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칼을 든 사람들

지금 그 곳은 비에 씻겨내려가 완전히 사라진 마을위에 새로 지은 아파트처럼 아무 흔적도 없을 것이다. 엄마는 그 길의 가게에서 성경책과 성화를 팔았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에벤에셀, 우리 집을 돕는 돌. 엄마의 가게는 하나데코, 그림의 집, 에벤에셀, 임마누엘 따위로 바뀌어왔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성경의 단어가 들먹여졌으나 축복 따위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다란 작업대가 있고 엄마는 그 작업대에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중간엔 난로가 있었는데 사시사철 파라핀을 녹여 양초를 만들었다. 베니어판이 벽면에 기대어 서 있었다. 포르말린과 파라핀을 넘어 작은 쪽문을 열면 나와 엄마, 동생과 새아빠가 사는 두 칸짜리 방이 나왔다. 화장실은 이 가게를 만들 때 새아빠가 변기를 사다가 붙여 만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겐 꽤 넓은 곳이었다. 가게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었지만 밝지 않았다. 엄마는 매듭과 양초 액자를 만들어 팔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와 성경책과 성화를 사가곤 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카라얀의 사진이었다.

작은 방은 벽지를 사지 못해 가게에 남아 도는 포장지로 벽을 바르고 늘 준비되어 있는 베니어판으로 방을 나누어 두 칸을 만들었다. 새아빠는 비디오라는 기계를 가져와 무협드라마를 빌려다 봤다. 어떤 것은 28편까지 이어져 있어 한참을 봐야 했는데 나도 옆에 앉아 오랫동안 그 드라마를 신나게 봤다. 가게를 나서면 차 두 대도 지나갈 수 있는 너른 길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길은 꽤 넓어서 골목이라 하기 어려우나 그 길을 중심으로 몇 집들이 이웃하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치면 엄연히 골목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우리 집과 마주보는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었고, 여인숙이라는 작은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엔 하늘색 대문이 있는 집이 있었다. 하늘색 대문집의 안은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한국아줌마와 미국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미국아저씨는 군인인지 군에 소속된 직업인인지 알 수 없다. 군복을 입었던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저씨는 나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부부는 아이가 없었고 나이는 엄마보다 많았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엄마와 그 집 여자였다. 아저씨는 내가 소풍을 가기 전 날 프링글러스를 사다주기도 했고 간혹 초콜릿이나 레이션 같은 것도 가져다줬다. 키가 커다란 미국아저씨가 하늘색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같이 살던 여자도 환하게 웃던 모습이 남았다.

 

하늘색 대문 옆 집이 우리집과 마주보던 집이었다. 커다란 기와집, 여인숙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던 그 곳은 마당이 넓고 미음자로 방이 이어진 곳이었다. 여인숙의 주인은 혼자 사는 여자였는데 얼굴이 작고 검었으며 말수가 적었다. 여인숙의 문은 앞 문은 늘 열려 있고 뒷문도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보면 그 여인숙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 골목에서 나는 아이들과 주로 딱지치기, 구슬치기 뿐 아니라 담방구나 잡기 놀이도 하고 부자집 딸래미 상미가 타지 않는 자전거를 내 맘대로 끌어다가 보조바퀴가 박살이 날 때까지 타기도 했다.

