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집에가자 : 재택근무를 그만두며

한국노총 발행지 <노동과 희망>에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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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상상했던 2020년에도 오늘의 풍경이 숨어있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화상회의와 화상전화교육, 팔다리가 가늘고 머리통만 커진 인간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없지만, 비대면 업무와 온라인학습은 뜻밖의 바이러스 때문에 앞당겨졌다. 강제 재택근무에 돌입한 사람들은 초반에는 가족들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더니, 거리두기 권고가 3주를 넘기자 집중력이 떨어져 업무시간이 늘어지고 출퇴근이 없으니 밤낮없이 일만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월요일 오전 8시 50분이면 메시지창이 열린다

2005년, 결혼과 임신을 하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나는 2020년 지금까지 재택근무중이다. 가족사업과 작은 회사 두 개 거치면서도 절반은 재택근무를 했다. 독립해서 프리랜서를 거쳐 개인사업자를 낸 지금까지도 굳이 사무실을 얻지 않았다. 사무실 월세도 부담이지만, 대리돌봄이 불가능한 육아문제가 가장 컸다. 아침을 먹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9시부터 거래처들의 업무가 시작된다. 나도 그 시간에 맞춰서 책상에 앉는다. 월요일 오전이 되면 8시 50분, 또는 8시 이전부터 메세지창이 열리기 시작한다. 일을 하기 싫어도 시작해야만 하는 외부의 압박이 온다. 점심시간에도 전화기가 조용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일 그만하고 놀자’고 조르기도 했고, 친구들을 우루루 데리고 와서 소란스럽기도 했다. 친구들과 집에서 놀고 있으면 먹을 것만 챙겨준 뒤 신경을 안 써도 되지만 어느 순간 분란이 일어나면 일을 중단하고 일어나 중재도 해야 한다.
사무실이 없으니 회의를 할 때면 항상 내가 상대방의 장소로 찾아갔다.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꽤 든다. 하루에 회의 세 건이면 하루가 몽땅 날아갔다. 작년부터는 이동시간을 아끼자며 온라인 미팅을 하는 팀도 생겼다.

 


▲재택근무를 하는 이하나씨의 책상

 

아이가 잠든 후 반 11시에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재택근무에서 어려운 것은, 업무와 일상의 분리다. 육아 때문에 재택근무를 선택했으니 육아와 살림은 당연히 함께 지고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순간적인 집중력을 높이는 기능을 발달시켜야만 한다! 아침 9시부터 커피 한 잔 내려 컴퓨터 앞에 앉으면서 업무를 시작하고 가족이 없는 시간엔 절대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모든 살림살이를 다 뒤로 미룬다. 눈앞에 설거지가 쌓여있는 걸 못 참는다면 재택근무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전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면 점심시간엔 뇌가 지치는지 졸음이 쏟아진다. 여기서 재택근무의 장점이 발휘된다. 내 멋대로 점심을 걸러도 되고, 다른 직장인들이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에 낮잠을 잔다. 오후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간식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아이가 오기 전에 기력을 회복해두어야 늘어지는 오후에 아이도 돌보고 일도 하는 것이다. 저녁 시간에 내가 어질러놓은 것까지 밀린 집안일을 하며 업무로부터 한 번 더 쉰다. 저녁을 해 먹이고 아이를 재운 뒤 다시 책상에 앉는 시간이 밤 11시였다. 혼자 집중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이가 잠든 이후인 11시부터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다년간의 재택근무를 거치면서 내가 찾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오전 9시 전에 일어나 샤워하고 머리도 감고, 아침을 먹고 커피도 내리고 언제든지 미팅을 나갈 준비가 된 채로 일을 시작한다. 옷은 굳이 갈아입지 않아도 괜찮다.

2. 오전 9시 이전에는 되도록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하루 일정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본다. SNS도 괜찮다.

3. 업무 관련 장비는 가장 좋은 것으로 쓴다. 장시간 앉아 있게 되고 수시로 야간작업에 돌입하기 때문에 키보드, 마우스, 마우스 패드, 의자는 능력치 내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른다. 나는 MS의 스컬프트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고 있는데 의자는 PC방 의자로 바꾸고 싶다.

4.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저녁 7시까지는 어렵더라도 밤 10시라든가. 연장근무는 아무래도 새벽 2시에는 끝낸다거나.
5.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혼자 진행한다면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걸 한다. 안 그러면 화장실 갈 때 말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점점 의자가 나인지 내가 의자인지 모르는 지경이 된다. 이때 스트레칭을 하면 더 좋겠지만 게으른 자는 자기 성향에 순응하도록 한다.
6. 수시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절친과 간간히 메신저로 채팅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혼자 일한다는 건 고립되기 쉬운 일이라 절대적으로 SNS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택근무의 함정은 끊임없는 셀프착취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상당히 파악한 지금이 이르러서야, 나는 다음 달에 사무실을 얻기로 결정했다. 집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넓어져서 가족들이 앉을 자리도 없어졌다. 정리정돈을 못 하는 성향이라 온 집안이 내 업무의 잔해들로 가득하다. 가정을 지키며 돈도 번다는 유세를 떨 수 있으나 집안의 고요한 폭군의 입지에 오른다. 당사자인 나는 끝도 없이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해도 되지만, 습관이 되면 회의도 가기 싫어진다.

 

재택근무는 끊임없는 셀프착취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출퇴근길을 오가며 보게 되는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을 모르고도 랜선으로만 일을 하며 업무에만 몰입할 수도 있다. 시간을 아끼려 화상회의를 하고 업무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며 효율을 잔뜩 높일 수도 있다. 아파트 단지안의 빈집의 대낮은 산사만큼 고요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공포가 되는 시대에,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는 결단을 한 것은 사람을 부딪히고 싶어서다. 누군가 나의 공간에 편하게 찾아오고 그에게 커피를 내려주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는 시간, 모르는 사람들이 밥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창가에 서서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해졌다. 거슬리는 옆 사무실의 큰 소리나, 공동공간을 두고 일어나는 자잘한 신경전도 적당한 자극과 활기가 될 지도 모른다. 침체된 채 저녁도 새벽도 없는 자기노예화에서 벗어나, 매일 돌아갈 곳, 매일 그리운 곳을 두고 ‘집에 가자’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어쨌거나 모든 일은 사람이 만나야 이루어지니 말이다.

 

#재택근무 #업무와일상의분리 #셀프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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