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장례 – 2016년 1월 21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사랑의쉼터, 돈의동 첫 작은장례를 치르다.

 

돈의동은 탑골공원의 담벼락을 끼고 돌아 종로 3가에서 5가의 숨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주거지역이다. 주소는 돈의동 103번지. 103번지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한 사람이 산다. 103번지에만 700여명이 산다. 이들은 모두 혼자 산다. 옆 방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삶을 나누며 형제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이도 더러 있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혼자다. 사람들은 이들을 쪽방촌 홀몸노인, 혹은 독거노인이라고 부른다. 700여 명 중, 노년층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노인인 것도 아니다. 103번지의 골목을 오가다 보면 꽤 많은 장년층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청년 장애인도 눈에 띈다.

고독사가 이슈로 부각되며 노인고독사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통계청에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고독사망자 연령비율 1위는 60대 이상 독거노인이 아니라, 50대 남성이었다.

103번지 주민들은 어딘가가 아프다. 젊은 시절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 직업으로 인한 질병을 얻은 사람, 여러 이유로 마음을 다쳐 술로 달래다 몸도 다친 사람, 직업병, 만성질환, 성인병, 신체적 정신적 장애, 이들은 모두 각자 다양한 이유로 아프고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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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도에 붙어 있는 돈의동 지도

가족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공동체다. 이 기초공동체를 기반으로 사회가 이루어지고 지역과 국가와 이익집단이 탄생한다. 기초공동체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돈의동과 다른 쪽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개체가 되어 골목을 떠돈다. 이들은 가난과 굶주림, 추위나 더위 따위의 물리적 환경은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몇 년 전 노숙자 인문학운동을 하던 이가 했던 말을 잊지 않는다. 노숙자의 공통점이 게으르거나, 술문제가 있거나, 아프기 때문인 거 같냐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가족이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대화를 할 사람도, 없어요.”

돈의동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세상에 가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태어나고 사람에 의해 길러진다.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는 막막한 어둠,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 한다. 돈의동에 모인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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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103번지. 2015년 가을촬영

이 돈의동의 복지를 담당하는 것은 종로1,2,3,4가 주민센터와 사랑의쉼터라는 복지관이다. 복지관은 구세군재단이 위탁운영을 한다. 작은 골목의 사이로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 지하엔 교육관과 샤워시설이 있고, 1층과 2층엔 휴게공간이 있다. 3층에는 사무실과 상담실이 있다. 이화순소장과, 사무국장과, 복지사 둘이 이 공간에서 업무를 본다. 복지관 쉼터 계단에는 “주폭”에 대한 경고가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술을 먹고 난동을 피우는 주민들이 많다. 5년간 일한 복지사는 주민에게 폭행을 당해 상해를 입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거기 있다. 주민들이나, 주민복지를 책임지는 행정직들도 술 때문에 괴롭다. 술을 마셔서 괴롭고 못 마셔서 괴롭다. 술에 취해서 괴롭고, 술이 안 취해서 괴롭다.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맨 정신에 버틸 수 없는 날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가난한 자들의 마취제는 화학작용으로 만든 술뿐이다. 소주 한 병 만큼의 위로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다들 자기 한 몸 누일 쪽방보다 커다란 사연을 품고 산다. 죽이고 달래고 얼러봐도 상처받은 일들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추운 날 시린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길모퉁이에서 툭 치고 튀어나오는 고통이 이들을 들볶는다. 사연을 말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추운 겨울, 쪽방촌에 죽음이 문을 두드린다. 한 달에 한두 명은 시신이 되어 103번지를 떠난다. 이들은 무연고자다. 공고를 내도 가족을 찾아도, 시신양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죽음은 무연고 독거자의 시신처리라는 이름을 쓴다. 장례절차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죽어 사라질 육신은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103번지의 이웃들은 애도를 표할 방법이 없다. 살아서 한 줌 도움이 못되었다면 가는 길이라도 잘 보내주고 싶은 103번지의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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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쪽방촌의 한 건물. 아래에서 위로 3층까지 주거공간이 있다. 2015년 여름 촬영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죽음의 의식을 개선하는 단체다. 상업주의에 휩쓸려 가정의 대소사도 외주를 주게 된 이 시대에 함께 하는 상포계를 통해 의례의 힘을 확인하고자 한다. 자본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출자금과 조합비를 내고 혈연으로 한정하지 않은 타인의 장례를 준비한다. 그 조합비의 24%중 20%는 조합운영비, 그 중 1%를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하고 4%는 연합회 회비로 사용한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성을 가진다. 무턱대고 사회공헌만 하는 곳은 협동조합보다 사회복지재단이 걸맞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모인 협동조합이라면 공동체의 회복에 지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이 원칙을 지켰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는 상포계를 통해 상장례의식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기 분야를 지키며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MOU를 맺었다.

