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쓰는 생애사 – 네 번째 기록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동화로 쓰는 생애사> 수업 기록입니다. 학우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6월 5일의 기록

 

날씨가 화창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할테지만 일단 햇빛이 비치면 기분은 괜찮다. 그저 모른 척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 미세먼지 수치 같은 것은 그냥 모르는 척 하는거다. 지난 번 지각 때문에 사뭇 긴장했다. 바로 옆 도서관에 주차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수업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오전의 복지관은 늘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로 바쁘다. 15분 일찍 들어갔는데 벌써 다들 와서 앉아 있다. 제 시간에 맞춰오는 건 혜은씨와 기현씨인데 정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늦게 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들 미리 미리 와서 일찍들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지난 번에 미술선생님과 협의를 했었다. 일단 제일 쉬운 게 음식일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나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봐요. 라는 말은 구체적이지 않아 이렇게 글쓰기 주제를 던지면 누구나 곤란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하고, 그걸 먹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가장 맛있게 먹었을 때는 언제인지, 누구랑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특별히 그걸 먹을 때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글을 풀어나가는 순서를 하나씩 짚어가야 한다.

이건 발달장애인이라서의 예가 아니다. 전문 글쓰기꾼이 아닌 사람들의 글쓰기 교육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그 중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인터뷰와 구술을 진행하다 보면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 질문들은 이야기의 구체성을 띄게 하고 그것들이 모여야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꾸러미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내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여태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글쓰기 교육의 큰 차이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장애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경우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글을 쓸 줄 모르는 학우가 둘 있다. 채영씨는 발화에 문제가 없고 이야기도 잘 하지만 글씨를 못 써서 자원봉사선생님이 붙어서 말을 받아적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러저러한 질문을 섞어주면 자원봉사선생님이 그걸 활용해 몇 가지를 더 추가해서 물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재민씨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어. 어. 응. 응. 정도, 어와 응의 중간발음으로 긍정을 표시하고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부정을 표시한다. 재민씨의 글쓰기는 자원봉사샘이 거의 도맡아 하는 것인데 손가락으로 예시를 계속 제시하며 단어를 하나씩 골라낸다.

나는 이 자원봉사샘의 기법에 탄복했다. 재민씨 제일 좋아하는 게 어떤 음식이예요? 라고 물을 때 검지로 고기, 중지를 꼽으며 야채, 라고 하면 재민씨가 그 중의 손가락을 짚어낸다. 가장 큰 카테고리에서 점점 카테고리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수차례의 단계를 거쳐 문장 하나를 완성한다. 자원봉사샘들은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인데, 친절하고 상냥할 뿐 아니라 전공을 잘 살려 학우들과 친밀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이날은 은혜씨가 약간 불안불안했다. 표정이 긴장되어 있었고 입술에 힘을 주고 꾹 다물기를 반복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짜증내니까요.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해서 엄마를 화나게 하니까요. 라는 문장을 여러 번 얘기했는데, 아마 주말을 지내며 가족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학우들의 글을 살피며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누가 만들어줬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등 구체적 사건을 쓰도록 했다. 기현 씨는 늘 결정을 선뜻 내리지 못하고 수행과제에 대해 다시 묻는다. 음식에 대해서 써보자고 하니 기현씨가 나에게 자기는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럼 일단 고기를 좋아합니다. 라고 쓰면 되겠네요? 라고 말하면 기현 씨는 내 입에서 나온 문장을 그대로 받아쓴다. 그런 다음에 다 썼다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고기를 좋아하나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럼 소고기. 소고기 중에 어떤 게 좋나요? 양념한 거? 불고기? 아니면 구운 것? 갈비? 등 여러 가지 선택지를 주면 그 중에. 굽는거요. 라고 대답한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서 문장을 하나씩 완성해 말해주면 거의 그대로 받아적는 편인데 항상 한 문장, 한 단어를 쓸 때마다 바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자꾸 확인을 하려 드는 것인데 스스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더 있다면, 기현 씨가 남에게 묻지 않고 알아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 라는 질문이 기현 씨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모르고 있다. 기현 씨는 그저 그 속도가 조금 더 늦을 뿐. 발달장애인은 “조금 느린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현 씨의 글쓰기가 바로 그런 “느림”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매번 문장마다 확인하는 것도 조금 느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체면을 차리느라 대놓고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엉뚱한 미사여구를 꾸며대다가 쓰지 않는 게 나은 글을 쓰거나, 하지 않는 게 나은 말을 하는 반면, 기현 씨는 묻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조금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 중에 은근히 러브라인이 형성된 걸 확인했는데, 여학우 한 명이 남학우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고 남학우 한 명도 다른 여학우를 맘에 두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나 너 좋아해, 라는 직접적 표현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오면 꼭 네 선물을 사올게, 라는 말이 있었고 다른 한 남학우는 누구누구의 애정표현이 부담스럽지만 괜찮다, 네 마음만 받을게. 라는 표현을 글에 적은 게 있었다. 말, 좋아한다는 말, 호감을 갖는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떠 다녔다.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하는 감정을 말로 먼저 표현한다. 말이 받아들여졌을 때 그 다음에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의사소통 체계라는 생각을 했다. 말을 먼저 허공에 던지고 누군가 그 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 같은 행위. 공기 중에 떠 있는 말이 어딘가에 안착을 하는가 아닌가의 여부. 이들도 당연히 호감을 갖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미 청소년기를 거친 이십대 초중반의 청년들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언어와 의사소통능력이 어린이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비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들을 모두 유아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다.

