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

지난 6월 26일에는 인천 청학연수도서관에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유튜브의 시대, 작은 도서관의 역할을 확인하는 특강 “책, 읽을까 볼까”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진행했는데요. 담당자께서 강의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갑자기 빔 프로젝터의 렌즈가 작동하지 않아 약간 어수선한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준비해준 도서관 담당자와 강좌에 참석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께서 경청해주셔서 기분 좋은 강의가 되었습니다.

유튜브로 모든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죠.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은 읽지 않고 유튜브만 봐서 큰일이라고 하지만, 실제 통계상으로는 아이들은 적어도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현실을 파악한 뒤 작은도서관이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책을 준비해와 종이책이 가진 물성에 대한 짧은 발표도 해봤습니다.

이 수업은 온라인에서 간단한 신간소개글을 작성하고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댓글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아주 잘 설계된 프로그램이죠.

여타 공공기관에서는 강사가 한 번 다녀가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은데, 청학연수도서관에서는 강사와 수강생이 일시적이지만 후속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도서관측에서 후속작업에 대한 인건비도 책정해서 여러모로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안양에서는 평생교육이 뒷전으로 밀리고 도서관 운영에 참신한 면이 없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연수구 도서관에서는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이 직접 신간소개 책자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실제로 책자도 펴내고 있더군요. 무척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인천연수구립도서관과 작은도서관들이 마을의 거점이 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에게 제가 소개한 필독서가 있는데요, 김성우, 엄기호 씨가 쓴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에게 권합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10점
김성우.엄기호 지음/따비
강의 시작 전, 각자 준비해 온 책을 들고 사진을 찍어봤어요.
연수구립공공도서관에서 펴낸 신간추천 책자입니다.

[책]빌러비드 – 토니 모리슨

1992년에 출간된 토니모리슨의 “재즈”는 읽은 기억만 있다. 내용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 중의 하나다. 빌러비드. 영어원제인 Beloved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 사랑받는 이.
사전정보를 전혀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읽으니 소설의 시작이 어려웠다.
인종차별에 대한 현대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인종차별에 대한 현대소설은 맞지만, 서술방식이 낯설었다. 현실과 몽환을 넘나드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고 시대적 배경은 노예제도가 남아있던 1800년대 후반이다.

노예제도라는 것은 나에겐 추상적인 것이다. 조선을 묘사한 문화콘텐츠에서 보여주는 귀족 아닌 자들의 삶을 묘사한 정도의 연장선일 거라 어렴풋이 생각하지, 그걸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진 못했다. 빌러비드에서는 흑인들이 단지 피부색 때문에 노예로 살면서 겪어야 했던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이름은 A B C D로 짓기도 한다. 폴 에이, 폴 비, 폴 디, 폴 에프.
자식을 낳으면 팔려가고, 새끼를 낳으라고 ‘교미’를 당하기도 하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 없는 비참.

비참하고도 비통한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했던 마가릿 가너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이 소설은, 손에 잡으면 중단하기 어렵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때문에 미간을 찌푸려야 한다. 그렇다고 눈물이 터지진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토니 모리슨이 했다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사람일 뿐입니다. … 글로 쓰기엔 분노는 너무 시시하고 연민은 너무 질척거리는 감정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지만 호흡을 잘 따라가면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출몰하는 우리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과거가 되길 바랐습니다. 과거, 유령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과거 말이죠. 기억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해나가기 전에는.”

노예농장에서 탈출하는 폴 디에게, 체로키 인디언이 방향을 가르쳐주는 문단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꽃나무를 따라가시오. 꽃이 피는 나무만 따라가시오. 꽃이 지면 떠나시오. 꽃이 모두 지면, 원하는 곳에 이르게 될거요.”

꽃이 피는 나무를 따라가면 북쪽에 다다른다. 18년간 도망자로 살아야했던 폴디와, 자식을 노예졔에서 끊어내기 위한 결단을 했던 세서와 같은 수많은 비통한 인간들의 삶이.
언젠간 모두 과거가 되길.

빌러비드 / 토니모리슨 /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이룸]비접촉식 체온계를 공동구매했습니다.

