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을 붙이다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서초에서 잠수교를 타고 넘어가는데 잠수교 북단 끝에 세 명의 남자들이 서 있는 걸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다. 낙엽을 치우는지 두명은 안전조끼를 입은 것 같고 안전관리자도 없고 경광봉이라도 흔들어야 하는데 차도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바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위치와 상황을 알려줬다. 결과를 듣겠냐고 물어서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겼다.

만두국을 사먹던 이태원시장 골목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살인사건이 있었던 옛날 버거킹 자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수북하게 쌓인 추모의 표식들은 비닐로 씌워놓았다. 비 바람이 예보되어 그런 모양이다. 추모공간을 지키는 경찰들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답답해졌다.

오래 전에 꽃집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았는데 지저분한 유리만 남은 공실이었다.

소방서 방향에도 꽃집이 없어서 일단 골목으로 올라갔다. 오래 전에도, 최근 몇 년 전에도 나는 이 골목으로 다니지 않았고 녹사평 방향의 두 번째 골목으로 주로 다녔다.

불법증축이 있었다는 해밀턴호텔의 벽은 추모의 포스트잇과 메모, 꽃과 인형 같은 추모 물품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벽은 추모의 벽으로 남기면 좋겠다.

내가 가방에 들은 포스트잇을 꺼내 글자를 적는 사이 남편이 꽃을 사오겠다고 골목을 내려갔다. 카메라를 든 사내가 MBC에서 나왔다며 포스트잇을 붙이는 걸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사러 갔으니 조금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사이 용산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자원순환과 직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산콜센터에 전달한 내용을 확인하고 지점을 다시 물었다. 짜증이 치솟았지만 구청직원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눌렀다. 나는 구청직원에게 안전조끼도 모두 착용하지 않았던 것 같고 차도에서 일을 하는데 안전조치가 안 되어 있었으니 확인부탁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기자가 인터뷰도 가능하냐고 물어서 그러자고 했다.

– 오래 전에 여기 살고 일도 했었는데, 그때도, 최근에도 저는 많이 이용하지 않던 골목이거든요. 이 뒷길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이 골목으로 오지 않았다는 걸 알 겁니다.

– 길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데, 이 좁은 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희생되었다는 건, 지금 우리나라에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 MBC에서는 1029참사로 부르기로 했는데, 일부에서는 용산구나 책임의 소재를 묻기 위해 이태원참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재난은 우선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 사회적합의를 통해 호명을 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있어야 추도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나는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듯이, 트라우마는 그저 안고 가는 역사의 일부가 될 뿐이다. 우리들의 세계와 시간은 수많은 재난으로 이미 뒤틀렸다. 구비구비 꺾어진 구간마다 억울한 죽음들이 깔려 있다. 기억하는 자들은 이 희생을 안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희생자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삶의 끄트머리 단 한 톨의 공간에도 억울한 영혼이 내려앉지 못하게 혐오의 발언을 내 뱉는 자들의 비겁합과 비루한 마음과 두려움을 이해한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기억과 약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강남역 6번 출구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청년의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 스크린도어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얼마 전 신당역에서 있었던 스토킹 살인사건에도 포스트잇이 붙었다.

왜 우리의 추모는 벽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으로 끝나는가.

해가 뜨고 지는 사이 하루 하루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간다. 우리는 포스트 잇을 붙이며 이름없는 죽음을 밀어낸다.

– 용산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가 아닌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에서 신청건의를 처리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 이태원추모공간 자원봉사자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추모 메시지를 정리하는 것 같습니다. https://www.itaewonmemorial.com/

침묵하라

행안부에서 내려온 지침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명시하고 위패나 영정은 놓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는 행안부 지침대로 진행했다가 시민항의, 의회의 문제제기로 갈팡질팡했다.

지방자치단체 즉 지방정부는 시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정당의 소속이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으나 공직자들은 단체장과 무관하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다.

사고 사망자 > 사고 희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안양시 (최대호시장, 더민주)

사고 사망자 > 참사 희생자로 고친 군포시(하은호시장, 국민의힘)의 오늘 낮 사진이다.

