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힘

몇 년전부터 각 지역에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도시재생센터가 마을기자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외 공동체 사업에서 종종 아마추어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기자단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기자단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외부로 나가는 글은 한 번 안 써본 사람도 있고, 블로그 정도 해 본 사람도 있다. SNS도 안 해본 사람이 다수였다.

인근에 있는 G시의 한 센터는 내가 2019년부터 기자단 지도를 하고 있다. 2019년에 처음 기자단을 구성할 때 담당자라고 연락을 해 와, 한 번도 안 해본 업무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물론 누구 소개로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한 것이었다. 누가 소개를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소개해 준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도 참 문제다.) 몇 가지 컨설팅 비슷한 조언을 해줬는데 특강을 부탁했다. 담당자도 구성원들도 맥을 못 잡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지역주민이었고 봉사활동을 해 봤거나 통반장, 지역 무슨 협의회 회장도 있었지만 글을 써본 경험은 없었다. 다들 자기 생업이 있어서 수업시간은 늘 저녁 7시에 잡혔다.

담당자는 나에게 강의요청을 할 때마다 “7시에 수업을 하게 되면 어차피 식사를 하셔야 하니 한 시간 일찍 와서 저랑 식사 하시면 어떨까요?”라고 권했고, 나는 일찍 가서 그와 순대국이나 순두부를 먹었다. 그는 매번 아주 깍뜻했다. 솔직히 말해, 그런 공무원은 처음 봤다. 내가 늘 대접받는 기분이라 고맙다고 하면 그는 ‘강의비도 얼마 안되는데 잘 해주셔서 그렇다.’라고 답했다.

첫 특강 이후에 몇 가지 구성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그가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이런 저런 의견을 전했다. 그는 나에게 기자단이 글을 제대로 쓰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고 물었다.

공공기관 사업이 빤한 것이, 정해진 예산이 있고 상부에서 허락을 안 하면 담당자가 아무리 필요하다고 우겨봤자 성사 불가능하다. 이런 질문이 오면 나는 역으로 가용예산이 얼마나 있냐고 묻는다.

예산에 맞춰서 최대의 효율을 낼 방법을 찾아주면 된다. 대신, 가성비를 높이는 기준은 담당자의 태도에 따라 결정한다.

그가 말한 예산은 장기적으로 기자단을 지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것은 첫 소식지에만 기획회의를 나랑 하고, 원고를 써오면 그걸 놓고 편집회의를 하면서 강의를 곁들이겠다는 것이었다.

가능할까요? 그가 물었다.

– 가능하게 해봅시다.

첫 기획회의에서는 각자 뭘 쓰고 싶은지 어떤 걸 취재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들었다. 세금으로 만드는 소식지니까 관의 요구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최근엔 담당자에게 허용범위를 물어도 큰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도시재생센터 쓰레기다!’ 이런 비난만 없으면 되고, 모인 사람들도 크게 의도와 엇나가는 아이템을 말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도시재생센터에 도움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모이기 마련이니까.

기획회의에서는 1. 서로 소재가 겹치지 않게 하고

2. 취재대상과 취재할 질문을 뽑아주고

3. 육하원칙으로 물어올 것

4. 정보는 어떻게 구성해올 것 정도를 지도한다.

이러면 구멍이 몇 개 나 있어도 얼기설기 기사를 만들어온다.

두 번째 편집회의에서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고

이들이 써서 제출한 한글파일을 프로젝터에 띄운다.

한글파일에는 변경기록 기능이 있는데 수정하는 내용이 다 교정기호 기록된다. 스크린에 띄운 상태로 그 자리에서 바로 글을 수정하면서 여기를 왜 고쳐야 하는지, 어디가 문제인지, 빨간 줄을 죽죽 그어가며 문장을 재구성해주고 문단을 앞뒤로 바꾸기도 하고 어느 정보가 더 필요하니 더 취재해오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쇼를 하는거다. 교정쑈랄까..

처음에는 마을기자들이 망신스러워했지만 누누히 당신들은 프로가 아니고 프로일 필요도 없으며 잘 쓰는 유려한 글로 기사를 만들거면 마을기자단의 의의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도닥이니 붉은 비가 내리는 원고에 큰 불만도 없게 되었다.

매번 잘 썼다 훌륭하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 부분은 아주 좋다고 칭찬을 곁들이는 것도 꼭 필요하다.

작년에는 코로나가 있었는데도 담당자가 어김없이 나를 네 번이나 불러줬고 편집회의를 끝내고 나서 기자들이 다시 보완을 해오면 윤문을 해서 다시 넘겨주는 형태로 일을 이어왔다. 윤문에 대한 비용은 책정된 바 없고, 1회 강의비로 이 기자단의 일을 계속해왔다.

이유는, 단 하나 담당자의 성의 때문이다.

항상 부족한 원고라도 자기가 다시 타이핑해서 넘겼고, 사진도 봐주겠다 하니 사진에 파일명도 다 일일이 수정해서 보여줬고, 내가 가면 노트북에 파일까지 다 깔아서 완벽하게 셋팅해놨고, 물과 커피는 물론, 일찍 와서 밥 먹자는 소리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전화를 해서 기자단 원고에 대해 물었는데 정말 성심성의껏 자기 일을 한다는 걸, 절절히 느꼈기 때문이다.

5월에 한 번 강의를 하고 원고를 수정해서 보냈는데 7월도 발행한다며 6월에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새로 담당자가 왔으니 잘 부탁한다고 자기가 인수인계도 잘 해보겠다고 했다.

오늘 새로운 담당자와 이전 담당자가 있는 자리에서 한 차례 수정쑈를 했다. 이번 담당자도 친절했다.

게다가, 이번엔 기자들의 기사도 많이 좋아졌다. 손 대지 않을 정도의 글도 있었고, 각자 잘 하는 분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인터뷰에 재능이 있었고, 한 사람은 탐방기사에, 한 사람은 기관 취재에 장기를 보였다. 나는 기자단에게 “이제 제가 안와도 되겠다”면서 한껏 추켜올렸다.

강의비 지급서에 사인을 하면서 나는 반농담으로 “이제 강의비 좀 올려줘요.”라고 말하고 껄껄 웃었다. 담당자는 머쓱해져서 어쩔 줄 몰라했다.

“농담이고요. 주무관님이 항상 성의있게 하셔서 제가 늘 기분이 좋습니다. 곧 제가 필요없어질 거 같긴 하지만.” 이라며 웃었다.

매번 수업이 2시간을 넘겼는데 오늘은 20분이나 단축되었다.

결국 공공기관 강의나 일은, 사람 때문에 한다.

그 한 사람의 마음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C주무관, 참 훌륭한 사람이다.

어디 상 있으면 추천이라도 해야겠다.

이 담당자 때문에 기자단에 들어온 사람들은 ‘발전하는 자신’을 찾아갔고, 나 역시 내 역량을 발휘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입발린 소리 안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미덕은 긴 시간에 걸쳐 결국 빛난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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