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즐거운 나의 집 – 2015.2. 서울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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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지어진 김수근의 작품.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내 아르코미술관.

남영동 대공분실을 건축한 김수근의 건축물 안에서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중첩시켜 보는 것일 지도 모르겠으나 어찌됬건 한국건축에 앞장선 사람이 지은, 둔탁하고 육중한 건물에서 홈 스윗홈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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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즐거운 나의 집>전시 프로그램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우리는 세 종류의 집 속에서 동시에 거주한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살아보고 싶은 꿈의 집

이 세 가지가 하나 된 산에 사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 말은 어쩌면 대부분의 우리가 처한 현실 – 역설적으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주거조건에 처해있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가 많이 묻는 질문 “아직도 거기 살아?” 라는 것들.

태어나서 여태까지 서른 번을 넘게 이사를 다닌 나에게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은 열군데가 넘어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기억해 낼 때 마다 꼭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다.

전시는 인트로에 해당하는 영상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우리가 살았던 공간에 대한 스냅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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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들어서는 것처럼, “다녀왔습니다” 라는 발판의 인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이 나온다. 익숙한 물건들, 누군가의 집에 꼭 있던 물건들. 양주, 상패, 애매모호한 성질의 물체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낡은 브라운관 티비엔 사물에 대한 텍스트가 흘러나온다. 오래전 어떤 접대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색깔의 소파에 앉으니 갑자기 장식장이 있던 어느 거실로 돌아가는 듯 하다. “홍은동입니다.”라고 전화를 받던 앞치마를 맨 여자가 나타날 것만 같은 물성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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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들어가면 지지고 볶는 소리가 난다. 하얀 테이블에 미색 자기들이 놓여있고 식탁에서 나눌 법한 대화들이 소설과 문학작품에서 튀어나와 테이블과 그릇에 붙여져 있다. 문득, 그 공간에서 나는 눈물이 올라왔다. 따뜻하고 독립된 부엌 한 번 가져본 적 없던 유년이었으나 부엌과 밥상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아련한 원형이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와 밥을 차려낸다는 것과 함께 먹는다는 것.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위중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밥을 먹는 일이 아닐까.

이어지는 침실에서는 함께 잠을 잔다 하더라도 잠이 뒤엉켜 섞이거나 서로 잠을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성관계와 잠을 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잠에 빠져들면 인간은 모두 개인이 된다. 꿈과 꿈이 엉키는 일도 없고 잠이 합쳐지는 경우도 없다. 가장 독립적 공간인 화장실도 누군가와 공유하기 어렵다. 근대 중국에서는 배변의 문제를 함게 해결하는 공동체중심의 개방형 화장실도 있었으나 아무리 공간을 나눠쓴다 하더라도 배설의 문제는 개별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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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부엌은, 함께 해야만 그 가치가 상승되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겠나.

우리가 살던 집에서 느끼는 푸근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에는 오늘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해 말한다. 충격이 시작된다. 현대의 집은 돈으로 귀결되고 부모의 재산과 나의 수입에 비례하여 주택 DTI를 설치미술로 구현했다. 놀랍고도 비참한 결과에 불쾌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사회는 뭔가 기이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댓가를 가늠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선대에 이루어놓은 자산이 없으면 미래가 불확실한 빚더미에서 시작하고 빚더미로 끝나는데 과연 이 게임에서 돈을 버는 자는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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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마감 마지막 기회. 라는 말이 도시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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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협력전시기관의 철학과 홍보가 같이 담겨있다.

본 전시는 ㈜글린트와 아르코미술관이 협력한 전시라는 게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느가 하는 질문에 <즐거운 나의 집>전시는 글린트의 주장에 따른다. 공유주택, 쉐어하우스, 함께 사는 집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건국이래 주택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된 적 없다. 집이 좁고 낡았다며 시멘트를 들이붓고 발라대더니 땅값은 정신없이 오르고 다닥다닥 붙은 층간소음 작렬하는 공동주택에, 붙박이 장롱 문짝 하나에 300만원이 되는 평당 1400, 2000이 예사로운 나라, 땅과 집을 가진 권력자들은 절대 이 기득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이 말했듯이 “땅이 곧 생명”이라고 믿고 있는 이 수많은 땅주인과 건물주들은 땅이 마지막 생명이며 자손만대 길이 남을 영생의 복권이므로. 과연 대안은 가능한가? 인심좋은 지주들의 선량한 기부에 힘입어서? 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일까?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다음 전시는 “우리가 살고 싶은 집”으로 이어진다는데 창밖으로 정말 살고 싶은 집의 풍경이 보였다. 남의 사생활, 누군가의 고즈넉한 집이지만 저런 집 한 채 꿈꾸며 살아도 죽기 전에 한 번 이뤄보기 힘든 나라. 참으로 착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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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같은 고시원을 나와 벌집같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달라진 것 같지만 달라진 건 하나 없다. 집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언제까지나 집의 물성을 무시하고 추억만 곱씹으며 살아야 할까.

2015.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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