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2017, 5)

거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였다.


멀리서 남해의 태양이 노오랗게 떠오르고 있었다.


동해의 일출이 붉은 색을 많이 띈 주황이라면 이 곳의 태양은 노란빛이 절반이상을 휘감고 있었다.


거제엔 조선소가 있다.


대형 선박을 만드는 대우조선해양부터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크고 작은 중공업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거대한 섬의 삶을 책임진다.


입구부터 휘발유 값이 안양보다 싼 게 눈에 띄였다. 거제도는 절대 물가가 싸지도 않고 음식이 맛있지도 않다고 했다. 내내 격한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양질의 음식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음식이 맛없는 도시는 뜨내기들이 많은 도시일수록 더하다. 토박이가 오래 사는 곳에는 맛없는 식당이 살아남기 힘들다. 역전 앞 식당이 찐 밥으로 스텐공기를 채우고 조미료가 가득한 텁텁한 찌개를 내어놓고도 아무 꺼리낌 없는 것과 다름없다.


식당 밥이라는 건 다시 올 사람에게만 친절하다. 관계가 형성되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다시 볼 일 없는 이에게 정성스러운 밥을 내어주는 일을 흔치 않는,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일인 것이다.


음식에 대해 타박한 적 없는 이들도 거제에 와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이렇게도 음식이 맛없을 수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들은 적 있다. 지역의 음식맛이라는 건 개개인의 편차겠지만 하루에 10시간 이상 쇳덩어리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 “맛없다”고 하는 것을 믿지 않기 힘들다.


노란 해가 다 떠오르고 유달리 맑을 거라는 하루가 시작되자 작업복을 입는 사내들이 한 둘씩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요일이지만 오늘은 일하는 날이라 한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주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직원들이다. ㅇㅇ 인력이라고 써 있는 버스들이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을 태워가기도 했으며 안전화를 신은 남자가 다가와 서는 승용차에 올라타기도 했다. 아웃소싱업체라는 인력공급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실어나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쉬는 날도 딱히 정해진 바가 없으며 잔업과 야근을 계속 이어간다. 조선소는 24시간 불빛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 한다. 이 섬에서는 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성인 남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고 했다. 모두가 일하는 도시, 모두가 노동으로 하루를 일궈나가는 도시다.


육지의 끄트머리에 배의 밑바닥 판을 깔고 그 위에 하나씩 조각을 이어붙이는 작업, 거대한 배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갑판이 만들어지기 전, 배의 바닥을 건조하는 작업엔 불빛도 없는 막장과 같다고 한다. 헤드라이트에 의존해 머리통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공간에 선과 관을 끼워넣는 작업들을 이 곳에 모인 사내들이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들이, 그 배들의 출항을 돕는 거대한 기계들이 바다를 점령하고 있다. 낮은 갯벌처럼 보이는 잔잔한 바다위에 드문드문 제 영역을 지키고 섰는 기계들은 마치 골리앗의 무기같다. 작은 다윗들은 골리앗의 무기에 올라타 작은 망치를 들고 무엇을 이겨내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지나간 시간의 회한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노동의 섬. 골목마다 들어찬 깔끔한 건물과 마당이 넓은 아름다운 개인주택들이 이만큼 잘 살고 있지 않냐고 속삭이는 듯 하다.


시내에는 둘 셋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그만큼 먹고 살만 하고 키울 만 하다는 얘기인가, 이 도시는 대기업 조선소의 추락으로 예전같지 않다는데 그래도 여전히 활기가 있었다. 나머지가 없는 노동의 도시 같달까.


거제에서 2차선 다리를 건너 칠천도를 들어선다. 연초면에서부터 대나무 군락이 꽤 많아 산 빛깔이 다채롭다. 온통 초록인 숲속에 연두빛 대나무가 시원하다. 산 위에 색종이 한 장씩을 덮은듯이 손바닥 하나로 꾹, 또 하나의 손바닥으로 꾹 누른듯 환하다. 대나무가 있으면 잡귀가 없다던가. 대나무는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른다하며 설날 새벽엔 문 밖에서 대나무를 태워 잡귀를 쫓고 복을 불렀다는 유래를 읽는다. 알게 뭐람. 처음 듣는 얘기지만, 거친 바다를 앞세워 살아가는 터전에 잡귀를 쫓는 대나무가 많은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만큼의 안정을 주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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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도는 조선조에 검은 소와 붉은 말을 키우는 곳이었는데 그 검은 소가 옻색깔과 같고 일곱개의 하천이 있다고 하여 漆川이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지명을 약자로 축약해버리며 七川으로 변형되었다고 추정한다. 근래 들어 가장 맑은 하늘에 북풍이 적당히 불어 그늘은 쌀쌀하고 양달은 뜨거웠다.