거듭되는 항의로 행정안전부도 ‘사고 사망자’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1. 사회적 재난은 그 이름에 여러 의미가 중첩되기에 섣부르게 정부에서 공식화할 수 없다. 사건 규명이 되고, 가장 큰 책임이 누구인지 밝히고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름으로 명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가가 졸속으로 섣불리 참사의 이름을 바로 붙이거나 애도의 기간을 정할 수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흔히 태안기름유출사고로 기억하는 사회적 재난의 정식명칭은 “삼성1호크레인-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다. 제주 4.3의 이름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2. 도로는 국가와 도시의 발전, 시민간의 소통과 산업을 위해 공공의 목적을 띈다. 따라서 도로를 관리하고 안전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국가의 몫이다. 별도의 사유지가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두고 이삿짐을 올리거나 내릴 때도 도로점유에 관한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에 특정한 가해자가 없다면 도로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지만 도로의 안전과 관리는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의 책무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감정은 국가가 통제하거나 권한을 갖지 않는다. 현 정부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이다.

3. 이 도로위에서의 참사는 그 길 위에 서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죽이는 압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욱 비통하다. 고의로 목적을 갖고 누군가를 죽이려고 그 길을 걸은 사람은 참사당일에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나의 몸 하나가 압력이 되어 누군가의 죽음에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생존자들이 있다. 이번 참사의 생존자를 각별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참사는 그들 세대가 겪은 불도, 물도 아니었다.

트라우마는 극복할 수 없다. 그저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살아남은 이유를 말하고 떠들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4. 2-30년전, 세골목길이라 불렀던 해밀턴호텔 뒷길엔 가끔 살인사건과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그때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길에 쌓이고 고인 수많은 피눈물을 떠올리며 국가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10.29 경과

종합하면

● 사고 직전까지 112 신고는 79건.

● 참사 당일 양대 노총과 진보·보수단체 시위 등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 81개 기동대, 경찰관 4천800여 명이 배치

● 사고 현장과 약 1.5km 떨어진 용산 대통령실 근처 시위대 행진과 집회에 대비한 1천100여 명의 병력.

이들은 참사가 벌어지기 1시간 전쯤인 밤 9시쯤 시위가 끝나자 철수

●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 137명 중 경비 및 안전 유지를 주업무로 하는 인력 0

● 마약단속 예고, 정복 경찰은 58명, 그 외 사복경찰

● 왜 출동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감찰하겠다며 위 내용을 11월 1일 윤희근 경찰총장이 언론에 공개

● 핼러윈때마다 이태원 상인들은 지구촌축제처럼 용산구에 해밀턴 호텔 앞 차도에 차량진입을 막아달라 요청, 그 외 안전조치 요구, 전날인 금요일에도 인파가 과도해 용산구청에 통제, 안전조치를 요구했다고 함. 용산구청은 묵살

● 2021년에 통제가 과도했다며 올해는 정복경찰을 줄여달라고 상인회가 요구했다는 일부 주장 제기됨.

● 용산구 핼러윈데이 대책회의 – 2020, 2021년 구청장 주도, 소방 경찰 참석, 2022년 부구청장 주재, 소방, 경찰 불참

● 최초 119 신고는 22:15. 119가 위치를 계속 물어 신고자가 답답해 함. 소방은 3분만에 경찰에 협조요청 – 경찰은 별다른 장비없이 인력 송출

● 모바일 통신상태 불량

● 소방이 23시 경찰에 교통통제 요청, 서울청 기동대가 자정 무렵 현장 도착

● 당일 사상자의 부상정도와 무관하게 병원에 분산이송, 이송병원의 거리 등의 기준 없음.

● 압사사건 발생은 22시 15분경으로 추정

● 정부발표에 따르면 22:15 상황접수, 25분 경과 후 22:40 대응, 22:43 대응1단계 발령, 23시경, 용산소방서장이 지휘권 발동, 23:13 소방청 대응2단계, 13:53 소방청 대응 3단계발령

● 사고 발생 이후 11시 45분경, 언론사 1차 보도와 동시에 SNS에 사고현장 사진과 동영상 유포

● 23:45 20여명 사상자 발생이라는 보도 발표

● 익일 00:33 해외언론 보도 시작

● 02:1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59명 사망, 150명 부상, 사망자 원효로 체육관으로 임시안치

●22:15부터 익일 00:56까지 약 100여건의 119 신고 접수

● 03:05 용산소방서 언론브리핑 120명 사망, 100명 부상이라 발표

● 익일 실종신고 2300여건 , 정부 실종신고 전화번호 공개

● 10월 30일 – 정부, 국가애도기간 선포, 행정안전부 각 지역 분향소 설치 지침 전달, 참사 희생자 아닌 사고 사망자로 적시. 각 지역정당 거리 추모현수막 게첨. 민주당 이태원 참사로 명시, 국힘당 이태원사고, 핼러윈사고 등으로 명시.

