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거짓말을 했던 시간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심심하다는 건 어떤 느낌이죠?
언제나 단순한 표현에 대해서 끝없이 캐묻는게 정신분석이다.
음. 그건 마치 뭐랄까..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같이 이야기하고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기대?
이게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구요. 약간 뭐랄까.. 유아틱? 하다는 느낌이죠. 그러니까 심심해~ 라고 하는 건 마치 저희 아들이 집에서 분명히 놀고 있는데도 뭔가 더 재미난 거를 찾고 싶다고 말할 때,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같은 건데요.
아무튼 저는 심심하다는 말을 써보거나 누구에게 말해보거나 문장이 되어서 머릿속에 떠돌아 다녔던 기억도 없거든요. 무척 생소한 느낌인데 그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알긴 아는데 뭔가 제가 꺼렸던 표현이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안 써 본 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심심하다 외롭다 무섭다 세 가지 정도. 그 중에서 외롭다, 라는 말은 글에는 많이 썼을테고 무섭다 라는 건 누가 어떤 게 제일 무섭냐고 물었을 때 글쎄, 난 별로 무서운 건 없는데.. 라고 서슴없이 대답한 편이었죠. 심심하다는 건, 심심해 본 적이 없다는 건데 늘 뭔가.. 하고 있었고 할 게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제 느낀 그 심심하다 라는 감정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것과,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듯한 제 자신에 대한 허가? 같은 건데.. 음.. 그러니까 이건..
투정이죠. 네. 투정같은 거요. 애들 투정.
– 그럼 기억이 있을 때부터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애교를 부려서 뭔가를 더 얻어낸다거나 투정을 부린다거나 하면.. 맞으니까.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면.. 맞는거죠.
징징대면 맞고 화내면 맞고 울면 맞고 투정부리면 맞고 울음 참으려고 애쓰고 있으면 그게 더 꼴뵈기 싫다고 맞고 뭔가 되게 경직된 것에 익숙했달까.
모든 관계의 의사소통은 사무적이었다. 용돈을 더 받기 위해서 혹은, 필요한 학용품을 찾기 위해서 다 쓴 학용품의 증거물을 제출하고 16절지 종이에 청구서 라고 적어야 했다. 연필 12자루를 다 사용하였으므로 새로 한 다스가 필요합니다. 이에 용돈 1200원을 청구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1200원을 줬다.
무척 권위적이고 사무적이면서, 약간 군대식 같기도 하네요. 라는 말에 기억을 더 더듬어본다.
경찰대를 가라는 얘기도 하셨고, 여군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셨죠. 단순히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보다는 어떤 힘에 상징에 대한, 로망같은 게 있지 않으셨을까 해요. 군대라는 강한 조직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랄까. 그런 자리에 제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심심해, 무서워, 겁난다, 라는 말을 써보지 않았던 3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무섭다라는 말을 작년부터 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로는 “나 오늘 삐짐” 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나이값 못하고 삐진다 라든가, 무섭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불안과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였다는 것을 늘 잊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 때는 감정을 표출하기만 하면 폭력이 들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생존이 더 급했고, 그게 더 절박해서 모든 것을 닫기 시작했고, 닫다 보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제 완전히 막혀버린,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 그런 정서를 느낀다는 건, 회복이 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보이네요.
우리 자매의 어린시절을 회고할 때 엄마는 늘 너희들은 말을 참 잘 듣는 아이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늘 덧붙였다. 니가 질질 짜는 거 빼고. 물론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동생은 말이 늦었다. 7살이 되어서야 겨우 한 문장을 말할 줄 알았다.
나는 내 동생이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그림을 지나치게 잘 그려 이상한 천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동생은 감정을 몸과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걸 그림으로 풀어낸 것 뿐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감정이 복잡하여 언어보다 그림이나 노래로 더 먼저 표현하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의 표출이었다.
돌아오며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라고.
성격이 좋다. 품이 넓다. 대인배다. 그릇이 넓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자랐고 그런 칭찬은 그런 행동을 강화시켰다.
