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풍경 – 동네마트에서 소유의 경계를 넘기

nosmart

내가 사는 동네엔 동네 슈퍼라고 하기엔 큰 마트가 하나 있다. 대부분 이런 동네마트는 중견유통기업이 몇 개씩 점포를 가지고 있다. 때로 어떤 점포는 대기업에 인수되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에 마트대란이 벌어진 적 있다. 갑자기 동네마트가 세 개가 동시에 들어서고 기업형 슈퍼마켓도 하나 들어왔다. 1년 사이에 한 곳이 장렬히 전사하여 폐업하고 그 자리엔 비슷한 형태의 마트가 들어왔다. 정확한 명칭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동네마트”라고도 부르는데 어느 지면에서는 “지역마트”라고도 하고 “중견마트”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동네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설 때, 나는 종종 긴장한다.
내 앞에서 계산을 마친 사람이 영수증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자기 물건을 잽싸게 치우지 않을 때다.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앞 사람의 물건 옆에 내 물건이 떠밀려가고 있다. 앞 사람이 비닐봉투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다 담지도 않았다. 식은땀이 날 것만 같다. 저 사람의 물건과 내 물건의 경계에 가름대라도 놓아야 할텐데 동네 마트에는 대형마트에 있는 빨간 막대가 없다. 계산원은 개의치 않고 바코드를 빠르게 찍는다. 나는 물건을 올려놓은 이쪽에서 계산기 너머의 저 쪽의 물건들을 살핀다. 앞 사람이 내 물건을 가져갈 가능성은 고의보다 우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계산기의 바코드 인식기를 통과한 물건은 내 물건이고 인식기를 통과하기 전의 물건은 아직 마트의 것이다. 나는 마트의 물건을 나의 소유물로 전환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내 물건이 바코드 인식기를 통과해, 마트의 판매물품이 아닌 나의 소유물로 그 경계를 옮겨 완전히 내 것이 되기까지 20여초 남짓의 시간이 걸린다. 카드나 현금, 지불수단이 계산대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계산기를 한 번 더 통과하고 계산원이 영수증을 출력할 때까지 마트의 출입구쪽에 놓인 내 물건들은 마트의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의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있다. 앞서 계산한 사람은 콩나물 한 봉지와 무 하나를 들었다. 비닐봉투에 푹 쑤셔넣고 계속 그 자리에 서서 영수증을 다시 보고 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계산원은 내 물건을 밀어내기만 할 뿐 물건이 가야 할 자리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모양새다.
드디어 앞서 계산한 사람이 자기 물건을 챙겨 자리를 떴다. 나는 장바구니에 계산한 물건들을 주워 담으며 잽싸게 카드를 꺼내 계산원에게 주고 싸인을 하고 영수증을 챙긴다. 이 역시 20여초 안에 해결될 일이다. 앞서 간 사람이 머문 시간이 얼마나 되나 세어본다. 하나, 둘, 셋, 세어보면 1분도 안 되는 시간이다. 30초 정도에 수많은 감정이 일어났다가 가라앉는다.

중견마트도 대형마트만큼이나 근무조건이 좋지 않다. 더 열악한 곳도 많다. 계산원은 때로 물건 진열을 하다가 뛰어와야 하고 배달을 선택한 손님을 위해 박스를 챙겨와 물건을 담아야 하고 주소지를 확인해야 한다. 고객의 물건이 소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은 없다. 빨리 계산을 마치고 싸놓은 동전을 풀어야 하거나 영수증용지를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온 부품을 조립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정신을 압도하는 진열대와 정육, 생선, 과일코너가 외치는 유혹을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 그 사이사이에 댄스곡이 쿵쾅거린다. 좁은 통로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기어코 물건을 사서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 그 누구의 궁금증이나 불만을 참아낼 시간이 없다. 앞서 계산한 사람의 이야기, 이를테면 왜 이렇게 양파 값이 올랐는지 궁금해 하거나, 지난번에 사간 복숭아가 금방 상했다는 불만 따위를 들어줄 시간이 없다. 내 뒤에 나와 같이 물건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난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혹은 빨리 계산을 마친 직원이 다른 일을 하거나 10초라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는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바코드 인식기도 쉬지 않고 삑삑거린다. 느린 사람의 속도를 기다려줄 체제는 없다. 돈은 빠르게 돌고 돌아 영혼을 압도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으니까.

 

2016년 3월 7일

 

http://www.koco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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