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분야 FGI 기록지
진행 이상선 (희망세움터)
참석 김재근(노무사), 김상봉(안양군포의왕비정규직센터), 김한수(민주노총경기중부지부), 최은식(한국노총)
이상선: 지역에서 여러 민주시민교육을 많이 하고 있는데, 관련한 내용들을 길게 보고 논의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의 공모사업에 선정이 됐습니다. 여기서 나눠 주신 얘기들을 녹취하고 정리해서 12월 15일에 종합토론회를 열려고 합니다. 그때 참석해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사전에 드린 질문지는 다른 분야의 FGI 질문지와도 내용이 비슷합니다. 다만 오늘은 노동 전문가 분들을 특별히 모셨기 때문에 노동 분야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현재 각 단체나 기관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계신가요? 어떤 교육을 시행했고 어떤 성과를 거뒀다고 보시는지요. 현황도 곁들여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한수: 민주노총에서는 일반 시민 대상 강연을 정례적으로 하지 않고요, 아주 가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조합원 대상 교육을 할 때가 많아요. 최근에 한세대에서 조합이 만들어져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강좌를 진행하고 있어요. 무엇이 올바른 조합 활동인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다음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6월 말까지는 지역 내에서 역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시민 대상 캠페인이죠. 조그마한 수첩을 나눠 드려요. ‘노동자 권리수첩’이라고 해서 근로기준법, 임금 계산법, 부당노동행위 대처법을 담은 작은 소책자입니다.
최은식: 한국노총에서도 매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합니다. 산별 교육도 진행하고요. 시민 대상으로는 1년에 한두 번 대중 강좌를 엽니다.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는 것인데 사실상 인문강좌예요. 안양과 군포가 만든 협의회에 한국노총이 참여해서 기초고용질서 지키기 캠페인, 감정노동자 존중 캠페인도 분기별로 진행 중이고요. 법이나 조합 활동에 대한 교육은 꾸준히 이루어지는데 더 기본적인 인권, 민주주의 등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김상봉: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에서도 강의를 많이 하고요. 경기도 청소년 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도 센터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계획한다든지 교재를 개발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경기도교육청에서 발간한 노동인권 교과서 집필에도 저와 사무국장이 1년간 관여했습니다. 서울에서도 활동 중인데, 강서구 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일하면서 노동인권, 노동조합에 대한 강의를 합니다.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려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정치, 경제의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이 노동자성을 확보할 때 조직력이 강화된다고 봐요. 이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해 왔습니다.
성과는 제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네요. 개개인의 삶이 바뀌는 것이 성과일 텐데 제가 일일이 들여다볼 형편이 못 되니까요.
이상선: 평가 결과를 측정하는 지표가 없나요?
김상봉: 강의 뒤에 설문지 작성을 부탁해서 받아 보기는 하지만 질문 수가 많지 않아요. 강의 후에 참여하신 분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열망은 있어요. 그런데 어디에 가서 어떤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꾸준히 공부하고 삶을 바꿀 수 있는지, 누구와 이런 얘기를 해야 할지를 잘 몰라요. 그 점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상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의 경우에 수강생을 어떻게 모집하세요?
김상봉: 강서구에서는 한 번에 3~4시간씩 15강~20강을 진행합니다. 철학, 역사, 자본주의, 경제, 노동조합을 얘기해요. 노동만 들어가면 지자체에서도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 전반적으로 구성하니까 깊이 있는 교양 강좌로 봐 주는 것 같습니다. 지원하는 분들은 소속되어 있는 단체나 지역 기관의 홍보를 보고 오시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간다는 고민들은 많이 하시니까요.
