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안양천 생태이야기관 사이트에는 ‘경기남부 안양부근의 왕곡천, 오전천, 당정천, 산본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삼봉천 등 많은 지류가 안양천에 합류한다’고 적혀 있다. 안양시와 접하고 있는 의왕시의 백운호수쪽에서 학의천이 시작하고 이 학의천이 안양시의 중심부, 쌍개울이라는 곳에서 안양천을 만난다. 이 안양천은 안양시를 관통해 서울로 향한다. 광명시를 지나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 양천구에 이르면 서울이다.

내가 안양이라는 지명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때 엄마의 지인이 반월공단에 공장을 연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른들이 안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에는 안산이라는 지명이 없었는지, 안양 인근 지역을 안양이나 반월이라고 했다. 미군부대가 점령한거나 다름없는 의정부에 사는 사람들이 안양을 지칭하면서 안양깡패가 무섭다는 둥, 안양천 물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똥물이라는 등,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하는 걸 듣고, 안양이라는 동글동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곳이라고 상상했다.

안양은 일제강점기에도 각종 산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후 60년대 산업발달기에 공업지구로 각광받으며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다. 먼저 섬유공장들이 들어섰는데 대표적으로 동일방직 공장도 있었고, 이어서 제지회사들도 천변을 따라 있었다. 약품회사도 꽤 많았다고 한다. 지금 평촌의 스마트스퀘어가 된 곳에는 대한전선이 상당히 큰 부지를 차지했다. 안양에 일자리가 많아지자 직장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마을을 확장하면서 도시가 팽창했다. 언급한 섬유, 제지 공장들은 안양천과 수암천, 학의천을 따라 줄 지어 섰다. 당시 산업폐수나 환경오염에 한 인식이 척박하던 시절, 이들이 하천을 따라 공장을 건설한 것은 물을 끌어쓰고 버리기 좋은 환경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폐수들이 안양천을 뒤덮었다.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정도는 아니었다’고도 하는데 뜰채로 물을 건져 햇빛에 말리면 슬러지가 생겨 종이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대 초반 신문기사를 보면 한강의 지천 중 최악의 오염도라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안양천은 90년대에 들어 환경운동가, 시민들, 안양시청의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안양을 찾는 외지인들이 놀라워 할 정도가 되었다. 간헐적으로 공사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천변의 한쪽은 자갈과 흙이 그대로 살아있는 둘레길로 놔두고 한쪽에만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해두었다.

내가 안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5년이다. ‘안양천 똥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힌 채였다. 둘러보는 안양천은 대체 어디가 똥물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지와 안양천을 즐겨 걸었고, 징그럽게 많아지는 잉어떼를 보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왜가리가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을 괜히 숨죽여 구경했다가 감탄사를 쏟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이 왜가리가 어쩐 일인지 안양천과 꽤 떨어진 우리 집 베란다에 날아들었다가 휙 떠난 일도 있었다. 상상도 해 본 일이라 꽤 놀랐지만, 어쩐지 상서로운 일 같아서 으쓱하기도 했다.

