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규제 완화에 관하여

두발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이야기 하나를 더 해볼까 합니다.
 
시흥에 장곡중학교라고 있습니다.
이미 수년전에 학생자치회의 힘으로 복장과 두발에 대한 규제르 없앴습니다. 물론 다들 경험했다시피, 학생 자치회가 힘을 발휘하려면 (불합리하지만) 어른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 학교는 교사들의 지지가 아이들의 자치권을 획득하는데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학교를 방문했던 건 2017년입니다.
이미 규제가 모두 풀려서 이미 자리를 잡은 뒤였습니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전혀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학교에 갔던 이유는
지난 5월 빨간소금에서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장곡중학교 탄산수라는 지속가능발전연구동아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친구들의 연구주제는 “여중생의 화장”이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초반엔 약간 보수적인 의견이 있어 자기 친구들 중에 화장을 진하는 아이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 같다, 는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1년동안 학교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거치면서 친구들의 마음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여중생의 화장은 결코 “누군가에게 잘보이려고”가 아니라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화장품 값으로 용돈을 탕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엇나갔습니다. 화장품값이나 미용에 돈을 많이 쓰는 친구는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염색 파마 악세사리 착용이 모두 가능하고 교복도 치마 블라우스 겉옷 중에 한 가지만 입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교복이 편하다며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생활복과 교복을 번갈아가며 자주 입었습니다. 허리가 쏙 들어가거나 핏을 중요시 해서 생활이 불편해지는 교복을 덜 입게 되었습니다.
 
복장 규제가 풀리고 1년이 지나자 초반에 화장을 해봤던 친구들도 점점 시들해졌고 입술 틴트 정도만 바른다거나 눈썹만 그린다거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결점을 보완하는 수준으로 대부분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특별히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고 재주가 있는 친구들은 진로를 미용패션쪽으로 잡아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하거나 유투브를 보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각반마다 거의 1명씩 있어서 3학년이 되어 졸업사진을 찍을 때 각 반의 메이크업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탄산수 친구들은 여중생의 화장에 대해 연구하며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고 화장품의 환경문제도 고민하게 됩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게 되어 여성환경연대에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화장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됩니다.
 
물론, 이 친구들은 상당히 우수한 역량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사가 믿어줬을 때 그 역량이 더 높게 발휘되었다는 걸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습니다.
 
처음 이 학교에 복장규제가 없어졌을 때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의 항의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느냐는 항의를 교사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습니다.
 
학교 앞에 지나가는 마을 주민이 아이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찼던 기억을 말하며 아이들은 무척 불쾌해했습니다.
 
장곡중학교 외에도
혁신 중학교 중에 복장규정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고 이를 완화한 학교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아이들이 용돈을 탕진하면서 외모를 꾸미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1년 정도면 충분히 자체적으로 자정작용이 일어납니다.
 
한 교실 안에 슬리퍼와 트레이닝복차림으로 대충 다니는 친구와 귀걸이를 한 남학생이 함께 공부합니다. 풀메이크업을 한 여학생과 로션만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은 여학생도 친구로 잘 지냅니다.
 
아이들의 복장을 규제하려면 공중파 방송의 예능프로그램과 아이돌 산업의 성상품화를 먼저 규제해야 할 일입니다. 이는 정숙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교복은 아이들의 몸을 성상품화해왔습니다. 복장과 두발단속 해제라는 건 무엇을 말합니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여학교였는데 두발자유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내내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장이 머리 긴 여자를 좋아한대”라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에게 확인한 바는 없습니다만, 이 문장에는 교사가 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있다는 말을 함의하고 있고 이에 대해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 도농복합도시의 열악한 환경을 말하며 아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횡행하는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학생인권과 두발규제 해제가 탁상행정이라는 논지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안양의 1기 신도시에 살고 이 지역에서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여기는 취약계층이 사는 지역도 있고 한 반의 절반 이상이 동아시아 외 지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도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폭력적인 학교는 무기력한 학교와 동일한 이름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합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폭력적이 되고 시험이 끝나면 무기력해집니다.
가장 성적이 우수하고, 가장 대학진학율이 높으며, 주변에 학원이 가장 많은 학교일수록 폭력과 자해와 무기력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는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는 아이들이 밤새 피운 부탄가스가 나뒹굴었고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소주병을 깨들고 싸우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중절수술을 하느라 학교를 못나오는 여학생이 있었고 문신을 새기다 실패해 칼로 상처를 잔뜩 낸 팔뚝을 가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들은 모두 염색이나 파마를 하고 손톱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하고 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가방을 들지 않고 학교에 나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교장의 주장에 따라 “자퇴는 어쩔 수 없어도 퇴학은 없다”는 신념을 지켰습니다.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학생부실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두들겨맞아도,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졸업했고 중학교 졸업장을 건졌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에게 필요했던 건 조금 더 친절한 어른들과 자기 말을 대신 어른들에게 전해 줄 조금 더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길로 나서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이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중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적어도, 스무살이 되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용서했으면 합니다. 울타리를 강하게 쳐서 행동반경을 줄일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집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양질의 기능인 뿐입니다.
 
어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번도 아이들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어른은 단 한 사람이면 족한데 말입니다.
 
2018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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