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A양은 작년 P사를 아무 예고 없이 퇴사했다. 
경리일을 보던 A양이 무슨 이유로 왜 퇴사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퇴사였다. 쉽게 말해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하여 사직서 한 장을 던져놓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월말이 가까웠고 세금 낼 것도 산같이 쌓여 있었다. 대표이사가 나서서 모든 세금 문제와 결제문제를 해결했다. 전직원은 한달동안 멘붕을 제대로 경험했다. 아무도 사라진 A양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사직서는 내고 갔으니 인수인계를 안 하고 갑자기 그만 둔 것은 괘씸하지만 범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다. 
P사의 사장은 A양의 전화를 받았다. 
어 너 웬일이냐. 
사장은 뻔뻔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했으나 속내는 대체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었길래 짐짓 궁금하기도 하였다. 
A양은 그렇게 잠적하듯 퇴사를 한 후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을 따서 마사지샵에서 일년간 고되게 일했다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으로 전했다. 그리고 돈을 천만원 이상 모았다는 얘기도 했다. 
어 그래 잘했네. 라는 대표의 말이 끝나자 마자 A양은 
“근데요 사장님” 이라며 어떤 역사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한 접속어를 뱉었다. 근데요.. 라는 것. 

A양은 열심히 일하고 돈도 모으던 중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 하여 대형병원을 찾았단다. 검진을 마치고 A양이 들은 얘기는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간의 일부가 괴사하고 담낭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본 병원에서는 할 수 없으니 한국최고의 병원(?)이라는 H사의 병원이나 S사의 병원으로 가보라 했다는 것이다. 
A양이 전하는 의학적 조치법은 매우 어려웠다. 간의 일부를 절제하고 담낭관을 잘라내고 쓸개즙을 빼기 위해 소장을 연결하고 어쩌고 저쩌고 아무튼 엄청난 대수술이라 에지간한 3차 병원에서도 쉽게 할 수 없다는 거다. 
A양은 결국 눈물을 쏟으며 그 간 모은 돈이 천만원이 넘는데 수술비는 2천만원이 든다 하니 이 일을 어쩌냐 하면서 사장님 주변에 아는 분 많으시잖아요. 하며, 병원예약을 앞으로 당겨달라고 부탁 좀 해달라고 말했다. 

사장은 난감했으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을 때는 그저 “응 그래” 하고 일단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A양의 예전 사장님은 이리 저리 전화를 돌려 각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지인들을 찾았다. 그리고 통화를 연결하니 아직 접수도 안 한 상태라는 어이없는 대답까지 들었다. 

얘가 병원에 혼자 있으니 심심한 모양이다. 사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마시던 소주를 털어넣었다. 
속이 부대끼는 다음 날 아침, A양은 아침 9시 전에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부탁한 거 어떻게 되었냐며 맡겨놓은 것 같이 말했다. 대표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 황당해 하며 어 내가 빨리 알아봐줄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설렁탕에 밥을 푹푹 말아 한 사발을 퍼먹고 있던 마누라가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이야기하니 마누라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진다. 
뻔뻔하네. 

그 날 오후 A양의 전사장은 A양으로부터 다른 부탁을 듣게 된다. 
“사장님 근데요, 제가요 이 수술을 마치고 나면요, 그 스포츠마사지 일은 힘들어서 못 하거든요. 저 다시 입사하면 안될까요”
사장은 등줄기에 불덩이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뒷통수가 오싹해지며 혈당수치가 급격히 하강하는 것처럼 찌릿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말을 뱉었다. 
“니 몸관리나 잘해 임마” 
“사장니임..”
“다 낫고, 다 낫고 나서 얘기해 임마. 지금 취직이 중요하냐 빨리 낫고 그 담에 얘기하자”

사장은 손님이 찾아왔다며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널찍한 사무실 소파에 맥없이 주저 앉았다. 
‘분명히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은게야..사람을 한 삼천명쯤 죽였던가…’ 

Based on True Story…

 

2013.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