● 11월 1일 11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51명으로 집계

● 11월 1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 경찰청 시민단체 동향 파악 문건 유출

JTBC, 한겨레, SBS, MBC, MBN, 서울경제, 뉴시스, 연합뉴스 등 다수 언론사 보도 참고.

11월 1일 작성

제21회 안양시민축제 – 우선멈춤에 붙여

안양시민축제는 작년에 20주년을 맞았습니다. 20년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시민동아리가 참여해 무대를 빛냈습니다. 시민들은 한해동안 시민축제에 참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이웃들과 기량을 갈고 닦으며 시민축제를 기다렸습니다.
코로나팬데믹 2년동안에도 시민동아리참여는 계속되었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 동아리의 공연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 전문촬영팀이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화사한 조명과 무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촬영한 영상이 평생의 추억이 되었다는 답도 들었습니다.

3년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안양시민축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부터 기획한 “안양을 춤추게 하라, 우선멈춤”을 도시브랜드로 삼아 시민참여형 댄스페스티벌을 메인테마로 정했습니다.
시민동아리 참여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팬데믹 영향인지, 그간 연습을 많이 못했다며 참여 동아리의 숫자가 줄어들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시민동아리공연은 안양 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 양쪽 무대에서 계속됩니다. 총 77개팀, 725명의 시민들이 공연자로 무대에 오릅니다.

올해는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많습니다.

  1. 포스터와 앰블럼을 전국대상으로 공모진행하며 시민축제의 개방성을 확인했습니다. 당선작이 없어 애석합니다만, 계속 도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축제를 준비하며 시민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1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해주었습니다. 고견을 잘 검토해 축제에 반영되도록 노력했습니다.
  3. 단체와 시정홍보 부스 뿐 아니라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시민플리마켓을 처음으로 진행합니다. 안양외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습니다.
  4. 환경단체의 부스를 별도로 구성했고 친환경축제를 준비할 수 있는 시민서포터즈가 활동합니다. 기후위기와 축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5. 연성대학교 kpop학과재학생이자 프로댄서들 50명이 오프닝무대를 꾸립니다. 문화콘텐츠의 산학협력 가능성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 평촌중앙공원이 메인 행사장으로 꾸려진 것에 대해 만안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향후 만안구만의 특색있는 스토리텔링을 더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초가 되길 바랍니다.
  7. 안양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LS오토모티브에서 기업사회공헌 활동으로 시민축제에 부스를 마련해 바자회를 개최합니다. 이날 수익금은 안양시의 필요한 곳에 기부하며, 직원들의 헌혈등은 관내 종합병원에 기증합니다. 또한 한마음혈액원도 함께 참여해 홍보행사와 간단한 건강진단도 진행합니다. 기업도 안양시의 일원입니다. 안양에서 일하고 사는 사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8. 수개월간 고민하고 의견을 모아 이번 시민축제에서는 주류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시민축제에 걸맞게 건전하고 깨끗한 축제를 만들고 K-Culture의 대표축제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입니다. 안양시의 요식업, 상인회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9. 처음으로 학술대회를 엽니다. 축제 주제에 맞는 댄스포럼으로, 축제 전인 바로 내일 안양아트센터에서 연구자와 댄서들이 함께 모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10. 주 행사장에 38m의 오픈스테이지가 열립니다. 고퇴경의 랜덤플레이댄스와 세대를 아우르는 춤강습이 이틀동안 계속 진행됩니다. 안양 청소년수련관에서 처음 춤을 배웠다는 리아킴의 원밀리언 스튜디오에서 안양댄스워크숍을 진행합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는 댄스나잇 DJ쇼가 안양평촌공원에서 열리고, 폐막 퍼포먼스는 엠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시민들과 함께 신나는 춤판을 펼칠 예정입니다.

이번 축제에 유명댄서들과 댄스프로그램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인파가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민축제추진위원회의 위원들과 시청직원들이 상시 대기하며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년동안의 팬데믹 이후, 수많은 음향, 무대, 공연관련 업체가 도산했습니다. 물가는 올랐고, 업체는 줄어들었고, 축제와 행사는 늘어났고, 예산은 그대로라, 안양시민축제를 준비하는 안양문화예술재단의 담당부서가 많이 고생했습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해준 사업부와 최태규 축제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양시민축제는 9월 23일 금요일 저녁 개막을 시작으로 25일 일요일 저녁까지 진행합니다. 저는 23일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안양평촌중앙공원과 삼덕공원을 오가며 상주하겠습니다.