칠천도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10분 못 미쳐 물안마을에 닿는다. 대나무 군락이 산을 덮고 있는 작은 산 아래 30여가구의 지붕이 알록달록하다. 파란 하늘과 더 파란 바다를 안고 물안항이라는 아주 작은 포구에 작은 고깃배 열 척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가 아침 7시부터 드문드문 출항을 시작했다.


방파제를 걷는 아이에게 배에 오른 어부가 닻줄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닻줄을 풀어 어부의 배로 던졌다. 네가 뭍에 있고 내가 물에 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협조. 사람들은 대부분 저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묶인 줄을 풀어주고, 묶어야 할 배를 잡아주고, 물을 건널 때 손을 잡아주고 배에서 내릴 때 배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그 사람과 딱히 어떤 인연이 없더라도, 그저 옆에, 한 번쯤 스쳐간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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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마을의 물안항 방파제 앞산에는 시들어 떨어진 아카시아가 지천이다. 꽥꽥거리는 새소리가 요란해 올려다보니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무지한 나는 모를 날 것들이 나무 위에 잔뜩 올라붙어 있다. 아침 8시를 넘기며 새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새들도 어디로 출근을 하는건가. 해가 뜬 후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섭리인가.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줄어들자 내가 당황스럽다.


해변에 가족단위, 모임 단위 사람들이 방파제까지 다가와 하늘아래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양이겠다며 신이 나서 떠들고 갔다. 등대주변에서 돗자리를 깔고 자다 깨어 책을 읽다가 바다를 보다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일행을 한 번 내려다보고 등대 아래 그늘 아래 앉았다가 햇빛에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저녁나절이 되자 동네가 소란스러워진다. 민박을 통채로 빌려 오는 객들이다. 20여명이 넘는 중년의 남녀가 노래방 기계를 켜놓고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이리 저리 건배사가 마을에 넘친다. 이 동네는 작은 방은 별로 없고 민박도 독채로 쓰거나 단체 여행객들이 많다고 한다. 두 군데 민박에서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붉은 지붕을 얹은 펜션의 방 하나를 잡았다. 적지 않은 평수에 일행과 함께 들 수 있게 생겼다. 칠천도 밖에 있는 마트에서 삼겹살과 반찬거리, 햇반을 사다가 소주에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상을 치우고 남자들은 낚시를 하러 다시 방파제로 나갔다. 먼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는데 펜션 주인 여자가 올라와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고 인사를 한다.


아들이 몇 살이냐 물어 5학년이라 하니 주인여자도 5학년 아들이 있다며 내 아이 칭찬을 한다.
“아이고 그렇지도 않아요.” 라는 건 애엄마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의 시작이다. 펜션 주인의 남편은 조선소에 다닌다. 딸 둘에 막내아들이 하나 있는데 여자가 펜션을 지키느라 아이들은 주로 친정언니네 맡긴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좋은데 아이들이 여간해서 따라다니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어찌나 자기 주장이 강한지 답답할 뿐이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라 여기서 학교를 보내기가 어려워 아이들은 모두 육지에 있다. 숙박업이라는 게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업종이라 쉽지 않다. 배를 한 척 구했으면 좋겠는데 차로 치면 폐차직전에 있는 배 한 척도 기천만원이 넘어가 엄두를 못 낸다. 일행이 방파제에 잡히지도 않는 고기를 잡겠다고 내려가 있다니 믹스커피라도 타 가서 대접해야겠다고 웃는다. 이모도 내려오세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동네에 몰려든 관광객들이 방파제에서 떠드는 모습을 보며 뭉개고 앉았다가 슬슬 바닷가로 나갔다. 오늘은 달 때문에 만조라 물이 잔뜩 들어찼다. 밤이 되면서 물이 엄청 높아졌다. 인근 마산지역은 만조로 인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계속 재난 문자가 왔다. 잠깐 떴다 사라진 커다란 초승달은 태양보다 붉은 빛이었다. 펜션 주인 여자가 나눠준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고맙게 마시며 물이 들어차서 걸어놓은 낚싯대가 떠내려 갈 뻔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여자는 빈 쟁반을 들고 그녀를 따라나온 남편이 여자의 어깨에 팔을 걸고 펜션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봤다.
바닷가에 앉아 물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본다. 철썩대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바다가 있고 산이 있어 좋다는 일행의 옆에 앉아 바흐의 1043번을 틀었다.


