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 12. 50년, 호주제 폐지에 걸린 시간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9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1914년 태어난 이태영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두 오빠 밑에서 자랍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태영은 공부에 뜻을 품어 1931년 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됩니다. 독립운동가 정일형과 결혼 후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1932년 이화여전에 입학하고 1946년 서른세 살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서울대학교 최초의 여대생이 됩니다. 1952년 제3회 고등고시 사범과에 합격해, 사업 시험 역사상 첫 합격자가 됩니다. 

김병로 대법원장이 이태영을 판사 임용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마디로 이를 거절합니다. 

“여성은 아직 이르니 가당치 않다”

 
여성차별의 피해자였던 이태영은 이후 변호사가 되어 1953년 가족법 초안을 만들 때 여성계 인사들과 함께 법전편찬위원회에 남녀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헌법 정신에 맞게 민법을 제정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합니다. 1957년 국회 공청회에서 가족법상의 남녀차별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와 호소문을 발표했으나, 1958년 새 민법은 호주제를 비롯한 남녀 성차별적 조항을 담은 채로 발표되고 맙니다.
1989년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대회 관련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와 여성계 전체가 50년을 넘게 싸워온 가족법과 호주제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 애써온 지난 50년, 다음과 같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 여성계가 싸워온 시간들]


 
1948년 이후, 호주제를 채택했던 유일한 나라 
 
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입니다. 당시의 민법은 ‘가족’의 범위를 ‘일가의 계통을 승계하는 자이며 호주와 같은 호적인 자’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호주제는 일제 시대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 가족법 개혁으로 호주제를 없앴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호주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성을 따라 쓰는 우리나라에서는 일가의 계통을 승계하는 것이 남성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한 가족을 거느리며 부양하는 일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잇는 남자를 호주로 정했습니다. 호주가 될 수 있는 순위는 아버지 > 아들 > 결혼하지 않은 딸 > 아내 > 어머니 > 며느리 순으로 정해졌습니다. 여성의 경우, 결혼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가 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가 되어야 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친아버지만을 호주로 정해 이혼가정의 자녀들은 친부의 동의 없이 여권발급이나 은행거래도 쉽게 할 수 없었고, 학교 입학에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생부, 생모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재혼가정과 입양가정의 경우 법의 한계 때문에 겪어야 할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1999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대한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호주제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기에 다수의 국민들도 폐지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쉽게 제도가 바뀌기는 어려웠습니다. 호주제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배한 제도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헌법 제36조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죠.
 
이태영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평생을 투쟁했지만 1998년 끝내 호주제 폐지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6개월 뒤 여성단체연합은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발족해 그간의 투쟁을 통합하고 더욱 구체적인 싸움에 들어갔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큰 물결
 
1997년은 수많은 연인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동성동본금혼 위헌 소송에 헌법 불합치 판정이 있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2000년 말부터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주축으로 호주제 위헌소송을 이어 나갔습니다. 
 
한국씨족총연합회, 성균관유도회 총본부, 대한독립동지회, 대한노인중앙회 등으로 결성된 ‘정통가족제도수호 범국민연합’은 가족법 졸속 개악 반대 총궐기대회에 이어 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1천만 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라고 이념논쟁을 벌였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정통가족수호 범국민연합
(출처 : 신권화정)
 
“호주제가 없으면 한국 인구 상당수가 쌍놈!”
“온 나라가 콩가루 집안이 되고 우리 민족이 개돼지와 다름없이 되는 꼴을 못 보겠다!”
 
이들의 과격한 언쟁은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 실패하고 역효과만 불러일으킵니다.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의 신문광고 (출처 : 신권화정)
 
조한혜정, 고은광숙, 이이효재, 오한숙희 등 여성학자,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먼저 ‘양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모의 성을 함께 쓰고 상징적으로 호주제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과 사이버 시위 등을 벌여나가며 토론회와 의원간담회를 체계적으로 열어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호주제 폐지가 실현될 수 있는 기틀을 잡아나갔습니다.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듯, 누구나 호주가 될 수 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 싸워온 긴 세월. 드디어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포함해 모든 당의 대선후보들이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2003년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헌재는 다섯 번의 변론 끝에 헌법불합치 결론을 내렸습니다. 호주제는 2008년 완전히 폐지되었고 가족 구성원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관계 등록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자녀는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고,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족 내 성평등을 위해서는 남아있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자녀가 우선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한 민법상 781조의 ‘부성주의원칙’에 대해서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에서 우리나라에 수차례 철회 요구를 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관습과 사회적 이견 등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이 조항은 유보된 채 남아 있습니다.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 등록법이 시행됐지만 기본 내용이 호주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외국인 남편을 둔 여성만이 자녀의 성 선택이 자유롭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가족관계는 한국인 남성을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행을 ‘처남, 처제’로 부르는 성차별적 가족 호칭에 대해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 되는 ‘가족’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모습을 갖춰간다는 것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일차적인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퍼스트 펭귄들이 호주제에 반대해 싸워온 것은 기존의 권리를 가져오겠다는 것보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어떤 이유로든 기본적인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의지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퍼스트 펭귄들의 활동에 함께 해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신권화정 (사단법인 시민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가족 호칭 개선에 대한 에세이(한국여성민우회) : https://goo.gl/PR4whC

👉🏻 가족법개정운동본부 : http://www.newfl.or.kr/

👉🏻 한국여성단체연합 : http://women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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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10. 감시만으로는 더딘 정치개혁, 사람을 바꾼다.

본 게시글은 현재 카카오같이가치의 퍼스트펭귄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제 16대 지방선거를 앞둔 2000년 1월, 경제정의실천연합은 공천부적격자 167명의 명단을 공개합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1989년, 이 땅에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퍼스트펭귄들의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줄여서 경실련으로 부르는 이 단체는 법과 정책을 바꾸어가는 제도적 개혁을 추구하는데요, 경제뿐 아니라 민생을 책임지고 국민세금인 예산을 사용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의정감시를 주도했습니다. 의정감시란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맞게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예산을 정하는지 검토하는 일입니다.

경실련은 선거를 앞두고 공직자, 즉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추려냈습니다. 부정부패에 연루되었거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예산을 마구 낭비한 사람들을 찾아냈는데요. 이 명단에 오른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국민회의 50명, 자민련 32명, 한나라당 66명, 무소속 16명으로 전현직 의원과 출마예정자까지 두루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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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낙선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선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사진:이하나)

전국의 퍼스트펭귄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국회에서내보내려고 50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총선시민연대를 만들고 1월 27일 ‘유권자가 알아야 할 15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89명의 명단을 발표합니다. 숨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2월 2일에는 2차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합니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처음엔 긍정적인 태도였지만 몇 번씩 국회의원을 했던 의원들조차 명단에 있는 걸 보고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의 항변이 이어졌습니다.

