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서점은 백화점 안에 있다.
내일 있을 일 때문에 급하게 마련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꼭 백화점으로 갈 필요는 없었는데 마트와 옷가게와 문구점이 이동거리를 생각했을 때 가장 적게 움직일 동선은 백화점이었다.

걸음을 아껴야 한다. 겨울이니까.
문구 코너에 가서 검은 색 파일을 사야했다. 어디선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피아노 연주가 들리는데 분명히 누군가 연주하는 소리였다. 음원을 틀어놓은 것과 그랜드 피아노의 해머가 두들기는 소리는 명확하게 다르다.
백화점의 가운데는 길게 뚫려 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이 있는 것처럼 뻥 뚫린 공간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여자의 주변엔 아이를 안은 어른들이 빙 둘러 서 있었다. 각국에서 온 펜에 둘러싸여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연주는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이어졌다.
스테들러, 사라사, 시그노, 몰스킨, 이룸, 프랭클린 사이에 서 있었다. 계산대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다들 한 권 정도의 책을 들고 있었다.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 <미움받을 용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이들의 학습만화와, 장난감만 손에 쥔 사람도 있었다.
자기 확인을 하기 위해 사는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 사람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없어도 오늘을 넘길 수 있는 물건을 산다. 물건의 필요성은 주관적이다. 물건은 단지 실제로 쓰이기 위해서이기 보다 때로 위안이 되기 위해 존재한다. 굳이 오늘 사지 않아도 될, 시그노 펜 한 자루와, 펜텔의 펜 두 자루와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내가 검은 파일 위에 올려 계산을 기다린 것처럼.
돈을 내기 위해 계산대 앞에 서서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되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생명없는 물건이 위로가 되는 공간에서 사람이 규칙대로 맞추어 연주하는 음악은 어떤 지위를 갖는가.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건 생명없는 물건인가 아니면 물건을 사는 행위인가. 물건으로 위로를 받는다면 정말 그 물건은 무생물인가.
사물을 바라보고 주머니에 넣어 행복해진다면, 그 때부터 그 사물의 삶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다. 얼마나 지독히 외로우면, 말 걸지 않는 사물을 사랑하며 계절을 건너는가.

201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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