그런데도 문제는 다 풀리지 않았다.
단순히 어린 시절에 감정표출을 하지 못해 성격 좋은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가 내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떠올리는 나를 친구가 발견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집에 들어오기 귀찮아 하는거 같은데 피곤하겠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어쭈 어디 외박을 하려고 감히. 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그건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거잖아. 자기 감정은 뒤로 제껴놓고.”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사람은 남의 감정을 빨리 읽어내는 능력이 발달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나는, 내 감정은 일단 뒤로 제끼고 남의 감정을 먼저 읽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걸 그 친구의 발견으로 깨달았다. 그게 며칠 전이다.
그 한 마디로 많은 문제가 갑자기 풀렸다.
힘없고 약한 어린 아이가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거나 생명의 위협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오는 와중에 책임질 것이 늘 있었다.
그럴 때 내가 택한 방법은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어 벌어지는 감정의 교류를 먼저 수습하는 일이었다.
나의 감정은 뒤로 제쳐 놓아야 화가 나서 나를 위협하는 상대에게서 나를 보호하고, 그리고, 나의 동생을 보호할 수 있었다.
언제나 돌아서서 다시 생각하면 내가 화를 냈어야 하는 정당한 부분에서 화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늘 깨닫곤 했다.
그래서 억울했다. 왜 그 때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이런 것들은 내가 사회적 지위를 얻으면서 조금씩 해결되었지만, 지금도 남의 감정을 먼저 읽는 습관은 쉽게 내 몸을 떠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살과 감기를 앓았다. 정신분석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의 감기몸살도 앓지 않았다.
이 날 나는 그 간 내가 해마다 앓았던 몸살감기들이 쉬고 싶은데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쉬면 안된다는 것. 쉴 수 없었다. 내 일기장의 첫 머리는 늘 “삶은 늘 치열해야 한다” 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내 마음의 바닥에서 요동만 치다가 겉으로 내뱉어지지 못한 감정들은 그 날의 일기가 되었고 그 날의 글이 되었다.
때로는 사진이 되었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되면 그게 꿈이 되었다.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 꿈속에는 하루종일 미뤄두었던 내 감정들이 총천연색으로 스펙타클하게 펼쳐지곤 했다.
잠은 언제나 모자랐고 꿈은 언제나 생생했다.
30년이상 묵은 감정들이 터지기 시작했을 때는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낮에도 끝없이 백일몽을 꾸고 하루 종일 허공을 헤맸다.
꼭 이렇게 불규칙한 잠의 원인들이, 단순히 당시의 환경이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30년만에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도 나처럼 꿈을 잘 꾸는 사람이며, 그 역시 총천연색으로 된 꿈을 주로 꾸며, 꿈을 메모하기 위해 곁에 펜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론은 한 가지 원인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서나 적용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 단 한 가지의 환경적 원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내가, 더 이상 표출되지 못하는 감정들이 내 안에서 좀비처럼 나를 거꾸로 잡아먹는 일을 그만두려면 이제부터라도 꺼내놓아야 하기에, 아마 그래서 작년엔 트위터에서 그렇게 정치인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던  것이다. 대상을 압축시켜 원망을 쏟아내면 어느 정도 급한 소갈은 가능하므로.
분노보다도, 가볍게 웃을 줄 아는 감정부터 연습하기가 쉽다. 그게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좋을 것이다.
웃기면 웃고, 내가 크게 웃는다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제는 집에서 크게 웃고 가볍게 깔깔대고 아이를 간지럽히고 하릴없이 누워있는 연습도, 하고 있다.
이야기너머 자기역사쓰기 특강을 하셨던 “김민영”선생님이라는 분이 자기 역사의 글 맨 앞에 이런 소제목을 달았던 게 기억난다.
마흔 – 이제는 솔직해야 할 시간.
내년에 마흔이다. 나 역시,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 지기 위해, 서른 아홉을 걷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2013.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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