야당인 자민련과 한나라당은 명단을 발표한 총선시민연대에 집권여당인 민주당 사람도 있다며 자기들을 음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선시민연대가 여야 가릴 것 없이 동등하게 의원들을 평가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대의를 대행하는 슬픈 증언

제도적으로 권한이 없는 시민사회단체가 제도적으로 권한이 있는 정당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일은 ‘대의를 대행하는 슬픈 증언이자 처절한 요구’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보다 정치적 목소리에 집중했는데요. 권력자들이 그간 민주주의를 어떻게 방해했는지 역사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운동 이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법적으로 지키자는 시민들의 열망이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공직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낙천낙선운동까지 벌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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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정보의 평등도 중요합니다.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주권회복을 앞당기다

2000년 1월 30일 총선연대는 성명서 <유권자 선거혁명으로 가는 길>을 발표하고 시민사회가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민단체는 지난 10년간 공정선거 감사운동을 해왔고 정치제도 개혁운동도 펼쳐왔지만 낡은 정치권의 물갈이 없이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시민단체들은 제도개혁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룬다는 입장이지만 국회의원들에게 맡겨 놓은 결과 아무것도 된 게 없다. 이제 정치개혁은 인적 청산을 통해 이룰 수밖에 없다.”

요컨대 시민사회단체는 정치권력을 쥔 정치가들이 자기들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시민들을 대리하기 보다 군림한다고 본 것입니다.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 참여한 이태호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감사와 평가 모두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의정 모니터링 활동도 의원들이 잘 협조하지 않으니 더 적극적으로 밀어 부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차병직 변호사가 쓴 <월간 참여연대>에 연재한 <참여연대 20년 20장면 – 거리의 신화, 시민불복종>에 따르면 총선시민연대에는 2주 동안 2억원 가까이 후원금이 들어오고, 수백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습니다. 이정현의 “바꿔”라는 노래가 주제가처럼 울려퍼지고 ‘총선연대 칵테일’을 만들어 파는 레스토랑이 생겼습니다. 먹거리를 배달해주는 시민들이 있었고 얼굴이 알려진 총선연대 임원들 중에 택시를 공짜로 타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드디어 2000년 4월 13일, 16대 국회의원을 뽑는 전국총선거가 있었습니다. 86명의 낙선대상자 중에 59명(68.6%)이 떨어졌고, 22명의 집중 낙선 대상자 중에 낙선자가 15명(68.2%)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20명의 낙선 대상자 중에 19명이 무더기로 떨어져 낙선운동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총선연대의 2000년 낙천낙선운동 타임라인

낙선낙천인포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보복

그러나 욕을 잔뜩 먹은 정치권에서는 불만을 적극적으로 법을 이용해 표시했습니다. 정치인들은 30명의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고발 했습니다. 이 활동을 했던 퍼스트펭귄들은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아 손해를 입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8월 “총선연대의 낙선, 낙천 운동을 금지하는 현행 선거법은 합헌”이라고 판결하여 시민들의 낙선낙천운동이 불법이라 정리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87조는 “기관, 단체는 그 명의 또는 대표의 명의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지지, 반대하거나 지지, 반대하는 것을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판결에 힘을 얻은 정치인들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은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퍼스트펭귄들이 지나친 행동을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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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이 불러온 탄핵과 2017년 조기 대선 (사진:이하나)

그들이 법을 만든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87조는 ‘기관 단체의 대표자와 임직원, 그리고 구성원등은 그 기관과 단체의 명의 또는 그 대표의 명의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도 동호회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단체는 환경에 대한 적극적 정책을 가진 후보를 드러내놓고 지지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은 더 엄격하게 함부로 지지인명단에 이름을 쓰거나 특정 정치인의 후원회원도 될 수 없죠.

그들이 법을 만든다

그들이 국회에 앉아 있다

플라톤도 읽지 않은 그들이

(노르웨이 시인 올라브 하우게)

정치가 지겹다며 관심을 갖지 않을수록 권력자들은 편해집니다. ‘다 똑같다’면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릅니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정당에서 후보자를 결정해 선거에 내보냅니다. 유권자는 각 정당에서 뽑아놓은 명단 중에 골라야 합니다. 정당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후보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과연 모든 정당은 국민을 대리할 적합한 사람을 후보로 내세우고 있을까요?

낙천낙선운동은 특정인이나 정당을 공격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퍼스트펭귄들은 정보가 잘 공유되지 않던 시절에 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유권자의 권리를 되찾는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낙천낙선운동의 결과로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청렴도와 부정부패를 사전에 걸러낼 필요를 깨달았고 누가 국민을 대리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정치권도 스스로 청렴하고 공정한 결과로 유권자들의 표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는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각자의 지위와 직업에 따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 것은 여전히 괜찮은가요? 퍼스트펭귄들은 이제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퍼스트펭귄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

퍼스트펭귄들은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지금의 선거구제도와 비례대표제도 개선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선거제도가 한국실정에 잘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http://wouldyouparty.govcraft.org/p/political-reform 정치개혁공동행동 범서명운동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정치개혁 목요행동을 시작합니다. 민의가 그대로 선거제도에 반영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

참여연대 정보링크 http://www.peoplepower21.org/Politics/1590190

 

[퍼스트 펭귄] 09. 미인대회는 왜 공중파에서 사라졌을까?

2018.11.08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지덕체를 갖춘 여성을 뽑는다고요?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참가자에게 묻습니다.
 

“데이트를 하다 보면 식사를 하러 갈 수 있잖아요?

밥 속에 돌이 들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먼저 얌전하게 빼내고요.

애인한테도 조심하라고 얘기해줄 거예요.”

 
대답을 하는 여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네요.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어떤 자리일까요? 바로 1987년 미스코리아선발대회 결선입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기억하시나요? (출처 : shutterstock)
수영복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부풀린 머리를 한 여성들이 긴장된 발걸음으로 무대 위를 걷습니다. 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온몸을 곧게 펴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고졸 이상의 지덕체를 겸비한 여성을 선발하는 것이 미스코리아 대회의 기준이었습니다.
 
1996년의 미스코리아 대회 선발기준 중 일부를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 얼굴이 크지 않아야 하며, 양 어깨가 넓으면 안 되고 어깨선이 부드러워야 한다.
– 가슴의 크기, 위치, 선 그리고 엉덩이의 사이즈, 선, 모양을 고려한다.
– 몸에 상처가 있거나 큰 점이 있으면 안 된다.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은 대회 주관사에서 결정했습니다. 지덕체를 가진 여성을 뽑는다면서 신체적 기준을 특정하게 맞춰놓은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만 18세 이상의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여성을 뽑는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만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뜻일까요? 
 
