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곁

“글자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게 아니고, 혼자 뗀 셈인데요. 4살 지나서 엄마가 디즈니 명작만화 전집을 사주셨어요. 처음 읽은 책이 신데렐라. 엄마가 그걸 읽어줬는데, 제 기억으로는 한 번이거든요. 아마 몇 번 더 읽어줬겠죠. 하루는 다시 읽어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피곤해서 자야된다고. 아, 그 때 4살쯤 맞아요. 엄마가 임신중이었어요. 뱃속에 동생이 있었으니까. 저보고 읽어준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야기를 맞춰보라고 하고 주무셨어요. 그래서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지어서 읽고 하다가 글자를 뗀 거 같아요. 그 때 그 책을 다 읽었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금성출판사 위인전집을 사줬는데, 24권짜리였거든요. 1권에 두 명씩 붙어 있는, 한 300페이지 조금 안되는 책이었어요. 그 책을 학교 들어가기 전에 읽기 시작해서 다 읽었어요. 그 전에는 큰 집에서 안 본다고 버린다는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백과사전을 얻어왔는데, 백과사전이 원래 검색기능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읽는 책인 줄 알고 다 읽은거예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학교 들어가서는 교과서를 다 외워서 다녔구요.

“책을 읽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린 아이가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버려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방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가요?”

아 맞아요. 4살이 되기 전엔 소꿉장난을 가지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걸 싫어했어요. 제 장난감에 흙이 묻잖아요. 아이들은 풀을 뽑아다 빻고 찧고 하면서 노는데 장난감에 물이 드니까. 그래서 밖에서 안 놀았어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20원을 주는데, 그걸 가지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사요. 그리고 하루종일 그걸 오려요. 다 오리고 가지고 놀면 해가 져요. 그 종이인형은 박스로 들어가죠. 그럼 그걸로 유효기간은 끝난거예요.

“혼자 있었네요.”

예. 그러니까 집안이 폭삭 망해서 시골로 내려갔을 때,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들하고 못 어울렸어요. 그러니까, 제가 구경거리였거든요. 일단 제가 어릴 때 피부가 많이 희고, 엄마가 옷을 무척 중요시하니까, 무척 튀는 옷,고급스럽고 예쁜 옷을 입었을 거예요. 그 동네로 이사간 지 얼마 안되서 동네에 공유되는 마당이 있었는데, 거기서 흙 위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눈을 들어보니까 동네 아이들이 저를 삥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은 하얗고 옷도 깨끗한 걸 입고, 그 동네 아이들하고 너무 다른 아이였던거예요. 그 때는 피부가 희면 무슨 병자처럼 생각해서, 마치 황순원 소나기의 여주인공같은 취급을 받았어요. 어디 아프냐고 묻고 사람들이. 학교에서도 백혈병 환자라고 소문나고 그랬어요. 그 동네에 아이들이 많았는데. 친구가 없었네요.

하루종일 혼자 있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왜 나는 늘 혼자였던 걸까.

기억나는 친구도 없다.

초등학교 1학년때 안수련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학년 2학기때 전학을 갔다. 그 친구가 한국일보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을 내가 대신 받아 간직했었다. 아주 오랫동안. 모든 짐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기 전까지.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때는 늘 아이들이 많았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는 지혜가 살고 있었고, 그 친구와 가끔 놀았지만, 지혜야 종이인형 사러 가자. 라고 그 집 문을 두드리다가 목사님인 지혜 아빠가 “너는 어떻게 매일 종이인형을 사러 가니??”라고 윽박질렀을 때, 그 날로 나는 지혜를 찾아가지 않았다.

특별한 아이로 길러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는 너무나 특별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필요가 없고, 그 아이들은 모두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였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듯 했고, 반장도 줄곧 했지만, 누군가를 기다려 같이 학교를 가거나 하교길에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오는 건 초등학교 5학년때쯤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절친이라고 할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4학년때는 오후반일 때 용태라는 녀석과 매일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는 겨루기 시합을 했다. 언젠가 학교 앞에 빚쟁이가 찾아온 이후로 부리나케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잠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5학년 때 따돌림을 극복하고, 그 아이들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때쯤에, 아마 그 때부터 집에 누군가와 같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길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6학년 남자애와 시비가 붙어 격렬하게 몸싸움을 했고 피 터지게 싸워서 동네가 뒤집히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결국 그 싸움의 끝에 엄마가 야구배트를 들고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중, 다시 한 번 패거리에서 내몰리는 따돌림을 당했고, 나는 교회와 학생회 일에 충실했다. 친구는 없는데, 늘 반장이었고, 따돌림을 당했는데도 학생회 간부를 맡았다. 중학교때 가장 친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내몰린 이후로, 중학교 때 친구들은 고등학교때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의 따돌림 이후에 나는 언제나 커다란 그룹에 속해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 10명이 넘는 모임을 주도했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사람들은 내가 모두 즐겁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화끈하다고 생각했으나 미치도록 떠들고 난 공허함은 술 외에 다른 걸로 채울 수가 없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건 아마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며, 몇 번의 배신을 경험한 것 가지고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내 사진속에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게 불과 몇 년전이다. 그리고 사진속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걸 깨달은 지 몇 년이 지나서였다. 요즘은, 사진속에 사람이 있거나,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찍기도 한다.

그 시절이 슬펐다거나, 참혹하다거나, 아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랬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참으로 외로웠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내 곁을 내어줄 줄 아는 인간인지 의심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배신도, 누군가의 실망스러운 행동도, ‘그래 너는 그 정도의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할테니.

더 나아지고 싶은 생각도,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지는 것인지 규정할 수 없기에 바라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지 않다. 인간의 삶은 행복으로 도배될 수 없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다는 것. 그저 이렇게 흘러왔고, 지금 여기 있다는 것 뿐이다.

외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에 익숙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해졌던 그 시간만큼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서툴러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서, 좋다고 느끼는 것 뿐일게다.

문제는 외로운 것에 익숙한 사람의 곁은, 언제나 춥다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의 주변에 맴도는 외롭지 않은 사람들도 금새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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