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할 때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가.

이는 특정할 수 없다.

기술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는 행간에 묻어나게 되어 있고, 글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 개인의 역사를 쓰고 공개하는 순간 나는 그 개인이 익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개인은 익명으로 돌변한다. 개인의 역사와 성품을 알고 그 개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해 본 사람들은 고통 받은 개인을 여전히 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와 관계 맺지 않았던 이들에게 개인은 익명이 된다.

어떤 사람, 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갖지만 동시대인의 의미를 갖는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익명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이 된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동시대인과 분절적으로나마 역사를 공유한다. 그 개인이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동시대에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과 역사를 공유하고, 그 개인이 여성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는 공통적 역사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지금의 아이들은 10년이 지나도 모두 슬라임과 액괴를 기억할 것이라든가, 지금의 40대 여성들이 위스퍼라는 생리대는 ‘날개달린 생리대’로 기억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집단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순간 개인은 상징성을 가진 익명이 된다. 한 사람의 역사가 상징이 되려면 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개인은 나름대로의 사건을 갖고 있는데 그 사건이 대중에게 공개될 때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은 코드, 즉 상징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상화는 피해갈 수 없는데, 어떤 주체들은 이 대상화과정을 거부하기 위해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도 한다.

개인의 역사는 그저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라지만, 그보다도 현대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명화가 완성된 사회인 경우, 사회는 그간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올바르지 않더라도 쉽게 파괴되지 않을 만큼 견고해지면서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 개인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말하고자 한다. 언어적으로 또는 비언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경우 신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생활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드러낸다는 것이다. 신체와 인격 안에 영원히 숨겨둘 수 있는 상흔은 없다고 믿는다.

발화할 수 있는 사람과 발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문해력의 문제이거나 언어구사력의 문제, 혹은 공개에 대한 용기여부가 관여한다. 공개에 대한 용기역시 발화하고자 하는 개인이 속한 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발화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망자가 되어버린 경우다. 죽은 사람은 발화할 수 없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발화한다. 죽음의 과정과 이유에 대해서 온몸에 상흔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이 개인의 의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망자의 말을 대신 풀어내기도 한다. 무고한 사람이 허망하게 떠날 경우 살아남은 자들은 무력감을 느끼는데, 이 무력감은 인간의 존엄이 사회 어디선가는 지켜지길 바라거나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대한 약속하지 않은 연대의식에 기원한다. 무력감은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어질 때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 때문에 안타까워한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결심한다.

한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의 무력감을 어찌할 수 없다고 소리칠 때, 누군가 그 손을 잡는다. 거기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다. 적어도 이 나라는 그런 과정을 통해 작동해왔다. 한 개인의 죽음을 통해, 그 죽음의 상흔을 통해, 애도하고 추모하며, 광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오늘 한 목격자가, 한 개인에 대해 목격한 바를 적었다. 혼자 추모할 수 없을 만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험도 어려운 일이지만, 목격도 쉽지 않은 일이다. 목격한 자들도 유사한 상처를 입는다.  목격자는 때로 유일한 증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들은 맥락 없는 타인의 사건에서 오기도 한다. 왜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고 강요하느냐고 묻느냐면, 그건 시대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글은 완성하지 않기 위해 부러 서둘러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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