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과 숙명여대

점심시간이 지난 순대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순대국 한 그릇을 외치고 자리에 앉는 법이다.
부글부글 끓는 순대국이 오기 전엔 늘 반찬을 먼저 차린다.
김치뚝배기에서 김치를 먹을 만큼 꺼내 접시에 담는 중이었다.

자동문이 열리네 안 열리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들어섰다.
계산대 근처 테이블에 앉은 노인에게 서빙하던 여자가 다가간다.
“할머니 뭐 드려? 순대국 하나 포장? 똑같이?”
노인의 목소리는 멀지 않아도 안 들릴 것 같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지도 모르겠다.
몸을 숙이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순대국 포장을 묻던 여자가 주방에 대고 외친다.
“순대국 하나 포장. 밥 따로 포장!”

“밥 따로 포장?”
“어. 밥 추가해서.”
국밥집에서 포장을 할 때 밥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딸려간다. 대부분 밥은 집에 있는 걸로 먹는다는 얘기다.
국밥집의 뜨거운 밥을 포장해버리면 그 온기와 끈기 때문에 맛이 떨어져서인지, 나도 포장할 때 밥을 달라고 하지 않지만,
음식을 나르던 사람들은 노인의 순대국 포장 주문을 받으며 밥을 싸가겠냐고 물은 모양이다.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엉거주춤하게 걸어 반대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약간 기울어진 고개는 살짝 좌우로 떨렸다.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저 할머니 불쌍해서 어쩐대.”
“그래도 저 할머니가 숙대 나온 할머니야.”

숙대나온 할머니, 우리 엄마가 올해 일흔 한 살인데, 저 정도 걸음걸이면 여든 다섯은 넘었을라나.
30년대에 태어나 식민지를 거치며 숙명여전을 다녔던 이력이 순대국집에도 알려진,
노인의 학력은 순대국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다른 생명의 창자를 씹으며 내내 생각해도 알 도리가 없었다.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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