[공식 경과보고]

코로나19의 감염전파로 사회적거리두기를 유지하느라 공교육마저 온라인으로 진행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방역당국과 시민들의 협조로 집단감염이 줄어들면서 생활속 방역체제를 유지하며 경기도교육청은 예정되었던 2020 ‘경기 꿈의학교(이하 꿈의학교)’ 운영을 6월 20일경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심사를 통해 ‘꿈의학교’로 지정된 곳은 안양과천 포함하여 모두 87개, 안양시 내 꿈의학교는 총 74개다. ‘꿈의학교’는 지역주민들과 단체들이 ‘마을의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의미로 운영하는 학교 밖 학교다. ‘꿈의학교’는 애초 3-4월 중 개교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개교가 연기되면서, 인원수 조절, 교육횟수 조절로 방역지침을 준수하기로 했다. 꿈의학교는 참여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기본 방역물품을 구비해야 한다. 마스크, 손소독제, 비접촉식 체온계가 필수품이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4월부터 물량공급이 원활해 문제가 없었으나 비접촉식 체온계가 문제였다.

교육장소에 입장할 학생들의 체온을 관리하기 위한 비접촉식 체온계는 온라인 구매의 경우 20만 원이 넘기도 하고 아예 물건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 기존의 사업예산 내에서 구매해야 하여 일일이 개별구매를 해야 하는 것도 난제였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에서는 비접촉식 체온계 생산기업이 안양시에 있는지 시청을 통해 파악했다. 안양시 최대호시장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받은 안전총괄과 정광호 팀장은 우수한 품질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생산하는 안양 소재 기업 ㈜휴비딕에 연락하여 안양지역 ‘꿈의학교’ 운영자들을 위한 특가 공동구매를 제안했다. 안양시는 이미 지역 내 교육기관에 시 예산으로 ㈜휴비딕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매해 배포한 바 있다.

㈜휴비딕은 생산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본사에서도 물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으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마을교육의 취지를 이해하고 저렴한 가격에 ‘꿈의학교’ 운영자들에게 체온계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안양과천교육지원청의 협조를 얻어 안양지역 ‘꿈의학교’ 자율운영진인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공동구매를 희망하는 ‘꿈의학교’ 운영자들의 수량을 파악하고 6월 15일 오전 ㈜휴비딕에 방문해 총 58개의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매해 ‘꿈의학교’ 운영자들에게 배포했다. 소문을 들은 군포와 의왕의 ‘꿈의학교’ 운영자들 중 일부도 공동구매를 신청해 시청과 시민단체의 협조로 저렴한 가격에 비접촉식 체온계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안양시와 시민단체의 긴밀한 업무 분담과 ㈜휴비딕의 사회적공헌으로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며 마을교육을 실천하는 ‘꿈의학교’ 운영진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게 되었다. ㈜휴비딕은 만안구에 위치한 의료기기 생산 전문기업이며,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2015년부터 안양 내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주도해 온 시민단체 협의체이다.

*후기

모든 공공기관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꿈의학교는 개교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는 대규모로 운영되는 것을 당장 바로잡기 어렵지만, 꿈의학교는 소규모로 분반하고 강의시수를 줄이면서 운영이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이 모두 문을 닫아 수업장소를 구하지 못하는 꿈의학교가 많습니다. 이 문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꿈의학교 개교 소식을 듣고 많은 운영자들이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도교육청 자문위원이라 담당 장학사와 통화하며 비접촉식 체온계 구매를 문의했으나, 예산으로 지원하기 어려우니 개별적으로 구입하되 사업비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예산변경을 허용하겠다고 하더군요. 만들어가는 꿈의학교에는 학생들이 운영자인지라 비접촉식 체온계를 지급할 수 있으나 찾아가는꿈의학교는 예산이 크기 때문에 이것까지 지원하기 어렵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사실 도교육청의 입장을 듣고 각 지자체에서 예산으로 구입해 각 사업자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부 지원을 해주길 바랐으나, 이미 재난소득등으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이어져 구입지급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대신 안양시청에서는 시장 비서실을 통해 안전총괄팀을 연결해줬고, 안전총괄과의 팀장님이 업체에 공동구매 제안을 전하며 최저가를 협상해주었습니다.

