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본 원고는 2018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지에도 기고한 원고입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민주시민교육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이하나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 사무국장 / 집필노동자)

 

 

  • 시작 : 안양지역 민주시민교과서 활용 지역연계사업의 출발

 

안양지역에서 교육청 연계사업으로 관내 학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교육과정을 진행한 지 4년차가 되었다. 2014년 출범이후, 2015년 당시 지역교육네트워크는 교육정책 관련 정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공동행동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논의중이었다. 관할 교육지원청과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연계사업으로 전문강사를 양성해 학교에 특강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는 지역 내 8개 시민단체가 공교육 회복과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을 위해 결합한 협의체로 안양YMCA, 안양YWCA, 안양여성의전화, 비산종합사회복지관, 대안과나눔, 율목아이쿱생협, 경기도예비사회적기업 이야기너머가 함께 시작했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지역에서 활동한 지 적게는 수년, 길게는 20여년의 역사가 있고, 각 기관별 전문강사진이 구성되어 시민대상교육과 학교 연계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에 지역교육네트워크의 회원단체에 소속된 전문강사진이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의 특성을 살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분야별로 나눠 교과연구 모임을 갖고 수업교안을 준비, 시연과 점검 과정을 거쳐 관내 초등학교부터 특강형태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 전개 1 :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의 지역과 시민단체의 역할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의 설립취지는 공교육의 회복을 돕고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지만 해결해야 할 장벽은 한둘이 아니었다. 출범 직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이룸의 창립주체였던 안양YMCA 문홍빈 전 사무총장의 사망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봉착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가자는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학교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지역과 학교가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입시로 작동되는 기이한 사회다. 대학입시 앞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결정된다. 학벌로 계급 사다리를 걷어찰 수 있던 산업화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학벌은 일종의 종교적 관념마저 갖게 되었다. 대학만 잘 가면 만사형통이라는 이념이 보편화되었고 그 이념 아래 전 국민이 헤쳐 모여를 반복했다. 자녀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의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주와 직장을 결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대학입시시험의 편의를 위해 공공시설의 제약까지 감행하는 나라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군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이주를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을 가진 학부모가 다수를 이루면서 공동체는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했다. 이익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는 사회에서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는 당위성은 없다.

 

지역공동체 활성을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신자유주의가 잠식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마을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제적 사유로 인해 이동하고 마을공동체 되살리기도 안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마을공동체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마을공동체사업이 공적 영역으로 옮겨갔다. 자발적이어야 하는 마을공동체 사업도 제도권으로 편입되었다. 시민사회가 주도했던 수많은 영역들이 공기관 산하로 흡수되었고 공적 자금이 들어오면서 풀뿌리 운동의 자생력이 죽어간다는 소리도 크다. 시민성에 대한 교육 역시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풀뿌리 운동은 끊임없이 현장을 돌보며 민간에서 필요한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이는 시민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시민단체들의 숙명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미 민주시민교육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교육들을 수십 년간 해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닌데 새로운 용어의 등장으로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목적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획득하고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시민 개개인의 역량으로 확고히 만들어내고 그 어떤 계층이나 세력도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장치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성을 확고하게 띈 활동과 교육이 학교라는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근대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도권 내 교육과 학교제도 바깥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학교 밖의 시민교육이 참여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학교는 참여를 독려하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이 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2014년 이후로 학생들이 직접 학교 정책과 교칙 변경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나긴 했으나 이는 매우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일부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드문 일이다.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전국 지자체 선거를 통해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기초단체 의원들이 늘어났으며 시민을 대표하는 후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교 밖 지역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제등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관료적 체계와 상명하복의 근대적 체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정책의 결정권자들은 공무원이며 이들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도 상부에 보고하지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학교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일부 이익집단과 극성 학부모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도 하며 맞서 싸우기 어려운 학교 구성원들의 태생적 한계를 여러 번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라고 하지만 이 삼위 중 결정권을 가진 자들은 교사들뿐이다. 이 결정권을 놓고 학부모와 학교가 대립하는 양상이 생기면 학생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결정권을 쥐려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한다.