사람을 잣대에 놓고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는 미스코리아선발대회. 게다가 후보자들의 신체조건을 평가하기 위해 여성들이 파란색의 동일한 수영복을 입고 몸매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TV 채널이 몇 안되던 2000년대 이전, 미스코리아 대회는 매년 전국으로 생중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반기를 든 퍼스트 펭귄들이 있었습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와 그에 대한 반대 운동]

 

미스코리아가 뭐길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57년 한국일보사의 주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는 공개적으로 외모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미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참가를 만류했다는데요. 이후 1972년부터 공중파에 생중계되면서 미스코리아 대회는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미스코리아에 뽑힌 여성이 바로 방송과 연예계로 진출하는 풍토가 생기자 대회의 경쟁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 것입니다.
 
1980년대, 여성유권자 연맹은 미인대회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여러 여성단체들이 이에 동참하였습니다. 1989년 여성신문에서는 “노예시장 같은 미인대회를 차 버리자 – 미스코리아 대회는 굴욕적이고 반여성적인 추태”라고 논평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주최 측은 외모만으로 미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선발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서구적 기준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수치와 외양으로 평가하고 우열을 가리는 일에 돈까지 끼어들자, 미스코리아 대회는 더 이상의 명분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여성들에게 번호와 점수를 매겨 외모를 평가하는 미인대회
미스코리아를 시작으로 전국에는 각종 미인 선발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역특산품과 연결시킨 OO 미인 선발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농산물을 들고 있는 여성들의 사진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이러한 미인대회들은 대부분 미스코리아 선발기준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었습니다. 
 
미인대회에서 선발되면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외모를 바꿔나가기도 했습니다. 키가 커야 하고 날씬해야 하며 몸에 상처가 없고 피부가 매끄러워야만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걸까요? 여성의 기준이 외모에 집중되기 시작하자 초등학생들도 장래희망을 ‘미스코리아’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미인대회를 반대한다

 
미스코리아가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경쟁이 심화되자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특정 미용실에서 수천만 원을 받고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시키거나 수억 원의 뒷돈이 오고 갔다는 비리가 밝혀지고 나이와 학력을 위조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1993년 심사위원들의 뇌물수수 사건이 드러나자 미스코리아 대회를 반대하는 여론도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냈습니다. 
 
“돈거래로 얼룩져 세계무대에 나갈
한국미인을 선발한다는 명분도 잃었으며,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대회를 폐지하라”
 
대회도 대회지만, 매년 미스코리아 대회는 공중파를 통해 전야제부터 본 대회까지 모두 생중계가 되었습니다. 1996년 여성단체연합은 MBC 방송국 앞에서 방송 중계를 중지하라고 시위를 하였고 1999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이달의 나쁜 방송’으로 MBC의 미스코리아 중계방송을 선정하였습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획일적 미의 기준, 외모지상주의,
여성상품화, 연예계 등용문으로의 전락 등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공중파 방송사가 이를 생중계해 정당화하고 있다”
1999년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에 대한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미스코리아 반대 움직임을, 남성들은 ‘못생긴 여자들의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비웃기도 했는데요. 이를 통해, 미의 기준을 미스코리아의 기준에 이미 맞춰버린 대중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라고?!

 
1999년 페미니스트 매거진 ‘이프’는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하였고, 이 행사는 2009년까지 매 해 열렸습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는 기존의 미스코리아 대회에 맞서 정형화된 미인이 아닌 행사 취지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를 통해 10살 된 어린이, 20대 남학생, 트랜스젠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 여성 축구 선수, 남자 간호사 등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였습니다. 
1999년 1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한겨레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당시 방송인 홍석천 씨, 영화감독 변영주 씨, 가수 백지영 씨 등 유명인들의 참여도 이어져 많은 시민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그 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결국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오랫동안 생중계했던 MBC도 내부 비평 프로그램을 통해 미스코리아 대회 방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고 2001년 MBC가 재계약을 포기하면서 2002년부터 미스코리아 대회는 공중파에서 중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퍼스트 펭귄들이 10년 넘게 싸워 얻은 작은 결과였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2000년대 후반에는 문화관광부의 요청으로 지역 미인대회가 하나씩 폐지되었습니다. 미인대회가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자 미인대회 반대에 대한 목소리도 조금 줄어들었는데요. 대신 여성의 성상품화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식도 일반화되었습니다.
성형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
(출처 : 여성민우회 트위터)
 
하지만 지금도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대중문화는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심지어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폐지 요구로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폐지되었습니다.
 
날씬하고 얼굴이 예쁜 여성만이 아름다운 것일까요? 어느 누구도 외모를 포함한 보이는 모습으로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각자의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존중받는 날까지, 퍼스트 펭귄들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박수연 (서울시NPO지원센터)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 
👉🏻 여성신문 : http://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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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08.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2018.11.06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80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있습니까?”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한 국회의원이 대답합니다.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북한입니다. 선진국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인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진보성향이 남아 있기 때문에…”

2014년의 JTBC 뉴스룸 인터뷰입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한 국정교과서 채택안. SNS상에서 인터뷰를 한 국회의원의 말이 퍼져나가면서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학생들이 잘 공부하고 있던 다양한 교과서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주장은 왜 제기되었을까요?

교육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사진 : 이하나)

갑자기 튀어나온 국정교과서

국정교과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검정제 교과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교과서 검정제는 국가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민간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만들고, 각 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그에 반해 교과서 국정제는 교육부 장관이 저작권자로, 국가에서 채택한 교과서 1종으로만 공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던 우리나라는 1973년 ‘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안’에 따라 국정화가 되었습니다. 1974년부터 국사과목은 국가에서 만든 한 가지의 교과서만 사용했습니다. 80년대 이후 교과서는 다시 차츰 검정교과서로 바뀌어나갔고 2003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새로 만들며 검정화를 채택했습니다.

점차 모든 교과서를 검정교과서로 바꿔나가는 움직임에 갑자기 제동을 건 것은 박근혜 정부였습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교과서 제작이 기획되었고 2015년 진짜로 시행할 움직임이 보이자 전국적으로 여러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국정교과서 기획부터 폐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교과서에 친일 성향이나 과거 독재 정부에 대한 미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만약 편향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자기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는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편향되었다는 교과서들은 이전에 교육부에서 합격시켰던 교과서들이었습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2010년 서서히 대두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대한 좌우의 성향이 자꾸 논란이 되자 2011년 시민단체들은 ‘친일독재 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결성했습니다. 2013년 9월엔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 한국사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교학사의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바 있습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본격적인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대해 서울대 소속 역사학과 교수 382명이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선언하며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서울대와 고려대를 포함한 전국 70여 개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반대 및 집필 거부 선언으로 확산되었고 479개의 시민단체에서 국정화를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사진 : 이하나)

기독교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기독교사 실천 선언’을 발표했고 교사들은 불복종 선언을 발표하며 “정부가 스스로 올바른 교과서라고 지칭한 교과서는 빗나간 역사관을 반영하며 왜곡과 오류가 극심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기본적인 역사관에 입각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것인데 다양한 해석이나 논쟁을 원천 봉쇄하는 국정교과서 1종을 가지고 전국의 학생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합의 없는 정책은 폐기만이 답 

