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파는 빈대떡집

2시.
늦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밥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시간 맞춰 우루루 먹고 나가는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는 백반집에 오후 2시 넘어서 입장하는 건 결례다. ‘일하는 사람들도 쉬고, 저녁 장사 준비도 해야 되는데, 그래도 오후 3시는 아니니까, 아직 남은 게 있겠지.’ 하면서 쭈뼛대며 기웃댄다. 주인여자가 남자에게 “어떻게 해?”라고 묻는다. 남자가 들어오라고 해서 기뻐하며 자리에 앉았다.
반찬과 밥이 나오고 맑은 된장국이 나왔다.
‘우와 떡갈비다.’
우리가 밥을 먹는 사이, 주인여자는 닦은 물컵을 테이블위에 나란히 놓고 물기를 말렸다. 그 다음엔 소쿠리를 양손으로 들고 물기를 털다가 젓가락 한 짝이 바닥에 떨어졌다. 소쿠리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주인이 떨어진 젓가락을 집으러 가는데 사장님 뒷통수에서 ‘아이고 귀찮아, 아이고 하기 싫어.’ 문자가 전송되는 것 같았다.

반찬을 다시 보면서 ‘이런 장사를 매일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밥하기 귀찮아진지 오래전이다. 예전 전업주부들은 환갑 넘어가니 남이 해준 건 누룽지도 맛있다더니, 우리또래는 밥하기 시작한지 10년차 되면서부터 지겨움에 넌덜머리를 낸다. 집이 지척인데 사무실 앞 백반집에서 밥먹는 이유도 별다른 게 아니다. 집에 가서 차려 먹고 설거지 하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지는 건, 한마디로 귀찮아서다. 먹는 건 좋고, 먹기 위해 꼼지락 대긴 귀찮으니, 인간이 이리 무쓸모하다.
나물 무치고 어묵 자르고, 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온종일 씻고 다듬고 볶고. 물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거지만. 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는 이 집 백반은 1인분에 6천원이다.

“저희 너무 늦게 왔죠? 몇 시 오는 게 제일 좋으세요?”
“1시 조금 넘어서 오시면 제일 좋아요. 여기 장부로, 대놓고 드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2015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저희 간판이 빈대떡이잖아요. 원래 전 장사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동네 아저씨들이 그거 잘 안 될거래. 그러면서 차라리 백반을 해보라더라고. 그래서 나는 아니 여기 동네 백반집들이 있는데 우리까지 하면 좀 그렇지 않나, 싶었는데 아저씨들이 그래요. 가서 먹어보면 백반집 할 용기가 날거래요. 그래서 백반을 시작했어요. 진짜로 저녁엔 손님이 별로 없고요. 전은 비 오는 날이나 좀 돼요. 그리고 저희는 명절에 장사가 잘돼요. 요기 아파트에서 명절에 전 예약 많이 하세요. 젊은 엄마들은 다 사가더라고요.”
“저희가 거기 살아요.”
“아 그러시구나. 내가 사장님 아까 얼굴 이렇게 보고,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는데. 지난번에 거기 이삿짐 아저씨들 밥값 내고 가셨죠? 아휴. 이제 알겠다. 여름에는 저희가 에어컨 아저씨들이 많이 오세요. 요기 장부 달고 밥 드시는 분들은 회사 분들인데 시간을 정해서 오시거든요. 12시에 오는 회사 있고, 12시 40분 오시는 분들 있고 그래요. 그래도 대부분 1시면 장부 다시는 분들은 다 끝나니까, 그냥 일반손님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지난번에 그 이사하신 날 예약 못 받는다고 한 게 그래서 그랬어요. 여기 백반집 간판으로 바꾸라는데 그랬다가 장부 달고 드시는 분들 밥 못 드시면 어떻게 해. 그냥 있으려고요. 아까 들어오실 때 우리 아저씨한테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거는, 저희가 오늘 점심에 떡갈비 했어요. 근데 다 떨어진 줄 알고. 우리 아저씨가 그 비싼 비비고를 사 왔어요. 그래서 지금 일단 맞춰드린 거예요. 내일도 고등어 할 거라 지금 받아놨는데, 저거 60마리 가지고 되지도 않아요. 안에 또 있어. 이제부터 그거 해야 해요. 아휴. 힘들어. 너무 일이 힘들어, 나 진짜 이거 안 하고 싶어요.”
“그러게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닌데요. 반찬도 맛있어요.”
“우리가 작년까지 5천 원 받았어요. 근데 손님들이 7천 원 받아도 된다, 고속도로 휴게소 가면 9천 원짜리도 엉망이라면서, 자기들 지방 갔다 와야 된다고, 일부러 와서 밥 먹고 가시는 분들도 많아요.”

사무실이 있는 곳은 고속도로 진입로와 가깝고 임대료가 높지 않은 편이라 유통회사들이 꽤 많다. 렉카차 회사도 있다. 외곽순환도로와 경수대로를 끼고 있으니 유통이나 물류회사에는 부담없고 좋은 조건이다. 그런 작은 회사 사람들이 이 집 단골이고, 이 골목에서는 제일 맛있는 집이다. 이사하는 날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이 동네에서는 저 집이 제일 맛있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밥 한 공기를 추가해 둘이 반 절씩 더 나눠 먹고 사장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잘 먹었다고, 내일부터는 한가한 시간 맞춰서 오겠다고 얘기하고 나섰다. 사장님이 우리가 나가는데 지난번에 돌린 이사 떡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해줬다.
백반집에서 나와 커피집을 가면서 박부장이 말했다.
“아줌마가 많이 심심했나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고등어 60마리면, 하루 60인분 나가고, 월세 나가고, 월 수익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고 있었다.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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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동이야기

202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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