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

올 여름들어 처음으로 선선한 하루였다. 찜통에서 나왔더니 다른 계절이 선뜻 와 있었다. 내일은 작은 아이의 개학이라 마음만 분주한 오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3주전쯤 시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다. 7년 넘은 치매의 시이모님을 보필하시다 병을 얻어 먼저 작고하셨는데 오늘은 상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시이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오늘 돌아가신 시이모님은 작년에 먼저 가신 시어머님의 언니. 나는 그 분을 알지 못한다. 결혼하기 전에 인사를 갔을 때도 가물가물하시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조용한 목소리로 하셨던 분이다. 이후 명절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대화를 나눌 수도 눈을 맞추기도 어려운 형국이었다. 그러니 시이모님도 나를 모르실테고, 나 역시 시이모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간히 가서 뵈면 치매환자 치고 유난스럽지 않으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니러 온 우리를 방문을 열어 빼꼼히 보시고 다시 방안으로 조용히 사라지곤 하셨다. 치매환자들은 남아있는 욕구를 발산하고 본능만이 남는다 하던데 그 분은 무엇이 남으셨던 건지 1-2년에 한 번 뵙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어차피 가실 것, 말년에 옆에서 보필하시던 분 안 계실제 가시는 게 외려 고인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큰 아이도 같이 가신 셈이니 차라리 잘됬다고 뇌까렸다.

작년에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외숙모, 시이모부, 시이모님까지, 남편의 외가에 이어지는 초상이다. 남겨진 다른 이모님만이 걱정될 뿐이다. 형제들의 줄이은 초상에 얼마나 맥을 놓으실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리 때 되면 사그라지는 것이 생명이라 한 들 죽음은 누구에게도 익숙치 않은 일이다.

아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 것인가. 문득 예전에 보았던 “나는 전설이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한다. 도시가 텅 비어버리는 일. 그게 종말을 묘사하는 영화들의 주된 기법이다. 천지간에 사람이 넘쳐난다 한 들 내 아는 이 없는 세상은 마치 비어버린 뉴욕의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세상이 망한 것과 별다를 게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에 대한 책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전쟁에서 지면 남자는 거세를 당하고 여자는 강간을 당한다라는 공포가 만연했었다고. 거세당한 남자와 강간당한 여자라는 것은 그 민족의 씨를 말살하고 다른 유전자가 유입된다는 말일게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내 천지간의 혈족이 사라진다는 말일게다.

작년에 시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난 뒤, 끊임없는 부고가 이어졌다. 내 주변의 지인들의 장모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며 실은 며칠 전에도 잘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지만 안타까운 죽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7월에도 문상을 다녀왔으며 문상에 적합한 음전한 옷도 한 벌 마련해 둔 터이다. 조사는 들으면 가는 거래. 라는 말을 전했을 때, 나이 마흔 넘으면 그것도 아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도 떠오른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한 두 다리 건너의 부고를 전해들으며 내가 이제 부지런히 문상만을 다닐 나이가 되었다는 걸 절감한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남편이 7살 연상이고, 시부모님들은 8남매 9남매의 막내시다 보니 줄줄이 연로하신 분들만 남아계신다. 나이 먹은 배우자와 살면 늙는다는 말은 죽음을 자꾸 접한다는 말이었나보다. 삶의 완성이 죽음이라면 그 삶을 다 살아낸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어서 보며 마음을 자꾸 비우게 되는 것인 모양이다.

부음을 듣고 해가 지고 풀벌레 소리가 밀려들었다. 백내장에 익숙해져 더 이상 눈도 긁지 않는 역시 늙어가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했다. 3주전에 무릎 수술을 하여 아직 목발을 짚고 있는데 아파트 단지 한 가운에 널직한 광장에 인사 나눈 적은 없는 이웃의 아이가 걸음연습을 하고 있다. 그 아이는 다리가 불편한 지 늘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본격적으로 일어나 걸을 요량인 모양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등 뒤에서 잡고 아이의 엄마가 두 살짜리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나는 딸깍거리는 목발소리를 내며 걸었다. 해는 지고 별은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 소리는 깊고 이 동네 아이들은 내일 개학이다. 늙어가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 앉아 최명희의 혼불을 읽는다. 마침 청암부인이 죽어 상을 치르는 중이다.

2013.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