2016년 11월 28일 공개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관점과 객관적 사실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오류가 나타났습니다. 교육부는 그제야 국정 역사교과서 전면 실시를 유보하고 2018년부터 국정교과서와 검정교과서 혼용을 제안했습니다. 학계와 교사 단체, 학부 모모임, 시민사회, 시도교육감협의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단체들이 국정교과서 반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학계는 한국사뿐 아니라 서양사학과 동양사학도 동참하며 2016년에 들어 참여단체가 두 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또한 2015년 JTBC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이 44.7%이었지만 2016년 여론조사에서는 반대 67%, 찬성 17%로 여론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결국 2017년 5월 31일, 조기 대선을 통해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지되었습니다.
(출처 : 정책브리핑)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관계자들의 주도로 시작되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집필진의 자질 논란과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예산의 무분별한 사용 등 진행과정에서의 허점도 하나씩 밝혀졌습니다. 충분히 전문가들과 시민들과의 논의 과정이 없었던 정부의 일방적 결정은 결국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은 전국의 다양한 계층이 함께하면서 몇 가지 성과를 냈습니다. 첫 번째는 정부의 일방적인 역사관을 강요하는 국정화 시도를 완전히 무산시켰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참여 단체의 확장으로 유기적인 연대와 협력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합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던 정책을 무산시켰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소득이 되었습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http://www.much.go.kr/cooperation/index.do

👉🏻 역사정의실천연대 : http://ibuild.tistory.com/

[퍼스트 펭귄] 07. 왜 ‘뜨는 동네’가 되면 가게들은 떠나야 하는 걸까?

2018.11.01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8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어느 날, 나만의 단골집이 사라졌다?! 

혹시, 나만의 단골집을 잃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느 날, 즐겨 찾던 작은 커피숍이나 식당이 있던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주목받지 못하던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동네가 유명해지면서 사라지는 일들. 이는 대한민국 어디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캡션 입력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된 골목의 풍경 (연남동)

상권이 만들어지기 전의 동네에는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온 중소상인들이 가게를 꾸리고, 지역 주민들과 상권을 만들고, 골목골목의 분위기를 채울 예술가들도 들어옵니다. 이런 동네에 사람들이 모이고, 소위 ‘뜨는 동네’가 되면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립니다.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말을 듣고 건물을 사고파는 일이 생깁니다.

시세 차액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큰돈을 벌고, 세입자들은 가게를 꾸미기 위해 들였던 권리금도 보전받지 못하고 내쫓기는 일이 허다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상권을 일구어 놓은 것은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게 하나가 없어도 생계가 흔들리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장사하던 터전을 잃으면 삶의 모든 것을 잃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들이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인디 뮤지션들이 지키고자 했던 칼국수집

2005년, 안종녀 씨는 서울 동교동에 ‘두리반’이라는 칼국수집을 차렸습니다. 두리반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크고 둥근 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가게를 차리기 위해 적금 해약에 대출까지 받았지만, 다행히도 이 칼국수 집은 홍익대학교 학생들과 홍대 인디 뮤지션들이 자주 드나드는 동네 식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 12월, 갑자기 가게를 비우라는 소송장이 날아왔습니다. 근처에 전철역이 들어선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두리반’의 안종녀 씨와 같은 부근의 11개 건물의 세입자들은 내용증명과 소송장을 받고서야 건물주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청이 재개발을 허가해 발표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듬해 봄부터 11세대는 소송을 청구했지만 모두 패했습니다. 개발업자들은 회유와 협박을 계속했고, 결국은 모두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캡션 입력철거를 앞두고 있던 두리반의 모습
(출처 : 두리반 트위터 @duriban12)

모두가 떠난 동교동 골목에, 두리반만 남았습니다. 용역들은 가게에 들이닥쳐 욕설을 퍼붓고 집기들을 때려 부수더니 가게를 철판으로 막았습니다. 안종녀 씨 부부는 철판을 뜯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긴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사람들은 ‘홍대 두리반 투쟁’이라고 부릅니다.

두리반의 싸움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두리반을 지키려는 젊은 문화활동가와 음악가들이 모였습니다. 두리반을 지킨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되었습니다. 홍대 앞이 ‘뜨는 동네’가 된 뒤 홍대 앞에서 일을 하고 예술을 짓던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떠났던 그들이 다시 모여들어 두리반을 둘러쌌습니다. 구청에서는 전기를 끊었지만 사람들은 더 몰려들어 함께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두리반 투쟁은 즐거운 축제장처럼 보였습니다. 슬퍼서 울 일이더라도 함께 노래하며 지킬 때 힘이 더욱 커지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리반을 돕는 누군가의 블로그에는 오세영 시인의 시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두리반을 지키고자 했던 뮤지션들의 응원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출처 : 두리반)

이듬해가 되고 두리반 투쟁 531일 만에 2억 5천만 원 상당의 배상금과 인근 지역에서 영업재개에 개발업자가 합의했습니다.

용산참사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2009년 용산 4구역 철거 과정에서 경찰 한 명과 시민 다섯 명이 목숨을 잃는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곳곳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갈등과 희생이 생깁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되었던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인데요. 2013년, 이 문제를 고심하던 당사자들과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이하 ‘맘상모’)’를 결성합니다. ‘두리반 투쟁’과 ‘용산 참사’를 통해 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맘상모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사건들과 개정 히스토리]

마음 편히 장사하는 세상을 위해

2013년 5월 참여연대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를 열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단체가 알려지면서 혼자 고민하던 상인들이 더 모였습니다. 맘상모는 강제집행을 당한 가게에 대한 대책회의도 하고 연대활동으로 서로 힘을 보탭니다.

“와서 보면, 다 내 일이거든요.

모두가 똑같은 상황인 거예요.

여기 와서 상담받고 하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사실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됐을까 하는 것들을 혼자 찾기

쉽지 않은데, 여기 오면 문제점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다른 상인 분들과 힘을 합칠 수도 있으니까요”

– “우리, 맘 편히 장사하게 해 주세요!” 중에서

맘상모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법은 조금씩 바뀌어져가고 있어요. 2013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재건축과 철거에 대해서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없도록 재건축 시기와 기간을 명시하지 않으면 임대인에게 책임을 묻는 ‘재건축 사전고지 의무’를 넣었습니다. 2015년에는 ‘표준권리금계약서’를 만들어 상가 임차인 보호를 강화한다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위한 캠페인 (출처 : 맘상모)

정다운 단골집을 지켜내는 방법 

임대차보호법이 두 번이나 개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는 조건은 못 됩니다. 맘상모, 참여연대,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계속해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계약갱신 기한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이 2018년 국회를 통과했고, 전통시장도 권리금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권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기한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시행 후 최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임대차부터 적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새로 계약을 하는 경우 10년간 계약갱신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10년간의 물가상승을 고려해 임대인들이 가파른 임대료를 요구하는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제가 사는 지역의 한 약국은 문을 닫고 현수막을 크게 내걸었습니다. 1천만 원에서 4천만 원으로 올린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수십 년 역사의 막을 내리고 이전을 한다고요.