이룸에서는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같이 사업자들의 사업비 카드를 일일이 걷어서 구매수량을 확인해 엑셀작업을 하고 하루 날을 잡아 (주)휴비딕에 방문해 약 50여장의 사업비카드로 모두 개별 전표를 끊었습니다. 사업비를 입금받아 일괄처리하면 (주)휴비딕에서는 세금계산서를 일일이 별도로 발행해줘야 하는데, 물품공급업체에 과도한 업무가 할당되니 이룸을 제외한 기관과 업체의 실무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카드와 전표를 모두 별도로 묶어 구매수량별로 봉투에 넣어 다시 환경운동연합과 이룸 사무실에 물건을 비치하고 개별포장해서 각 운영자들이 받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써주신 안양시청 시장비서실, 안전총괄과 팀장님, (주)휴비딕 담당 과장님,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실무자, 그리고 카드제출과 물품 수령까지 귀찮았을텐데도 모두 고맙다고 말씀해주신 안양과천군포의왕의 꿈의학교 운영자 선생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이하나

[강의]주민참여예산제 – 청소년위원회

코로나19로 여러 공적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수원시 주민참여예산제의 청소년위원회 강의는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참가학생들은 수원시온라인화상회의 시스템에 접속하고, 강사만 수원시청 온라인회의실에 도착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수원시는 주민참여예산제에 청소년위원회를 두어 정책을 제안하고 주민참여예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히응에서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청소년위원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시민들의 저력이 더욱 빛나는 순간이 이어지는 만큼, 2020년 주민참여예산제 청소년위원회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청소년의 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라 적잖이 지루했을텐데 열심히 참여해주신 청소년위원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사진은 2019년 주민참여예산 청소년위원회 예산학교 장면입니다. 올해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었네요.

2020년 6월 6일

[책]노랑의 미로 – 이문영

서울역 뒤에 동자동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거기 살았을 때의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여러 번 했고, 작은책에 연재한 분량에도 있어서, 더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이문영이라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몇 년전에 가난의 경로라는 시리즈물을 토요판에 연재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신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유하고 싶어서 한겨레 페이스북 계정을 오전 내내 들락거렸다. 문영의 글은 유난히 늦게 인터넷에 업로드 되곤 했다.

그 이문영이,
<웅크린 말들>에 이어 가난의 경로에서 출발한, 동자동 쪽방촌 건물의 사람들의 5년간의 삶을 추적해 두툼한 책으로 묶어냈다.
신랄한 르뽀가 힘든 사람들은, 아마 다 읽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이문영이 어떻게 기자생활을 지속하는지 잘 모르겠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 진을 빼며 쓰는 것 같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쓰는 사람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글은 딱히 많지 않다.

이문영이 이 이야기를 기획한 건 아마 그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사실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
멀리 갈 수 없다는 것.
동자동 쪽방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기껏 가봤자 몇 백미터라는 것. 그리고 죽어야 그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

책을 읽으며 내내 피곤하고 괴로웠던 것은
내가 90년대 후반의 동자동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던 고시원의 옆 집에는 앵벌이가족이 살았고, 내가 살던 고시원의 앞 집에는 포장마차를 하는 부부와 소매치기 아들이 살았다. 고시원을 오르는 길목에 알록달록한 이불을 구해오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살았고, 벽산빌딩 앞에는 지린내가 진동했으며 아침 9시, 골목길엔 초록색 소주병이 굴러다녔다.
<노랑의 미로>의 배경이 되는 그 쪽방건물은 내가 살던 고시원과 약 300m 가량 떨어져 있다. 내가 살던 장학고시원은 지금은 근사한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샤워를 할 때마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야 하는 반지하에서도,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자칫하면, 다시 고시원으로 쪽방으로 지하로 떠밀려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어쩌면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나의 근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기록을 읽었다.
디자인과 편집도 정성스럽다. 가난의 경로를 추적하느라 쪽수를 넣은 본문을 여러 번 수정했을 것이다. 이 무거운 이야기를 기록해 준 이문영기자와, 오월의 봄에 진심으로 고맙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 오월의 봄 펴냄

[책]임계장이야기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관에서 37년을 일하고 은퇴한 조정진 씨가 남아 있는 자녀들의 학자금과 생계때문에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그의 나이 60세.

책의 도입부는 저자가 다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을 제시하여 생계의 압박을 알려준다. 퇴직하기 전 벌어놓은 돈은 딸의 혼사로 들어갔고, 퇴직금은 중간 정산하며 집을 사는 데 보탰다.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아 나머지 퇴직금을 받아서 남은 퇴직금은 없다. 아들이 전문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퇴직하고 나니, 신용이 사라졌다.
은행에서는 원금과 대출이자를 일시상환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하고 직장에서도 복지기금으로 출연한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도 갚으라고 했다.