이상선: 일반 시민 대상으로 그런 교육을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느끼실 것 같아서 여쭤봤어요. 강의 방법에 따라 느낌은 달라질 수 있겠죠. 청소년 대상 교육은 학교에 직접 가서 하시나요? 교장선생님이 거부하시는 일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김상봉: 3년 전부터 경기도에서 공식적으로 민주시민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 학교에 직접 가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간혹 불편해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대할 때도 있어요. 아이들한테 의식화교육을 하지 말라는 거죠. 인권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직장에 들어갔을 때 문제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직장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면서 반대하세요.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아요.
김재근: 저는 청소년 노동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공인노무사회에서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는 청소년 권익센터에서도 세 가지 정도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서울, 강원도, 경상도 등의 지역에서 ‘찾아가는 노동권익교육’을 실시하고 있고요. 30세까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권익구제 활동을 합니다. 올해는 서너 명 정도를 권익구제한 상태예요. 마지막으로는 매달 청소년들을 상대로 권익 관련 캠페인을 벌입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요.
일을 하다 보면 권익구제가 본인의 권리를 찾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나요. 단체에서 나에게 해 줘야 할 일이라고 요구만 하는 거죠. 노동교육과 시민교육이 병행되지 못해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봐요.
이상선: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건가요?
김상봉: 경기도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의무교육화되었고요.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단위로 신청을 합니다. 중학교의 신청이 더 많아요.
김재근: 특성화고교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의 인식 정도를 살펴 보면 주휴수당에 대한 인식 정도는 거의 90%예요. 매년 설정되는 최저임금에 대한 사항도 상당히 잘 알고 있어요.
이상선: 학생들 대상으로 수업하기 어렵죠?
김재근: 교과서가 잘 만들어져 있어요. 인권감수성, 최저임금에 대한 문제를 깊이 다뤘고 인간답게 살려면 어떤 인품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까지 나와요.
김상봉: 이런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장학사가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교과서 사용이 의무는 아니고 권장사항인데, 내용이 좋죠.
이상선: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상봉: 노동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요. 개개인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죠. 현실적으로는 개인의 삶이 망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각자가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추어야 해요. 노동자들이 인식 변화로 일상을 바꾸고 삶을 바꿔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밖에서는 구호를 외치지만 집에서는 권위적이라면 이율배반이잖아요. 하나하나 바뀌어야죠. 그러니 노동 분야에 있어서 민주시민교육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은식: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활동이 노동이잖아요. 그 현장이 아직 민주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예요. 많은 직장의 의사소통이 상명하복이죠. 권위와 경력을 등에 업고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민주주의가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 거예요.
노동조합만 봐도 그래요.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만든 조직인데, 정작 조합이 민주적으로 돌아가지 않거든요. 왜 만들었는지, 왜 활동하는지 기본을 자꾸 놓치면서 움직여요. 다시 기초부터 단단히 자리잡도록 해야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까지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사실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왔는데요.
김재근: 강의에 나설 때마다 처음 꺼내는 얘기가 노동조합에 속한 사람들이 2천만 명이라는 얘기예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노동법에 얽혀 있는 셈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몰라요. 두 번째로는 질문을 해요. 18~19세 고등학생들에게 앞으로 몇 년이나 일할 수 있을 것 같느냐고 물어 보죠. 40년~50년이라고들 대답해요. 하루에 8시간 일한다지만 실질 노동시간은 10시간쯤 되죠. 어마어마한 시간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노동에 대한 교육을 잘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상담을 받아 보면 임금, 근로시간에 대한 고민이 대다수였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 문제의 비중이 크지만, 이제는 다른 얘기도 많이 나와요. 휴게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다, 사장이 싫어 회사를 못 다니겠다. 이런 부분까지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곧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노동이라기보다는 거의 인생의 문제죠.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면서 보내니까요.
김한수: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죠. 현재 노동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노동을 하게 될 사람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해결해야 할 일이에요.