아직도 긴 시간 자리를 지켜온 정다운 가게와 식당들이 사라지는 현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 개정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강세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소 연구원)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참여연대 상가법개정운동본부 : https://goo.gl/og8pY1
👉🏻 시민자산화에 대해 알아보기 : https://goo.gl/yuoGFU
👉🏻 부동산불법거래신고센터 (국토교통부) : https://goo.gl/1UayK3

[퍼스트 펭귄] 06. ‘위안부’ 할머님들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8.10.29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5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아픔을 공유한 두 여자의 만남

1943년, 이화여전 1학년 학생들은 학교 건물 본관 지하 염색교실에 모여 빽빽하게 인쇄된 서약서에 양쪽 엄지손가락 지장을 찍었습니다. 일본인들의 강요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1학년이던 윤정옥은 부모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두어라.”

윤정옥의 부모님은 ‘처녀 공출’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딸이 낯선 곳으로 끌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기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멀리 피난을 갔습니다. 그 시기에는 학도병과 강제징용이 많았습니다. 또래들은 어디론가 끌려갔고 또 사라졌습니다. 해방이 되고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윤정옥은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그때 끌려간 여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975년, 일본의 영토가 된 오키나와에 한 한국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1914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故배봉기 할머니입니다.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의 출입국 정책 때문에 추방당할 상황이 되자 오키나와에 살게 된 사연을 말하게 됩니다. 할머니의 사연은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데요. 배봉기 할머니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임을 밝힌 첫 번째 사람입니다.

캡션2017년 광복절을 맞아 151번 서울시내버스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입력

1980년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사회적 책임감을 가졌던 윤정옥 교수는 배봉기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윤정옥 교수는 그 시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수차례 거절 끝에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윤정옥 교수는 그때부터 태평양 전쟁 당시 끌려갔던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1988년, 드디어 그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게 됩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여성학자 이효재, 한국교회여성연합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을 결성합니다. 이 여성단체들이 민족적 문제를 넘어 반인륜적 폭력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퍼스트펭귄들입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할머님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

캡션 입력용기를 내어 세상에 아픔을 이야기한 사람들
 
1991년, 단체들은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공개 증언을 이끌어냅니다. 윤정옥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지 3년 만에,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저는 일본 군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단단히 결심했어요.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한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엔 나오게 됐어요. 누가 나오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칠십이 다 됐으니 이젠 죽어도 괜찮아. 근데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이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끌고 이리 따라오라고 그때 그 사람에게….”
끌려감, 故 김순덕 (1921-2004)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238명의 할머니가 피해자로 신고하였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와 다른 두 명의 피해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으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일이 끝났다던 일본 정부도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1993년, 조사가 끝났다며 당시 관방 장관의 이름을 딴 ‘고노 담화’가 발표됩니다. 부분 인정,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비치는 듯했지만, 국가의 책임은 민간업자에게 떠넘겼습니다.
 
2년 후, 일본은 일본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립합니다. 정부의 반성과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위로를 담은 인도적 차원의 의미를 전한 것이죠. 일본 국민을 포함한 한국, 대만, 필리핀의 피해 여성 258명에게 기금을 전달하고 정부의 책임을 다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위로하고

 
이제 모두 할머니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와 시민강좌, 교육기관에서 증언과 강연을 시작했는데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이끌었고, 그해 12월 유럽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했습니다.
 
또한 일본군에 대한 피해를 넘어 미군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들을 격려하고,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에서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할머니들의 움직임은 단지 ‘나의 피해를 보상하라’의 차원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과 인권 유린에 대한 항거입니다. 
 
201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나비기금’을 제안합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차별, 억압,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세계 각지의 전쟁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지원과 연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정기수요시위의 한 장면 (사진 : 신권화정)

소통 없는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의 힘

 
2015년, 일본의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외교부 장관을 서울에 보냅니다. 우리 피해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타결한다’고 발표합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이 아닌,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세우고 일본 정부가 주는 10억 엔(100억)을 받았습니다. 이 약속에는 앞으로 국제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고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 : 신권화정)
 
 
많은 시민들이 이 합의를 반대했고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고, 뜻을 달리하는 시민들의 욕설과 소녀상에 대한 망치 테러도 있었지만,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다시 수요일을 지키기 위해

 
정신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 남녀불문 국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할 때 썼던 이름입니다. 위안부는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여성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피해자의 삶을 표현하기 적당한 말은 아니지만 일본군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일본군 문서에서 직접 사용한 말인 ‘위안부’를 쓰되, 작은따옴표로 감싸고 “일본군 ‘위안부’”라고 쓰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에서는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로 표기합니다. 
 
정대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당사자들, 그리고 이 반인륜적인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연대는 26년간 천 삼백 번이 넘는 수요일을 버텼습니다. 집회는 일시적인 것을 말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를 항의한다는 의미가 더 많은 “수요시위”를 정식 명칭으로 씁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나비가 되어 이 한 많은 땅을 떠나고 2018년, 지금 스물일곱 분이 남았습니다. 민족과 개인의 불행을 넘어, 세상에 고통받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피해자들을 위해,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수요일을 지킵니다. 전쟁이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의 퍼스트펭귄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일을 지킬 것입니다. 저희와 함께 수요일을 지켜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사)시민 신권화정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 http://womenandwarmuseum.net
👉🏻 정의기억연대 서명 참여하기 : http://womenandwar.net

[퍼스트 펭귄] 05. 별명으로 통장을 만들 수 있다면 벌어지는 일?

2018.10.26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4


은행에서 실명확인, 혹시 귀찮으신가요?

은행 창구에서 일을 보기 위해서 꼭 챙겨야 할 것이 있죠? 바로 신분증!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거나 깜빡했더라도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학생증이나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은행에서 본인 계좌를 통해 어떤 일을 하려면 꼭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 25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은행 갈 때마다 매번 신분증 들고 가니 귀찮아요.
우리 서민들까지 실명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1996년에 정부 제정기획원에서 만든 홍보영상에서 나온 시민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오해는 1993년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된 이후에도 수년간 시민들이 적응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겨났는데요. ‘금융실명제’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개인이 거래를 할 때에 차명이나 가명이 아닌 ‘실명’으로만 거래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요?