지금은 신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일지라도, 빚내어 집 한칸 샀거나 독립하지 못한 자녀가 있다면, 모두가 겪게 될 일이다.

책에서는 저자가 네 군데의 직장을 거치는 과정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대단한 운동가이거나 세상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성인군자가 아닌, 나와 같은, 내 이웃과 비슷한 평범한 시민인 조정진씨는 임계장으로 불리는 일을 시작한다. 이 기록은 2016년 버스회사 배차원으로 일했다가 해고당하고, 아파트의 경비로 일하다 해고당하고,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해고당하고,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해고당하는 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가 2년간, 네 곳의 직장에서 해고된 뒤의 결과를 맨 마지막에 서술한다.

내가 가장 가슴터지게 복받치는 울음을 토해낸 부분은 맨 뒷면, 감사의 말이었다.
맨 마지막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은 이 시대를 그리는 시사점뿐 아니라 구성이 좋고 잘 쓰고 잘 만든 책이다.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임계장이야기 / 조정진 지음
우리시대의 논리27 / 후마니타스 펴냄

[책]떠도는 땅 – 김숨

소설은 내내 기차 안에 머무른다.
연극 대사와 같은 말은 한숨처럼 툭툭 바닥에 떨어진다.

1937년 러시아 극동지방에 머물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조선인들은 땅을 떠돌다 보니 땅이 떠돌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이 있다.

<떠도는 땅>
역사적 상흔을 하나씩 길어올리는 작품을 속속 선보이는 김숨이 썼다.

[책]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 기획하고
네 명의 만화가가 그리고
창비에서 펴낸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제주 4.3을 다룬 <빗창>
4.19혁명을 다룬 <사일구>
5.18 민중항쟁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
6월항쟁을 다룬 <1987 그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꼭 갖춰야 할 책이다.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 <그해 겨울> 이 나오겠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그 겨울에 대한 이야기도.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2020. 5. 30.

혀에 대한 이야기

지난 2주 정도, 페이스북 때문에 상당히 불쾌했던 것 중 하나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에 대한 사실이나 보도보다,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1

여러 가지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했으니까, 굳이 나까지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폭로전, 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폭로전의 초기에는 정제하지 않는 포스팅도 올렸다. 그 이후에는 천천히 가라앉는 나를 봤다. 그리고 작년 오늘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다시 살피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혁신교육 1기부터 경기도 내 전 지역이 지역과 교육지원청+학교를 연결하려는, 마을과 학교 연계의 움직임이 있었고 성공한 곳도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 것으로 안다. 지금은 그 끈이 모두 끊어졌다. 현재 민간과 교육지원청이 유연하게 진짜로 연결된 곳은 유일하게 안양뿐이다. 자랑스러운 일이고 이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국장의 노고다.’ 라는 지역 선배의 말을 들었다. 단 한마디에 5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전에 눈물을 좀 흘려야겠다.”

#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펴낸 만화를 저녁 내내 봤다. 눈물을 조금 흘렸다.
오늘도 나는 회의를 했다. 6월부터 시작해야 할 일들이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성이 무엇인지 알리는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주된 나의 역할이다. 때로는 분담하고 때로는 전담한다. 때로는 그 일로 돈을 벌기도 하는데, 인건비에 준하지, 수익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늘도 윤미향이 29년간 시민단체를 운영하며 현금으로 집을 샀고, 전세 1500에서 시작해 자동차를 두 대 굴리고 수억 원대의 집을 가지고 있으니 수지맞는 장사라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얼마 전 페친을 끊은 한 사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공교롭게도, 윤미향의 재산증식에 대해서 말하는 두 사람은 자기 소유의 집이 있다는 걸, 내가 쓸데없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3.

2012년, 얼떨결에 이 판에 들어온 건, 완전히 이 판에 진입한 것도 아니고, 발 하나 걸친 상태로 기웃거렸다. 그 이후 2020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가정불화를 겪었고, 이혼을 했고, 독립했고, 위자료를 받아 독립기반을 마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이면서, 시민단체와 공공기관에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인 시민교육과 공익활동에 대한 컨텐츠를 제작하고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금액이 큰 것도 있었지만 오래된 내 페친들은 알다시피, 가을부터 겨울까지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자면서 일을 해야 내 생계를 꾸려나갈 비용을 번다.
내가 하는 일 중에 인건비가 가장 헐 한 것은 시민교육 분야의 학교수업이다. 작년에 내가 학교 수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1천만 원 정도 된다. 1천만 원의 수업료는 시간당 5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공기관 기준 2급 강사료에 해당하는 특강은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이 돈은 200시간 정도의 초중고등학교 강의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그 외에도 내가 맡아서 돈을 벌었던 일들은 대부분 NPO나 NGO나 공공기관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시민운동을 이해하지 않는 사업자들이 잘 해낼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일이 온다. 더러 인건비를 초과하는 이익이 나기도 하고 더러 손해를 보기도 한다.