이상선: 이번에는 시민들이 원하는 노동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시민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한수: 교육 대상을 설정할 때 일반 시민과 조합원을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모두에게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조직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강의에 참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생활에 치이니 강좌를 열어도 참석율이 높지 않죠. 고민이 많아요. 가능한 출퇴근 시간 내에 알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에요. 제도화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은 그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이상선: 말씀하신 출퇴근 시에 알리는 방법이란 앞서 말씀하신 노동자 권리수첩을 배부하는 것이죠?
김한수: 예.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려면 노동조합 가입여부에 상관없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도화가 불가능합니다.
이상선: 수업 형태는 대부분 강의식이죠? 토론도 이루어지나요?
최은식: 토론형 수업도 가끔 하지만 흔한 형태는 아니에요.
김상봉: 저는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른다고 봐요. 선도하는 사람들이 샘플이라도 만들어서 제시를 해 줄 필요가 있어요. 강의식 방법은 구태의연하다, 소그룹 토론이나 놀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데 형식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의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가 중요하죠. 목표를 상실한 강의에 놀이 형식을 도입하면 그저 노는 시간이 되어 버릴 위험이 있어요. 이런 자리를 통해 민주시민교육에 있어 필요한 부분을 도출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은식: 수강생으로서 수많은 강연을 들어 본 결과, 강연은 더 이상 좋은 수업 방법이 못 되는 것 같아요. 발화자의 공통적인 태도가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그런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있더라고요. 저는 강연 자체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강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인에는 ‘포데모스’라는 정당이 있어요. 온라인 기반이고 게시판을 통해 운영돼요. 사람들이 논의에 많이 참여하는 이슈가 상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에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정치 플랫폼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잖아요. 세상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문제에 대해 서로 얘기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전 세계에서 인터넷 망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데도 웹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너무 부족해요.
이상선: 저희가 이번 사업 제안서에 그 부분을 넣었어요. 웹을 통해 시민들에게 논의 내용을 공유해 보자는 거죠. 시민들을 온라인 채널로 유입시키자는 거예요.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도 이 문제를 고민하더라고요. 저희한테 대단히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했어요. 쉽지는 않겠죠. 접속자들에게는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정보를 주고, 각 단위의 소식을 취합해서 알리기도 하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최은식: 자료를 올리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어요. 그건 일방적인 통보나 다름없어요.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김재근: 청소년 직장체험캠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부스가 100개쯤 있었어요. 노동 분야가 가장 썰렁할 줄 알았더니 노동 부스에만 300명이 넘게 다녀갔다는 거예요. 프로그램이 다채롭더라고요. 펀치 기계가 있어서 정답을 맞히면 문화상품권을 주는 곳도 있었어요. 웹 플랫폼에 그런 아이디어를 넣을 수도 있을 거예요.
오프라인 교육에서는 강의 형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특히 아예 지식이 부족한 분야에서는요. 강의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강의 시간이 세 시간이라면 한 시간은 강사가 내용을 전달하고 나머지 두 시간은 역할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례를 만들어서 극화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서로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한수: 시내버스 정류장에 버스 도착정보안내 스크린이 있잖아요. 그 스크린에 몇 자씩 띄워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몇 개 시에 실제로 해 보기도 했거든요. 잘 활용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개그맨, 노무사, 변호사, 현장 간부가 출연하는 3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계속 올렸어요. 질문에 답변도 하고, 사례 설명도 했죠. 현장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을 답았어요. 버스 정류장에서 길게는 몇십 분도 기다리잖아요.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강의 들으러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짧게나마 도움 되는 이야기들을 일상적으로 전달해 주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아요.