안양천의 생태복원은 안양시의 자랑거리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이 넘치는데 하천과 도시의 경계가 꽤 움푹하다. 어제 폭우로 일부 피해구간은 있으나 안양천 전체가 범람하진 않았다. 천변이 잠길 정도로 비가 오면 안양시에서는 방송을 내보내고 문자를 보내 천변에 주차한 차들을 이동시키라고 사전에 예보한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니까. 여름마다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은 한 번씩 범람한다. 둑을 매우고 잡풀들이 쓸려 내려간다. 이렇게 한번식 바닥을 쓸어주고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된다고 한다. 내가 안양천을 지켜본 게 벌써 17년여가 되었는데 그 사이 안양천에 산다는 생물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전에는 하천 범람으로 상습침수구역도 있었으나 그 횟수나 정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서 수해가 났을 때, 나는 굽이치는 안양천을 보며, 저렇게 내버려두는 척 하는 것이 안양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양시정에 관해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안양천에 대한 시의 정책은 늘 동의하며 칭찬해왔다. 학생들에게 안양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안양천은 사실상 안양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들의 마을환경개선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안양천에 자꾸 뭘 만들어달라고 한다. 천변에 운동시설을 더 만들어달라, 조명을 더 밝혀달라, 길을 넓혀달라, 자전거도로를 확장해달라, 심지어 학의천과 쌍개울이 만나는 곳이 자전거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하거나, 공연장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저런 이야기를 멀쩡한 자리에서 듣고 있으면 4대강 사업은 이명박 혼자 추진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가뒀다 풀었다 옥죄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시민들의 요구를 다 반영한 게 수년 전 의왕시의 학의천 구간이었다. 학의천은 안양시 평촌동과 의왕시 내손동의 경계에 있다. 안양시와 의왕시의 경계에서 양쪽을 둘러보면 확연히 달랐다. 의왕시 구간은 반듯반듯하게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널직하게 구현되어 있고, 시민들이 모여서 공연을 보거나 운동을 할 곳도 많다. 이에 비해 안양시 구간은 투박해서 마치 방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구간을 지나는 시민들은 ‘안양시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시민들이 조명을 밝혀달라 하면, 물고기도 자야한다고 대답하고, 안양시의 자전거도로를 넓혀달라하면 자전거에서 나오는 분진도 안양천을 망치는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공직자들도 있었다. 올해들어 안양천에 경관조성을 한다고 조명을 만들어붙이고 번쩍이게 만드는 걸 보고 마뜩치 않았다. 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해명이 있었고 이를 반기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자전거 도로를 넓혀달라고, 공연장과 체육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계속되었다. 언젠가, 공무원이 질 것이다. 저렇게 자기 집 앞에 뭔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요하다. 언젠가, 공무원은 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생각했다. 지고 말 것이라고.

이번 폭우는, – 폭우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도 하지만 – 안양에도 피해가 있었다. 안심하고 있던 신축아파트단지나 저층 다세대, 빌라주택에도 물이 차 올랐다.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이고 그 안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수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해가 어찌 100% 자연재해겠나. 건들지 않았으면, 사람이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고 물길을 틀어서 도시를 만든다. 그 도시 안에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겠다고 선언하며 산 허리를 베어내고 물길의 무릎을 쳐냈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마구잡이로 자를 대고 죽죽 선을 그어 만든 도시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물줄기와 그나마 버티고 있는 나무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물은 때때로 넘쳐야 한다. 그게 자연에 속해있을 때는 그렇다. 그러나 물줄기를 꺾어 인간을 불러들였으면 넘치는 물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치수하고 정치할 일이다. 자연에 빌어 도시를 만들어 산다면 어두운 물가에 불을 밝히지 말 것이며, 나무의 머리통을 잘라내지 말 것이며, 산의 심장을 도려내지 말 일이다. 매일 매일 환경을 파괴하며 산다. 내가 도시에서 쉬는 만큼, 도시를 지키는 이 하천도 마땅히 쉴 권리가 있다. 지켜왔던 자존심, 생태하천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라도.

사진: 2022년 7월 30일 21:42 학의천 안양구간

군포시공익활동지원센터 – 활동가 글쓰기 교육 3회차

공익활동가 글쓰기 수업 모집 시작합니다.

군포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기획했습니다. 문화공동체 히응의 이하나대표가 직접 강의합니다.

애초 2회차로 기획되었으나 3회차로 늘리고 2시간 30분씩 진행합니다. 9월입니다.

신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gp4citizen.org/news/?mod=document&uid=851

내게 무해한 사람- 우영우

막상 회전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 문이 휙휙 돌아가는 리듬에 맞추려고,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 있는 우영우를 보면, 길을 막고 섰다고 화를 내며 슬쩍 밀치고 지나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 이 땅은, 어설프고, 느리고, 둔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장애인 등급에 따라서가 아니고, 부족한 것, 느린 것, 어설픈 것을 쉽게 혐오한다.

이 사회에서는 어설프고, 느리고, 둔하면 쉽게 낙오한다. 이 나라에서는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혐오할 수 있다.