 

학교내부의 민주주의 지표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양지역의 경우 민주시민교육협의체를 구성해 참석한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학교내 민주주의의 갈 길은 요원하다. 관리자의 횡포는 사라진 추세지만 내면화된 수직적 권력구조는 쉽게 뜯어고치기 어렵다. 개인의 내면화된 권력구조는 집단으로 이입되고 이 집단성이 발휘되는 공간이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를 숨 막힌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원인일 것이다. 교사들은 언제나 안전과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려 있고 국가는 학교에 수많은 책임을 지운다. 학교내부는 언제나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으며 내부결정구조의 비민주성은 수시로 튀어나온다. 혁신의식을 가진 평교사들과 관리자의 불일치, 행정과의 괴리등은 학교 민주화를 저해하고 외부의 민주적 시민의식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된다. 쉽게 예를 든다면, 시민사회단체를 목적을 띈 이익집단으로 치부하는 경우, 지역주민강사를 교육하청수행자로 여기는 태도, 전문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온한 사상을 주입한다는 편견이 외부 강사의 현실적 강사료, 외부 강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진 집단이 외부에서 학교 내부로 진입하려면 매우 구체적이고 상호간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관료적 시스템에는 실적을 상승시킬 수 있는 욕구, 교사에게는 점진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하여 학교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동력, 학생들에겐 신선한 교육과 자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지역사회에는 학교라는 교육현장을 열고 지역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시민의 양성이라는 각자의 욕구을 충족할 요건을 고르게 분배하고 자극할 때 민주시민교육뿐 아니라 특정 분야의 교육이 성공할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이제 어디에서도 발붙일 수 없으며 이제는 각자의 입장을 가진 욕망들을 끌어내어 새로운 제도에 적용해야 적극적 참여를 유발할 수 있다.

 

  • 전개 2 : 교과서 기반의 학교 특강 교육의 실제

 

안양과천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해 교육과정 연계사업을 진행한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극대화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교과서의 구성은 감탄할 정도로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경기도 외 시민들에게도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으로 알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각 학교마다 교과서를 신청해 배포는 한 상태지만 교과연계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받고도 활용도가 떨어져 “쓰지 않는 교과서”로 생각했다. 지역교육네트워크 이룸은 지역교육지원청과 협력하며 교안개발을 하여 각 학교에 특강형태로 출강하였는데 교사와 아이들 모두 교과서를 구비하지 못하거나 유념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 찾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가 어려운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망라하고 교과연계수업을 진행하기에 교사의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혁신학교나 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은 희망창조학교로 선정된 학교의 여부를 떠나 각 학교나 교사들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늘리고 미디어를 지양하며 아이들의 토론식 수업과 창의적 발상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각 교과별로 민주시민교과서의 내용과 맞물리는 부분이 많이 있어 일부 내용을 편집 재구성해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일부 교과와 중복이 있는 경우 “민주시민교육”은 특정교과의 일부로 편입된다. 또한 학년별로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분량이 만만치 않다. 지역이해교육이나 유네스코 교육등 각 학교별 특성화 프로그램도 있어 교실 안에서 운용되어야 할 과정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교수법을 습득하고 교육패러다임을 바꾸려는 교사들의 자발적 역량강화욕구도 높아 교육과정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할 교육 과정의 분량도 적지 않다. 이들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교과서를 별도로 특화하여 연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교육현장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여 교육정책의 우선과제가 무엇인지 모호해 보일 때도 있다.