어느 어스름에 아이들과 마구 뛰어다니며 놀다가 얼떨결에 그 여인숙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줌마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아줌마의 옆에 얼굴이 검고 긴 남자가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인숙의 주인여자에게 아이들은 없는 존재였다. 내가 그 곳을 들락거리든 말든 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지청구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바보 같다고 여긴 것도 아니다. 주인여자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의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범접할 수 없는 공기가 그 여자의 얼굴에 가득했다. 늘 손에 부엌칼을 들고 있을 것만 같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영매같기도 했다. 검고 작은 얼굴과 눈에 띄지 않는 이목구비, 지독하게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여자의 알 수 없는 분위기는 원래는 무당이었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믿게 만들었다. 그럴만도 했고 그래 보였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 그 골목을 누비던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입이 찢어진 홍콩할매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여인숙의 문턱을 넘은 건 절대 아니다.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고 나는 몸을 숨길 곳을 찾다가 늘 문이 열려 있는 여인숙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것뿐이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은 주인여자는 커다란 칼을 들고 뭔가를 다듬고 있었다. 그게 조막만한 마늘인지, 커다란 생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아주 생생하게 들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내가 무척 가까이에 접근했음에도 그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만 확실하게 남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날, 초등학교 3학년이고 학교가 파하면 매일 매일 엄마에게 다른 이유로 밥 먹는 것과 별 다를 일 없는 매타작을 하고 피아노학원을 다녀와 내내 뛰어다니고 놀던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또렷했던 이야기는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고스란히 들은 나는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시무룩해 진 채 아이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놀이의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시원스럽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봤더라면 기분이 어땠을까.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는 늙은 남자는 아가씨값을 깍아달라 하고 식칼을 들고 먹거리를 다듬던 여자는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을 면치 못해 자기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의 집 일을 다녔다. 동네 다른 집 일을 봐주느라 자기 아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챙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루는 여자가 일 봐주는 집 아이가 울어 업고 달래느라 집 밖으로 나왔는데 자기 아이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 아이가 아장아장 노는 모습을 보며 울어 제끼는 남의 집 아이의 엉덩이를 연신 토닥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멀리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여자의 아이를 치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뇌가 터져 죽었다. 그게 그 여인숙집 주인여자다.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독한 년, 얼마나 독할까. 그래서 엄마는 모든 일을 포기하고 가게를 하면서 너희를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도 포기하고 학위도 포기하고, 나는 박사도 교수도 화가도 될 수 있었는데 오로지 너희 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지를 먹으며 액자를 짜고 있따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감사했다.

 

이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아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살던 동네는 미아리텍사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길음동 현대아파트였다.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학교를 가면 텍사스는 마지막 손님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빠져나온 손님들은 길음역 전철역 앞에서 자신의 토사물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하루 장사가 끝난 여자들은, 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유달리 다리에 상처가 많았다. 멍들었거나 모기에 물렸거나 마른 다리 곳곳이 성한 곳이 없이 텍사스에서 빠져나와 나와 같은 편의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뎅을 사먹었고 나는 트윅스 하나를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이어폰을 절대 빼지 않았지만 때로 소리를 죽여 놓고 그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으려 했다. 아이들은 그저 편의점에서 이루어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텍사스를 가로질러 왔다. 사실 텍사스의 입구를 지나지 않으면 집으로 갈 다른 길은 너무나 멀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 끝에 여러 사람이 모여 낄낄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쥐를 한 마리 잡아 꼬리를 자르네 머리를 자르네 하며 히히덕대고 있었다. 얼굴이 검고 마른 남자가 담배를 물고 식칼을 들고 있었다. 역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길을 지나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동창들을 자주 만났다.

호프집에서 일하다가 단란주점으로 옮겨간 어떤 녀석이 자기 주방장이 어떤 사람이냐를 이야기하며 주방에 들어온 쥐를 토막 내어 음식에 넣는 것을 봤다며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텍사스에서 식칼을 들고 있던 남자와 일면식도 없는 주방장이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왜 그들은 한 팀이었다. 왜 그들은 공통적으로 쥐를 토막내고 싶어하는지 무서우면서도 궁금해졌다. 쥐를 토막내어 거대한 냄비에 넣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수돗가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여인숙 여자가 들고 있던 식칼도 떠올랐다. 여인숙 여자도 생쥐를 발견하면 꼬리를 잘라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곤 했을까.

 

며칠 전 천호동 사창가에 대한 뉴스를 읽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라디오 프로그램 앵커가 물었다. 그 글을 읽는 내내 뜨거운 여름 번쩍 하고 빛나던 텍사스 골목의 식칼과 그들이 모여서 히히덕대던 웃음소리와 활기찬 아침의 굿모닝팝스 오성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한데 엉겨 나에게로 쏟아졌다.

 

2014. 7. 22.

이 글을 쓰게 한 기사

http://www.cbs.co.kr/radio/pgm/board.asp?pn=read&skey=&sval=&anum=56267&vnum=4417&bgrp=6&page=&bcd=007C059C&pgm=1378&mcd=BOAR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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