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억과 천오백 사이

안양시민학교는 18년동안 시민사회에서 꾸려오는 성인문해교실이다.
2022년에서 23년으로 넘어가는 지금, 전체 인원은 120명.
국가예산 1천만원에 안양시 매칭 예산 1400만원, 총 2500만원 정도로 120명에게 초등 중등과정을 교육하고 오늘 졸업여행을 갔다.
2500만원이면 1인당 1년에 12만원. 월 1만원에 교육을 진행하는 거다. 그러면 이 단체의 실무자는 이 노동에 대한 대가가 있을까?
초중등과정 교실이 매일 돌아가는게 가능한가?
6명의 교사들은 자원봉사자다. 교통비도 스스로 부담한다.
교실 몇 개를 돌리는데 월세가 150만원이 넘는다.

시민학교가 위치한 안양시 만안구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자가 7.9%다. (2022년 안양시 사회조사) 동안구와 만안구는 경제격차뿐 아니라 학력차이도 뚜렷하다. 문해교실에 관심이 있는 만안구 강득구 국회의원이 국비를 상향시켜 시민학교의 경우 1500만원의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시에서도 상응하는 비용을 대응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시민학교 교장이 울고, 실무자는 온갖 통계를 뒤졌다.
성남은 13억, 수원은 15억, 용인은 28억을 지원한다는 자료도 봤다. 성남시의회에서는 문해교육 필요시민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성남에서만 6만 6천명. 안양시 인구는 이에 절반이고, 성남보다 문해교육 필요자가 적다고 했을 때, 반의 반으로 잡아도 1만명은 되겠다.
본예산에 준비가 안 되었으니 예산을 다시 올려잡는데 매끄럽지 않았고, 결국은 국회의원과 시장까지 문해교실 예산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고 상향조정하기로 했다.

시민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쯤 가면 시민연대에서 얼마 전 설립반대논평을 냈던 안양의 한 문인의 시비가 있다. 일제강점기 서이면 부면장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지역에서 늘 주목받으며 늘 명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 그가 죽은 지 5년이 되었고, 49억을 들여 그의 이름을 단 기념문학관을 짓자고 모인 사람들이 90여명이다. 나는 그를 모르지만, 한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 90여명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참 인기가 많았던 분이라는 정도만 짐작할 뿐이다.

오늘 성인문해교실 학생들이 졸업여행을 가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캠프파이어도 했다는 실무자의 이야기를 듣고 길게 울었다.

지난 10여년, 내가 서울과 경기도, 각지에서 만났던, 굵은 마디의 그 사람들. 빨간 메니큐어를 바르고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서도, 평생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살린 그 생명의 손이 못생겼다더니, 드러난 잇몸이, 제때 치료받지 못한 치아에 노랗게 테두리박은 입이 부끄럽다고 또 그 입을 가리느라 손도 입도 가리지 못하던 그들이, 색연필을 처음 잡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좋은 크레용은 처음 본다던 그들에게 교복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숱하게 듣고 어쩔 줄 몰랐다.

아부지 나도 학교 보내줘요. 나는 왜 학교 안 보내줘요.
우리 아부지 참 멋진 사람인데 나를 왜 학교를 안 보내줬을까나.
나는 그것이 지금도 참 궁금햐. 우리 집은 그리 못 살지도 않았단 말여.
전쟁통에 엄마 죽고 아버지 죽고, 학교는 뭔 학교래요.
나는 내가 성격이 포악시러워서 그런가 그 교복만 보면 가서 확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어. 나 참 못됐지이?

그런 말들이, 그 까맣게 물들인 뽀글거리는 머리가 떠올라서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아끼고 아끼고 아끼려다가, 결국 쏟아낸다.
49억과 1천 5백만원사이. 평생을 칭송받고 좋은 직함을 가졌던 사람이 가르쳤던 여고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왜 자기가 교육을 받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는 또래들이 한 시대를 살았고 죽어간다.

50억의 퇴직금도 무죄, 김용균을 죽인 원청도 무죄라는 비현실적인 사실도 떠오른다. 무죄와 무죄사이, 49억의 문학관과, 가나다라를 배우려고 80년대에 지은 건물의 교실로 가려는 굽고 비뚤어진 무릎들 사이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내 귀에 박힌다. 삐걱대는 무릎과 비뚤거리는 글씨 사이에서, 손톱을 세우고 바위를 긁고 싶다.
이 불평등을 참을 수 없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운다. 오늘 밤새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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