늦게 오고 언니가 둘 있는데 언니들은 심부름만 시키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저는 혼자예요” 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3.

자율적으로 혼자 알아서 하게 하는 범위가 어디냐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다 부러진 연필을 그대로 가지고 다니는 경우를 보거나 알림장 한 번 들춰보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거나 아이 혼자 바닥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할 때 그렇다.

4.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나 모두 다른 가정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 어느 아이 하나 소중하지 않으랴.
내 새끼도 챙기지 못하면서 남의 새끼 챙기는 것도 우습지만 내 새끼만 챙기겠다고 사는 짓은 더 우스운 일이니.

5.
사무실 건물에 같이 입주해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가끔 물품을 전달한다. 지난 달에는 정기후원도 약속했다. 작아진 신발이나 우리 아이의 우산을 사다가 같이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더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어릴 때 저런 센터가 있었으면 내 삶의 트라우마도 이렇게 강렬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매일 매일이 번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