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the hill

up the hill 이다. Hooker hill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고만고만한 juicy bar ( 두 잔 값을 내고 한 잔을 마시면 한 잔의 가격이 아가씨에게 돌아가는 체제) 들이 있고 맨 위에 스텀퍼라는 댄스클럽 ( normal한 pop음악) 이 있고 그 밑 우측엔 프렌즈라는 곳이 있었다. 사진으로 간판이 보인다. 프렌즈에는 당시 흔치 않던 포켓볼 다이가 있었고, 다트판도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갈만한 장소였다.

그 윗쪽에서 스텀퍼 사이에는 오란씨와 소주를 섞은 소주케틀kettle을 1.5리터 PET 병을 자른 것에 담아 팔았는데, 일반 미군 사병들이 자주 사 마셨다. 그 아이들은 보통 16세부터 시작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저학력층 아이들도 적지 않아 자기 이름 정도 겨우 쓰는 아이들이었고, 하루에 50단어만 사용한다는 전설의 계급층이었다.

맨 꼭대기엔 남산모텔인가 여관인가 하는 엉뚱한 여관이 골목의 마무리를 했고, 그 골목의 왼쪽으로 틀어서 내려가면 매번 불이 나서 문을 닫는 나이트클럽이 있은 유명한 계단(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연출) 연결된 길이 있다.

간혹 미군 헌병대가 나타나면 골목이 좀 얌전해졌고, 비상이 걸리거나 미군범죄가 일어나면 모든 일반사병은 외출금지가 걸려 이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병들을 상대하는 저렴한 술집들이 있어, 고위 장교나 다른 외국 비지니스 맨들은 이 곳을 찾지 않았는데, 유독 스웨덴 네덜란드 등 스칸디나이아 근처 복지국가쪽 엔지니어들은 이 곳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발전기를 파는 북유럽 A모회사 팀들이 특히 이 골목을 좋아했다.

당시 매우 인상깊은 커플이 하나 있었는데 50대의 북유럽 엔지니어 커플로, 비혼이었는데, 아줌마는 작고 마른 체형에 아주 머리가 길고, 아저씨는 콧수염이 난 바이킹 같이 생겼었다. 이 둘은 주말마다 이 골목의 입구에서 헤어져 밤새 각자 놀다가 동 틀무렵 헤어진 곳에서 다시 만나 집으로 돌아갔다.
Honey, did you have fun?
Yes, I did. How about you?
Me, too!
I’m very grad to hear that you had fun!

스텀퍼stumper 에는 이태원에서 잔뼈가 굵은 듯한 한국인 디제이 아저씨가 있었는데 언제든지 내가 Gloria Gaynor의 I will survive 를 틀어달라고 하면 두 번 세 번씩도 틀어주곤 했다.

이 사진이 찍힌 지점의 좌측쯤에 있던 업소에서 그 당시에 여성접대부가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 관광특구로 개발되고 이태원이 내국인에게 업소를 오픈해야 하는 규정이 생긴 뒤 IMF가 터지고 이 골목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때 흥이 좋은 (군인들에게도, 민간인들에게도 아무 불행한 사건도 없는) 때에 이 골목은 사람으로 꽉 차서 걸어올라가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때 나는,
스물 셋에서 스물 다섯,
하루종일 미니스커트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계단을 뛰어다니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나르다가 12시에 마감을 하면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떨구는 대신 카스 한 병 마시고 카스 두 병을 마시러 이 골목의 프렌즈를 김언니와 올라갔었다.

알콜중독으로 비명횡사할 것 같던 김언니는 일본남자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는 지금 고등학생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제 에비가 사다 준 설렁탕 반그릇을 먹은 아이가 “아 행복하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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