처음 기획위원장을 맡아서 부담도 되고 많이 설레입니다. 모쪼록 안전하고 신나는,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댓글에 시민축제 홈페이지를 링크해두겠습니다. 주변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알려주셔도 좋고, 페친들도 환영합니다. 그럼 스물 한 번째 안양시민축제에서 뵙겠습니다.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 이하나 드림

힌남노가 남긴 것

포항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생존자가 주차장 입구까지 나와 제 두 다리로 선 것을 본다. 

1996년, 삼풍백화점 지하에서 들것에 실려나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에 떠다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소떼도 떠오른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주, 주말을 지나 월요일 낮 하루종일 태풍뉴스가 미디어를 뒤덮었다. 

SNS에도 역대급 태풍이라니 걱정하는 글들이 그득했다. 지난 번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강남역이 침수된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으로 봤다. 대책없이 당했던 것이 불과 한 달전이니, 이번에는 대체로 대처하자는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제주부터 시작되는 태풍의 경로가 시시각각으로 보도되었다. 각 언론사는 오래 전의 뉴스클립을 꺼내 재편집해서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매미와 치바때의 장면과 일본을 지난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연달아 재생되었다. 

포항의 지하주차장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몇 건 봤다. ‘지하주차장이 잠기고 있으니 차를 빼라’고 방송했다는 관리사무소의 소장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한 모양이다. 관리소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더 말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한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처음엔 주차장이 괜찮은 것으로 봤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차를 빼라는 방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물이 얼마나 빨리 불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관리사무소는 보통 9시쯤 출근한다. 전날 태풍이 올라온다 하니 누군가 철야근무를 했을 수도 있다. 그 외의 시간엔 관리직으로 바뀐 아파트경비원들 등 야간조가 남는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뺐을 경우 그 많은 차가 밖으로 나와 빚어질 혼란이 걱정되었을 거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차가 침수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의 재산에 손실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일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일때, 사람은 10분 후를 예측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파트 옆의 개천은 수년간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이었다. 물이 그렇게까지 들어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방송으로 누군가 사망하고 누군가 다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부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을 맞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포항시는, 재해대책전문가들은 천이 범람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3일 전부터 있었다. 그 주변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면, 지하에 들어가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었을까. 월요일이 되는 새벽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시간이니,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걸까. 이미 몇 년동안 메말라 있던 건천에 물이 차고 넘쳐 아파트까지 밀려들어올 거라는 예상을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었을까. 

마른 땅에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넘쳐 10분만에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나 예측능력이 뛰어난 현명한 사람이나 가능하겠다. 지하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오는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한 대의 SUV차량이 갈 길을 헤매 머뭇대는 사이에 2분이 지났다는 기자의 해설이 붙었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재난 그 자체를 책망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망실에 대한 격분을 쏟아내기 위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언론은 이때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고 조회수를 올려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파도를 찍던 유튜버나,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냥감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라면, 언론이라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황망함이 건강한 비판으로 승화되고 정당한 분노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게이트키퍼라는 이름은 이론과 교육에만 남았다. 

티비에서 재난을 생중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여름이면 동생과 나는 하루종일 티비를 켜놓고 재난방송을 봤다. 나의 모친은 그 특유의 성격과 정서적 문제 때문에 ‘다 떠내려가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재난방송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우리를 위로했고, 곧 눈앞에 닥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잠시 잊었다. 나는 8월 말에 태어났고, 내 동생은 9월 말에 태어났다. 내 생일과 내 동생의 생일 사이에 수많은 태풍이 오고 갔다. 멍하니 재난방송을 보고 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세상 모든 것 앞에 무력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때, 물이라도 쓸려와 강바닥을 뒤집어주길, 못된 것들을 밀어내길, 세상을 바꿔주길 바랐던 어리석은 마음. 그 마음들을 모여 어디로 흘러갈지는 각자의 마음에 도사리는 삶의 무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재난을 생중계하는 며칠간, 새로운 포르노그라피를 본 기분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댓글을 먹고 무서운 파도를 보여주고, ‘잘 대처해야 한다’라는 뻔한 말만 지껄이면서 공포를 팔아 덩치를 키우는 시대. 기후위기만큼이나 무서운 세상이다. 