낙오자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데굴데굴, 굴러떨어질테니까, 그걸 잊고 살려고 간신히 온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데, 너 혼자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굴러떨어지는 너를 보면, 이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기억해내야 하니까, 그래서 더 힘을 내야 하니까.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하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거, 어차피 다 빤히 아는데. 내가 갖고 태어난 게 이것뿐이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이룰 수 있는 건 80정도인데, 어떤 놈은 노력하는 힘 자체가 다르게 태어나서 조금만 페달을 밟으면 1200까지도 간다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잊고 있는데.

내 앞에서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짓을 하면, 당신이 낭떠러지에서 곧 굴러떨어질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 못할 것이고, 이 무서운 세상에서. 이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 싹 다 잊고 버텨야 하는데.

왜 자꾸 내 앞에서 문 하나 똑바로 못열고, 왜 내 앞에서 계산대 위에 펼쳐진 물건을 빨리 빨리 주워담지 못하고, 왜 내 앞에서 길을 막고 서서,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죽게 된다고,

왜 자꾸 나에게 무서운 사실을 각성시키냐고.

그러니까, 느리고 어설프고 둔한 당신을 미워하지 않지만, 혐오한다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그만큼 약하고 힘들고 애타는 사람들의 혐오가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회전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존경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가는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무해하지 않아도, 살아남으려면.

그러니까, 당신의 그 둔한, 어설픈, 느린 행동으로 이 세상의 잔혹함을 내가 다시 각성하게 만들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힘껏 혐오하는 땅, 여기에, 갖은 모양의 구름이 보기 좋게 떠 있던 하루였다.

사람들은 구름을 보며 고래 모양을 찾는다. 고래를 찾으며 우영우를 떠올리겠지. 완전히 무해한 장애인 우영우.

8월에는 구례에 갑니다

2020년 섬진강 수해를 기억하시나요?

소들이 떼를 지어 산을 오르고 물에 빠진 소들을 구해내던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여기저기 퍼졌습니다. 그때 그 수해를 입은 주민들은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구례군 구례읍 전통시장 부근은 특히 피해가 컸습니다. 상류 댐들이 방류량을 늘리면서 섬진강이 넘쳤습니다. 이 수해는 공식적으로 “섬진강 수해”로 부릅니다.

이번 강좌는 재난지역을 찾아가는 NGO #에이팟코리아 의 추진으로 이뤄졌습니다. 아시아퍼시픽얼라이언스(이하 에이팟_A-PAD)는, 아시아 · 태평양 내 국가들이 협력하여 재난 현장 긴급 구호 · 복구 · 방재 · 재난 이후 지역재생 등을 주로 다루는 아시아 대표적 국제기구입니다. 에이팟코리아에서 활동하는 #현관앞비상배낭 팀과 함께 합니다.

그해 여름을 응시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속도 없이 쓰담쓰담. 이야기 나누러 가겠습니다.

안동 문화다양성 포럼 발제

문화도시 안동에서 개최하는 다채로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문화다양성 포럼에 참가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리장애인복지관에서 해온 생애사쓰기 지도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구분짓는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포럼을 통해 안동지역에서도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멋진 사례를 만났습니다. 초대해주신 문화도시안동에 감사드립니다.

포럼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긴 어려워 마무리발언으로 준비했던 원고를 붙입니다.

장애학연구자이자, 노들야학의 교사인 김도현 선생이 쓴 “장애학의 도전”에 보면, 우리가 장애를 별도로 분리한 것은 200년이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부 기능이 약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분리해낼 경우, 시내에는 누가 남을까요? 신체적으로도 아주 우월하고, 지적으로도 월등하고, 할 줄 아는 게 많은 팔방미인에, 건강한 사람들만 남겠죠.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을 쳐내면,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을 겁니다. 저도 쳐내질 겁니다.

