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늘이 돋는다

1.
엄마,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이 신을 만든 게 아닐까?
– 그거 니가 몇 년전에도 물어봤던 거야.
그때도 엄마가 그런 거 같다고 했었어.
그랬나?
– 어.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이 풍진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왜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지, 왜 계속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신이 있다고, 불가항력이라고,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면 그때부터 모든 삶은 심플해진다.

이것이 내 팔자라고, 사주가 그렇더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면 안간힘을 써도 안되는 일에 관해,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을 믿어버리면,
내 인생이 그닥 쓰레기같지 않게 느껴지니까.
내 삶의 모든 노력이 공허하게 부정당하지 않는 기분이 드니까.

2.
다음 주에 끝나는 종로구 모처의 노인글쓰기 수업의 참여자들은 중산층 이상, 대다수 연금생활자로 보인다.
그 격차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고학력자들이고 글솜씨가 매우 빼어나다.
직접 한글파일에 사진을 붙이고 사진에 캡션을 붙이는 70대가 있다. 반포주공아파트가 천 만원일 때, 아파트를 사지 않고 카메라를 샀다는 노인이 있다. 평생 공직에 있어서 인생이 참 무료했고 오만하게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하며, 개인의 모든 울분을 사회적 문제와 정치이슈로 간단하게 치환해버리는 수구전통의 성향을 가진 분이 거침없이 박근혜는 자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편이 은행원이었고 나중에 회계사가 되었는데도 사는 게 늘 가난했다고 고백한 77세 여성노인이 있었다. 모두들 은행원 월급이 썩 괜찮은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했고, 그녀가 혹시 사치를 한 건 아닌지, 욕심이 많았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질문이 오갔다. 77세의 곱상한 이 할매는 성격이 명랑하고 장난기도 많아 뒤에서 보고 있으면 중학교 2학년 응원단장 같다. 사람들의 질문에 토라진 할매에게 다가가, 남편이 자수성가했고 줄줄이 동생들 공납금을 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무슨 사정인지 알 거 같다고 말을 걸었다.
저는 그거 이해해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죠. 라고 웃었더니,
육남매의 외아들이고 혼자 공부한 남편이었다며 자기도 육남매의 맏딸이었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개천에서 난 용은, 그 개천의 장력에 의해 이무기로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집집마다 개천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늘로 승천하지도 못한 채, 가시나무 가지에 걸려 억울하게 뜬 눈으로 소멸되는 삶이 있다.

줄줄이 매달리는 동생들의 공납금을 대고, 병든 가족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고, 집집마다 있는 화상들의 사고를 치닥거리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졌던 사람들이, 왜 국가의 의무에 대해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나, 이해하고 싶어졌다.

복지관 뒤에 아파트에 혼자 사는 영감님은 월 300만원 정도 되는 연금을 받아 살고, 막내딸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중이라 했다.

3.

큰 아들이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보증사기를 당하고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로 1년이 흘러가, 며느리와 교대로 아들을 돌보는 84세의 노인은 월 40만원으로 살고 있다. 쓰러진 아들이 빚을 내어 구해준 전세집의 보증금이 5천만원이 넘고, 연락이 끊긴 둘째 아들도 호적에 올라 있어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복지관에 나오면 시름을 잊는다고 고백했었다.

평생을 비정규 공무원으로 일했던 78세 노인은 부인을 일찍 여의고 딸들은 가난하고 아들은 소식을 모른다. 복지관 청소를 하며 노인사회활동 급여로 월 20만원을 받고, 노령연금 20만원도 받는데, 매달 월세가 22만원이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노인사회활동이 중단되어 다음 달 월세를 내기 어렵다고 주거비 지원을 요청했다고, 복지사가 전했었다.

지난 달에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다.

그 이전에는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을 만났고, 작년 겨울에는 쪽방촌의 작은장례에 갔다.  발이 없는 노인이 문상을 왔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지하 장례식장으로 들어서 슬리퍼를 벗고 고인에게 절을 했다. 고인과 그는 지나가다 몇 번 본, 이웃이다.

나는 수업 중에 노인들이 하는 말을 기록하다가
“왜 노인들의 빈부격차가 이리도 큰가” 라고 적었다.
그리고 10초쯤 쉬었다가 바로 아랫줄에
늙으나, 젊으나 매한가지. 라고 덧붙였다.

4.

파업과 철야농성중에도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더라는 전설같은 사내가 환갑을 넘기고도 여전히 뽀얀 얼굴로 매일 TV에 나와 조근조근 말을 한다. 이제 그는 원했던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난세의 영웅을 바란다.

그 방송국에서 하는 예능프로에 “운이 좋아 노래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 빼어난 미모의 여가수가 나와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꿈이 부정당하는 말과 같으니까. 그 사람이 간절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간절히 원했던 게 무엇일까.
그녀의 말과 달리, 사실 나는 아무 것도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건 살아남는 거였다.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지뢰가 터지는 언덕을 넘어 까닥하면 온 몸이 터져버릴 지도 모르는 순간마다, 그저 살아남기를, 그저 별 일 없기를 바랐는지도.

5.

일찍 세상을 떠난 막내삼촌은, 1951년 1월 1일 생이었다. 천하에 불운한 팔자라고들 했다. 남들의 말처럼 삼촌은 자기 능력을 단 한번도 발휘하지 못하고 바다 건너에서 위암으로 일찍 갔다. 문득 삼촌 생각이 났다.

미국의 오바마 케어가 사라질 거라 한다. 나는 다시 아버지의 약을 부쳐야 할 것이다.

모두들 살아남고자 한다.
조금 더 근사한 모습으로 살길, 조금 더 의연한 모습으로 죽길.
올 겨울은 박근혜탄핵을 돕는 우주의 기운 때문인가 뜨듯한 겨울이다. 몸이 많이 피곤한데, 사람들의 상처가 자꾸 혓바늘처럼 입속에 맴돈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야겠다.

2017.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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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서울 중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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