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인증에 실패했습니다

시장 근처에 옛날통닭과 생맥주만 파는 집이 있다.
아이가 그 집 통닭이 제일 맛있다고 해서 가끔 가서 포장을 해 온다.

오늘은 통닭 두 개를 튀기고 지역화폐카드를 내밀었더니 통닭집 남자가 이거 어떻게 쓰느냐고 묻는다.
동사무소 가서 받아왔는데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고. 여기 돈 들어오면 문자 오는거냐고 물었다. 나는 ‘앱을 까시고 통장을 연결하셔야 한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앱을 깔아드릴까요? 물었더니 휴대폰을 냉큼 가져왔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여는데 연결이 잘 안되어 보니 로그인이 안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아, 구글 계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메일이 있어야 해서요.”
“아휴 나는 그게 뭔지 몰라요.”
“제가 해드릴까요?”
“아휴 그래주면 고맙죠.”

나는 다 튀긴 통닭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메모지와 펜을 받아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구글아이디를 하나 만들었다. 비밀번호는 쉬운 걸로 만들어 메모지에 적었다. 그제서야 내 앞에 앉아 있는 초로의 남자가, 사장이 아니고 직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인인지,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 남자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구글계정을 일단 만들고 구글플레이스토어가 열려서 경기지역화폐 앱을 다운받았다.
“이거 다운받으면서 통장 연결해서 쓰시는 거예요. 통장 번호 기억하세요?”
“통장 없어요.”
“아.. 월급 들어오는 통장 같은거.. 전혀 안 쓰세요?”
“통장 없어요.” 라고 같은 대답을 하자, 주인여자가
“기초수급 들어오는 통장 있잖아요.”라고 말을 보탰다.
앱 다운로드가 완료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통장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앱이 열려서 이용약관에 동의를 하고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삼촌”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어느 통신사냐고 물으니 삼성폰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바탕화면으로 넘어가 앱을 몇 개 살펴보니 LG U+ 앱이 보여 통신사는 엘지신 거 같다고 하면서 본인인증을 시작했는데, 본인인증이 계속 안됐다.
기초수급이 들어오는 통장이 있다는 얘기가 떠올라,
“이 전화번호 삼촌꺼세요? 누구 명의로 되어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여동생이 해줬다”고 대답했다.

본인이라는 걸 인증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나는 그 사람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삼촌은 내 손에 들려 있던 자기 전화기를 살짝 잡았다.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아이고 됐어요. 닭만 다 식었네. 제가 내일 동사무소 가볼께요.”
나는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삼촌’에게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시고요. 혹시 앱으로 뭐 해야된다 라고 하면 이거까지 했다고 얘기하시고요. 이메일 만드는거요. 본인인증이 안되면 상품권으로 받으실 수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게 받으셔도 될거예요. 아무튼 가서 물어보세요.” 나는 닭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인사를 하고 닭봉투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서 자물쇠를 푸는데 주인여자가 나와 문앞에 서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장사하세요?”
“아.. 예.. 저 이런 저런거.. 글도 쓰고.. 시민단체 일도 좀 해요.”
“그래서 그렇게 착하시구나. 고맙네요. 이거 너무 어려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줘도 못 써요. 괜히 시간만 버리고 맛있게 못 드시게 됐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누군가에겐 앉은 자리에서 꿈적앉고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 되어간다. 본인인증을 할 수 없고, 자기 명의로 된 휴대폰이 없고, 자기 통장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 선한 피해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과거를 자꾸 후회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나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말했던, ‘삼촌’은 잠을 잘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집엔 에어프라이어도 있어요. 집에 가서 덥혀 먹으면 돼요. 닭 식은 건 괜찮아요. 모두 해결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자전거를 타고 오며 못 다한 이야기를 혼자 머릿속에서 떠들었다.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들이 왜 착한 척 하고 다니냐고 한다.
확 마…

 

2020. 5. 17.

KakaoTalk_20200518_171126432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