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9. 버터링 쿠키

금요일 독서클럽
오늘은 상담샘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찍 도착. 교실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야기동화책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기대한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9장에 맞춰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맘을 비웠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나눠준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마을교육 방과후 활동엔 간식비가 책정되어 있다. 오늘은 버터링 쿠키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다른 활동시간에 아이들이 먹은 것 같은 빈 박스가 쌓여있다. 오뜨, 마가레트같은 과자박스이다. 왜 아이들에겐 늘 달디단 과자와 설탕이 가득한 음료수를 간식으로 줘야 하나.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붙잡아매는 유혹거리를 보며 속이 불편했다. 내 새끼에게는 먹이려 하지 않는 과자를 숫자대로 나눠주려니 파렴치한이 된 것 같았다.
이것부터 바꿔야겠다, 내년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며 아이들에게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순서를 기다리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가 나눠줄께요 라고 하며 손을 벌렸다.

은서가 울지 않은 지 3주가 되었다. 은서의 섬세한 그림이 자꾸 맘에 들어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파키스탄에 간 제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제니랑 우격다짐을 하며 싸우던 하윤이의 그림책은 제니와 하윤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제니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아이들은 꽤 많이 진도를 나가 많이 완성했다. 아이들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뒷문에 야구모자를 쓴 작은 아이가 서서 날 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민영이가 있었다.

몇 주전, 엄마가 방과후를 그만하고 영어학원을 다니라 했다며 독서클럽을 그만두었다. 늘 무기력하던 민영이는 첫 날 독서실 구석에 앉아 보리출판사의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민영이에게 선생님도 이 책 되게 좋아한다고 말을 건넸었다. 캠코더를 가져 왔을 때 가장 신이 나서 방방 뜨던 민영이가 평소에 늘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복도 신발장에 기대 서 있는 민영이에게 다가갔다. 어우 어쩐 일이야. 들어올래? 민영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바빠?
민영이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학원 가야 되니?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친구들 만나러 왔어?
아녀. 민영이가 대답했다.
그냥 들렀어요.
지쳐서 금새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 들어왔다가 가.
집에 들었다가 영어학원 바로 가야 돼요.
그럼 선생님이 간식 남은 거 있는데 좀 줄까?
민영이가 큐브블록을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선생님꺼라며 따로 챙겨둔 버터링 7개를 크리넥스에 싸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민영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물을 먼저 주었더니 민영이가 물을 조금 마셨다.

버터링 쿠키를 받아든 민영이의 손이 너무 번잡했다. 나는 교실로 다시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들고 나와 버터링쿠키를 담아 주었다.

지금 가야 되니?
민영이는 다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인 듯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민영이를 뒤에서 살짝 안아들고 다섯걸음을 걸었다. 내 새끼는 40키로에 육박하는데 그보다 한 살 많은 민영이는 30kg남짓인 거 같았다.

우리, 다음 다음주까지 할꺼야.
시간 나면 또 놀러와.
민영이가 배꼽에 한 손을 대고 무겁게 계단을 내려갔다.

교실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다가 창밖을 보는데 민영이가 뜨거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게 보였다.

‘민영이는 부모님이 늘 늦게 오세요. 무기력한 편이죠.’ 상담 선생님의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다.

눈물이 고여 선생님 책상에 있는 휴지를 얼른 뜯어 눈가에 대는데 아이들이 제가 그린 것들을 들고 와 떠들었다.
아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다시 운동장을 보았다. 민영이가 모래위를 터덜거리며 지나갔다.

201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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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자단 3.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간단하게 취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건의사항, 문제점을 파악해서 적어보라 했다.

아이들에게 지금 기사쓰기의 기초를 가르칠 시간도 조건도 되지 않고

동네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서 그칠 듯 하다.

아이들의 주된 요구는 위생과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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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리해 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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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8.

은서가 그린 그림.
은서는 집에 가는 길에 늘 화물운송 사무실 앞에 들른다.
거기엔 잘 씻기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산다. 지난 번 마을탐사할 때 은서의 소개로 다 같이 가서 봤다.

오늘은 릴레이동화를 지었는데 은서가 새끼 낳은 개를 그렸다.

미술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오는 길, 계속 은서 생각을 했다.150531_iphone6+ 232

2015. 5. 22.

마을이야기 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6.

아이들이 그린 마을지도
조별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했다.
상상력이 가득 들어간 지도도 있고
정확한 축척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지도도 있고
곱고 예쁘게 그린 지도도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리고 30분동안 발표했다.
중간에 툭탁대기도 했지만 큰 싸움 없이 정리.

은서는 오늘 울지 않았는데
자기 맘에 안 드는 아이와 한 조가 되었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으니.

201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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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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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정들 거 같음.