지금 여러 곳에서 장애인투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여기 안동에 고속버스를 타고 올 권리, 또는 시설에 갇혀서 살지 않을 권리를 외치는 겁니다. 비장애인들은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기본권에 대한 것이죠. 내가 사는 지역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별로 안 보인다거나,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당연하다거나, 저상버스가 없는데도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거나, 내 자녀의 학교에 장애아동이 없다거나, 재활수영이 가능한 수영장이 없다거나, 영어로 된 간판이 줄 지어 있다는 얘기는, 차별이 만연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저출생, 끊이지 않은 산업재해 같은 게 있겠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 느낌은 모두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더라도, 국가가, 사회가, 내가 사는 이 고장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라는 신뢰, 그 확신이죠. 그런 확신이 보편적으로 퍼져나갈 때 사회는 안정되고 한국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큰 난관인 저출생의 문제도 해결되리라 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집이 되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장애의 역사”라는 책의 마무리에 나오는 말인데요. 이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국가는, 사회는,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는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2022년 7월 23일

안동단상

안동신중앙시장은 오늘 장날이었다고 한다. 아침 10시에 그렇게 인파가 몰렸으니 아마 장날인가보다 생각만 했었다.
시장을 둘러보면 식당도 있겄거니 싶었다. 좁은 골목에 보리밥, 칼국수 간판이 보이길래 서둘러 들어갔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식당이 대여섯개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 보리밥이라고 생긴 곳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괜찮지만 남편은 쌀을 좀 먹어줘야 하는 사람이라 밥을 먹자고 했다.
들어가니 장날이 뭘 팔러온 거 같기도 하고 사러 온 거 같기도 한 할매 몇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오봉이라 불러야 그 맛이 나는 커다란 꽃무늬 쟁반위에 놓인 그릇은 간단한 보리비빔밥이었다.
혹시 다른 메뉴가 있냐고 물으니 보리밥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벽면에는 오랫동안 3천원을 받았는데 올해부터 4천원으로 올린다는 글씨가 두 군데나 붙어 있었다.
금세 밥상이 나왔다. 얼갈이배추와 부추, 콩나물, 치커리, 미역줄기를 담은 보리밥에 고추장, 아주 진한 된장, 멸치, 삭힌 고추조림, 보리밥 숭늉이었다.
어떻게 먹냐고 물으니 옆에 앉은 할매가 멸치 넣고 고추넣고 된장은 많이 넣지 말라고 일러줬다.
우리는 쓱쓱 비벼 우걱우걱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치 한 조각 없는 밥상에 양파가 달았다.

“딸같은 며느리, 다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할매들의 며느리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한 할매는 ”우리 애는 정말 안 그래. 세상 그런 애가 없어.”라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제사도 지가 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옵니다. 지도 바쁘고 힘들어예. 우리 아들하고 사업을 세 개를 하거든. 그래도 한 번도 싫다 소리가 없어. 나한테 엄마라고 부릅니다. 아주 잘해예. “
그러자 다른 할매가 “어무니 아들이 잘하는갑지예.”라고 한다.
“그렇지. 우리 아들도 그댁에 잘 하죠. 우리 아들이랑 사업도 하고 좋은 차도 타게 해주고, 뭐 돈 모자란 거 없게 해주니께네. 아주 군소리가 없어. 한 마디도 안해.”
“거 다 아들이 잘 해야 되는 겁니더. 요새는 무조건 아들덜이 잘 해야됩니더.”
“매느리가 그만치 하면 어무니 아들도 처가에 그만치 한다는 얘깁니더.”

우리는 마주보며 웃거나 인상을 쓰면서 할매들의 이야기를 감상했다. 밥을 다 먹고 밥값이 너무 저렴해 거스름돈을 안 받고 싶다고 했더니 절대 그러면 안된다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경북출신의 나이든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경상도지방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철저한 가부장제, 남녀차별에 관한 인식을 자주 접한다. 처음에는 분노했고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그저 관찰할 뿐이다. 나는 거기 살지 않으니까.
나는 수도권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다. 중국에서 잠깐 산 기간에도 국가 최대의 대도시에 살았으니 나는 대도시가 아닌 곳의 정서를 전혀 알 도리 없다.
남성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약자를 존중한 적 없는 문화가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는 것에도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모른다. 멀리 에스키모에게는 이런 문화가 있다더라, 얘기하면서 이제 우리는 ‘그들이 미개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의 공생을 위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인권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인권의식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한 지역의 오래된 문화를 폄훼할 수는 없다.

