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낮아질 때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기록

– 선생님, 이제 우리 가르치려면 큰 일 났어요.
– 아주 속이 터지실거예요.

어르신들이 킥킥대고 웃었다.
– 아이고 선생님이 엄청 젊으네.

팀장이 지원서류와 저작권동의서를 묶은 종이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빠르게 지원서류를 훑었다. 1931년생부터 1952년생까지, 무려 20년이나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르신”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노인 수업을 할 때마다 이런 것들이 꺼림칙하다.

베트남 참전용사가 자유총연맹을 가면 625참전용사들과 세대차이가 나서 너무 힘들다고 했던 얘기를 기억한다.
1931년생이면 해방 때 이미 알 거 다 알고 기억할 거 다 기억하던 사람이고, 1952년생은 전쟁이 끝나고 난 뒤만 기억할터였다.

모두 얼마 전에 초등교육과정을 마쳤다고 했다.
준비해 간 오늘의 교육자료를 나누자 모두들 입을 달삭이며 소리내어 읽었다. 참가자들은 오전 10시부터 모여 2시간동안 한글교실 수업을 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점심도 굶고 연달아 4시간 수업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초등교육과정을 끝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며 정말 훌륭하십니다, 라고 말하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주책없이 솟구치는 것들이 있다.

PPT에 담았던 내용을 모두 입으로 풀었다.
– 그렇게 하면 선생님이 너무 힘드실텐데.
맨 앞에 앉은 분이 말씀하셨다.
– 저를 좀 보세요. 에너지를 좀 써야할 것 같지 않으신가요?
할매들이 와르르 웃었다.

더듬 더듬 글을 읽는 사람들의 출석도 부를 겸 내가 써 간 글을 한 문장씩 돌아가며 읽었다. 더러 더듬거렸고 더러 틀렸다. 어느 정도의 문해력인지, 어느 정도의 글쓰기가 가능한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글 잘 쓰는 사람은 종이를 앞에 두면 마구 휘갈겨 써내려 갈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조선 – 기록의 나라에서 시작해, 민간의 기록이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시니어들의 삶의 노하우가 축적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대통령의 재임순서를 나열하자 받아 적는 분도 있었다.
나는 원고지를 나눠주고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권했다. 30분 정도 걸렸는데 대부분 원고지 1매를 못 채웠다. 기본 글쓰기의 순서가 전혀 안 잡혀 있었다.

– 자, 선생님들, 저를 보세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시자고요.
누구나 종이를 받으면 당황해요. 하루종일 소설을 쓰거나 글을 쓰는 작가들도 빈 종이만 보면 도망치고 싶습니다. 한 번에 후다닥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직 못 봤어요. 맞춤법, 띄어쓰기, 작가들도 모두 힘들어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죠? 틀려도 된다. 맞춤법 틀리면 어떻게 할까요? 네. 고치면 돼요. 띄어쓰기 틀리면 어떻게 할까요? 네, 고치면 됩니다. 대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는 연습을 해봐요.
일단 생각을 먼저 하는 거예요.
상상을 해보시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모두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우리 엄마도 안 해줬던 거, 우리 아버지도 못해줬던 거, 내 동생, 내 자매, 내 자식, 남편, 아무도 못해줬던 거, 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친구 한 명.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없어. 라는 뇌까림도 들렸다.

네 없어요. 없죠. 그런 사람은 없죠.
그러니까 상상의 인물을 하나 만들어봐요. 다 되는 사람 딱 하나 있다고.
“글을 쓰면 되겠네요.” 한 사람이 말했다.

– 네,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구요. 그래서 하나씩 이야기의 순서를 정해보는거예요. 어떤 이야기부터 할까?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죠? 이야기의 순서를 잡아보죠. 메모를 하는 게 좋은데, 꼭 글자로 메모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림도 되고, 기호도 괜찮아요. 나만 알아보면 돼요.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서 한 문장씩 쓰는 겁니다.

그런 사람 없지.
그런 사람이 어딨나.
그 말이 귀에 남았다.
엄마 또래인 참가자들이 “선생님 강의가 정말 정말 재미있네요. 아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라고 환히 웃어주었다. 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고개를 꾸벅 숙여 맞절을 했다.

수업 시간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려웠다. 평촌도서관부터 나는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Mr의 의미로 선생을 붙인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선배라는 말보다는 그 말이 좋다. 여성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머니인 것은 아니다. 혹시 자식을 먼저 보냈으면, 뼈 아플 말이기도 하다.

– 글쓰기를 하시다가, 어느 날 도저히 못 쓰겠고, 눈물이 그치지 않거든, 여기 복지관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상담을 받으셔야 해요. 누구나, 그런 거 하나쯤 있잖아요. 평생을 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거. 있으시죠? 한 두 개쯤 있으실거예요.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글을 쓰시다보면 그게 떠오를 거예요. 정신력이 강하고 나약하고가 아닙니다. 그냥 내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잘 봐야 해요.
겨우 빠져나온 웅덩이가 있어요. 동굴이 있고, 무시무시한 바위가 있었어요. 잘 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그게 떡 하니 내 길을 막을 거예요. 그 이야기가 내 뺨을 막 때릴 거예요. 그럴 때는 잠깐 쉬고, 그 동굴을, 바위를 가만히 보세요. 내가 이걸 다시 잘 볼 수 있나. 생각하셔야 해요. 내가 중간에 그만두면 선생님한테 미안하니까, 복지관에 미안하니까. 아뇨.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마세요. 여기서 두 시간동안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는 나 자신만 생각하세요. 이기적으로 하세요. 숙제 안 해서 선생님한테 미안하다,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쉬는 시간에는 오십이 넘도록, 육십년을 살도록, 글자를 쓰지 못해서 남편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살았노라고, 은행도 피해다니고 관공서도 피해다녔다고, 멋지게 생긴 참가자가 말했다.

나는 칠판에 글을 네 줄 썼다. 이런 식으로 써보시죠 오늘은.
땡땡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그렇게 잘 헤쳐왔니. 나는 내가 너무 기특하고 예쁘다. 고맙다. 땡땡아. 이제 여기서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글로 한 번 써보자!

나는 참가자들이 쓴 원고지를 모두 걷어 집으로 가져왔다. 10회의 수업이 끝나는 날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10번은 충분하지 않지만, 태양이 더 뜨겁고 낮게 내려오는 이 여름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시원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수 십년을 글자를 쓰지못하고 읽지 못한 삶의 무게를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문맹율이 기록적으로 낮은 나라에서 이 사람들은 수 십년을 모른 채로 버텼다. 반지하 방의 푸념따위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성수종합복지관 첫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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