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빨래

내내 빈곤에 대해 생각중이다. 기생충 여파일까?

아니 사실 기생충을 보기 그 며칠 전부터, 생애사쓰기 수업을 하다가 참가자들의 원고를 읽고 하던 생각이다.

왜 우리는 가난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아마 최근 내가 겪은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일들이 오버랩 되기도 해서였겠다.

 

경제감각이 떨어진다는 건 변명이겠지.

암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모두 변명이다.

자기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은 꼭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대가는 형벌 같은 걸 말하지 않는다.

건강이 약간 흠집나거나, 살이 찌거나, 특정분야의 풍요를 추구하다 전체의 풍요를 망가뜨리거나, 인간관계가 깨어지기도 하고, 외로워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다.

 

작년에 했던 작업의 협력자 중의 몇 사람이 경제정의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정치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경제정의에는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는 게 그 사람들의 주장이었다. 나 역시 기괴하게 변형된 프로테스탄티즘의 “부지런한 노동”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논리는 과연 정당하냐는 질문은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면서부터였다.

 

‘주식회사는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했느냐에 따라 결정권을 갖게 되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입니다.’ 라는 논리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게 수년 전이다.

 

모든 불평등은 우연한 사건들의 중첩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가슴으로 체득한 건 얼마 안된다. 나도 이전엔 ‘노오력’으로 많은 걸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노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마흔을 넘기고 나서였을거다.

 

그 이전의 세상은 온통 억울함이었다.

 

아이가 직업진로에 대한 학교 과제를 하다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찾고 있었다. 커리어넷이라는 교육부의 진로정보망이었다. 아이는 평균연봉을 보면서 왜 4천만원 이상의 직군이 안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에게 하루에 열 두 시간 일하고 1년에 2천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있는데 하루에 너댓시간 일하고 1년에 1억을 버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내가 화가 났다고 느꼈는지 왜 그런 걸 묻느냐고 했다.

아니, 그냥 묻는 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부 열심히 해서 더 좋은 직업을 갖게 되면 그게 공정한 거 아니야?

그럼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적이 잘 나오나?

.. 아니.

모든 사람이 공부 잘 하고 싶다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니?

.. 아니.

 

아이가 덧붙였다.

엄마,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잖아.

 

어차피 세상이 불공평하다니.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 중엔 잔디밭이 깔린 집에 사는 아이도 있었고 교사한테 촌지를 건넸다는 이유로 더 사랑받는 경우도 봤는데 나는 반지하에서 몇 년째 살고 있었는데도, 세상은 어차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신분세탁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내가 무슨 신데렐라쯤 된다고 생각한 걸까.

 

인간은 이성을 가졌는데, 어차피 불공평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공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면 안될까? 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그걸 왜 나한테 요구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가만히 봤다.

 

내가 만난 대대로 부잣집인 아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본인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의 일부도 그런 면이 있었는데,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그대로 쏟아낸다는 거였다. 스스로의 감정처리를 하는데 서투르고 자신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타인에게 마구 퍼붓는데 염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당해보였고 어떻게 보면 솔직해보였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무례했다.

“부자가 착하기까지 해.” 라는 건, 감정이 얽히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이들은 무척 예의바르고 단정했지만 어떤 곳에서 자신을 부정당했을 때 그 에너지를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쏟아 부었다. 그렇다고 부자들은 그렇더라, 고 일반화할 수 있을까? 그 역시도 자신 없다. 내가 몇 명이나 만나봤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더라”고 쓰는 건 내가 가진 콤플렉스때문이겠다.

부자들은 대체로 취향이 있었는데 마흔 이전에 내가 만난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건 짜장 또는 짬봉, 물냉 또는 비냉, 후라이드 또는 양념 정도였지, 어떤 그릇이나, 가방이나, 구두의 수준이거나, 어떤 연주나, 어떤 화풍이나, 어떤 조명기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취향이 생기면 삶이 무거워진다. 골라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불만스러운 것들도 많아진다. 스테인레스 컵에 물을 마시는 게 끔찍하면 도자기 컵을 사야 하며 질질 새는 물병으로 곤혹을 치르고 나면 조지루시 보온병을 사러 가야 하니까.

 

가난을 쉽게 전시하고 빈곤을 관람하는 시대.

누군가에게는 바꿀 수 없어서 익숙하고 당연한 운명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미치도록 끔찍한 기억이 되어서 기를 쓰고 계단을 기어오른다.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 기억난다.

“가난한 사람들은 소리가 많이 나요. 기운이 없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 물건을 살짝 내려놓지 못해요. 가난한 사람들은 물건을 복도에 많이 내놔요. 집이 좁아서 다 들어가질 못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있잖아요. 보행보조기라든가, 커다란 소쿠리 같은거요.”

 

가난하면 자기 삶을 외부에 노출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물건들 중에 1년에 몇 번 쓰지도 않는데 부피가 큰 것들이 있고 매일 쓰는 물건이지만 도저히 좁은 집에 들여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오래된 아파트의 작은 현관에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 쌍둥이 유모차라든가, 노인의 전동스쿠터라든가, 쨍하게 마를 빨래 같은 것들.

 

그동안 나는 골목마다 널려 있는 빨래들을 꽤 많이 찍었다. 그건 부지런한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이 코를 죄던 노동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햇빛이 잘 드는 골목에 내 걸어야 하는 빨래들. 햇빛을 담는 대신 먼지를 안고 돌아온 빨래들이 하루치의 노동을 준비한다. 스팀다리미가 없어서, 건조기가 없어서, 스타일러스가 없어서 골목에 내놓은 빨래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대나무에 끼워 베란다에 내 걸어야 했던 상하이의 내 꿉꿉한 빨래들. 딱히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누군가 말하는 것이다.

“그게 가난이야. 네가 근면이라고 우겼던 바로 그거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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