경상권에 갈 때는 이천 – 여주를 지나 충북을 거쳐 가게 된다. 첩첩이 산중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과 들, 사방이 막힌 것 같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안에 골짜기마다 숨어있는 사연들에 대해서 나는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닫기로 한다.
안동시는 1,522km2의 면적으로, 안양 면적 58.46km2의 26배이다. 서울은 605km2이라 하니 서울과 비교해도 두 배다. 안양의 인구는 저 면적에 55만 정도 되는데 안동인구는 16만에 조금 못 미친다. 현황의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다를지 사실 감도 잡기 어렵다.

그저, 시장통에 앉아 내내 고구마줄기를 까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노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한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 –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수업일지

우영우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복지관 수업을 가는 날, 오전에 회의가 있어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학생들은 항상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린다.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이다. 이 교실에 모이는 발달장애청년들은 다수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요양병원이나 학교에서 오전에 근무를 하고 복지관에서 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오전 내내 커피 내리는 연습을 하다가 온 이도 있다. 장애여부를 떠나 지금의 청년 누구나 취업이 어렵다. 취업을 하더라도 커리어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다. 이 교실에 있는 청년들도 비슷하다.

교실에 문이 열린 것을 흘낏 보는데 저 안쪽에서 채은 씨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나는 안녕하세요! 손을 흔들고 화장실에 먼저 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슬미 씨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슬미 씨는 나를 보고 옷이 예쁘고 가방도 예쁘다고 해줬다. 오늘은 정말 대충 입고 갔는데도 칭찬이 후하다.

교실에 들어서자 다은 씨가 나를 재촉한다. 선생님 커피를 사놨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왔다고 말이다. 복지관 1층에는 이용자들이 직업훈련도 하고 취업도 하는 카페가 있다. 자폐인들 중 직업훈련이 가능한 사람들만 바리스타가 되거나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다. 우리는 이들을 엘리트라고 부른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다들 다른 성향이 있는데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았거나, 경미한 경우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선별된 이들이다.

신발을 벗고 교실에 들어가니 홍찬 씨는 엎드려 있다. 홍찬 씨와 정훈 씨는 자폐이고 다른 이들은 지적장애가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다. 지적장애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수업 시작 전까지 잠시 준비하며 인사를 나누는데 엎드려 있던 홍찬 씨가 벌떡 일어나서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면서 이하나. 선생님. 이라고 내 이름을 기억해줬다. 그리고 나와 눈도 맞췄다. 지난 4회동안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오늘은 홍찬 씨가 정말로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자폐인인 학생이 눈을 마주치고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

교실에는 두 명의 복지사 선생님이 항상 같이 들어온다. 보영 씨와 다은 씨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해서 선생님이 도와줘야 하고, 홍찬과 정훈은 스무고개처럼 질문 하나 하나씩 넘어가야 한다. 오늘은 교실안에 있는 친구를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소통이 잘 되는 짝꿍을 지어주고 서로 질문을 해보라고 했다. 다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고 좋아하는 만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포켓몬스터가 압도적이었다. 홍찬 씨가 벼랑위의 포뇨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패드를 열어 포뇨 노래를 틀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홍찬 씨가 눈을 한 번도 안 떼고 포뇨 영상을 열심히 보며 양 손을 위로 올려 반짝반짝 흔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정훈 씨는 아무래도 소리에 예민한 것 같아서 수업 중에 음악을 틀 때 조심한다. 아직까지 거슬린다는 표시를 한 적은 없다. 여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2악장을 틀어주었는데 정훈 씨는 귀에 손을 댔다가 내려놓기도 해서 그 수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보영 씨는 게임에 몰입해 있다. 집에서도 게임을 하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다고 했다. 보영 씨가 포켓몬게임을 한다고 해서 혹시 포켓몬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2017년부터 수집한 내 포켓몬고의 포켓몬들을 보여주었다. 보영 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다. 나는 친구 맺는 법을 가르쳐 주고 다음 시간에 포켓몬도 교환하자고 했다. 보영 씨가 좋은지 계속해서 소리 내어 웃었다. 복지사 선생님들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고 했다.