금융실명제 발표 다음 날 신문 (출처 : 국가기록원)

예금과 적금의 비밀을 보장한다

금융실명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그 이전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1년 7월 29일, 무기명·가명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예금, 적금 등의 비밀보장에 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1993년까지 우리나라의 금융거래는 꼭 본인 이름이 아니어도 가능했습니다. 쉽게 말해, 남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도 있고 가짜 이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쉽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재산을 공개하기 꺼리는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쌓아두게 되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을 남의 명의로 모아두면 개인의 자산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세금을 부과할 수도 없죠. 급여가 투명하게 공개된 소시민들만 올바로 세금을 내고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은 정부에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금융실명제가 있기 전엔,

부정한 돈들이 은행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금융거래에 실명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정부에서는 예금과 금융거래를 장려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정한 돈이 쌓이고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으며 거대한 금융사기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퍼스트펭귄들, 불공정한 경제정책 개선에 뛰어들다

1987년 6월 항쟁을 지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았습니다. 개발 우선 정책에 밀려 부동산 투기가 광풍을 일으켰고 이로 인한 노동의 대가로 얻는 보수 이외의 불로소득이 높아지며 도시무주택서민들의 고통이 커졌습니다. 

1989년,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시민운동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줄여서 경실련으로 부르는 이 단체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경제적 공의를 추구하기 위해 자유, 평등, 민주 사상을 토대로 불공정한 경제정책 개선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

전두환 대통령 때에도 금융실명제는 한번 언급이 되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취임 후 1989년 4월 금융실명제 실시단을 구성해 1년 동안 준비하다가 여건이 여의치 않다며 준비단 자체를 해체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부터 경실련은 ‘제반 경제개혁조치의 후퇴를 경계한다’는 구호를 시작으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촉구하였습니다. 경실련은 그간 쌓아온 운동의 전문성과 역량을 끌어 모아 계속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내고 언론을 통해 이를 이슈화 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경실련이 분위기를 띄우며 시민여론을 주도하자 정치권에서도 본격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캡션 입력1991년 경실련의 활동을 보도하는 경향신문 기사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두 번째 대통령 직선제 선거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대통령 공약으로 앞세웠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성장률이 높았지만 차명계좌를 통한 정재계의 불법자금 조성, 경영권 상속의 문제, 주가조작, 어음거래 사기, 불법거래 등이 만연했습니다. 80년대 초반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수천억 대 거액 어음사기사건도 차명계좌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나쁜 짓을 저지르기 좋은 여건이 있다면 정책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옳습니다.

끝까지 보안을 지켜라!

금융실명제는 한국 현대사에 기록할 만한 사건이라 평가받습니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 정재계 반발이 엄청날 것을 예상하고 극비리에 금융실명제를 준비합니다. 경제부총리와 재무부 장관을 불러 철저한 보안을 요구했습니다. 이경식 부총리와 홍재형 장관은 실무자들을 모아 극비리에 과천에 모였습니다. 이 팀은 한 달간 집에도 못 들어가고 해외출장을 가는 것으로 위장했다고 합니다. 팀에 합류한 공무원도 특별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실제로 해외출장을 가는 줄 알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집니다. 

왜 이리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했을까요? 그만큼 시중에 불투명한 돈들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금융실명제 전면 실시를 기습 발표하는 故김영삼 前대통령

드디어 1993년 8월 12일 오후 8시. 예금인출을 막기 위해 저녁시간을 고른 김영삼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합니다. 

“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합니다. 아울러, 헌법 제47조 3항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심의·승인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합의와 개혁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비추어 국회의원 여러분이 압도적인 지지로 승인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발표를 진행했던 12일은 목요일이었습니다. 13일 오전부터 명동사채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고 은행과 금융권도 모두 비상체제에 돌입하였습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은 실명확인이 안 될 경우 예금 인출을 금지하고, 순인출 3천만원 이상의 경우 국세청에 통보하여 자금 출처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3일 금요일은 이에 대한 각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준비를 위해 오후 2시부터 금융기관 업무를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은행을 방문해 직접 실명확인을 시연하는 故김영삼 前대통령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계속되는 노력 

두 달 사이 전국의 예금 실명전환율은 97.4%까지 올라갑니다. 전환금액은 6조 2천 379억원에 달했습니다. 경실련은 일단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조기정착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제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기존 차명계좌에 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계속 지적하며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캡션 입력경제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출처 : 정책 브리핑)

금융실명제는 시행 당시 기존의 제도를 완전히 뒤엎어 혼란이 우려된다는 전망도 있었으나, 현재는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금융실명제도를 정부가 시행하도록 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지지한 시민들 모두가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금융실명제를 통해 검은돈, 부정한 돈, 숨기고 싶은 돈이 은행으로 숨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아직도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차명통장을 사용하고 부정한 돈을 숨기는데 급급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 실현이 앞으로도 쭉 지속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경제 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송종운 (前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연구소 연구원)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금융감독원 불법금융신고센터 : https://bit.ly/2CMbiCZ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http://ccej.or.kr/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 http://consumer.or.kr/

[퍼스트 펭귄] 04. 청년의 절반은 지금 알바 중입니다

2018.10.23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뜨거운 피자보다 중요한 청년들의 안전

 
한국의 대도시는 24시간 어디서든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습니다. 바닷가 방파제도, 대학의 잔디밭도, 음식이 못 가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더 따뜻한 피자와 식지 않은 치킨을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배달노동자들은 빠른 속도로 도시를 누빕니다. 

2010년, 피자를 배달하던 최 모씨가 사거리에서 택시와 부딪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주일간 사경을 헤매던 청년노동자 최 모씨는 결국 목숨을 잃었고,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청년 알바생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의 안전보다
뜨거운 피자가 중요할 수는 없죠.”
“빠른 배달로 누군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에 처한다면
과감하게 30분 배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불편함을 택하겠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누비는 배달 오토바이

함께 외쳐요! #노30분서비스

피자배달노동자 최 모씨의 사망 이후, 청년 알바생들의 노동 인권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이 사건을 계기로 ’30분 배달보증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청년 노동 인권을 위한 여러 시민단체들의 노력]

사람들이 SNS에 #노30분서비스 라고 해시태그를 달며 동참했고, 업체는 여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30분 배달제’는 주문을 한 순간부터 30분 내에 고객에게 배달을 완료하는 제도인데요. 주문을 확인하고 피자를 만드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피자는 매장을 나선 후 10분 이내로 고객의 손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상황이라면, 배달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배달노동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불합리한 구조였는데요. 목숨을 걸고 달려가 배달을 해도 30분이 넘어가면, 배달노동자가 고객과 가게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했습니다.
도미노피자의 30분 배달보증제 폐지

사장님, 주휴수당 알고 계신가요? 

