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배우는 민주시민교육 (토론회 발제)

이하나  (안양,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2017년 6월 22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있었던 경기도교육청 주최 “교실 속 시민교육 이야기”에 발제한 원고입니다.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3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서두에 밝혔듯이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아이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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