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게 견디는 삶

구구절절 갈등이 있었다.

어쨌거나 수개월이 지났고, 내가 맡은 일을 마무리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생애사쓰기를 한 게 2013년. 그 원고를 억지로 책으로 내놔보자고 덤빈 게 그 해 가을. 오직 그 책을 위해 출판등록을 했고 그 책을 위해 인디자인을 배웠다.

변화된 장애아엄마들과, 한껏 뿌듯해진 중도장애인과 다섯 군데 사회복지학과를 돌며 북콘서트를 연 게 2014년. 그리고 올 해는 장애아이들과 그 엄마들이 함께 바이올린을 배우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사진은 계약에 없었지만 내가 찍고 싶어 찍었다.

 

토요일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수업을 했다.

자폐 아이가 다수였고 소아마비인지 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하나, 다운증후군 아이가 하나.

장애인을 기억할 때, 이름이 아닌, 질병의 이름과 증상으로 지칭한다.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이 이렇게도 저열하다. 부끄럽기 짝이없다.

그래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보자. 형주와 민지와 준영이는 자폐아다. 하영이는 다리가 불편하고, 주희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엄마들이 바이올린을 잡으면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로 돌입했다.

키 크고 잘생긴 형주는 책상에 앉아 계속해서 낙서를 했다. 큼직한 글씨로 마구 마구 뭔가를 썼다. 그러다 일어나 저보다 한참 작은 엄마를 내려다 보며 물었다. “엄마 뭐해?”, “엄마 왜 그래애?”

민지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기분이 동하면 계속 교실을 뛰어다녔다. 앉은 자리에서 비타오백을 다섯 개씩 까먹었다. 가끔 손톱을 물어뜯다가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교실바닥에 진동이 울렸다. 간혹 바이올린을 잡고 마구 소리를 내다가 제 엄마의 양볼을 잡고 뽀뽀를 해댔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 민지가 눈을 맞추는 엄마에게 뽀뽀로 말을 했다.

준영이는 구석에 앉아 의자를 돌리고 놀다가 가끔 엄마를 바라봤다. 나와도 눈을 맞췄다.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손으로 반짝빤짝 시늉을 내며 교실을 계속 돌았다. 바이올린 선생님과 눈도 맞추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주희는 혼자 칠판에 뭔가를 쓴다. 1인극을 하듯이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재미난 동화를 듣는 기분이다. 소리를 크게 내고 의성어와 의태어도 잘 쓴다. 마구 이야기를 하다가 칠판에 아는 글자를 한참 적고 혼자 웃는다. 가끔 엄마와 대화도 하고 사람들과 한 두 마디 주고 받는다.

하영이는 입을 꼭 다문 엄마 옆에서 열심히 연습을 한다. 엄마와 똑같이 입을 꾹 다물고. 다리가 불편하다고 앉은 적 없다. 가끔 연습을 쉴 때만 앉았다. 늘 부끄럽고 쑥스러워했다.

 

시린 봄에 수업을 시작했다.

갑자기 온도가 떨어진 11월에 발표회를 열었다.

엄마들은 드레스를 빌려 입었다. 주저하는 엄마들을 선생님이 밀어부쳤다.

한 것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옷만 꾸민다고 욕 먹을 거라는 엄마들에게 바이올린 선생님이 충분히 입을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니 꼭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운 옷을 입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무대에 섰다.

눈물이 나서 뷰파인더가 보이지 않았다.

 

영상을 찍으며 뒤에 서서 혼자 스카프로 눈물을 마구 닦았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어느 한 순간, 남들 앞에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당신과 많이 다르다고, 나의 아이는 당신이 왜 화를 내는지도 알 수가 없고, 당신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폐를 끼쳤다고 그렇게 늘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내 아이가 얼마나 다른지 설명해야 하고 내 아이가 얼마나 부족한지 내 아이가 얼마나 느린지 말해야 하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다른 아이와 같아지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 단 하루만 있으면 내일 죽어도 좋겠다고 그 엄마가 말했다. 평생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지옥을 누가 알겠냐고 말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아이가 다르다고, 내 아이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늘 말해야 하는 삶인 것이다. 이유가 있어야 삶인가. 이유가 없으면 삶이 아닌가.

고난이 겪는 성숙이 있다고, 좀 덜 성숙한 채 막살면 어떤가, 그러면 인간이 아닌가.

대충 살 수 없는 시간을 꼿꼿하게 견뎌야 산다.

 

커튼 뒤에서 미리 나와 빼꼼 쳐다보는 주희와, 무대에 엄마에게 뭔가를 물어보기 위해 마구 걸어 나오는 형주와 무대에 오르지 않은 준영이와 민지가, 같이 있었다. 기억속에도, 마음속에도.

찬란한 소리가 있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2015. 11. 26. DSC_8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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