 

둘째, 시간이 부족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은 협의와 토론을 지속하고 한 가지 결론만을 도출하지 않는다.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것을 기초철학으로 둔다. 이 논조에 기초해보았을 때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진행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요컨대 느슨한 교육시간이 필요한데, 각종 활동과 교과과정, 학교 행사 등 학교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협의를 도출하는 과정의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을 이뤄내기에 학교는 바쁘다. 초중학교 모두 타 교과 진도를 좇아가기 바쁘다. 초등학교의 경우 그나마 담임교사가 한 학급을 전담하기 때문에 창의적 체험학습 시간에 민주시민교육 특강을 외부 초빙하거나 스스로 교과운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각 교과별 전문교사가 시간을 각자 배정하기 때문에 특정 교과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수업 중에 연계해 진행할 경우 본인의 진도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셋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

앞에 밝혔듯이 경기도교육청의 민주시민교과서는 구성이 치밀하고 활동내용도 세부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교과서 연구 없이 교과서 내용 그대로 따라만 해도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수업은 가능하다. 언급하는 내용에는 주거복지, 노동3권, 미디어의 오류 등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혹자는 이 교과서가 지나치게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감일 뿐이다. 이 나라가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 실려 있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청년실업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치닫는 과정을 겪으며 젊은 층의 보수주의도 극대화되었다. 경쟁을 당연시 하고 무임승차를 부당하게 생각하는 혐오현상이 일어나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감추는 세태가 팽배해졌다. 경쟁이 체질화된 아이들은 매일의 주어진 학습량과 일정을 채우기 바쁘고 버겁다. 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때 학습과잉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교과서보다 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거부감 등을 해결할 수 있다.

 

넷째, 또 하나의 오류,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배우는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교과서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민주시민교육 교과서로 민주시민교육을 완성할 수는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씩 실천해야 할 주제들이다. 토론과 학습, 이론으로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당연한 지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현장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과정으로 소비된다. 이것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주시민의 요건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협의체에서 운영한 전문강사양성 과정도 마찬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도록 팀별로 구성해 교안을 개발했으나 민주시민의 기초 요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은 대부분 일방적인 강의형태로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상을 돌아보고 나의 민주적 감수성을 점검할 시간이 부족하다. 실천 없이 이루어지는 체득은 없다. 생활 속에 녹아드는 민주 시민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섯 째, 급변하는 시대와 세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교육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기성세대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90년대 이후 사이버스페이스라 일컬어지던 가상현실공간은 이제는 삶의 절반을 차지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청소년 세대고 이제 이 세태를 거스를 수는 없다. 지역사회,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학교는 미디어 급변에 대한 대처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으로 손꼽아도 무방하다. 특히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불거지는 다양한 소수의견에 대한 의견 정립이 전혀 안된 상태다. 공통의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는 화두가 수만가지에 이르는데 아직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공론화 할 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미디어를 기피하려는 기성세대는 사실 미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청소년보다 한참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촛불 이후 학생들은 절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화했으며 어떠한 권력도 파괴 가능하다는 것을 내면화했다. 청소년세대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 정의와 안전에 대한 욕구가 급속도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이 민주시민교육을 펼쳐나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의미와 함께 기성세대의 헛발질도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도 동시에 갖는다. 기성세대는 보편적으로 자신들이 민주적 감수성이 낮다는 것을 우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층은 청소년 세대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감수성을 예민함으로 이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철학을 가치관으로 삼았다면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돌아봐야 한다.

 

  • 갈등 :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학교 안팎의 민주시민교육 운영이 어려운 이유는 위 네 가지 외에 더 큰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해 탐색하는 중일뿐이다. 한국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도출해내는 데 오랫동안 진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군부독재를 지나, 반공을 국시로 한 시대를 거쳐, 각자도생의 금융위기를 관통하여 경쟁이 체화된 시대를 살아냈다. 이들이 학교를 체험한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해봤거나, 학교 내 민주주의를 경험했거나, 민주 시민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까?