오늘은 제니가 명찰을 집어던지고 가버렸다.
허허허.

 

2.

 

선생님 그거 세월호 리본이죠?
1주년이라 달은 거죠?
아이들이 내 가슴에 달고 간 세월호 리본뱃지를 보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한 녀석이 말했다.
그거 왜 달아요? 쓸데없이.
쓸데없는 거 같애?
네.
왜?
귀찮으니까.
기억해야지.
왜요?
그래야 너희들이 나중에 고등학생 되서 수학여행 갈 때 또 그런 일이 없을 거 아냐?
하긴. 그래도 귀찮아요.
뭐가?
수학여행이요. 안 갈거예요.

아이의 귀찮다는 말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말로 들렸다.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고. 수학여행 내내 밀어닥칠 공포와 불안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2015. 4. 17. 기록

마을이야기만들기 – 초등학교 독서클럽 2

금요일 독서클럽 수업.
수업을 가기 전부터 나는 그 아이가 걸렸다. 매일 한 번 이상 눈물을 쏟아낸다는 아이. 피해의식,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열 한 살.

아이들은 약간 뺀질거리는 태도로 수업에 들어왔다. 귀찮고 놀고 싶고 재밌으면 좋겠고 쉬고 싶고.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즐거워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억지로 하지 않고 아이들이 한 마디라도 더 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

각자 숙제로 읽어온 책의 내용을 적어보랬더니 절반 이상이 숙제를 안 했다며 숙제가 없었던 거 같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명료하게 각인시키지 않은 건 내 실수라 본다.
애들은 그래도 된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숙제따위 새겨가고 싶을까.

숙제를 못 한 친구는 각자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를 적어보랬더니 어떤 아이는 자기가 지은 글을 적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대답했다.

그 아이, 은서.
매일 운다는 아이가 발표시간에 드디어 화가 터졌다. 옆 자리 친구가 뭘 썼냐고 은서의 발표내용을 잠깐 봤는데
“남의 허락도 없이 왜 나서서 남의 걸 들춰보고 까발리느냐”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고오!!” 라며 은서가 옆 친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엄한 목소리로
“선생님한테 조용히 하라고 한거니?”라 물으니 잠시 조용해졌다. 1교시 마무리 중이라 모두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간식을 나눠주었다.

은서는 옆친구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왜 남의 허락도 안 받고 내 껄 들춰서 까발리느냐고오!!”

나는 은서를 따로 불러 교실 창문 아래 작은 의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햇빛이 따스했고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며 떠들었다. 은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같은 문장을 계속 반복했다.

그래서 속상했구나.
화가 많이 났니?
라는 질문에도 같은 문장만 되뇌었다.
“왜 남의 꺼를 허락도 안 받고 들춰보고 까발리느냐고요! 그걸 가만 둬도 되냐고요오!”

은서야, 은서의 마음을 말해봐. 화가 난거야?
억울한거야? 아니면 섭섭한 거야?
어떤 질문에도 대답은 같았다.

“왜 남의 꺼를 허락도 안 받고 들춰보고 까발리느냐고요! 그걸 가만 둬도 되냐고요오!”

다른 아이들이 아 좀 그만하지 진짜.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은서는 고개를 휙 돌려 아이들에게
“시끄럽다고오! 그걸 가만 두냐고오!!”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는 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어디서 소리를 질러!” 하며 크게 말했다.

은서에게 억양과 소리높이와 크기를 바꿔가며 계속 네 마음을 말하라 했으나 은서의 대답은 토씨하나 안 틀리고 같았다.
은서가 화를 낸 옆자리 친구를 불러 너는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 물으니 이 아이도 완강하게
“저는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라고 대답했다.

은서는 그 아이를 끌고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가서 야단을 맞도록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따지고 싶으면 너 혼자 가서 선생님께 ‘따지는 게 아니라 말씀드리고’ 그 다음 친구가 야단을 맞아야 하는지는 선생님과 친구의 일이니 혼자 가서 말씀을 드리고 오라고 했다. 은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그 아이의 담임을 만나겠다고 교실을 나갔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두번째 시간을 진행하는 중에 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어왔다. 손도 들고 발표도 잘 하며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은서가 울지 않을 때 나는 ADHD가 심한 남자아이 옆에 앉아서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의 증상은 내가 보기에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수업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일반 대화가 안 될 지경이라 지적장애를 의심받을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아이들 몇 명을 따로 불렀다.
솔미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분명히 있는 아이라 꼭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서 가져오도록 했고, 기영이는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니 독후감을 자주 써보라 했으며, 은서는 기분이 좋아졌냐고 확인하고 웃옷을 접어 가방속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나가고 교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 많았다.
나도, 아이들도.

2015. 4.10.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