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공개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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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 발행 2019-10-18 12:05:51

“이거는 선생님만 보시고.. 공개는 좀…”
아무렇게나 뜯어온 다양한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를 내보이며 부끄러워하는 사람들, ‘이거는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말고, 선생님만 보시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남성노인들은 공개하지 않을 이야기는 아예 쓰지 않는 것인지, 그럴 이야기가 있으면 아예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인지, ‘공개하지 말고 선생님만 보시라’고 했던 남성노인은 없었다.

여성들이 말하는 ‘선생님만 보시라’는 내용은 대부분 가족과 얽힌 이야기다.
올 봄에 만난 한 여성노인은 수업이 끝나고도 나를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갔다. 주인공의 남편은 오랫동안 도박에 빠져 살았다. 남편이 지방으로 일을 하러 간다고 해서 혼자 얼마나 외로울까 힘들까 걱정했다. 남편이 지방으로 일을 떠난 뒤 주인공은 이웃의 권유에 못 이겨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 놀러갔다. 공원을 뛰어놀던 아이가 저기 아빠가 있다고 소리를 쳤다. 남편은 지방으로 일 하러 간 적 없었다. 집 근처 어딘가에 도박꾼들과 방을 얻어 기거하며 본격적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이후로도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직도 살아있고 이제는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람은 꽤 많은 글을 썼지만 복지관에서 책자로 만든다고 했을 때 원고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 나요, 이거 다 썼지만, 아직은 아닌 거 같어. 못 내. 이거는. 내가 진짜 부끄러워서.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언젠가는. 근데 지금은 아니야. 우리 애들은 이런 거 몰라. 이런 거까지는 공개 못해. 내가 이 동네 너무 오래 살아서….”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그이의 손을 잠깐 잡았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를 들고 폭력 근절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장미를 들고 폭력 근절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사람이 참가한 수업은 모두 여성만 있었다. 그 중 전업주부로 살아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대부분 가장으로 살아온 여성들이었다. 남편의 폭행을 몇 장에 걸쳐 써온 사람도 있었고, 시댁의 횡포를 한 두어 줄로 적은 사람도 있었다. 폭력이 없는 남편들은 아팠다. 이들은 남편이 먼저 병들어 죽지 않는 이상, 버텼다. 수업에 참가한 여성들은 남편이 먼저 죽은 동료들을 “힘들게 살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본인들도 만만치 않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먼저 사라지는 삶이 더욱 안타까운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한 달여가 지나, 가장으로 살았으면서 가장행세를 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왜 남편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 동네에 남편이 먼저 간 이가 있었어. 근데 남편이 먼저 가면,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여. 밤에 찾아와. 남자들이.”
“누가 찾아온다고요?”
“동네 남자들이 그렇게 찾아온다고.”
다른 여성들도 말을 보탰다.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아이고 우리 동네는 진짜 흉측한 일도 있었다니께. 친척 아저씨까지 온다더라고!!”
노인들은 그들 특유에 탄식을 쏟아내며 몸서리를 쳤다.
“선생님, 무슨 말인지 알지요?”
삼시세끼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던 시절에, 끼니보다 잦았던 성폭력의 그림자가 교실위에 나타났다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집에 남자가 있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쓸모가 없어도, 집안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거라고.”
아빠가 없는데도 남자 신발을 현관에 두고, 음식을 배달시키면 빈 방을 향해 “여보!”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내 등줄기를 스쳐갔다.

일러스트.
일러스트.ⓒ제공 : 뉴시스

이 교실에 있었던 여성들의 남자들 중 다수는 기운이 있는 상태로 집안에 있으면 술을 마시거나 가족을 때렸고 그렇지 않으면 아프다가 먼저 죽었고, 집밖에 있으면 도박을 하거나 다른 여자를 만났다. 소수의 남자들이 충실히 가정생활을 했고 소처럼 일했다.
여성노인들은 계속해서 말했다. 얼마나 모진 세월이었는지, 힘겹게 살아왔는지, 가족에게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가족을 지키려고 얼마나 애써왔는지.

가장 처음의 상처는 가족에게 왔다.
물론, 가장 처음의 위로도, 가장 처음의 돌봄도 가족이었다. 한 교실 안에서 여성 노인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남성노인들은 입을 꾹 닫고 눈을 반쯤 감았다. 그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해수욕을 잊은 늦가을, 보드라운 마룻바닥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서걱대는 모래알 같았다.
나는 이들에게 언제나 “더 말하라”고 강권한다.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남고, 이렇게 글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퍼져나간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도착한 적 없이 허공을 떠돌다 증발한다. 삶의 성과를 가족의 평안으로 측정하는 여성노인들의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당신의 삶은 또 얼마나 모질었더냐고.
공개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남몰래 적어가는 그들의 손끝에서 우리들의 생존이 단 한 번 찬란한 빛과 만난 낡은 칼날처럼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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