왕권국가를 지나, 식민지배통치를 넘어 스스로 이루어내지 못한 근대화라는 비판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고스란히 들여온 제도가 많다. 이제야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지고 있다. 사회의 많은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온라인과 SNS를 통해 각양각색의 토론이 시작된 이후 이제 우리는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조금씩 깨달아 가며,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

어쩌면 민주시민적 소양은 지금 기성세대보다 교실에 앉아 친구를 차별하면 안 된다며 자기 행동을 주의하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실천하려고 애쓰는 초등학교 1학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저 조금 더 살았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행사해봤다는 이유로,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는 민주시민교육 담론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주장들이 난립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인권과 불평등에 대한 소리도 높아진다. 혹자는 현재의 이 현상에 대해 혼란스럽고 시끄럽다고 폄하하기도 하나, 그 동안 도덕성과 애도로 합일되고 선악구도로 양분되었던 정치적 입장에서 억눌려 왔던 모든 의견들이 2016년 촛불을 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단계라 보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시민사회와 운동권에서도 소수자들의 의견은 대의를 위해 외면되어 왔다. 2016년 촛불 이후 각 교실과 거리에서 혼재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것들도 일관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개인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재구성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야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이는 그동안의 사회변혁 단계에 생략되거나 외면되어 온 과정이며 꼭 한 번 거치고 넘어가야 할 단계이다. 권력구조를 내면화한 기득권층과의 갈등, 또는 각 개인의 내면의 혼란을 동반한다. 인정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회의 한계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잘 해내고 있다는 상호간의 믿음이다.

 

학교 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끊임없는 갈등이 촉발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일어나야 하며 토론과 토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와 연계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의견 조율, 상대방의 입장 이해 등이 필요하다. 학교라는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지역사회가 가진 한계도 확인해야 한다.

지역의 민주시민교육이 학교로 진입하는 과정은 시민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을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학교는 또한 외부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사상들을 받아들여 보다 선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 발전 : 민주주의는 고요하고 우아할 수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은 실천적 과제다. 이론적 과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 가정 내에서 문해력을 갖춘 성인이 스스로 얼마나 민주적인 인간인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를, 미국의 토론교육에 비해,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준거해, 프랑스의 정치교육에 빗대어 우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가늠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다수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민주시민교육과 한국의 민주주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민주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자치와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 최선의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주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설득하는 작업이 민주시민의 궁극적 목표일진대 현재의 민주시민교육은 주권과 자치를 위해 싸우고 화해하는 협의의 과정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고 문화적인 소양을 갖춘 사회의 쓸모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 능력본위경쟁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한 결과로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적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마다 어딘가 꺼림직 하다면, 관료주의적 사회시스템에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해 성공해 본 기억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교복을 결정하는 일, 교칙을 정하는 일, 두발단속 기준을 변경하는 일, 도서관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화장실에 자유롭게 다녀와도 되는가에 대해 협의하는 일, 휴대폰을 수업 중에 사용하지 않는 일등, 사사로운 것부터 거대한 기준까지 학교시스템 전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것들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을 듣고 말하고 주장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치열한 투쟁을 버티는 인내를 거쳐 협의를 완성할 때 온다. “가만히 있으라”와 “학교에서는 조용히”라는 규율이 설득과정 없이 통용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성취는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까? 암묵적으로 동의해 온 모든 규율과 지금 당연히 여겨지는 가치들을 의심하고 전복시킬 모험심도 필요하다.

 

안양에서 진행해 온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얻어낸 각 지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교육지원청의 역할

교육지원청에서 예산을 마련한다. 이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준비해 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할 의사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교는 민주시민교육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 예산이 필요하다. 당장 파손된 책걸상을 바꾸거나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등의 시설투자부터 기본적인 교과과정에 필요한 예산 확보에 급급하다. 민주시민교육은 그 결과가 당해 연도에 나타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당연히 민주시민교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지원청은 먼 미래를 보고 학교 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우수한 강사진을 학교에 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강사비와 강사 양성교육에 관한 재원을 마련한다. 교육지원청에서 마련한 예산으로 강사교육과정을 거치면 강사진의 책임감과 자부심도 높아지고 학교측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방법도 역량껏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사회의 역할

