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의 일기

#1.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야. 너 그런 거 알아?
여기가 그냥 낭떠러지라고. 발 한 번 헛디디면 죽는 거란 말야.
#2.
언제 힘들지 않은 적 있었나 잘 생각해보아.
그런 일은 없었지. 그저 다른 것으로 덮으면서 지내왔을 뿐.
힘겨운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하고 드문드문 몰려오기도 했을 뿐.
그 때 그 때 그 일들을 덮을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서 늘 덮으며 걸어왔지.
때로는 폭발을 했고 때로는 영원히 잊혀지는 듯 보였어.
뱃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들은 안에서 썩어문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건 잘 익어서 튀어나오기도 했어.
꼭 나쁜 일들만 벌어지진 않았지만, 잘 감추고 있던 걸 거꾸로 토해내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야.
#3.
언제나 “힘”을 이용했군요.
그렇다.
물리적인 힘, 근력뿐 아니라, 언어가 통하는 세상에서는 언어를, 시선이 필요한 세상에서는 시선을, 권력이 필요한 곳에서는 권력을, 언제나 장악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기 원했다.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땅따먹기였으며, 물건이 제자리에 없으면 화가 났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물건을 배열하고 언제든지 내가 기억하는 장소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두는 것은, 나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일련의 통제과정이라고 봤을 때, 내 뜻대로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뜻대로 되는 게 있었나요?
절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세상은 어긋나고 이지러졌다. 계획을 세우라 하면 웃기는 소리라고 비웃었다. 인생의 계획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비아냥거렸다. 세상일은 절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현명하다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은 박탈감을 가져왔고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통제를 해야 했다.
그것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끝없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하고, “남다른” 자가 되어야 했어요. 눈에 띄어야 했고 이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고 확신했죠.
세상이 우스운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도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습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역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그 무엇이 되더라도 바닥의 돌맹이라도 주워 던져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가을이 되었다.
비슷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화가 나는 일은 덜하겠지.
문득 문득 영혼이 내 어깨를 친다. 이봐. 알고 있지? 라고.
201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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