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으라 – 경기중부 아파트노동자협회

작년에 경기도 예산을 받아 조직해 만든 경기중부아파트노동자협회. 계약종료로 인한 일방해고. 또는 갑질문제로 쉴 새 없이 민원이 들어온다. 경기도노동권익센터가 있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해고문제는 한 번이라도 얼굴 본 사람, 또는 내 동료가 전해준 명함으로 전화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떠안은 안양군포의왕과천 비정규직센터(이하 센터) 는, 전체 회원들이 내는 회비 월 100만원가량으로 간신히 운영하고, 상근자 1명을 제외한 몇 명의 실무진이 움직이는데, 이 실무진은, 자발적 활동가라, 임금이 없다. 상근자 1명도, 어디 내놓을 만한 급여도 아닌데다가, 연일 외부출장에 내부 사무에 미안할 지경이다. 나는 급여 없는 실무진 중의 1명이지만, 업무 분담량이 제일 적다. 나는 대체로 서류 뒤에 숨어있고, 적어도 민원전화를 받지 않는다.

두어 달 전, 한 아파트단지에서 20여명의 경비원이 계약해지로 실질적 집단해고에 놓여 시위를 조직했는데, 그때 그만둔 사람들이 경비원으로 재취업이 안되고 있다. 용역업체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경기중부 아파트노동자협회라는 게 있고, 그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고. 영유아보육기관이나, 병원 간호조무사나, 뭐 다 그렇게들 해오지 않았던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재취업을 막고 업계를 완전히 떠나게 만드는 일.

그 아파트의 경비노동자들 중 일부는 불성실했고, 지나치게 장기간 근무했고, 주민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고 한다. 아파트주민들중 일부는 경비노동자를 응원했고, 일부는 외면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직업이 있고, 모든 사람이 그 직업에 충실한 역할을 다하면 좋겠지만, 타고난 기질로 인해, 또는 살아온 역사로 인해, 직업적 성취를 이루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하는 사람만 그 직업에 종사하도록 남겨두는 것이 온당한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는 지능이 높지 않고, 어떤 이는 성실하게 사는 것이 매일 힘들고, 어떤 이는 제 잘난 체를 억누르는 게 도통 어렵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온순하고 친절하고 업무력도 높고 참고 견디며 더 많은 생명을 사랑할 자격을 갖춘 사람만을 직업군에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한가.

올해는 아파트의 청소미화노동자 조직사업을 센터에서 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곳에서는 경비노동자가 미화원을 압박하는, 말하자면 갑을병정 중에, 을이 병을 누르고, 병이 정을 누르는, 갑질의 확장을 듣기도 한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더 약한 자의 꼬리를 발로 밟고 몸통을 짓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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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역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기업과 이윤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결탁해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키기 위해 끽 소리 하지 못하고, 서사가 없는 자들을 여러 계층의 인간으로 분류해서 무시해도 되는 인간, 무시하면 안되는 인간으로 구분짓고, 쓰고 버리고 취하고 밀어내는 일을 서로 반복해서 저지르는 것이다. 이것은 사적 영역에 속한지라, 공적 지원이 불가능하며, 정치적 개입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이 문제가 공적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세상의 한끗도 이해하지 못하는 공공의 종사자들이, 아는 체 좀 한다고 덤볐다가 일을 더 그르치기 십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입할 능력이 없어서 개입하지 않는다면.

정치는, 정부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탐욕을 먹고 자라는 자본이 수없이 많은 살생을 저지르고, 인간멸시를 보편화 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면. 정치는, 사멸하는 것이 낫다. 그저 정글로 가는 편이 오히려, 정부가 말하는 예산을 줄이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며, 공공의 영역만큼 공공에서 말하는 “예산 먹는 하마”인 경우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약자가 모두 옳은가. 모두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는가. 약자도 누군가에게 강자가 된다. 바로 위에 언급한 경비원이 미화원에게 갑질하는 경우는 먹이사슬처럼 연속되기 때문이다. 약자기 때문에 보호해야 하고, 강자이기 때문에 양보하라고 할 수 없다. 누구도, 절대 강자가 아니고 누구도 절대 약자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 예의를 지켜야 그나마 계속해서 기울어지는 세상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텐데, 그게 잘 안된다.

나는.

내 주변이 사람들이 잘 되고 행복해져야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계속해서 불행과 불운을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고통스럽다. 무엇을 해도,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는 만큼, 세상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역행한다는 것이, 나를 계속 괴롭힌다. 차라리 나혼자 잘 사는 것으로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

청소년 라이더의 억울한 사연을 읽고, 일자리를 잃은 자들의 한탄을 듣고, 아침 출근길에 제 몸의 다섯 배는 되는 폐지를 싣고 가는 노인을 보고, 고소고발 당한 택배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배기가스 가득한 지하주차장 구석에서 시멘트 가루와 밥을 비벼 먹는 미화노동자들이 이야기를 외면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내 삶은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 그랬을까. 정말 그랬을까.

사진은

지난 3월부터 현장 실태조사중인

안양 군포 의왕 과천 아파트 미화원들의 휴게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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