이미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활동가와 전문강사진 중 학교교육에 임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의 강사진을 발굴한다. 구체적인 활동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마다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데 담당실무자의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업무 분담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네트워크는 각 분야별의 개성과 한계성을 동시에 인정하고 단단하되 느슨한 체계를 지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각 분야별로 전문성을 확보한 강사진을 양성하되 매년 4회기 이상의 워크숍을 진행해 보수교육을 철저히 하되 강사진의 변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자세도 필요하다. 각 단체는 학교 교육을 전담할 강사들의 교육을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강력하게 작동한다. 강사을 신뢰하게 그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막연한 믿음은 일을 그르친다. 믿을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고 수시로 점검하되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점검은 질책을 목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며 개선의 재료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각 단체의 실무자 활동가 전문강사들이 한 팀을 이루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도록 지원하는 단계를 수년 동안 실행하면 이들이 자연스러운 민주시민교육의 전파자가 된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실현은 기초단체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기 가장 좋다. 민주시민교육을 접한 아이들이 가정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되고 이에 부모들이 영향을 받거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 학부모들이 지역시민이고 이들로 인해 지역사회 전파가 진행된다.

기초단체에서는 민주시민교육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기반한 민주시민교육 관련 예산을 배정해 지역내에서 시민대상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 할 임무가 있다. 기초단체가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지역사회시민들의 역할이다.

 

학교의 역할

학교는 기본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가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고 시대를 읽는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이 민주주의의 실현은 성공의 기억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저항과 변혁의 욕구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학교 내 민주주의는 실현불가능하다. 개인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한 세상을 바꾸는 일과 같다. 무리하지 않되 스스로 변화할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어라, 는 명제가 왜 필요한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교육지원청과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나 학부모들의 요구에 휘둘리지 않을 철학과 신념도 필요하다. 휘둘리기 시작하면 민원을 처리하는 단순업무로 전락하기 쉽다. 단일 공동체 내에서 추구하는 공통의 철학이 필요하고 이를 굳건히 지켜낼 관리자의 자세도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은 교사가 학생을 믿지 못하고 관리자가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호간의 신뢰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 결론 : 아무도 모르는 민주시민교육, 가르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내에서 이루어내기 위한 이상적 형태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교양있는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며 합의하고 쟁취하는 시민성을 목표로 한다. 명목상의 협의기구(각종 위원회)가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내 모든 구성원의 권익을 이뤄낼 수 있는 치열한 협의과정이 선결되어야 한다. 녹색어머니회가 왜 필요한지, 이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관해 학부모총회를 통해 결정하고, 누구 엄마가 무슨 말을 했다고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학교를 비판했다가 제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말을 삼가는 학부모가 사라져야 하고, 교권침해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함께 해결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과 덕목을 준수하며 성공해 본 기억이 청소년기에 새겨져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실천이 필요하다는 기득권층에게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당신들이 민주주의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편하고 복잡하며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완성하지 못할 체제일 수도 있다. 이는 모든 이들의 욕구가 관철되고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내는 일이 인간 본성에 거스르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만 나는 민주주의가 공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기 쉬운 개인의 욕망을 위해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보조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지금 이 나라의 모든 욕망이 진열되는 전시장이다. 이 모든 이슈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극상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의 용어다. 그러나 “하극상은 안된다”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 정서다. 이 나라는 국가인가 군대인가? 정말로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철학이 탄탄한 사람에겐 가르치려는 어떤 텍스트도 무용하며 동시에 모든 텍스트가 가능하다. 지금 결여되어 있는 것은 공동체의 철학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시민의 역량과 협의의 요령이 선결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사회적 오류를 인지하고 하나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도록 협의를 연습하는 과정이 “민주시민교육”이다. 발언의 기회와 시간을 늘리고 불편한 이야기를 공론화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교육이라는 단어보다 더 나은 말이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지금부터, 이제부터 서로 묻고 답하며 만들어가야 할 체제다. 먼저 읽은 자들이 무지를 인정하고, 실천을 해나갈 때 학생들에게 배우고 나누며 삶으로 눈빛으로 함께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8월 26일 작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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