직장으로 처리되는 돈의동 주민들의 장례를 대신해서 치르기로 약속했다. 병원의 영안실이나 상조회사의 식사대접, 화려한 제단과 방문객을 대신해, 이웃들이 죽음의 본질을 생각하며 애도하고 한 번쯤 그를 기억하고, 영정사진을 놓고 잘 가라고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함께 살던 공간에서 그를 기리는 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착안한 “작은 장례”이다.

장례의식은 상업적 상조회사의 난립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알고 있는 장례절차는 전통의식과도 다르고 죽음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도 아니다. 상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계산서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남았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작은 장례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사회환원이기 때문이다. 2015년 겨울이 깊어갈 때 작은 장례를 약속했다.

2016년 1월에 돈의동에서 사망자가 발생했고 약속한대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사랑의쉼터와 첫 작은 장례를 준비했다.

좋은 일을 할 때 외부에 얼마나 알려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갈등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의 가르침 때문인지 좋은 일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작은 장례를 준비하며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이 사람의 죽음을 한 번쯤 기억해 달라는 의도였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추도식을 취재하겠다는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무국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슈화되어 이것이 마치 행사처럼 비춰질 때, 가치가 훼손되고 본질이 곡해될까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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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사랑의쉼터 복지관 앞 2016년 1월 21일 아침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아침. 며칠 째 혹한이 몰아치고 있었다. 엘니뇨현상으로 겨울이 따뜻할 거라더니 자연현상은 인간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이라도 하듯, 일주일째 영하 10도에서 수은주는 깔짝대기만 했다. 대설이었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겨울철 맑은 하늘은 추위의 상징이다. 하늘이 맑고 햇빛이 쨍쨍했다. 사랑의쉼터 앞에는 카메라와 휴대폰, 수첩을 든 취재진들이 몰려왔다.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가시는 길 평안하길 바란다는 추도사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김상현 이사장이 읽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이사장과 사랑의쉼터 이화순 소장이 상주가 되었다. 삼베완장을 차고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웃들이 소식을 듣고 와 조문을 했다. 사랑의쉼터 지하 교육장엔 작은 제단이 차려졌다. 고인의 독사진도 없어 주민등록증을 확대해 영정사진을 놓았다. 검소한 꽃바구니 두 개가 제단을 지켰고, 흰 국화와 향, 간소한 제기가 놓였다. 간단한 다과가 한쪽에 차려졌다. 쪽방만한 돗자리에 이웃들이 차례대로 신을 벗고 올라가 고인과 이별했다. 신발을 벗은 맨발을 사진기자가 뒤에서 찍었다. 굳은살만 남은, 한 생명의 삶을 말해주는 발뒤꿈치에 애도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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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아이가 조문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에게 소주 한 병의 위로가 되었을까.

적어도 오늘 돈의동을 떠난 고인의 죽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여기 한 사람이 힘들게 살았고, 그리고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를 기억했고, 2천 원짜리 국수를 지하시장에서 먹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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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지하시장, 조문객들은 2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나눠먹었다.

몇 사람은 말했다. 나도,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는데, 나 가는 길도 저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2년째 결연장례를 약속했다. 가는 길을 약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집단구술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이 늘어나고 한겨레두레의 공동체기금이 늘어날수록 외로운 죽음이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 같은 하늘 아래 머리를 내리고, 같은 땅 위에 발 딛고 살던 사람들은 먼저 가는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그의 삶을 기억하고 이별을 슬퍼할 권리가 있다. 사람답게 사는 길 너머에 사람답게 이별하는 의식이 있다. 장례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차가운 삶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질지도 모른다.

골목에 뒹구는 소주병처럼 깨어지지 말자고, 훈훈하게 덥힌 따뜻한 술이 되어, 고인의 가는 길을 덥히고 싶다.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에 살던 故김철구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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