더좋은안양기획단 활동소회

한달 반동안 민선8기 시정공약을 점검하는 “더좋은안양기획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각계전문가로 9인으로 구성된 “더좋은안양기획단”은 8월 31일로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성별비율과 연령비율의 아쉬움이 전달되었으니 향후 모든 위원회 구성에 지적사항을 잘 반영해 구성하기 바랍니다. 기획단은 172개의 공약사업을 점검하고 정리하며, 공약내용변경, 명칭변경, 통합, 추진 로드맵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기간에 속성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시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일로 구성되어 있으며 행정이 해야 할 일이 세밀하고 어렵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면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에서 제가 주력했던 것은 시민사회단체의 정책제안을 점검 정리하여 행정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거 전 제안한 정책제안을 행정에서 이해하고 추진계획을 세우기엔 어려워서 모든 정책제안을 사업화계획으로 구체화시켰는데 다행히 정책제안단과 행정기관 모두 동의가 있었습니다. 향후 각 정책제안의 핵심사업은 주요과제로 다루어 단계적으로 시정에 반영될 예정입니다. 이번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행정이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민사회의 단어는 때로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행정의 언어는 그에 비해 실체가 분명하고 로드맵이 선명해야 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데 많은 분들의 동의와 협조로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안양시는 수십 년째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이 화두입니다. 실질적으로 만안구 지역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원도심의 한계로 시민들이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기획단뿐 아니라 안양시민축제 기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만안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이 들었습니다. 만안구는 안양의 기원이며 시작입니다. 향후 안양시의 시정방향은 만안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주력하길 바랍니다. 만안구는 동안구가 갖지 못한 유무형의 자산이 많습니다. 이 자원을 한데 묶어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지역으로 발돋움하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악성민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합니다. 안양시는 행정과 시민과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습니다. 시정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이 직설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공직자를 보호하는 방법이 없어 행정수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차후 관련 조례 제정 또는 직원보호에 관한 원칙, 보다 폭 넓은 거버넌스 구축과 공론화과정으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안양시민들의 욕구는 다양하고 구체적이나 다소 편협합니다. 주민조직을 갖추어 진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민원과 특정 집단의 요구로 인해 시정방향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지방정부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안양시는 지속적인 인구감소, 고령화, 산업기반유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예산투입은 늘어나고 세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양시는 이제 대도시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환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번 기획단 활동을 통해 공직자들이 보다 많은 복지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지역을 위해 애쓰는 공직자들과 더불어 잘 사는 도시를 위해 관심 갖는 시민 모두의 힘을 더해 안양다운 안양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저도 힘 보태겠습니다.

민선8기 더좋은안양기획단 위원 이하나

안양천, 요즘 어때요? 참여자 모집(~9.19.)

안양천, 요즘 어때요? 참여자 모집(~9.19.)

문화공동체 히응이 함께 합니다

<안양천 프로젝트> 안양천, 요즘 어때요? 는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안양천’을 생태하천으로 지속·보전하기 위해 어떤 하천으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입니다.

안양천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겨보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공존하는 수변문화를 상상해 볼 여러분을 안양천 라운드테이블에 초대합니다.

✔️모집기간 : 2022. 8. 31.(수) ~ 9. 19.(월)

✔️ 모집대상 : 안양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수변문화를 함께 만들고 싶은 시민 누구나

✔️모집인원 : 30명 이내

✔️활동내용

○ 수변문화 관련 주제강연

○ 안양천 활용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 제안 등

✔️참여혜택

○ 안양천 네트워크 형성 지원

○ 추후 안양천 문화실험프로젝트 활동 기회 제공 등

✔️접수방법 : 온라인 접수(https://forms.gle/33r25tjZuk8DQqSg9)

✔️결과발표 : 2022. 9. 20.(화)

※ 안양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 게시 및 개별연락

✔️문 의 : 문화도시기획실 (☎ 031-687-0533)

[강좌]오산문화재단 / 경기시민예술학교 생애사쓰기 2기 모집

오산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생애사쓰기

2기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특수분장& 생애사 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2022-09-02 ~ 2022-12-02

매주 금요일 10:00 ~ 13:00

장소기타 (다목적실)

관람연령19세 이상 경기도민

■ 2기 특수분장 &생애사쓰기로 만나는 나의 미래

■ 접수기간 : 선착순 접수(신청자가 많을 시 오산문화재단 중복프로그램 신청자는 신청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접수방법 : 오산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아래URL참조) E-mail로 접수

■ chmuninn@hanmail.net

문의처│031-379-9983

주최│경기도/경기문화재단

주관│(재)오산문화재단

후원│교육도시오산

사랑해도 될까요

#발달장애청년생애사쓰기

♥ 사랑해도 될까요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쓸까? 하고 물었다. 이미 주제계획은 다 되어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의견을 자꾸 묻고 듣는 게 좋겠다는 생각때문이다.

