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의 바다

허리가 기역자로 고부라진 할머니를 보면 미원 맛이 최고라던 고흥의 박 씨네 할머니가 생각나곤 해. 도무지 일어날 수도 앉을 수도 없을 것 같던 노인이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었거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노인이 하는 일이라곤 온통 먹거리를 만드는 거였어. 그 집 마당엔 뭔가 펼쳐져 있었는데 계절별로 아마 다른 것들이었을 거야. 가을에 갔을 때는 유자껍질이 있었으니 그 전엔 고추가 있었겠고, 봄에는 또 다른 게 있었겠지. 헛간 옆에는 마늘과 양파가 매달려 있었고 서대라는 생선도 여기 저기 있었어. 하루 종일 널었다 걷었다 빻고 다듬고 하는 것들은 내가 슬리퍼를 꿰차고 집 앞 수퍼에 가면 10분도 안 돼서 사올 수 있는 것들. 섬에서 80년을 나무처럼 살았다던 두 노인 내외는 그런 먹거리들을 모두 손으로 다듬고 만져가며 마련했어. 그 집의 할머니는, 먼 바다가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집에 살면서도 한 번도 허리를 편 적이 없을 것 같이 완전히 허리가 굽어 있었지. 희한한 건, 그 집의 영감님은 키가 크고 훤칠했는데 허리가 얼마나 꼿꼿한지 먼 바다에 떠가는 작은 배도 한 눈에 알아차릴 것 같았거든.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다른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을까.

쪼그리고 앉으면 무릎이 턱에 닿던 고흥의 할머니를 생각해. 자식들이 가는 모습을 보며 이 빠진 입을 앙 다물던 모습을 보고 말았거든. 바위 위를 가볍게 넘나들던 노인을 보며, 나는 또 다른 노인들을 생각해. 우리는 어디서 헤어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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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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