2011년, 모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은 알바생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직원 교육 때는 전혀 듣지 못한 이야기였는데요. 그는 청년유니온에서 주최하는 노동법 세미나에 참석해 주휴수당 규정을 알게 되었고, 일하던 곳의 사장에게 주휴수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커피전문점의 사장도 몰랐던 이야기라며 본사에 알아보았고, 주휴수당 규정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그동안 받지 못한 주휴수당은 172,800원이었는데요. 커피전문점 사장은 모두에게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이 청년에게만 주휴수당을 지급하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각 커피 전문점의 주휴수당 지급률을 조사했는데요. 7개 브랜드, 251개 매장의 알바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휴수당 전체 지급비율은 11.5% 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커피전문점들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주요 언론사에서 이 소식을 다룬 덕에 크게 이슈가 되었습니다.

청년 아르바이트의 기본 조건

청년유니온은 그동안 구직자인 조합원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 허가를 받지 못했으나, 2011년 조직을 재정비해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아 커피전문점 측과 노사교섭을 맺게 되었습니다다. 이 교섭의 결과로 카페베네와 커피빈은 그간 주지 않은 주휴수당을 지급했는데요. 이는 청년들의 비정규직 노동, 아르바이트의 실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청년 아르바이트에 대한 특집기사를 실었고 청년 아르바이트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가입, 최저임금 준수, 주휴수당 제공이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작용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이 최소한의 법 준수와 권리 보호를 위해 오늘도 청년들은 일하면서 저항합니다.
최저시급은 청년들에게 적절한 급여일까요?

최저시급이 적정시급은 아닙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이보다 적게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면 안 된다’는 최저의 기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적정임금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이슈가 언론에 의해 강조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죠. 2013년 알바연대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의 단체는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를 만들어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올리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와 최저임금연대가 합류해 더욱 적극적인 운동을 펼쳤고, 이후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에도 주요 공약으로 나타났습니다.
1시간을 일한 돈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는 밥 한 그릇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있는 현실적인 최저시급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는 정권 내에 최저시급 1만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으나,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어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동안 오르지 않았던 최저시급은 논란이 거세지면서 적정시급이나 최고시급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그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를 감안했을 때, 지금의 최저시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한 노동현장을 위해 

2018년 한 신문사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청년들은 응답자의 50.1% 라고 합니다. 정부에서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청년들은 그 인구수가 확연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싼 노동비를 받으며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상승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노동 환경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노동이 공정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 실습의 위험성, 저임금 고노동으로 인한 건강문제, 산업재해 등이 이제야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없었던 일이 갑자기 생겨난 걸까요? 퍼스트펭귄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제야 청년 아르바이트가 수면 위로 올라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존중받는 날이 올 때까지, 함께 관심을 가져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신권화정 (사단법인 시민 사무국장)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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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03. 여러분은 어디에서 장을 보시나요?

2018.10.22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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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형마트의 시작

1993년, 서울시 도봉구 창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마트가 들어섰습니다. 바로 이마트 1호점인데요. 이때부터 창고처럼 커다란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모두 한 번에 사는 방식의 쇼핑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거대한 매장에 들어서면서 산처럼 쌓여 있는 물건에 압도되고, 식품부터 생활용품과 의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한 곳에 모아놓은 편리함에 매료되었죠. 사람들이 대형마트에 익숙해지면서, 1995년 18개에 불과했던 대형마트는 1996년 이후 급격히 증가합니다. 또한,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야간에도 문을 여는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없는 게 없는 대형마트의 정갈한 내부

하지만, 우리 동네의 정다운 가게들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지역의 작은 가게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졌습니다. 작은 가게를 꾸리는 상인들은 대량 물량공세로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가지는 대형마트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업은 초반에 당장의 매출이 일어나지 않아도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형마트는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람을 투입해 매장을 운영할 수 있고, 창고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어서 부족한 물건이 없습니다. 반면, 대부분 가족단위가 같이 경영하는 작은 가게들은 24시간 운영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은 초기에 큰돈을 들여 대형 매장을 짓고 넉넉한 주차장도 제공합니다. 생긴 지 오래된 재래시장은 뒤늦게 정부의 도움으로 천막을 치고 주차장을 지었지만 대기업의 물량공세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대형마트의 등장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로 무너지는 지역경제

 
그뿐 아니라 기업은 SSM(Super Supermarket)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슈퍼마켓을 만들어 골목상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선한 식료품을 밤늦게까지 살 수 있는 슈퍼마켓의 골목진출은 소상공인 생계의 위기가 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과 지식경제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매해 실시하는 조사 결과, 해가 갈수록 전국 전통시장, 중소유통업체, SSM 주변 중소유통업체 모두의 고객 수와 매출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사례로, 홈플러스 청주점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완강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을 열게 되었는데, 이후 반경 5km 내의 슈퍼마켓 337곳 중 72곳이 폐업을 했습니다. 3년 사이, 지역상권의 30% 정도가 날아간 셈입니다.

 

지역 내 경제순환의 중심이 되는 시장

게다가 대형마트는 벌어들인 돈을 모두 본사로 보냅니다. 골목에서,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그 지역에서 다시 소비하여 지역경제를 순환시키는 소상공인들과는 다르죠.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물품 역시 그 지역에서 생산되기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배송됩니다. 대형자본을 가진 기업은 지역의 것을 지역에서 팔지 않고, 지역의 것을 지역으로 돌려주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 사는 경제공동체를 위해

2009년 5월, 각 지역별로 대응해오던 전국의 중소상인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를 결성했습니다. 점이었던 사람들이 모여 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조직에는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해, 각 전통시장상인회를 중심으로 한 전국의 상인연합회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진보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함께하였습니다. 1990년대 대한민국에 창고형 할인마트를 표방한 대형마트가 들어선 이후 지역경제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퍼스트펭귄들이 모여 전국적인 연합체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는 대형 유통업체가 확장해가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의 상생 경제공동체를 위한 노력]

‘중소상인살리리네트워크’가 진행하는 사업들은 크게 중소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률의 재개정을 추진하는 것, 대형마트와 SSM의 합리적 규제를 도입하는 것,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고, 폐업 중소상인의 실업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2011년, 대기업들은 대형마트의 출점 자제와 월 2회의 의무휴업에 합의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2012년, 합정동에 입점이 예정되어 있던 홈플러스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마포지역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많은 마포구 주민들과 망원시장을 비롯한 주변의 중소상인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되어 망원시장 인근의 홈플러스 SSM은 폐점하였고, 처음으로 중소상인들과 협의하여 협의가 된 품목을 제외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막아낸 대형자본의 지역경제 침투
 
또한, 2012년에는 전통시장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문전성시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전통시장을 살리려는 시민들이 전통시장 안에서 캐시몹(cash mob)이라는 이벤트 퍼포먼스가 참여하였습니다. 캐시몹이란 SNS 등을 통해서 모인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같은 상점에 모여 함께 쇼핑을 하는 플래시몹의 한 종류로, 지역 또는 상점의 활성화를 위한 의미와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입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캐쉬몹 참여 포스터