새벽까지 시끄럽던 민박들은 아침에도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새벽 4시부터 수탉이 울어대고 산에서 새들이 계속 시끄럽게 날았다. 해가 뜰 때쯤 숭어와 뽈낙을 잡았다고 전갈이 왔다. 낚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생각이 없었고 살아있는 생명을 잡아내는 일에 대새 적잖은 불안감이 있는데, 저녁에도 삼겹살을 먹은 주제에 생명 운운 할 일은 아닌 듯 하다. 작은 치어들은 바늘을 빼서 놓아주고, 바늘을 삼겨버린 도다리는 바늘을 잘 제거해 바다로 되돌려 보내기도 한다.
낚시를 하는 자들의 뒷모습은 돌아오지 않을 인연을 기다리는 그림자같다. 언제가 되어도 절대 내 것이 되지 않을 바다에서 한줌 희망을 낚는 이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누구나 엇비슷하다.


해가 뜨고 하루가 또 시작된다.
칠천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마을 어귀에 있던 잘 생긴 말을 타고 누군가 해안도로를 달린다. 일군의 자전거 부대가 도로를 내려오고 까마귀와 물새들이 이리저리 하늘을 나는 사이, 동네 터줏대감같은 고양이들이 밭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사투리가 진한 마을 이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마을에 내려앉고 숙소 뒤편 집은 아침부터 밭고랑을 경운기로 뒤집었다. 새벽에 숭어와 뽈낙을 잡은 일행은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방파제로 내려갔다. 나는 드물게 오가는 차를 바라보며 도시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오늘 이 곳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이렇게 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던 너의 그을린 음성을 떠올린다.


숙소에 앉아 방파제를 바라본다. 내가 미처 돌아보지 않은 사이 누군가는 또 출항을 했다. 항구에 매어져 있던 배가 몇 척 뿐이다. 아이와 함께 물안마을을 살짝 돌아가는 섬의 해안도로를 달린다. 엎개, 라는 이름의 작은 해수욕장엔 철 이른 피서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여기도, 아이들이 많다. 미취학 연령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을 몇 년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신림동 난곡을 재개발 한 아파트에 살 적에 이렇게 아이들이 많았다. 그곳은 학교에 가기 전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젊은 부부들이 밀집해 살기 적절한 조건이었는데 젊은 부부와 한 둘의 아이들이 가족을 이뤘다면 이 곳에 잔뜩 보따리를 싸 짊어 지고 오는 부부들은 둘을 걸리고 하나는 업거나 안고 있는 일이 많았다. 어젯밤 펜션 주인이 이 동네는 기본이 애 셋, 이라는 얘기를 해줬던 게 생각났고 더불어, 신림동에서 들었던 불쾌했던 어느 노인의 언사가 생각났다. “없는 동네에 애새끼만 많다.” 그 노인은 저출생 문제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금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없는 동네엔, 애들도 없다.


