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야기 1- 김여사

김여사가 3층에 옥탑하나를 얹은 건물을 지은 것은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1층에는 서너개의 점포에 세를 주고 2층엔 살림집이 세 가구 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지하도 꽤 평수가 넓어 어떻게든 세를 낼 수 있을터였다.
동네엔 평수 작은 빌라들이 촘촘히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수퍼와 시장이 생겨났다.
근처엔 더러운 개천이 흘렀고 옥상에 올라 보면 산이 보였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그리운 것은 변함 없었다. 구태여 그립다는 단어로 표현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한가롭지도 않았다. 돈을 쌓아놓고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라 어느정도의 부채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부쩍 자라 대학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터였다.

옆 건물엔 두서너살 많은 여자가 1층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올린 머리를 한화려한 여자였다. 건물을 올릴 때 일꾼들 찬을 해다 나르곤 하면 힐끔힐끔 들여다 보는 게 영 거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동네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은 그럴싸한 건물이 한복판에 들어선다며 입방정을 떠는 모양이었는데 그 모양새가 그닥 싫지도 않았다.

건물을 다 짓고 아들 셋을 앞세우고 이사하는 날 옆 집의 올린머리 여자는 빤히 식구들이 짐을 나르고 일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양을 내리 보고 있었다. 어찌됬든 이웃간이니 인사나 나눠볼까도 싶었지만 놀란 괭이눈 같기도 하고 째진 메기입같기도 한 게 영 밥맛이 떨어져 아는 척 할 맘이 싹 가셨다.

일 년쯤 지난 뒤에 옆 집 여자는 김여사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고 때때로 불쾌한 말을 서슴치 않았으나 지척에 사는 입장에 쓴 소리 하거나 얼굴 붉히기도 싫어 참 특색있는 인물이다 생각하고 지냈다.

“나는 자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세상에 저 여자는 뭔 복이 있어 저렇게 새파란 나이에 이런 삐까뻔쩍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오나 하고 빤히 봤다니까.”

옆집여자가 1년쯤 지나 김여사에게 칭찬이랍시고 한 얘기였다. 올 때마다 빈 손으로 와서 이런 저런 동네 흉이나 늘어놓고 가는 옆집 여자였지만 김여사는 새파란 나이에 뭔 복이 있어, 라는 말이 싫지 않았다.
스무살에 남편을 만나, 그간 부엌없는 집에서, 화장실 없는 집에서 전기 아껴가며 애들 눈 버려가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옆집여자에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편하게 살아온 여편네로 알아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김여사는 헤헤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 치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소란스런 옆집 여자가 감색 자켓을 하나 빌려서 돌아가고 난 뒤였다.
먼 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다 큰 아들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빈 집으로 긴 햇살이 들이치는 날이었다.

–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라 휴대폰으로 적어봄..
좀 진지하게 써볼 걸 그랬나..

 

2014. 6. 29.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