김재근: 저는 경기도 내 대학교 커리큘럼에도 노동인권 교육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전체에는 무리라면 경영학과나 사회학과 쪽에라도요. 그런데 기업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요. 특강 정도로는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은식: 외국 사례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협상’이 들어간다고 해요. 한쪽은 회사 측, 한쪽은 노조 측의 입장이 되어 몇 시간 동안 모의 토론을 해 보는 거죠. 정규 교과과정에 이 내용이 들어가 있어요. 그 정도 수준까지 가야 해요. 실제로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첨예한 입장 차이를 직접 겪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동영상을 보고, 팟캐스트를 듣고, 스마트폰을 계속 보고 있어요. 그런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콘텐츠를 가공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출퇴근 시간에 잠깐 동영상을 보고 팟캐스트를 듣는 정도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김상봉: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었잖습니까. 노동상담소장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죠. 당시의 열풍이 재미있었어요. 비정규 노동자가 종일 힘들게 일하고는 집에 와서 드라마를 보는 거예요. 저렇게 해야 한다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비정규 노동자로서 출근하는 거죠. 노동 분야에서도 원작 웹툰을 자료로 많이 활용하던데, 저는 그런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잠깐의 대리만족만 있을 뿐이고 현실은 똑같잖아요.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1970년대보다도 못해요. 그때엔 강력한 군사독재에 맞서서 몸으로 싸웠지만 이제는 세련된 싸움을 해야 한다고 하죠. 그럴 수가 없어요. 적이 세련된 상태가 아니니까요.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보는 시각부터가 문제예요. 프랑스 모델을 도입하기에는 일러요. 정규 수업시간에 왜 인권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까.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노조 탄압부터 막았으면 좋겠어요. 지자체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지원사업을 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거든요.
물에 빠진 사람들은 일단 건져야 해요. 무식해 보이더라도 확실한 교육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단 대상화하지 않고, 같이 고민하는 동지로서 활동해야겠죠. 결론은 일단 공부부터 하자는 것입니다.
김한수: 강의식 교육을 실제로 해 보면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거예요.
김재근: 한 교수님과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노동조합의 수를 늘려야 한다. 전체 노동자의 20%가 조합에 가입되는 수준까지 가야 노사정 대타협 같은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거예요. 대선 공약으로 내 주면 좋겠지만 그런 문구를 걸면 위험하겠죠.
이상선: 강의식 수업에 대한 피로감이 있어요. 시민사회에서 여는 강의 계획표를 보면 엄청 훌륭한 강사분들을 모셔 오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까 매번 전화를 돌려요. 나온 사람들은 억지로 두세 시간 앉아 있는 거죠. 저희만 해도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상봉: 우리가 너무 결말을 빨리 보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데도요. 길게 보면 우리는 계주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거죠. 골인을 하려니 마음이 급해져서 10년 전에 했던 고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 구간에서 어떤 징검다리를 놓을지를 고민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김재근: 주민자치센터 같은 곳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접근이 쉬우니까요.
최은식: 주민자치센터 혁신이 대통령 공약이었어요. 예산도 260억 신청했는데 자한당이 다 깎아 버려서 없어졌죠. 저는 민방위에서 노동 강의를 하면 좋겠어요. 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넣었으면 해요. 설령 듣는 사람들이 졸더라도요.
주민자치위원을 한 번 해 봤는데, 이런 단체들에 민주시민교육이 정말 필요해요. 주민자치위원회는 사실상 지역 유지들의 모임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20년 이상 위원으로 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도 자연히 일방적이에요. 이런 교육을 싫어하실 텐데,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합니다.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을 조금 바꿨으면 좋겠어요. 거주자, 활동가, 자영업자를 1/3씩 넣는 거죠. 이미 계시는 분들더러 나가 주십사 할 수는 없으니, 활동가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어요.
김재근: 대학생들에게 비정규직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거든요. 경영학과 학생의 요청이었어요. 숙제를 해야 한다면서요.
최은식: 저희 사무실에도 경영학과 학생이 찾아와서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김재근: 그럴 바에야 아예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들어가면 좋을 텐데요.