수영선수인 지영 씨는 포켓몬고를 깔 줄 모른다고 했다. 다음 주에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다.

종열 씨는 갈수록 글쓰기 실력이 늘어간다. 혼자서 척척 써내려가는데 다음 문장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힌트를 주면 완성된 문장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종열 씨는 요양병원에서 청소일을 한다.

교실 안에 있는 친구 소개를 마치고 지금은 만나지 않는 옛날 친구에 대해서 적어보자고 했더니 종열 씨가 한 친구에 대해서 적었는데 2018년 생애사쓰기에 참가했던 수영 씨 같았다. 나는 종열 씨에게 혹시 시 잘 쓰는 수영 씨를 말하는 건지 물었다. 안경 쓰고. 종열 씨가 맞다고 했다. 수영 씨는 감정이 풍부하고 슬픔이 가득차 있었다. 자주 울었는데 감정기복이 심해 약을 먹었고,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운문으로 쓰는 재주가 있었다. 나는 그때 수영씨에게 우리 복지관 최고 시인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수영 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막고 웃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채은 씨도 내가 아는 이름을 적었다. 은혜언니가 보고 싶어요. 글씨도 동글동글 예쁘게 잘 쓰는 채은 씨는 정말 귀엽다. 오늘 나는 채은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채은 씨는 알고 있어요? 본인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채은 씨가 부끄러워하며 크게 웃었다. 나는 채은 씨에게 이 글을 선생님이 다른 곳에 가서 소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채은 씨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채은 씨는 좋다고 해줬다.

슬미 씨는 오늘도 학교 다닐 때 자기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했던 친구에 대해서 적었다. 내가 채은 씨에게 글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걸 듣자 슬미 씨가 자기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기 것도 찍어서 소개해달라고 했다. 대신 실명은 빼달라고 했다. 슬미 씨는 맨 아래 “나는 이제 스물 아홉 살이다. 하지만 나이 먹는 것이 싫다!”라고 적었다. 나는 슬미 씨에게 “선생님은 내후년에 오십살 되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라고 농담을 걸었다. 슬미 씨가 “그래도 선생님은 정말 동안이십니다.”라고 대답해줬다. 껄껄껄.

정훈 씨는 내가 한 마디 물어볼 때마다 한 마디씩 대답했다. 종열 씨와 직업훈련을 같이 했는데 자기에겐 어려운 축구게임을 종열 씨가 잘 하더라는 기억을 말해줬다.

보영 씨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서 “오늘 새 게임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이하나 선생님입니다.”라고 적어주었다.

쓴 글을 발표하는데 다들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 친구에게 사랑한다고들 적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홍찬 씨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해보자고 부탁했다. 홍찬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눈을 마주치며 차렷, 열중 쉬어, 경례를 했다. 홍찬 씨는 “이하나 선생님”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다음 주에 야외 활동을 나간다는 공지사항을 들으며 나는 교실을 나왔다. 홍찬 씨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이름을 불러준 것이 감격스러워서, 오늘의 수업일지를 적는다.

오늘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하는 날이다.

*사진은 채은(가명) 씨에게 허락 받은 채은 씨의 글.

*참가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안양시의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2018년, 2019년에 이어 다시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럼]안동 문화다양성 포럼 발제 참여

한국정신문화재단 문화도시 안동에서 주관하는 문화다양성 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합니다.

다채로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문화다양성 포럼. 2022년 7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유튜브 문화도시 안양 생중계

다채로움 공동체와 함께 하는 문화다양성 포럼.