조선소의 삶을 모르는 내가 거제는 살만한 동네라 아이들이 많다고 말할 순 없다. 그저 이것은 어떠한 현상일 뿐. 밥벌이를 하는 자의 수입이 보장되어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도시라면 어디든지 아이들이 늘어날테고, 서울 인근 수도권에서는 한 아이를 두 명의 성인이 키우는 일도 버거운 것이 틀림없을 뿐. 아무튼 엎개 해수욕장엔 아주 작은 아이들이 춥지도 않은 지 물가에 들어가 고무튜브를 타거나 모래밭에서 성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다가 자기네 자리로 돌아가 어른들만의 이야기를 했다. 넓은 그늘막을 치고 간이의자를 펴고 앉은 몇 명의 무리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여유있게 바라봤다. 이 곳의 삶을 아는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딱히 별다르게 할 게 없고 집은 갑갑하고 아이들이 있으니 야외로 놀러나오는 것 뿐이라고 했다. 주말에 딱히 할 게 뭐가 있겠나. 안 그래도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한국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딱히 할 일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게 마땅하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커피를 마시지 않아 어금니 하나가 빠진 기분이다. 엎개해수욕장까지 오는 길에 봤던 “도로시” 까페가 전방에 있다는 입간판을 떠올리고 차에 올라 한참을 달렸다. 3km정도 되었을까. 해안도로 언덕 두어개를 넘어가니 작은 포구와 인가가 보인다. 십여명의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도로시라는 분홍색 글씨의 돌출간판이 보였다.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세련된 인상을 가진 젊은 여자가 방금 들어온 일대의 무리에게 내어주기 위해 팥빙수 위에 콩가루를 올리고 있었다. 아메리카노가 되느냐고 물으니 방금 넉 잔 주문이 들어와 잠시만 기다려달라 부탁한다.
커피집 야외 테이블에 자리잡은 무리에도 아이들이 너댓 정도, 그 부모들이 두 커플인지 세 커플인지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아무튼 커피집 사장은 분주하게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구석 탁자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몇 권의 문학 계간지를 본다. 까페 주인은 문학을 가까이 두는 사람이겠다. 포스에 달라붙은 고양이 인형을 보고 사진을 찍고선 아메리카노 몇 잔을 받아 종이 캐리어에 담았다. 섬에서 유일한 까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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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같아선 어디가 되었든 그냥 좀 주저앉아 멍 때리고 싶지만 나는 여기 와서도 할 일이 많다. 커피를 낚시하는 일행에게 가져다 주었고 아이가 혼자 놀고 있어 다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 아이를 쳐다보며 책을 펼쳤지만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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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은 자는 거다. 뜨거운 햇살이 절반쯤만 비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눕는 일. 아이를 바라보다 김금희의 소설을 읽다가 바람이 불어와 벤치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펜션의 짐을 정리해야 한다. 이방인의 그 해변도 이러했을까. 햇빛도 바람도 적당했을텐데, 아마 그 해변엔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는 아이들도, 아이를 부르는 어미의 목소리도.


그늘막에 펼쳐놓은 텐트를 접고 섬 여기저기에 펼쳐놓은 우리의 흔적들을 치운다. 결국 쓰레기는 남기고 떠난다. 아껴둔 비닐봉투를 꺼내 1박 2일간 머무르며 외주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한다. 봉투와 봉투, 플라스틱과 비닐로 이루어진 온갖 것들을 쓰레기하적장에 버린다. 쓰레기 하적장 옆엔 작은 개집이 있다. 밤과 아침나절엔 사라졌다가 낮에는 혼자 하루종일 줄에 매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작은 개 한마리. 아침엔 집에 없던 아이. 어딜 갔다왔냐고 물을 수도 없다.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무겁다. 주인이 누군지, 왜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지, 오가는 관광객의 아이들이 너에게 몹쓸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아무 것도 묻고 싶지 않다.


물새가 날아드는 해변과 아득한 마을을 바다에 두고 우리는 다시 도시로 나간다.
조선소의 정규직들이 쉬는 날, 거제에선 뭐 사먹는 거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골리앗과 골리앗과 또 다른 골리앗들을 뒤로 한 채, 내가 사는 도시보다 조금 싼 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통영은 세상에 없다는 듯이 모른 척 하고 지나간다.
새로 닦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꾸역꾸역 도시로 도시로, 또 다시 일터로 힘껏 애써 벌어 먹고 살다가 또 다시 찾아와 죽어도 내 것이 되지 않을 바다 앞에 앉아 웃고 울어보겠노라고. 지리산에 걸린 해가 한참동안 나를 간지럽혔다.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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