29년간 시민단체를 운영하며 차를 두 대 사고, 집을 산 것이 괜찮은 직장이라거나, 참여연대보다 정의연이 연봉이 높아 평균 2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활동가들이 있는 조직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활동가들의 내상이 깊어진다.

우리는 연봉 2천을 넘으면 안되고, 우리는 집을 사면 안되고, 성직자가 아닌데, 가족을 부양해도 안되는, 호모사케르 취급을 받아야 당신들의 속이 풀리겠다는 말로 읽었다.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자들이여.

#4.

이런 저런 위원회의 위촉장을 받을 때마다, 조심하자는 생각을 한다.
농반진반으로 출마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나는 굳게 다짐한다.
적당히 하고 10년 내로 이 판을 완전히 떠야겠다고.
피눈물이 난다.
작년에 나는 차가 두 대 있었다. 중간에 한 대 팔아버렸지만. 지금 평촌의 아파트 전세를 산다. 무리했지만. 아마 시민단체 일하는 게 수입이 괜찮다고 말하는 자들은 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할 만하다. 일감몰아주기로 특혜를 받아 부를 축적한 가짜 활동가라고 하겠지.

어쨌거나 나는 집 한칸 없지만 헐한 노동이라도 인건비를 받으면 고마워했고, 돈 바라보고 일하지 않았으며, 매달 여기 저기 후원금과 기부금을 보내고, 형편이 어려울 것 같은 출판사나 언론사의 잡지를 계속 꾸준히 구독한다.

활동가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며 간극을 메우고, 공무원의 실적을 올려주고 정치인의 업적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던가. 우리는 그렇게 파도처럼 왔다가 모래처럼 사라지는 것이 맞겠구나.
진보는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던 내 생각이 맞았구나. 우리는 그저 바람처럼 냄새없이 소리 없이 왔다가 사라져야만, 당신들이 편안하겠다는 확신이 든다.

내 주변의 몇몇 활동가들도, 말을 아낀다. 나는 지금 참담하다.

#5.

친친공개인, 그저 하소연으로 적어보려고 했는데 굳이 전체공개로 올려본다.
이글을 보고 “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 덕분에 주제파악하고, 모래처럼 흩어지는 삶을 결심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사람의 말로 쉽게 상처받는 타입 아니다. 하지만 잘 알겠다. 무엇이 사회를 작동시키는 원리인지. 그건 좀 알 것 같다.

#6.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글은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천하지 않는 자들이 “쉽게 씹어대는 말”에 대한 이야기다. 활동가는 직업이 아니다. 세무신고에서 활동가는 직업코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분류되지 못한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시민단체 모두를 대표하지 않는데, 그 두 존재가 모든 공익활동가를 싸잡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혀에 대한 이야기다.

2020. 5. 30.

[강의]마을에서 같이 놀기

문화공동체 히응이 잘 하는 강의 중의 하나는, 마을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입니다. 각 단체나 공동체마다 마을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데,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강의를 요청해옵니다. 각 사업주체마다 소재를 정해놓고 문화공동체 히응과 구체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번의 특강만 주어졌다면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초계획을 함께 짜보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작년에 이어서 “평촌 청소년문화의 집”에서는 마을에서 세대공감을 이뤄내는 청소년활동을 기획했습니다. 2019년에는 큰 상도 받았다더군요. 올해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청소년문화의집에 방문해 ZOOM으로 활동할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세대공감은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번에도 작년과 같이 청소년들이 노인정이나 경로당을 방문해 마을에서 함께 공감하며 다양한 활동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저는 노인들의 생애사 강의 경력을 활용해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들을 공유하고, 인터뷰와 취재의 기본을 설명했습니다.

평촌동에서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만들어나갈 청소년들을 응원합니다.

2020년 5월 30일, 평촌청소년문화의 집 강의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