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명랑할매

https://www.vop.co.kr/A00001466408.html

2020년 2월 7일, 민중의소리 발행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복지관이었다.

생애사쓰기를 하러 온 노인들이 스무 명 넘게 앉았다. 각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미 있었다. 연금생활자가 많았다. 먹고 사는 데 큰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후가 편안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직자 출신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 그랬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은 중간에 IMF를 비껴가지 못했다. 장사하던 사람들은 더했다. 어떻게든 IMF 이전에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거센 풍파에 밀려 다 한 번씩 쓰러졌다.

복지관의 위치나 평소 이용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생애사쓰기 프로그램에 모이는 사람들도 달라진다. 사회복지사가 일일이 연락해서 프로그램 설명도 잘 듣지 못한 채로 교실에 와서 앉아 있는 경우는 저소득층이 많지만, 자발적으로 모집공고를 보고 오는 사람들은 경제적 형편이 낫다. 저임금 고노동에 몰입해서 하루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다는 말이다. 아껴 쓰면 큰 문제 없이 산다는 것이고, 자녀들이 일정한 소득을 유지해서 부양의무에서 벗어난 이들이기도 하다. 이 복지관은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껴 쓰고 근면하게 일해 중산층에 진입한 이들이다. 이들이 처음 공기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매번 생활비가 모자라 빚을 얻어 쓸 정도로 공무원 급여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퇴직할 때쯤에는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정확한 신분보장이 되니 은행대출도 쉬웠고 정보도 빨리 얻었고 따박따박 고정적인 급여가 나오니 맘만 먹으면 집은 살 수 있었다. 저항하지 않아도, 어쩌면 저항하지 않아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보수적인 생활태도를 가졌다.

아껴쓰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며, 타인을 위해 작은 봉사를 하고 쉽게 항의하거나 떠들지 않는다. 성실한 것이 최고의 미덕이고, 사치와 낭비는 한심한 짓이다.

노인의 손
노인의 손ⓒpixabay

교실 앞줄에 앉아 농담도, 대답도 잘하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 같은 명랑할매
사람들의 험담에 당황하다

이 교실에는 맨 앞줄에 앉아 수업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드는 여성노인이 있었다. 농담도 잘 하고 대답도 잘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 같았다. 이 수업에서 나는 보조강사로 수업기록을 하고 참가자들의 출석관리를 하는 게 주업무였다. 누가 누군지 알아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연결짓지 못한다. 출석부를 따로 출력해 내가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적어두는데 이 노인의 이름 옆에는 “명랑할매”라고 적어두었다.

수업이 몇 차시 진행되고 각자 써온 글을 읽었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강사가 주제를 제시하기 전에 자기가 미리 글을 써오기도 한다. 이 교실에서는 몇 사람이 이미 써놨던 글이나 수업을 몇 번 듣고 스스로 정리해왔다. 명랑할매가 써온 글을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어릴 때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고 딱히 대단한 재능은 없으나 성실한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은 결혼 후에 군대를 갔다 왔고, 제대 후 시험을 봐서 세무공무원이 되었다. 젊은 시절 세무공무원이어도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적었다.

명랑할매가 글을 읽자 교실 곳곳에서 동요가 일었다.

“남편이 세무공무원인데 형편이 어려울 리가 있나.”

공직자 출신이며 연금으로 사는 뒷자리에 앉은 남성노인이 혼잣말을 했다.

“세무공무원은 월급이 많아.” 누군가 말을 보탰다.

50대의 강사도 “남편이 세무공무원인데 형편이 어려우셨어요?”라고 되물었다.

명랑할매는 매일 돈 꾸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고 대답했다.

누군가 무심코 한 마디를 보탰다.

“헤프게 썼겠지. 세무공무원이 얼마나 잘 버는데.” 사람들은 툭툭 말을 한 두 마디 내뱉으며 명랑할매의 삶에 개입했다.

웅성거리던 참가자들은 글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슷한 얘기였다. 세무공무원은 다른 공무원보다 월등히 월급이 많다. 돈이 모자랐다는 건 말도 안된다. 어디 사치를 했거나 낭비를 했거나, 관리를 못 했을 것이다.

명랑할매가 당황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 상황을 중단시켜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용히 한두 마디를 보태며 명랑할매가 아끼지 않고 헤프게 돈을 쓰는 사람이었거나 미련한 투자를 해서 큰돈을 잃었을 거라는 둥,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갔다. 5분 정도였을까. 강사가 적당한 선에서 끊고 다음으로 넘어갔지만 명랑할매의 등이 조그매지는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할머니
할머니ⓒpixabay

장남과 장녀인 부부
세무공무원이지만 밑빠진 독 물 붓기 같은 살림
누가 쉽게 남의 삶을 꾸짖을 수 있을까

쉬는 시간에 나는 명랑할매에게 다가갔다.

“글 잘 쓰셨어요.”라고 말을 건네자 명랑할매가 곧 울음을 터트릴 거 같은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봤다.

“아니,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럼요. 장녀에 장남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명랑할매는 집안의 장녀고, 그 남편은 집안의 장남이었다. 남편의 집에 줄줄이 시동생들이 있었고 시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취업까지 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생들을 공부시켜 직장까지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어도, 세무공무원 월급이면 그러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아이고, 내가 말을 다 못하지. 그걸. 시댁 식구들 얘기를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 명랑할매는 이내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저는 이해할 수 있는데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으셨겠어요. 장녀, 장남이면 그럴 수 있죠. 저도 비슷하게 살았어요.” 명랑할매라는 내 별칭답게, 금방 표정이 좋아졌다.

“그렇죠 선생님? 그런 게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다 책임져야하고…”그가 말을 아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절, 개천에 살던 무리들은 이무기 한 마리가 나타나면 온통 그에게 매달린다. 이무기가 승천해 용이 되기 전에, 개천에 살던 식솔들이 매달려서 승천하지 못하는 게 이 나라의 흔한 가족사다. 명랑할매의 가족들은 아마 그 수업에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해 한마디씩 보탰던 사람들과 같았을 거다. 돈 잘 버는 공무원의 가족이라고 모든 것을 떠넘겼을지도 모른다.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탓에 명랑할매는 움켜쥐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장녀와 가난한 집 장남이 만나 결혼했을 때의 흔한 서사를 생각할 뿐이다.

교실은 절대 시끄럽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용하게 한 두 마디씩 보탰을 뿐이다. 자기 삶을 지탱해 온 신념을 관철하느라, 사람들은 손쉽게 한 사람의 삶을 난도질했다.

“헤펐겠지. 관리를 못 하면 아무리 벌어도 소용이 없어.”

명랑할매는 그 이후 한 번 더 수업에 나오고 그다음부터는 나오지 않았다.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헤펐겠지. 관리를 못 하니 돈이 모자라지.”

한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꾸짖어도 되는가. 확진자의 동선을 놓고 가볍게 욕을 내뱉는, 살풍경한 입춘에 문득 떠오른 장면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