희준 씨는 “곧 추석이니 추석이야기 쓰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오늘은 가족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다. 가족은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라 스토리가 많을 것이고, 참가자들이 길게 쓸 수 있는 소재일테니까 교육과정의 뒤쪽에 빼놓았다. 발달장애청년들은 자기 삶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아야 다섯 개 정도의 문장이라도 만들 수 있다. 장애의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비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적게 얻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체장애인보다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더 묵살되기 쉽고, 언제나 ‘하지마, 안돼. 그만. ‘이라는 금지어가 매일 반복된다.

내 가족이 맘에 들 때, 맘에 안 들 때도 써보라고 권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라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기 때문에, 강사와 교감이 잘 형성된 뒤에나 가능하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발달장애인으로 교육받은 경우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낯선 사람에게 시간을 갖고 부정적 감정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수업에 들어가면 보영씨는 휴대폰을 들고 다가와서 나와 포켓몬을 한 마리씩 교환한다. 나는 보영씨와 포켓몬고 친구를 맺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선물을 주고 받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보영 씨와 포켓몬을 교환하고 있으면 다영씨는 1층에 내려가 커피를 가져와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채은씨는 큰 소리로 인사를 두 번 이상 하고, 슬미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줄줄줄 얘기한다. 지은 씨는 나에게 손수 만든 팔찌도 선물해줬다. 홍민 씨는 벌떡 일어나 나에게 경례를 해준다. 다훈 씨는 방학이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이제는 대답도 한다. 희준 씨는 사실 발달장애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정도라서 항상 가장 성숙하게 나를 응대한다. 이제 부정적인 감정을 건드려봐도 되겠다.

가족 이야기를 써보면서 채은이 헤어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슬미는 지능이 높은 자폐인인데 직설적인 화법 그대로, 채은이네 이혼했대요. 라고 크게 말했다. 나는 “그렇군요. 선생님도 이혼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채은과 슬미가 진짜냐고 물었다. “그럼. 재혼도 했지.”라고 대답하고 크게 웃었더니 슬미가 조금 당황했다.

“어때. 괜찮지?”라고 농을 걸었더니 “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했다. 슬미는 생활에 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나는 채은 씨에게 살짝 물었다. “이제 엄마 아빠 안 싸우니까 좋지 않아요?” 채은 씨는 “네. 맞아요. 안 싸우니까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 채은 씨에게는 “선생님은 선생님 엄마 아빠도 이혼했어요.” 채은 씨가 웃었다.

바리스타 일자리를 옮긴 다훈 씨가 아침 7시부터 출근을 해서 너무 피곤하다고 한다. 바리스타인 다른 청년을 아느냐고 물어보려고 사진첩을 뒤지느라 휴대폰을 열어서 안경을 아래로 내렸더니 채은 씨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선생님 이제 눈이 잘 안보여요. 안경 이렇게 하니까 할머니 같죠?”라고 했더니 채은 씨가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다.

“할머니. 선생님 할머니. 아하하하하하.”

가족이야기를 모두 발표하고 난 뒤에 나는 청년들에게 돌발적으로 물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세 명은 결혼하고 싶다 하고 나머지는 아직 생각이 없단다.

슬미씨가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서 “여러분은 성인이잖아요. 결혼할 수도 있고 연애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복지사 선생님이 살짝 울적한 표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말투에 묻어났다. “결혼할 수 있죠. 그럼.. 결혼할 수 있지…” 수업을 도와주는 복지사 선생님은 이들과 또래다. 한 참가자와는 같은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삶의 경로는 타고난 것에 의해 달라졌다.

채은씨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싶다고 하길래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었다.

“착한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자고 하니 희준 씨는 “5개국어를 하는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나는 “이런 사람은 너무 바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희준 씨는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다.

다들 이상형에 대해서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아서 나는 칠판에 몇 가지를 적었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

그 옆에는 “나를 울게 하는 사람, 나에게 뭘 자꾸 달라고 하는 사람,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 나에게 무엇을 고치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적고 여기에는 크게 가위표를 그렸다.

