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노랑의 미로 – 이문영

서울역 뒤에 동자동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거기 살았을 때의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여러 번 했고, 작은책에 연재한 분량에도 있어서, 더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이문영이라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몇 년전에 가난의 경로라는 시리즈물을 토요판에 연재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신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공유하고 싶어서 한겨레 페이스북 계정을 오전 내내 들락거렸다. 문영의 글은 유난히 늦게 인터넷에 업로드 되곤 했다.

그 이문영이,
<웅크린 말들>에 이어 가난의 경로에서 출발한, 동자동 쪽방촌 건물의 사람들의 5년간의 삶을 추적해 두툼한 책으로 묶어냈다.
신랄한 르뽀가 힘든 사람들은, 아마 다 읽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이문영이 어떻게 기자생활을 지속하는지 잘 모르겠을 만큼, 한 문장 한 문장, 진을 빼며 쓰는 것 같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쓰는 사람의 땀방울이 느껴지는 글은 딱히 많지 않다.

이문영이 이 이야기를 기획한 건 아마 그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사실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는 것.
멀리 갈 수 없다는 것.
동자동 쪽방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기껏 가봤자 몇 백미터라는 것. 그리고 죽어야 그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것.

책을 읽으며 내내 피곤하고 괴로웠던 것은
내가 90년대 후반의 동자동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던 고시원의 옆 집에는 앵벌이가족이 살았고, 내가 살던 고시원의 앞 집에는 포장마차를 하는 부부와 소매치기 아들이 살았다. 고시원을 오르는 길목에 알록달록한 이불을 구해오는 노숙자들이 자리 잡고 살았고, 벽산빌딩 앞에는 지린내가 진동했으며 아침 9시, 골목길엔 초록색 소주병이 굴러다녔다.
<노랑의 미로>의 배경이 되는 그 쪽방건물은 내가 살던 고시원과 약 300m 가량 떨어져 있다. 내가 살던 장학고시원은 지금은 근사한 놀이터가 되었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샤워를 할 때마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야 하는 반지하에서도, 다시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자칫하면, 다시 고시원으로 쪽방으로 지하로 떠밀려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어쩌면 가난에 대한 공포가 나의 근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기록을 읽었다.
디자인과 편집도 정성스럽다. 가난의 경로를 추적하느라 쪽수를 넣은 본문을 여러 번 수정했을 것이다. 이 무거운 이야기를 기록해 준 이문영기자와, 오월의 봄에 진심으로 고맙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 오월의 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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