이상선: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또, 어떤 식으로 요구해야 할까요? 지자체에 평생교육센터가 있으니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실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경기도에서 예산을 많이 투자하고 있거든요. 민주시민조례가 만들어진 곳에서는 그에 기초해서 요청할 수도 있겠죠. 사업장 대표에게 노동교육을 의무화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최은식: 성평등교육은 의무예요. 1년에 한 번은 꼭 받아야 해요. 법으로 규정하면 간단할 텐데 강력하게 반대하겠죠.
김상봉: 광명시는 시청과 시 산하기관 전 임직원이 인권교육을 의무로 받아요. 그 안에 노동 분야도 포함되어 있어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실효성이 있죠.
최은식: 맞아요. 정책을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김재근: 교육이 활성화되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강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어요. 법적 의무교육이 몇 가지 있거든요. 개인정보보호, 장애인 인식, 안전. 그에 노동교육을 더하는 거죠. 추가적으로 하나 정도는 더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교육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기업에는 시에서 가점을 줄 수도 있죠.
최은식: 주민센터에서부터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가장 작은 단위의 공공기관이고, 일종의 공공재잖아요. 주민센터마다 교육 공간이 다 있어요. 라인댄스, 에어로빅, 노래교실 같은 강좌가 운영되고 있죠. 예전부터 이곳을 이용해 온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터주대감들의 사유지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체육관도 배드민턴 협회가 점유하다시피 쓰고 있잖아요. 이런 공간부터 시민들 몫으로 돌리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 안에 민주시민교육을 넣을 수 있다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번져 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선: 민간조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요. 네트워크가 없지는 않지만 여러 분야를 포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활성화를 위한 제언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재근: 느슨한 연대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비슷한 활동들을 보면 같이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외부에서 강사를 힘들여 모시는 것도 좋지만 내부에서 육성한 강사를 통해 역량을 키워 나가는 활동도 필요하잖아요. 지원비를 가지고 경쟁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데,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이상선: 일단 이번 FGI에서 나온 제안을 정리해 각 단체에 공유할 생각이에요. 내년도 사업에 참고해 주십사 하고요. 강제를 할 수는 없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수준 높은 정책토론회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고, 플랫폼을 구축했으면 한다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각 단위에서 교육 활동을 원활히 하실 수 있도록 지원하되 단위들을 모두 모아 주기를 바라는 의견들이 있더라고요.
최은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앞으로 단위들을 묶는 역할을 하실 계획인가요?
이상선: 쉽지 않을 텐데, 일단은 일련의 프로그램이나 강의 계획안을 서로 교환하면서 조정하는 회의 정도를 주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김상봉: 민주시민교육의 어떤 분야의 강사분이든 결국 다른 분야의 공부도 하셔야 해요. 서로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정말 열심히 스터디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상선: 교육 프로그램을 조율하는 일은 시민사회 전체의 연대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이번 계기로 한 번 얘기를 묶어 보고 정리해 보는 일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김재근: 최근에 서울에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독서토론회를 꾸준히 열고 있더라고요. 워낙 작은 조직이라 큰 지원은 받지 못하고, 30만 원을 받았어요. 간식비인 거죠. 그 지원금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거예요. 예술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가 선진 사회일 텐데, 보고 있자니 안타까웠어요. 안양에도 혹시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발굴해서 시민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도 해 주고요.
최은식: 저는 요즘 기초단위 지자체가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려면 그분들과 마주보고 얘기할 일이 적지 않은데, 그분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에게는 정말 많은 공공재가 있지만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해요. 공간도 있고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운영하자면 공간과 사람이 모두 부족한 거예요. 지자체의 담당자들이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한수: 노동 문제를 열어 놓고 처음 토론해 보네요. 새로운 내용도 있고, 고무적인 얘기들도 들었습니다. 공론화 자체가 큰 성과라고 보고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더 바란다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작은 성과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서 같이 진행하고 그 성과를 공유했으면 해요.
김상봉: 논의의 시발점이 되는 좋은 자리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한 번씩이라도 더 만나서 지역사회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힘차게 사업 진행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