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안양천 생태이야기관 사이트에는 ‘경기남부 안양부근의 왕곡천, 오전천, 당정천, 산본천, 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삼봉천 등 많은 지류가 안양천에 합류한다’고 적혀 있다. 안양시와 접하고 있는 의왕시의 백운호수쪽에서 학의천이 시작하고 이 학의천이 안양시의 중심부, 쌍개울이라는 곳에서 안양천을 만난다. 이 안양천은 안양시를 관통해 서울로 향한다. 광명시를 지나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 양천구에 이르면 서울이다.

내가 안양이라는 지명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때 엄마의 지인이 반월공단에 공장을 연다는 얘기를 들었고, 어른들이 안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에는 안산이라는 지명이 없었는지, 안양 인근 지역을 안양이나 반월이라고 했다. 미군부대가 점령한거나 다름없는 의정부에 사는 사람들이 안양을 지칭하면서 안양깡패가 무섭다는 둥, 안양천 물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똥물이라는 등, 살기 어려운 동네라고 하는 걸 듣고, 안양이라는 동글동글한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곳이라고 상상했다.

안양은 일제강점기에도 각종 산업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후 60년대 산업발달기에 공업지구로 각광받으며 각종 공장들이 들어선다. 먼저 섬유공장들이 들어섰는데 대표적으로 동일방직 공장도 있었고, 이어서 제지회사들도 천변을 따라 있었다. 약품회사도 꽤 많았다고 한다. 지금 평촌의 스마트스퀘어가 된 곳에는 대한전선이 상당히 큰 부지를 차지했다. 안양에 일자리가 많아지자 직장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마을을 확장하면서 도시가 팽창했다. 언급한 섬유, 제지 공장들은 안양천과 수암천, 학의천을 따라 줄 지어 섰다. 당시 산업폐수나 환경오염에 한 인식이 척박하던 시절, 이들이 하천을 따라 공장을 건설한 것은 물을 끌어쓰고 버리기 좋은 환경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폐수들이 안양천을 뒤덮었다. 증언에 의하면 ‘당신은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냄새’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정도는 아니었다’고도 하는데 뜰채로 물을 건져 햇빛에 말리면 슬러지가 생겨 종이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990년대 초반 신문기사를 보면 한강의 지천 중 최악의 오염도라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안양천은 90년대에 들어 환경운동가, 시민들, 안양시청의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안양을 찾는 외지인들이 놀라워 할 정도가 되었다. 간헐적으로 공사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천변의 한쪽은 자갈과 흙이 그대로 살아있는 둘레길로 놔두고 한쪽에만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해두었다.

내가 안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5년이다. ‘안양천 똥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힌 채였다. 둘러보는 안양천은 대체 어디가 똥물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아지와 안양천을 즐겨 걸었고, 징그럽게 많아지는 잉어떼를 보며 몸서리를 치기도 했고, 왜가리가 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을 괜히 숨죽여 구경했다가 감탄사를 쏟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이 왜가리가 어쩐 일인지 안양천과 꽤 떨어진 우리 집 베란다에 날아들었다가 휙 떠난 일도 있었다. 상상도 해 본 일이라 꽤 놀랐지만, 어쩐지 상서로운 일 같아서 으쓱하기도 했다.

안양천의 생태복원은 안양시의 자랑거리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이 넘치는데 하천과 도시의 경계가 꽤 움푹하다. 어제 폭우로 일부 피해구간은 있으나 안양천 전체가 범람하진 않았다. 천변이 잠길 정도로 비가 오면 안양시에서는 방송을 내보내고 문자를 보내 천변에 주차한 차들을 이동시키라고 사전에 예보한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기도 하니까. 여름마다 폭우가 쏟아지면 하천은 한 번씩 범람한다. 둑을 매우고 잡풀들이 쓸려 내려간다. 이렇게 한번식 바닥을 쓸어주고 자연스럽게 생태가 복원된다고 한다. 내가 안양천을 지켜본 게 벌써 17년여가 되었는데 그 사이 안양천에 산다는 생물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이전에는 하천 범람으로 상습침수구역도 있었으나 그 횟수나 정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까운 지역에서 수해가 났을 때, 나는 굽이치는 안양천을 보며, 저렇게 내버려두는 척 하는 것이 안양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안양시정에 관해 불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안양천에 대한 시의 정책은 늘 동의하며 칭찬해왔다. 학생들에게 안양의 역사를 설명할 때도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안양천은 사실상 안양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들의 마을환경개선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안양천에 자꾸 뭘 만들어달라고 한다. 천변에 운동시설을 더 만들어달라, 조명을 더 밝혀달라, 길을 넓혀달라, 자전거도로를 확장해달라, 심지어 학의천과 쌍개울이 만나는 곳이 자전거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하거나, 공연장을 설치해달라는 요구도 한다. 저런 이야기를 멀쩡한 자리에서 듣고 있으면 4대강 사업은 이명박 혼자 추진한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물을 가뒀다 풀었다 옥죄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시민들의 요구를 다 반영한 게 수년 전 의왕시의 학의천 구간이었다. 학의천은 안양시 평촌동과 의왕시 내손동의 경계에 있다. 안양시와 의왕시의 경계에서 양쪽을 둘러보면 확연히 달랐다. 의왕시 구간은 반듯반듯하게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널직하게 구현되어 있고, 시민들이 모여서 공연을 보거나 운동을 할 곳도 많다. 이에 비해 안양시 구간은 투박해서 마치 방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구간을 지나는 시민들은 ‘안양시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고 비난하는 것도 많이 들었다.

시민들이 조명을 밝혀달라 하면, 물고기도 자야한다고 대답하고, 안양시의 자전거도로를 넓혀달라하면 자전거에서 나오는 분진도 안양천을 망치는 거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공직자들도 있었다. 올해들어 안양천에 경관조성을 한다고 조명을 만들어붙이고 번쩍이게 만드는 걸 보고 마뜩치 않았다. 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해명이 있었고 이를 반기는 시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자전거 도로를 넓혀달라고, 공연장과 체육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계속되었다. 언젠가, 공무원이 질 것이다. 저렇게 자기 집 앞에 뭔가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집요하다. 언젠가, 공무원은 지고 말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생각했다. 지고 말 것이라고.

이번 폭우는, – 폭우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도 하지만 – 안양에도 피해가 있었다. 안심하고 있던 신축아파트단지나 저층 다세대, 빌라주택에도 물이 차 올랐다.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이고 그 안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수정하는 것도 인간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재해가 어찌 100% 자연재해겠나. 건들지 않았으면, 사람이 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산을 깎고 들을 밀어내고 물길을 틀어서 도시를 만든다. 그 도시 안에 풍요로운 삶을 영유하겠다고 선언하며 산 허리를 베어내고 물길의 무릎을 쳐냈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마구잡이로 자를 대고 죽죽 선을 그어 만든 도시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물줄기와 그나마 버티고 있는 나무를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물은 때때로 넘쳐야 한다. 그게 자연에 속해있을 때는 그렇다. 그러나 물줄기를 꺾어 인간을 불러들였으면 넘치는 물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지 않도록 치수하고 정치할 일이다. 자연에 빌어 도시를 만들어 산다면 어두운 물가에 불을 밝히지 말 것이며, 나무의 머리통을 잘라내지 말 것이며, 산의 심장을 도려내지 말 일이다. 매일 매일 환경을 파괴하며 산다. 내가 도시에서 쉬는 만큼, 도시를 지키는 이 하천도 마땅히 쉴 권리가 있다. 지켜왔던 자존심, 생태하천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누구라도.

사진: 2022년 7월 30일 21:42 학의천 안양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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