자본에 억눌리지 않는 삶을 위해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퍼스트펭귄이 되어 네트워크와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대형마트뿐 아니라 대형자본이 마을의 삶을 점령하는 일을 반대해왔습니다. 이 퍼스트펭귄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대형마트의 입점 반대가 아닙니다. 상생과 공존의 방법을 찾자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대형자본이 마을의 생태계를 지배하면 중소상인들은 결국 자기 가게를 그만두게 됩니다. 대형마트가 들어와 지역의 인재를 채용하는 일도 일부 판매직에 국한될 뿐 그 효과가 미미합니다. 유통대기업이 지역의 상권과 경제공동체를 지배하는 형국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소상공인과 더불어 사는 경제공동체를 꿈꿉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영업일을 규제하는 것은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쉴 수 있는 권리를 지키며 거대한 자본에 의해 약자들이 내몰리지 않는 사회가 마련되어야 지역의 경제공동체도 지속 가능합니다. 골리앗이 되려는 욕심이 없는 작은 사람들이 모여 조화롭게 맘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퍼스트펭귄들은 앞장섭니다.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사무국 : 참여연대 http://www.peoplepower21.org/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우리 동네 전통시장 찾아보기
: 전통시장 통통 http://www.sijangtong.or.kr

[퍼스트 펭귄] 02. 당신의 통신비는 안녕하십니까?

2018.10.18

‘퍼스트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사회단체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69

우리는 적절한 수준의 통신비를 내고 있을까요? 

외부 일정이 많아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 단말기 할부 값까지 월 10만 원 정도를 통신비로 지출합니다. 휴대폰은 이제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매달 돈을 쓸 수밖에 없죠. 어떻게든 이 비용을 줄여보려고 새로 휴대폰을 개통할 때마다 판매직원과 이런저런 요금제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짠 기억이 있을 겁니다.

2018년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6천4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다고 해요. 한국의 가계당 통신비는 2016년 기준 월 14만 4천 원으로 전체 가계소비의 5.6%에 이릅니다. OECD 34개국 가운데 가계통신비의 부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매달 지출하는 통신비는 과연 적절한 수준일까요?

휴대폰 없이 외출할 수 있나요?

우리나라의 통신 역사를 되짚어보면, 공공성을 가진 ‘통신비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참여연대는 1994년 의정 감시와 공익 소송, 인권 등 시민사회 전반에 걸친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입니다. 사회정의, 사회복지, 정치, 사법, 경제, 노동, 인권, 평화 등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통신비 공공성 확보’를 위해 참여연대에서 어떠한 노력을 하였고,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요?
 

[참여연대의 정보통신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


 

시티폰을 기억하시나요?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는 삐삐를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버지 역할의 성동일 씨가 시티폰 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요. 시티폰은 1997년경 한국통신에서 시작한 새로운 통신수단이었습니다. 휴대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수신은 불가능하고, 공중전화 기지국의 통신망을 써서 공중전화 주변에서만 발신이 되는 휴대전화였죠. 당시 시티폰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삐삐로 호출이 오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해야 하는데, 공중전화는 줄이 길고 전화를 걸 매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통화품질이 엉망인 탓에 소비자 불만이 속출했고, 3년 만에 사업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어디 있었을까요?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공중전화박스
 
참여연대에서는 기본요금을 시민들로부터 다 받은 한국통신이 기지국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시티폰의 통화 품질이 엉망이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대해 기본요금 환불을 요구하는 “시티폰 가입자 권리 찾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국가의 기간시설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있는 정보통신 대기업들이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지 주목했습니다. 이후 통신업체의 책임을 문제 삼아 더 많은 정보통신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애써왔습니다.

본격적인 통신비 인하 운동

초기 휴대폰 사업은 한국통신의 기지국과 전파를 사용해서 전파법에 따라 3개월마다 3천 원씩 모든 가입자에게 일괄적으로 휴대전화 사용료를 받았습니다. 참여연대는 이 부분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하여 “전파사용료부과취소”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부터 휴대폰 사용 요금에 포함되어 있던 전파 사용료는 사라졌습니다.

1990년대 말 700만 명 수준이었던 휴대전화 가입자가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를 넘어섰습니다. 통신업자의 이익은 대폭 늘어났는데, 비싼 통신요금은 전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2001년 소비자들의 불만을 모아 “거품요금 인하 100만 인 물결운동”에 돌입했고, 이 결과로 전체 이동통신요금이 8.3% 가량 내려갔습니다. 

2007년, 참여연대는 ‘이동통신요금 인하운동 시즌2’를 진행하면서, 계속해서 통신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요금에 대한 원가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4년이 지난 2011년에 이르러서야 서울행정법원은 원가산정자료 등 중요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업체들의 항소로 소송은 대법원까지 넘어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2012년에는 휴대폰 가격을 부풀린 후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는데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이를 ‘휴대폰 단말기 보조금 사기사건’으로 규정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오늘도 통신사는 치열한 경쟁 중입니다.

이동통신, 시민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수단 

“이동통신은 전 국민이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었으므로
이제 공공성이 필요합니다.”
 
“국가기간산업인 전파와 통신을 이용하는 이동통신사는
이에 대한 공익성을 지켜줘야죠.”
 

2014년 단말기 유통법이 제정되면서 단말기 보조금을 33만 원으로 제한하는 게 가장 소비자들에게 와 닿는 부분이었는데요. 통신요금 인하도 없었고 단말기 가격을 낮추는데도 실패해 국민들은 부담이 커지고 통신사는 장사가 안 되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처음 취지는 혼탁한 통신시장 개선,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좋은 명목이 있었지만, 이 법안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기업에 유리한 것이 더 많았습니다. 

참여연대는 지금도 이동통신사의 가격구조를 투명하게 밝히고 기본요금을 폐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통신업체들의 항소로 시작된 7년의 법적 공방 끝에 2018년, 드디어 대법원이 원가산정자료 등 중요정보를 공개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모바일 기기는 필수품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평등한 정보통신의 기회를 

통신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가의 전파 통신망을 이용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전 국민이 이동통신을 사용하고 있으며 통신망은 고속도로만큼 우리의 생활에 큰 영향을 줍니다. 또한 통신은 사람들의 소통을 편리하게 만들어 의견과 여론을 펼칠 수 있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통신 요금 인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이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퍼스트펭귄들은 확신합니다. 이제 퍼스트펭귄들의 도전에 여러분도 함께해 주세요.

| 기획 : 서울시NPO지원센터, 현장연구자모임 들파

| 스토리 : 참여연대 (http://www.peoplepower21.org/

| 글 : 이하나 (hana@allmytown.org)

| 삽화 : 이한비 / 인포그래픽 : 문화공동체 히응

👉🏻 참여연대 통신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 살펴보기 : http://bit.ly/2PhDMLx
👉🏻 우리 동네 국회의원 찾아보기 : http://bit.ly/2AszAj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