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vs 팀추월

<컬링 VS 팀추월>

올림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수백년된 나무를 베어내는 걸 몰랐더라도, 순실이가 개입했다는 걸 몰랐더라도, 난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드라마 따위에 관심을 잃은 지 꽤 되었다. 교훈적인 이야기는 진부했고, 현실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귀찮았다.

올림픽 개막식이 이슈가 되고,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북한이 온다는 것 하나.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올림픽을 이끌어가는 건 아닌가 의심도 했다.

그러던 중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두 가지 일어났다.

여자 컬링이 사상 최초로 상위권에 진입했다는 것.

그 안에 숨은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동네 언니와 친구가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시작한 취미생활이 국가대표까지 오르게 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21일 저녁, 여자 컬링 대표팀은 조별 예선 7승 1패로 현재 덴마크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경북 의성의 의성여고 출신인 네 명은 잘 알려진대로 영미랑 영미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 친구로 구성된 지연과 혈연의 팀이다.

의성은 마늘로 잘 알려진 고장이기도 하지만 몇 달전 발표된 조사결과에 의하면 인구소멸도 1위로,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 1위이기도 하다. 시사인에서 취재한 기사를 보면 의성엔 산부인과가 없고 노인인구만 남아 의성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사람들도 인근 대도시로 다시 나가야 하나 고민한다는 얘기가 있다.

의성 사람들은 설령 인구소멸가능성이 1위더라도, 그 사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런 도시에서 세계 1위를 할 지도 모르는 여성 스포츠팀이 나타났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체육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 동네 언니, 동네 친구가 뭉쳐 올림픽까지 왔다는 건, 수년간 인기를 끈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비슷해 보인다. 이 팀의 인기는 혈연과 지연으로 꽉 짜여진 이 나라의 정서에 맞아 떨어지면서도 그들이 비수도권출신으로 성공스토리를 써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과거사를 밝힌 의성의 전 구의원의 글도 이슈가 되었는데 가정형편이 부유하거나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칠판에 <컬링 배울 사람> 이라고 쓴 글을 보고 하나씩 모여들었다는 건, 보는 사람들에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나만큼 평범한 친구”를 만나 말도 안되는 도전을 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단언컨대 이번 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컬링여성대표팀이며, 그 이유는 영미와 영미친구와 영미동생과 영미동생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컬링팀의 인기가 치솟는 사이에 여성 팀추월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팀추월이 무슨 경기인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팀워크를 이루지 못하고 한 사람을 따돌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 흥분했다. 한 명의 주자를 이끌지 못하고 낙오시킨 채 결승점을 통과하고, 실소를 뿜은 한 선수가 있었다. 밤새 대표팀 자격박탈과 빙상연맹 해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이 일어났고 이틀밤이 지난 오늘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숫자가 50만명이 넘었다. 분노를 금치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놀라웠다.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다는 이야기와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에 이어 빙상연맹의 오래된 파벌문제와 전명규 부회장의 공과논란이 엘리트체육교육에 관한 성토로 이어졌다.

하룻밤새 30만명 넘게 청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몇 개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따돌림 당한 것으로 보이는 노선영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고 그 사연에는 각자 겪었던 공동체 내에서의 따돌림 경험이 섞여 있었다. 수십개의 게시글을 읽고 나서 나는 분노의 원인을 여럼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는 라인을 잘못타면 망하기 십상이고, 알량한 권력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쉬우며 자기 의사를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어느 편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억울한 경험은 고스란히 공동체의 기억속에 쌓여 있었다.

2016년부터 이어져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의 불쏘시개는 정유라였다. 최순실과 정윤회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특혜를 받았던 아이. 그래서 달그락 훅, 하는 것으로 명문대학을 다녔고, 수십억의 기업체 후원을 받았으면서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주장을 했던 정유라에게 사람들이 분노했던 건, 특혜였다.

안 그래도 출발선이 다른 아이가, 특혜까지 받았다는 것, 평등과 호혜를 거스르는 일이다. 꽤 많은 인류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더 넓은 평등과 더 많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함인데,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이가 그 이유로 특혜까지 받는다면 수많은 민중이 민주주의를 지향해봤자 다 헛거다.

동료가 쳐진 것을 두고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인터뷰에서 피식 웃어버린 김보름 선수에 대한 비난을 보며 사람들은 정유라를 떠올렸을 것 같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엘리트체육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동계올림픽을 보는 사람이라면 아는 일이고, 게다가 대학과 파벌로 나뉘었다는 얘기까지 알려지면서 이 집단감정의 오버랩은 점점 강화되는 듯 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적폐는, 평등과 자유를 저해하는 수많은 집단의 구조일 것이다. 팀추월을 보며 화를 낸 이유도, 컬링을 보며 환호하는 이유도, 모두들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본다.

누군가의 실수, 누군가의 행운 따위를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나는 이 두 사건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토리가 무엇이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았을 뿐이다.

2018년 지금 이 나라 민중들의 원하는 스토리가 무엇인지, 왜 무한도전이 수년간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미래를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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