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는 두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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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구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큣대를 바이올린 활이라 생각하라고 말했다. 왼손으로 지판을 잡고 오른손은 힘 있되 유연하게.
오랫만에 큣대를 잡아보니 정말 그랬다. 우연하게 비슷한 원리들이 있다. 어깨에 힘을 뺀다거나,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다거나, 손가락의 안 쓰던 근육을 쓴다거나.

물론 중딩은 바이올린 활을 어떻게 잡는지 모른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생각해보니 바이올린 레슨 받은지가 꽤 되었다. 4년 되었나. 지금은 스즈키 7권까지 하다가 다음 단계는 너무 어렵고 지루해진다며 모짜르트와 하이든 콘체르토를 연습하고 있다. 어디가서도 절대 연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소리를 자랑할 수 있다. 그동안 레슨은 대여섯 번 정도 빼먹은 듯 하다. 선생님이 꾸준히 와주시니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쌓인다.

친구가 다시 진료를 잘 받겠다 결심한 걸 칭찬했다. 갑자기 정신분석을 30개월 받은 게 떠올랐다. 그 긴 걸 어찌 했나. 빼먹은 건 두 세번 정도였다. 지금도 수요일 오전 10시는, 어딘가 가야 하는 낙인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치고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중단하면 언제 죽어도 모를 거라 했던 것 같다.

어젯 밤엔 세수를 하다가 지역사회에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30대였다는 걸 깨달았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입니다, 라고 처음 말한 건 2014년이었다. 2012년 관양시장을 처음으로 지금까지, 나는 어느 덧 마흔 다섯이 되었다.

아지를 처음 만난 건 2004년이고, 설이를 처음 만난 건 2010년이다. 시간은 알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고 나는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며 한숨 쉰다. 적당히 내 엉망인 일상을 외면하면서 천천히 먼저 간 자들의 길을 따라간다.

2.
수 년만에 돈의동 골목을 찾아갔다. 복지관의 간판이 바뀌었고 복지관 바로 앞에는 새로 기념패를 만드는 가게가 열렸는데 오늘이 개업식이었나보다. 각종 모터사이클 클럽에서 보낸 화환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의 화분과 멋진 오토바이를 구경하다가 골목을 돌아나왔다.

오늘 창신동에서 만난 할매들은 “여 와서 산지 얼마 안돼”라고 했다. 얼마나 되셨나 물었더니 얼마 안된다는 게 45년이라 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45년은 얼마 안 되는 걸로 느껴질까.

무엇이 그리운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아무 것도 없었던 거 같기도 하다.

새로 산 두 권의 책이 바닥에 그대로 있다. 마을장터 행사의 가방을 아직도 풀지 않았다. 과거는 그대로 남는 것일까 미래와 만나 변하는 것일까.

마을과 골목에 대한 원고를 준비중이다. 내가 살아온 수많은 골목들을 떠올린다. 동자동의 엄지만화방 골목, 며느리가 목 매달아 죽었다는 마당 넓은 집의 보광동 골목, 다다다다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리던 성북동의 언덕배기 낙원 아파트 골목, 안개꽃을 들고 나를 기다리던 남자친구의 손을 잡아 본 사춘기의 신창동 골목, 삐딱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가던 이모를 놀렸던 삼양동 골목, 폭염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동생이 구급차를 탄 대흥동 골목, 무지개빛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미군의 높은 목에 팔을 감던 의정부 골목, 엄마가 달리던 골목, 매를 피해 달아난 샘표간장 뒷동네 골목, 그 수많은 골목을 모두 뒤에 두고 와서, 그립다 쉽게 말하기도 어렵다.

살아있는 자들은 모두 어디에 숨었나.

2019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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