2022년 7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유튜브 문화도시 안양 생중계

[강좌]오산문화재단 경기시민예술학교

오산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경기도 지원사업, 경기시민예술학교에 특수분장과 생애사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생애사쓰기 수업을 진행합니다.

본 강좌는 7월부터 8월까지 1기를 진행하고 10월부터 2기를 진행하게 됩니다.

문의는 오산문화재단으로 해주세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네 번째 시간.

문장을 완성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더 가깝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붙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다.

떠오르는 낱말과 낱말 사이을 이어붙이는 일, 그렇게 해서 만든 하나의 문장과 그 다음의 문장을 연결짓는 일.

이미 세 번의 글쓰기 시간을 마쳤다. 학생들은 단어와 단어를 나열하고 그 사이에 조사를 넣거나 서술어로 끝맺으며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나는 그 사이에 부사를 넣었다. 질문을 다시 던지면 한 줄을 더 쓸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와, “내가 가장 슬펐을 때”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수행능력이 높아서 한 시간동안 두 개의 주제로 서너줄짜리의 글을 쓸 수 있다.

행복했을 때를 쓸 때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눈앞에 뭐가 보였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내 얼굴에 쏟아지는 빛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를 적어보게 했다. 모두들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하나씩 하나씩 글자를 눌러적었다.

행복한 기억을 발표한 뒤 슬펐을 때를 적어보자고 하자 수빈이(가명) 중학교때 자기를 놀렸던 남학생의 이름을 적고 나에게 물었다. 수빈은 지적장애가 있는데 잘 설명하면 하나씩 하나씩 잘 따라오는 학생이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선생님, 저 이런 얘기 써도 되요? 저 슬프게 한 아이요.”

“네. 써도 되죠.”

수빈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중학교 3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1학년때 누구, 고등학교 2학년때 누구. 아이들의 이름 옆에 괄호를 치고 고1, 고2, 중2라고 적었다.

“얘는요! 입 튀어나왔다고 못생겼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듣자 웃음이 터졌다. 나는 수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다 입이 튀어나와있어요. 수빈씨.”

“정말요?”

“그럼. 선생님도 입이 좀 나와있어요.”

“그리고 얘하고 얘는요. 나보고 춤춰보라고 하면서 막 웃었어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뒤통수가 싸늘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너희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라고 했어요.”

“잘했네요.”

“그리고 얘는요, 저한테요. ‘이 장애인새끼가!’ 라고 했어요.”

“헐. 그래서 수빈 씨는 뭐라고 그랬어요?”

“그냥 무시했어요.”

“잘 했어요.”

“얘는 장애인 아니거든요. 얘는 일반인이거든요.”

“수빈 씨. 일반인 아니고, 비장애인. 비장애인이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비장애인.”

“수빈 씨는 본인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요?”

“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장애가 심하지 않거든요.”

“네 그래요. 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고 비장애인을 놀려서도 안되죠. 나쁜 아이들이네요.”

수빈 씨가 초중고등학교때 앨범찍어놓은 사진을 휴대폰에서 찾아 보여주면서 이 앨범들을 모두 다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숨이 빨라지길래 같이 쉼호흡을 했다.

“예전에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요. 아빠가 한의원에 데리고 갔는데요. 한의사 선생님이 숨을 쉬라고 했어요. 쉼호흡하라고.”

“네 좋은 방법이예요.”

수빈은 학창시절 자기를 괴롭힌 아이들 이름을 모두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하나씩 다 적었다. 나는 수빈씨에게 앞으로도 화가 나면 글로 적어보라고 권했다.

이어서 각자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발표했다. 학생들은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한다, 게임을 한다,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 메니큐어를 바른다, 치킨을 먹는다, 꽃에 물을 준다, 쉼호흡을 한다라고 적었다. 물건을 던지거나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른다고 적은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행동교정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욕을 하는 건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니까.

국가가 장애를 분류하고 구분짓고 선을 그어두었다면 그에 대한 차별도 장애등급 심사만큼이나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2018년, 2019년에 걸쳐 진행한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수업을 코로나2년 휴식 이후에 재개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초대해 준 수리복지관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