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 #과거의오늘
엄마 비둘기 머리에 뭐가 많이 붙어있어?
– 다친 거겠지.
저거 봐봐. 머리가 막 삐쭉삐쭉해.
– 뜯긴 거 같기도 하다.
아이가 가르키는 비둘기들은 살이 쪘지만, 그 모양새가 엉망이었다. 머리깃털은 길이가 다르고 일부는 뜯겨나간 듯 삐쭉삐쭉했다. 그 옆의 비둘기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비둘기 서너 마리에 모여 맨홀에 고인 물을 마신다.
아이가 비둘기를 보며 말했다.
“쟤네 저기서 물 마신다.”
아이는 요즘 퇴행중이다. 중학교 1학년은 갑자기 아기가 되어 혀짧은 소리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가끔 길에서 손을 잡았다가 또래 아이들이 있으면 손을 쑥 빼곤 하지만, 혀 짧은 소리로 “엄마 미워!”하고 토라질 때처럼, 엄마 저기 봐봐, 엄마 이거 봐봐, 엄마 내 얘기 들어봐. 라고 종알댄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 유해조류, 혐오동물이 된 비둘기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알량한 멘홀 위의 물방울.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우리는 이제 정당하게 비둘기를 혐오할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비둘기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가 안 좋을 거라고 말해줬다. 나는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아이는 얼마 전에 들은 88올림픽 때 비둘기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고 그 이후 개체수가 너무 많아져 사람들이 미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러 묻지 않았다.
몇 해전 인덕원역 커피숍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회의를 하다가 다가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바퀴에 깔려 납작해져버린 비둘기를 보고 아무 말도 못 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계절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겨울이 더디 왔다.
오리와 닭이, 돼지가 병들지 않아서 그 노동을 하지 못해서, 돈을 못 벌어서, 생명을 죽이고 받던 꽤 괜찮은 수입이 없어서, 겨울 내내 다른 일거리가 없어서, 오늘 밤 병들어갈 누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이 그리 다른가.
모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나아졌으면 좋겠다.
2019. 2. 17. #지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