웃어주는 사람, 나를 많이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슬미 씨는 칠판을 보면서 “저도 남자친구 사귀고 싶은데요. 제가 아직 뚱뚱해서 못 사귀어요.”라고 말했다. 슬미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 신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고, 늘 허리띠를 졸라매서 소화불량이 잦다. 나는 슬미 씨에게 “슬미 씨 그런 사람하고는 헤어져야 해요. 너는 뚱뚱하니까 살 빼고 와. 라고 하면 안녕 ~ 하고 헤어지고, 너 화장 좀 해. 너 머리 좀 길러. 라고 하는 사람하고는 안녕~ 하고 헤어져요. 슬미씨 그대로 예쁘다, 하는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사람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지은 씨가 “그런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보탰다. 나는 “남자친구를 만날 거면 좋은 사람을 만나아죠.”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하기 전에 슬미 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뭐가요?”

“제 언니나 오빠 말고, 저도 결혼할 수 있다고 해주셔서요.”

슬미 씨는 자신이 자폐인이고, 그래서 차별받았고, 자기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기 세계가 뚜렷하지만 사회생활도 가능하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학습력도 좋고 의사소통도 잘 되는 편이다. “나는 장애가 심하지 않은데 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라고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분명히 명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들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잘 받아주지 않고, 발달장애인 공동체에만 묶어둔다. 이들이 어떤 집착이나 착취가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청춘들의 연애는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어려운 문제다. 가끔 연애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설레여하며 다시 만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 마음을 갖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사랑을 할 때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나서는 안된다고, 그 정도는 얘기해도 되지 않겠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3년차가 되는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의 발달장애청년 생애사쓰기 수업은 순항중입니다.

#민주시민교육포럼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민주시민교육포럼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못다한_이야기

작년부터 현장이 많이 힘듭니다. 혐오와 차별이 정치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아 골목과 교실 곳곳으로 스며들어 폭발하고 있습니다.
강사와 활동가들이 계속 다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들이 쓰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전해야 하는 종교는 혐오를 팔아 돈을 벌고 힘을 모아 덩치를 키워갑니다. 십자가 아래 무한증식하는 악마의 현현을 보고 있습니다.
기이하게 폭발한 자유주의가 악성민원으로 둔갑했습니다. 행정은 이들의 공격에 계속 얻어터지며 차별과 투쟁하지 못합니다.
계속되는 갈라치기로 괴물을 키워낸 것은 정치와 미디어입니다. 괴물들의 발언을 착취하고 그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이득만 취하고 있습니다. 동료애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급진적 운동가들은 지역의 작은 단체들의 존립보다 가치를 내건 깃발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갈 곳을 잃은 것 같습니다.

영혼없는 좀비떼가 미래로 가는 열차를 탈취했습니다. 한줌도 안되는 활동가들은 어떻게 이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지켜주십시오.
오늘도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또 내일은 일어나겠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명한 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은 당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누군가 주저앉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십시오. 종교인들은 더 많은 사랑을 말해주세요. 같이 좀 삽시다.

토론문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문화공동체 히응 대표)

1. 민주시민교육의 정치적 공정성중립성 확보 방안

한국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담론이 생성되고 민주시민교육의 방향성을 타진한 2020년 이전 수년 간 민주시민교육의 범위와 정의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15년부터 현장활동가로 민주시민교육과정을 진행하고, 강사를 양성하여 학교에 보급해 온 활동가 입장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협약, 또는 정의, 범위를 정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봤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전국총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민주시민교육이 마치 자당의 행동강령인 것처럼 발언하기도 했다. 사석에서라도 민주시민교육을 잘 하면 20년 장기집권이 가능하다는 등 노골적인 언사가 상당히 불쾌했다. 초등학교에 민주시민교육을 하기 위해 출강하여 경기도교육청에서 발행한 교과서의 표지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민주당에서 만든 것이냐’고 반문하는 일이 잦았다. 교과서의 정식 명칭, 표제는 ‘더불어사는 민주시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명칭이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며 시민교육 일체를 금지시키는 코미디같은 일도 있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보급하려는 교육행정가들은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조례제정이 어려운 기초단체들도 있었다. ‘민주’라는 단어때문이었다. 만일 지금의 ‘국민의힘’당이 ‘공화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교육으로 이름붙일 수 있었을까?

