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CHINA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후배들을 만났다. 후배 한 명은 우울증이 온 것이 아닌가 고심하고 있었고, 다른 한 후배는 그런 정신적 괴리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에게는 대화를 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의 아이는 어른들의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못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장소를 옮기면서 후배와 함께 잰 걸음으로 호텔의 상가에 들어갔다. 그 호텔의 상가는 남대문 시장의 수입상가와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므로, 적당한 가격에 아이에게 어울리는 장난감을 사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핸드백과 스카프, 빅사이즈 옷과 셔츠나 넥타이를 파는 점포를 지나 나는 장난감 가게 앞에 도달했다. 환호성을 지른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멋진 자동차를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도 있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 자동차도 있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성인 남자의 엄지 손가락만큼 작은 자동차 6대가 한 개의 비닐지갑 안에 들어있는 것이었다. 얼마 전 약국에서 산 어린이용 비타민제에 끼워져 있는 자동차와 동일한 제품 같아 보였다. 아이는 자동차가 맘에 들었는지 제 손에 들고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아이는 잃어버릴까 봐 – 라고 말하며 자동차를 쉽사리 꺼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비닐 지갑 속으로 자동차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분주한 식당에서 속사포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 내며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어 드문드문 대화를 빠르게 이어갔다. 후배와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우리는 대화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지하철 역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제 손에 자동차를 들고서 쫄랑 쫄랑 나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새로 산 자동차들을 제 아빠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슝- 하고 나가는 자동차가 신기했던지 한 참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많은 미니카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지 책장 사이에 쑤셔 박아 나름대로 숨겨 놓기도 했다.

 장난감을 산 지 이틀이 지난 날, 나는 아이와 자동차를 함께 가지고 놀았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전적으로 아이가 같이 놀자고 매달렸기 때문이었는데, 몇 개의 자동차는 이미 더러 고장이 나 버려서 뒤로 당겼다가 놓아도 앞으로 가지 않았고, 몇 개의 자동차들은 회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는 자동차들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 보았다.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고 어떻게 조립을 했을까 싶을 만큼 작은 자동차였다. 그리고 자동차의 아래쪽엔 MADE IN CHINA 라는 글씨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화학물질 냄새를 맡아 가며 이 자동차를 조립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삐뚤게 붙여진 자동차들의 스티커들을 보다가 손톱보다 작은 스티커를 사람 손으로 붙였을 거라고 확신했다.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왔다.

 누군가 이 자동차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집으로 돈을 부쳤으리라, 누군가 그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 피를 토했을 지도 모르겠다. 인권유린의 사각지대라는 말 따위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이 것을 만들었으리라.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3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좋다고 신명 나게 웃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오래 전 나는 사탕을 먹을 때마다 신경숙의 소설을 생각했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 주인공은 짝꿍의 엄지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뒤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인공이 그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짝꿍은 나는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데 하루에 몇 백 개씩 사탕을 리본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뒤틀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서 조용히 손을 내려놓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리본 모양으로 묶여진 사탕을 먹을 때마다,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에 달콤함이 저만치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자동차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진다. 누군가 생산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 그 어떤 단상도 할 수 없는 삶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과연 나는 그들이 만든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들의 인권을 위해 내가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것인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쳐들어 왔다. 나는 자동차를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이걸 봐봐. 이걸 만든 사람들을 생각해봐. 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고질병은 고칠 수 없는 것일 게다. 즐거움 속에 숨겨진 인생의 비애를 포착해 내는 기질은 사춘기시절 감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수반된 것이었고, 나는 아직도 그런 삶에 버거워 하고 있다. 왜 나는 좀 더 단순하게 살 수 없는가, 그저 이건 MADE IN CHINA 니까 벌써 고장이 나버렸잖아. 하고 넘겨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과연 양심의 소리인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생업의 현장에서 밥벌이를 했던 나의 비애가 가져다 주는 자기 연민의 확대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그저 아프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라고. 나보다 더 그들이 행복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아이와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뒤로 힘껏 당겼다가 손을 놓는다. 자동차는 급회전을 하면서 저 멀리에 가서 부딪히곤 했다.

 이미지

20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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