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깃발을 내려라.

진보나 보수는 성향과 철학의 차이이지 옳고 그름의 가치는 아니다.
단지 이 나라에서는 예외인 것이 보수를 자칭하는 것들이 파렴치범인 경우가 더 눈에 띄기 때문인데, 진보를 자칭하는 것들 중엔 더 파렴치한데도 불구하고 사회 중심에 있지 않고 비주류로 비껴나 있기 때문에 덜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사회불만이 진보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회불만의 일부는 개인불만에서 출발해 죄책감과 공감능력으로 포장되어 발전할 때 타인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타인의 힘을 빌리는 방법 중 하나는 설득이다. 설득은 논리와 감성이 고루 자격을 갖춰야 가능하다.
공감능력과 죄책감이 진보의 무기라면, 자수성가형 노력과 수치심이 보수의 무기다.
죄책감은 수치심보다 더 공감력을 이끌어내기 쉬운 집단의 성격을 띈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일로 전환되기 쉽다. 수치심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지만, 죄책감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보수적이다. 있는 것을 지키려는 보수성은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이다. 그런 이유로 진보는 늘 보수에 밀리는 바람이 되기 쉽다.

최근 들어 진보입네 하고 여러가지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얼마나 편협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다시 느낀다. 물론 나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대선을 거치기 전에는 그러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있었고 그 가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말하자면 나는 옳은 가치를 믿는 사람, 즉 나는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 여기서 비약된 논리는 나는 곧 “옳은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진보진영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자기가 믿는 가치가 너무나 옳아서, 타인들의 의견- 반대파의 의견은 “옳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그들은 모두 미쳤고 그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며 그들은 모두 사리판단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진보는 진보가 아닌 자를 쉽게 욕하고 쉽게 밀쳐낸다.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진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진보가 쉽게 욕하는 “수꼴”과 다를 바 없다. 나와 가치관이 다르고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귀를 닫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무 발전도 가져오지 못한다. 왜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귀를 기울여 듣고 반대진영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조근조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연대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자칫 잘 못하면 패거리를 형성하겠습니다. 가 될 수 있다.
우리 편이 되어주세요. 라는 문화는 김어준의 곽노현 쉴드에서 분수령을 이뤘다. 김어준은 바로 이런 식의 패러다임을 전복시켜버리는 가공할 능력을 지녔다. 우리끼리 편을 먹고 저들을 싸워 이기자. 라는 논리가 정당하게 들리는 건 그 때부터였다. 그러나, 두 번의 선거를 치르고 대한민국에서 “진보”라 일컬어지는 진영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나라에서의 보수/진보 개념에 대한 논쟁은 일단 미루고 편의성을 위해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자리를 차고 앉아 세상을 휘젓는 꼴이 보기 싫어 억울함이 하늘꼭대기까지 닿은 비새누리당진영이 외친 구호들은 한마디로 찌질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다.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그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한 패이기 때문에. 라는 논조는 아무 동의도 얻어낼 수 없다. 이 나라의 반이상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평론가가 된 SNS 대한민국에서, 이제 그 자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한 때 나도 한 패거리였던 진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래서는 또 망하는 길밖에 없겠다는 생각만 든다.
종북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도 외롭고, 우리도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진보라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함만 지르고 있다. 여전히 깃발을 높이 세워 북을 치며 전진한다. 그리고 소리 높여 구호만 외친다. 그들은 그들의 행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고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필패다. 그리고 몇 몇 진보의 패거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슬슬 뒤로 물러나 부동층으로 옮겨가며 정치에서 멀어질 것이다. 깃발을 내리고 주저 앉아 귀를 열어라. 지금의 반 한나라당 정서는 여전히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쥐떼로 보일 수 있다.
201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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