초기 민주시민교육담론 형성과정에서 정치교육으로 이름붙여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정치과 종교는 입에 올려선 안되는 말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불문율 때문에 이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2022년 전국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옮겨간 기초단체와 지방교육청은 서둘러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당선인 임태희교육감은 헌법교육과 인성교육을 강조하겠다고 후보자시절부터 공언한 바 있고, 공약에 따라 미래인성교육과를 신설했다. 민주시민교육과를 굳이 삭제한다는 것은 전임교육감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이 사라질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미 시민권에 대한 논의와 동의는 수년에 걸쳐 축적되었으며 대한민국 헌법은 상당히 진보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시민권과 경제민주화의식도 담겨있기 때문에 간판만 바꿔단 것이지 민주시민교육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라 판단하지 않는다.

분단이래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립은 끊이지 않고 있다. 통일한국이 되고 종전선언이 이루어진다고 한들 당장 하루아침에 이 대립이 중단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번 기회를 빌어 제안하건대, 절반의 국민이 그렇게 미워하는 ‘민주’라는 글자를 시민교육에서 빼도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대립으로 인한 민간의 희생이 지나치게 컸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정치성향에 따른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정쟁, 특정 정당의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모욕, 한쪽 편에 서면 희생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자들의 이유를 들으면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보다 명칭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노동인권과 보편적 인권, 연대의 가치에 대한 불만도 많은 편인데 이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계급의식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이 사회는 혐오와 차별을 주장하는 것이 관심을 끌고 있으며 관심으로 인해 돈벌이를 하고 명성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만일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쪽에서 그 대안으로 내놓는 것이 인성교육이라면, 혐오와 차별을 줄여나가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는 원칙도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인지 제고할 필요가 있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철학을 바탕으로 더 넓은 분야로 퍼져나가야 하며,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시민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각계에서 펼쳐나가야 할 일이다. 누군가 그 명칭이 불편하다고 주장한다면 특정정당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민주’라는 말을 삭제해도 좋다.

기실 민주시민교육의 중립성을 묻는다면 지금의 민주시민교육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가치를 알리는 것이 편파적이라면, 이 사회는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것은 소모적인 논쟁, 정파적 갈등인데, 만일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이 불필요한 논쟁을 계속 불러일으킨다면 과감하게 명칭변경을 시도할 필요가 있어보이며 더 폭넓은 시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교육적 장치를 추가할 일이다.

2. 경기도 시군 민주시민교육센터의 역할 제안

경기도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으로 제안한 바 있지만 광역단체의 산하기관에서 이 역할을 맡았으면 그 장점을 극대화해 시민교육을 보급할 수 있다.

첫번째,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보장이 확실치 않은 만큼 경기도는 경기도교육청의 상황과 의지를 재확인하고, 지난 7-8년간 진행해온 민주시민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두번째. 민주시민교육 대중강좌를 진행해보면 민주주의와 시민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 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보다 심화된 시민성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낮은 편이다. 같은 구성원이 계속해서 비슷한 모임에서 마주치게 된다. 민간이 공공기관과 행정기관과 협약을 맺어 시민교육을 보급하는 것보다는 행정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하며 행정기관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경기도 차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범도민의 필수교육으로 재정립하고 그 과정에 대한 역할을 수립해야 한다. 각 지역의 우선 동의하는 곳부터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제, 아직 전환하지 못한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각 직능단체와의 연계교육을 실시하고 마을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세 번째. 두 번째 제안사항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제목과 내용 모두 중요하다. 반감을 일으키지 않을 워크숍 형태의 토론교육을 주로 하되 마을의제를 발굴하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에 시민교육을 녹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각종 의제발굴, 정책제안에서 사용되는 워크숍을 활용할 수 있다. 문재인정권을 지내며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의지가 강렬해졌다. 참여의지가 기이한 형태로 폭발해 관심경제를 이끌어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민교육계에서는 부정적 시민성을 폭발시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식을 응집시켜 선순환을 이끌어낼 책무가 있다.

네 번째. 지금 이 사회는 지난 역사를 통해 법원에서 판결한 내용들까지 송두리채 뒤집으려는 욕구가 있다. 이들의 요구는 딱히 정당성이 있거나 명백한 논리가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고 선동을 통해 돈벌이를 하려는 미디어때문이다. 미디어리터러시교육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급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성인이상의 시민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요구에 걸맞은 미끼도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간다는 게 가시적이어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수동적인 일방형 교육은 그 어디에서도 실현 불가능하다. 시민이 주체가 되고 스스로 담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