 

조금 느릴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제 이들도 연애와 사랑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수정 씨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다며 자기가 만들 줄 안다고 했다. 나는 요리법을 글로 표현해달라고 종이를 한 장 더 주었다. 수정 씨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가족과 함께 볶음밥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다. 맛이 매콤하고 아주 맛있었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직접 볶음밥을 해줘야겠다. 몇 년 후에 꼭 해줘야지.”

수정 씨가 해 온 숙제는 지난 수업시간에 쓴 글을 이어서 써오는 것이었는데 파리가족여행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숙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파리에서 봉주르라고 인사를 하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에펠탑까지 보고 다시 또 한 번 가고 싶어진다. 몇 년 후에 신혼여행으로 파리로 가고 싶다. 왜냐하면 파리에 있을 때는 내가 마치 공주가 된 느낌을 받았다. 결혼한 후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어진다.”

수정 씨는 말하자면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들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싶은 곳까지 마음속에 정해두었는데 수정 씨의 사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들을 둘러싸고, 이들에게 삶을 돕고 있는 비장애인 어른들이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발달장애라는 이유로 착하고 좋은 것만 강권하지 않았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욕을 먹을까봐 계속해서 입을 막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런 생각은 이 날 은혜 씨 때문에 조금 더 굳어졌는데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은혜 씨가 내내 입을 앙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은혜 씨는 긴장이 되면 입술에 힘을 줘서 입술을 약간 내민 채로 꽉 다물고 있는 모습을 할 때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오늘 수업 시간에 한 얘기를 여러 번 반복한 적 있다.

“은혜는 쓸데없는 말 하니까요. 엄마가 싫어하니까요.”

이날 은혜 씨는 내내 입을 앙 다문 채로 중국요리를 먹은 이야기를 썼다.

“나는 우리 가족은 차를 타고 중국집에 가서 짬뽕, 짜장면, 탕수육, 잡채밥, 볶음밥, 사천탕수육을 먹고 나서 배부르니까 중국음식만 먹고 난 뒤에는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으려야 하니까 살을 빼서 흰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나는 운동을 해야겠어요. 나는 음식 많이 안 먹고 음식 조금 먹어야 해야 되겠어요.”

중간중간 동사가 중복되거나 어법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맞춤법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글에 갑자기 흰 바지가 등장한 게 흥미로워서 은혜 씨에게 흰 바지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다.

“나는 빛나는 흰 바지를 입어야 하니까 살을 빼야 해야 되겠어요. 흰 바지는 안 좋아요. 음식물이 묻으면 더러워져요. 은혜는 흰 바지를 좋아하지 않아요. 생리해도 묻으니까요. 귀찮으니까요.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은혜씨는 문장의 어미를 ~~하니까요. 로 마무리할 때가 많은데 이런 말을 할 때 특별한 심리상태가 있는지 주목해봐야겠다. 흰 바지를 입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듣고 난 다음 나는 은혜 씨에게 다시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은혜 씨, 여기에 흰 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써줄 수 있어요? 은혜 씨는 다시 입술을 앙 다물고 흰 바지에 대해서 적었다.

“나는 흰색 바지를 입으면 얼룩 생기니까, 생리할 때도 잘못하면 묻고 나서, 지저분하니까요. 때가 타서요. 흘리고 난 뒤에는 튀겨서요. 나는 흰색 바지가 싫어요.”

또박또박한 글씨를 가만히 읽었다. 이 문장은 ‘나는 흰 바지를 꼭 입고 싶은데, 흰 바지는 날씬한 사람만 입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데다가, 깨끗하게 흰 색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엄마가 입지 말라고 하니 이제는 아무리 흰 바지가 좋아도 흰 바지를 입지 않는 사람인 척 하며 내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게 차라리 속 편하겠어요.’ 라는 뜻이 아닐까.

 

나도 흰 바지를 입어본 적이 인생에 열 번이 안 되는데, 은혜 씨가 말하는 동일한 이유였다. 은혜 씨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 키에 알맞은 체격이다. 내가 은혜 씨에게 “선생님도 흰 바지 입고 싶은데 몇 번 못 입어봤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옆에 앉은 채은 씨와 승민 씨가 재밌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은혜 씨에게 속마음은 진짜 흰 바지를 입고 싶은 게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뭔가 꾹 참고 있는 사람을 툭 쳐본다는 것은, 이후에도 긴 시간이 보장되었을 때의 이야기니까.

 

내 시간이 끝나고 다들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색칠을 시작해서 1층 까페로 내려갔다. 목이 타서 주스를 하나 마실 생각이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이 까페에서 바리스타들을 돕고 있었다. 복지관의 1층 까페는 발달장애인 바리스타들이 커피와 음료를 만든다. 나는 자몽에이드를 하나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눈에 확 띄었다. 남자인데, 청치마를 입고 검은 쫄바지를 안에 입었다. 어린 아기처럼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높이 솟구치게 묶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학교 운동회에 남자애들이 여장한다고 장난스럽게 분장을 한 것 같은 차림이라 웃음이 나왔다. 복지사 선생님이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강사에게는 음료값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시원한 주스를 손에 쥐고 다시 4층 교실로 올라갔다. 즐겁게 웃기도 떠들기도 하며, 시간 내에 그림을 다 그리려고 열심히 손을 움직이는 학우들을 보며, 이십대 발달장애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들 뭘 알 수 있겠느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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