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

 
 
 
탱크 빨리 빨리!
아이가 소리를 치며 달렸다. 성문은 험하게 부서져 있었다. 아이의 손엔 제 몸집의 절반만한 도끼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숨을 고르며 규칙적으로 뛰었다. 전속력으로 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숨이 거칠지 않았다. 오랫동안 훈련한 것이 한 눈에 드러났다. 아이의 옆에는 다리가 짧은 개 한 마리가 혀를 쭉 빼고 달리고 있었다. 도끼를 쥔 아이의 손에 개의 목줄도 같이 엮여 있었다. 손목에 목줄의 손잡이를 잡고 쇠줄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다리가 짧은 개도 아이와 함께 보조를 맞췄다. 정확하게 한 팀이었다.
문을 부수고 나온 것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을. 시커멓게 색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문이었으나 워낙 튼튼한 나무로 두껍게 몇 겹으로 짜여 어지간한 세월엔 주저앉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거대한 성문을 망가뜨렸다.
 성을 둘러싼 해자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의 뒤쪽에서 우루루루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거대한 무엇이 덮치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드디어 성 안에서 불타는 용암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견고하고 오래된 성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열 두 가지도 넘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이 해자를 흐르는 용암이었다. 용암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직 거울을 가지고 있는 그 성주만이 알고 있다고들 했다. 성주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사람들은 성주를 그렇게 길게 불렀다. 고귀하고 거룩하며 영험하며 위대한 분, 단 한 글자도 틀려선 안됬다. 불경스러운 자들은 모조리 끌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할 때 하나씩 마을로 돌아갔다. 성주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지 못한 자들은 마을로 돌아올 때 엉덩이에 문신을 새긴 채 나타났다. 가까운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위치였다. 아이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문신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드디어, 이윽고, 어째서, 왜, 그리하여, 하물며, 드물게, 불구하고, 난데없이, 도대체. 그렇다 했다. 도대체, 라는 말도 있다 했다. 사람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한 가지의 단어들을 엉덩이에 새기고 나타난다 했다. 성주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고 거대한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엉덩이만 벗겨놓고 문신을 새긴다 했다. 그 방을 지키는 자는 턱이 날카롭고 키가 큰 자인데 얼굴은 가렸으나 곱슬거리는 머리칼은 금색으로 반짝인다 했다. 사람들은 해자를 휘감는 용암을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 했다. 아마도 금빛 곱슬머리 남자가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이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용암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성의 꼭대기에 금빛 곱슬머리가 반짝거렸다. 하늘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 머리칼만 빛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는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등 뒤에 달린 화살통에서 촉을 꺼내 남자를 향해 겨냥했다. 혀를 빼고 서 있던 개는 아이의 발 옆에 적당하게 붙어 있었다. 금빛 곱슬머리를 향해 화살이 날았다. 용암의 부글거리는 소리에 바람을 가르는 활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지만. 팔을 내린 순간 곱슬머리는 사라졌다. 아이는 뒤로 물러나 불타오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성 안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아이는 소녀가 매달려 있던 창을 찾았다. 낮에는 창문에 매달려 하루 종일 멍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소녀.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가 선명하게 남은 소녀는 온데간데 없었다. 성 안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아이는 등을 돌렸다. 멀리 검은 숲으로 향했다. 성만 아니면 된다. 성만 벗어나면 가시덩굴도 상관없었다. 검은 숲의 앞에 커다란 남자가 웃통을 벗고 장작을 패고 있었다. 남자의 옆엔 수레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수레 위엔 약간의 장작이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자의 수레 안에서 갑자기 작은 여자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다가 수레 안의 여자아이에게 눈을 크게 떴다. 여자아이는 다시 수레 안으로 숨었다. 까만머리. 아이는 창문에 매달리는 소녀가 생각났다. 불타는 강이 잠잠해지고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분명히 부수고 나왔는데 성문은 대체 언제 다시 생긴걸까.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깨고 무엇과 싸우고 이 자리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성을 바라보던 아이는 개의 목줄을 굳게 잡았다. 혀를 빼고 앉아 있던 다리가 짧은 개는 아이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장작을 패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 안엔 무엇이 있죠?”
 남자는 아이를 빤히 보며 대답했다.
“그저 숲일 뿐이야.”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없다고 대답해주지.”
“무엇이 없습니까?”
아이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1년동안 매일 같이 밥을 먹어도 알 수 없을 남자였다.
“햇빛이 없다. 그래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 그리고, 저 멀리.” 남자의 도끼가 성을 가리켰다.
“뱀으로 된 백 가닥의 머리카락과 일곱 개의 머리,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저 성의 성주가 없다.”
“그럼 무엇이 있습니까?”
남자는 도끼의 날을 바닥을 보게 하여 자루를 짚고 삐딱하게 섰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도끼를 다시 들어 장작을 팰 준비를 했다.
“이 장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는 흐엇! 소리를 내며 장작을 팼다. 수레 속의 숨은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며 아이를 보았다.
손에 든 도끼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제 나는 이 도끼가 필요없습니다.”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바닥에 도끼를 내려놓고 개의 목줄을 굳세게 잡았다.
“가자 탱크.”
검은 숲으로 걸어들어갔다.
햇빛도, 그림자도 정녕 없었다. 아이가 가는 숲길에 쉬고 있던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2014. 7. 16.
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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