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가 남긴 것

포항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생존자가 주차장 입구까지 나와 제 두 다리로 선 것을 본다. 

1996년, 삼풍백화점 지하에서 들것에 실려나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에 떠다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소떼도 떠오른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주, 주말을 지나 월요일 낮 하루종일 태풍뉴스가 미디어를 뒤덮었다. 

SNS에도 역대급 태풍이라니 걱정하는 글들이 그득했다. 지난 번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로 강남역이 침수된 이미지가 강렬했던 탓으로 봤다. 대책없이 당했던 것이 불과 한 달전이니, 이번에는 대체로 대처하자는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제주부터 시작되는 태풍의 경로가 시시각각으로 보도되었다. 각 언론사는 오래 전의 뉴스클립을 꺼내 재편집해서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매미와 치바때의 장면과 일본을 지난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연달아 재생되었다. 

포항의 지하주차장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몇 건 봤다. ‘지하주차장이 잠기고 있으니 차를 빼라’고 방송했다는 관리사무소의 소장에게 기자들이 인터뷰를 시도한 모양이다. 관리소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더 말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한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처음엔 주차장이 괜찮은 것으로 봤다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차를 빼라는 방송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물이 얼마나 빨리 불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나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관리사무소는 보통 9시쯤 출근한다. 전날 태풍이 올라온다 하니 누군가 철야근무를 했을 수도 있다. 그 외의 시간엔 관리직으로 바뀐 아파트경비원들 등 야간조가 남는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뺐을 경우 그 많은 차가 밖으로 나와 빚어질 혼란이 걱정되었을 거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차가 침수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생각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주민들의 재산에 손실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일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일때, 사람은 10분 후를 예측하지 못한다. 게다가 아파트 옆의 개천은 수년간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이었다. 물이 그렇게까지 들어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방송으로 누군가 사망하고 누군가 다쳤다는 것만으로도 그 부담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난을 맞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포항시는, 재해대책전문가들은 천이 범람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태풍에 대한 이야기는 3일 전부터 있었다. 그 주변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면, 지하에 들어가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없었을까. 월요일이 되는 새벽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시간이니,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걸까. 이미 몇 년동안 메말라 있던 건천에 물이 차고 넘쳐 아파트까지 밀려들어올 거라는 예상을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었을까. 

마른 땅에 물이 흐르고 그 물이 넘쳐 10분만에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나 예측능력이 뛰어난 현명한 사람이나 가능하겠다. 지하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오는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한 대의 SUV차량이 갈 길을 헤매 머뭇대는 사이에 2분이 지났다는 기자의 해설이 붙었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재난 그 자체를 책망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망실에 대한 격분을 쏟아내기 위한 대상을 찾기 시작한다. 언론은 이때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물어다 주고 조회수를 올려 돈벌이를 할 수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파도를 찍던 유튜버나,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사냥감이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이라면, 언론이라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황망함이 건강한 비판으로 승화되고 정당한 분노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게이트키퍼라는 이름은 이론과 교육에만 남았다. 

티비에서 재난을 생중계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여름이면 동생과 나는 하루종일 티비를 켜놓고 재난방송을 봤다. 나의 모친은 그 특유의 성격과 정서적 문제 때문에 ‘다 떠내려가라’는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재난방송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 우리를 위로했고, 곧 눈앞에 닥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잠시 잊었다. 나는 8월 말에 태어났고, 내 동생은 9월 말에 태어났다. 내 생일과 내 동생의 생일 사이에 수많은 태풍이 오고 갔다. 멍하니 재난방송을 보고 있던 그때의 마음을 기억한다. 세상 모든 것 앞에 무력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때, 물이라도 쓸려와 강바닥을 뒤집어주길, 못된 것들을 밀어내길, 세상을 바꿔주길 바랐던 어리석은 마음. 그 마음들을 모여 어디로 흘러갈지는 각자의 마음에 도사리는 삶의 무게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재난을 생중계하는 며칠간, 새로운 포르노그라피를 본 기분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댓글을 먹고 무서운 파도를 보여주고, ‘잘 대처해야 한다’라는 뻔한 말만 지껄이면서 공포를 팔아 덩치를 키우는 시대. 기후위기만큼이나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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