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변단체의 외로움

2019년 글입니다.

금요일에는 모 지역의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준비모임에 안양사례를 발표하러 갔었다. 안양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대표사례가 되었고 나는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지역네트워크 조성의 대표 발언자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착시현상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이미 수십 년전부터 다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왔는데 그게 제도권 밖에 있어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나 회원들은 예전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고 학습이 습관인 사람들이라 내내 공부하고 일반 시민대상으로 강좌와 활동들을 펼쳐왔다. 그걸 모아서 어떤 틀에 끼워맞추게 된 게 최근 일이고, 이 지역에서의 시작은 사실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 발령나온 장학사의 제안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발표를 하러 다니는 게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지만 태생이 뻔뻔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잘난 체를 하러 다닌다. 내가 외부에 나가서 앞에 서면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안양지역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훗날 내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물론 이름이 쉬우니 기억 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나 개인보다 안양에서 민주시민교육 한다는 사람, 으로 내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인지라, 개인의 쑥스러움은 제쳐두고 그냥 잘난 체를 한다.

강연을 끝내고 나면 현장감이 있어 좋고,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이며, 재미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그감이 있고 중간중간 성대모사를 끼워넣어 연기하며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어서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고 현장감이 있다는 얘기는 내가 현장만 말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럴 깜냥도 안된다. 그건 연구자들의 몫이다. 대부분 이런 강연은 대학 교수들이 꽤 다닌다. 이 분야에서 기고 요청이 들어오면 한 책에 실리는 필자들은 대학교수나 연구자, 이 분야를 오래 연구한 교육자들이지 나같은 현장 활동가는 매우 드물다. 가방 끈도 내가 제일 짧다. 현장전문가가 이 바닥에 몇 명 더 있는데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오래되었고 더 넓은 지역을 기반으로 홛동한다. 하지만 나는 안양지역에 국한해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그 네트워크 조성과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교육지원청과 학교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적합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온 일보다, 과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나는 바닥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뭘 만들어서 하나씩 탑을 쌓아가는 유형이 못된다. 그 이유는, 요청을 해오는 일만 처리해도 1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떤 욕구를 가지고 나를 찾는다. “뭘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부터 시작하면 될지 감이 안 온다.”는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이걸 구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의 계절은 대부분 그런 것들을 구체화시키면서 흘러간다.

강연은 같은 PPT를 가지고 여기 저기 다닌다. 심화과정이 필요하거나 구체적인 요청을 해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학교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해왔는가” 라는 주제면 비슷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업데이트만 한다. 충청도와 강원도, 경기도 몇 개 지역에서 같은 내용으로 사례 발표를 해왔다.

금요일에 다녀왔던 곳은 질의응답 시간을 따로 빼두어 좋았다. 질문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들은 어딜가나 있다. 이 분들은 손도 가장 먼저 들고 마무리도 자기가 하고 싶어한다. 이런 분들은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말할 수 있게 둬야하는데 그게 사실 참 어렵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면 그때는 이런 습관이 조금 완화되는데 그러기 전에 이미 기력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본다.

이번에는 강연 초반부터 내 이야기에 꼬투리를 잡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이 있었다. 어떤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없고 우리는 배워본 바 없어 가르칠 수 없다는 게 내가 말하는 내용의 요점인데 이 분은 강연 내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으로 보였다. 끝날 때쯤 이 분은 자기가 새마을부녀회 회원이라며 내가 “시민단체에 새마을 부녀회는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매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내가 시민단체라 명명하는 것은 NGO와 NPO를 중심으로 말하는데 새마을부녀회나 민주평통, 자유총연맹 같은 단체는 시민들이 모인 단체이지만 국가로부터 고정적인 기금을 지원받도록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결이 다르다고 분리해서 호명하는 것일뿐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분은 “우리도 회비를 낸다”고 항변했다. 그 사람의 기준은 자발적 참여가 회비로 표현되는 것이었다.

그 분에게 “국가에서 받는 지원금과 회비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정확히 알아보셔야 한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다. 대신 “새마을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주 활동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아 회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니 큰 힘을 지니셨다.”고 조금 추켜세웠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운동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는 아까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이 자기들만의 용어와 철학이 있어 장벽이 높은 단점이 있고 오히려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은 진보쪽이 더 많다”고 살짝 디스도 했다. 이때쯤에 그 분의 언성이 좀 낮아지며 살짝 미소도 지었다. 그분도 나름 감정처리를 하느라 매우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이런 강연을 여러 차례 다니며 본 강연 시작전에 항상 “이것은 안양의 특수한 상황이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의 머리와 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셔도 안되고 다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강연자를 가르치려고 들거나, 그 자리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의 외로움을 나를 부른 이 공동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외로움은 공동체의 적이다. 외로운 사람을 보듬는 것이 공동체가 할 일이겠지만, 그 외로움에 같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들인지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가끔은 외롭고, 가끔은 외롭지 않다.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회의가 있다.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외롭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타인의 삶의 무게를 나눠 짊어지는 게 부담스럽더라도, 적당히 눙치고 뭉개기도 하면서 외롭지 말아야겠다. 회의하자.

201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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