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어느 밥집

결혼하고 작은 아이를 낳은 게 2006년이다. 아이는 2006년 봄에 태어났다. 2005년 여름에 대만출장을 남편과 같이 다녀왔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여권이 만료된 것도 모르고 있었고 올 해 초에 해외를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여권을 새로 발급 받았는데 그 일도 무산되었다. 가까운 중국은 어떻게든 맘을 먹으면 다녀올 수 있는데 그 마음 먹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아는 동생이 홍콩행 동반을 강권했다. 꼭 같이 다녀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은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추진해 버리는 그 친구를 보고 이렇게 떠밀리듯 가지 않으면 또 내년이 되겠다 싶어서 비싼 비행기표를 급하게 끊어 주말을 이용해 홍콩을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내가 바란 것은 그냥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간판이 즐비할 그 거리를 그냥 하염없이 걷는 것.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하는 상하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테니, 나는 그냥 걷다가 오면 될 일이었다. 꼭 가보고 싶은 곳도 꼭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흔한 국수나 볶음밥 정도였고 어떤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할, 중국 특유의 냄새였으니까.

홍콩은 스모그가 가득했다. 올 해 들어 중국대륙에 인접한 그 어느 곳도 무사하지 못한 모양이다. 첫 날부터 뿌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두방울 떨어졌다.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제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정해진 일정이 있어 숙소와 멀리 떨어진 곳을 방문하고 호텔로 돌아가 잠깐 짐을 추린 다음 저녁으로 무얼 먹을 것인가 둘이 궁리했다. 나는 그제서야 hotpot 이라고 하는 중국식 샤브샤브 훠궈를 생각했고 검색을 했다. 마음은 들뜨고 둘 다 머리는 비어 있는 상태라 검색도 잘 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음식점으로 이동했는데 훠궈 전문점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훠궈집을 찾아 다시 택시를 탔다. 소호근처였는데 홍콩은 운전석이 반대방향이라 내가 계속 방향을 놓쳤다. 주소를 찾았는데 가게가 없었다. 맞은 편에 PUB이 있었고 문앞에 서 있는 종업원에게 중국어로 물어보니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제서야 어둑한 조명에서 그녀가 영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왔을 거란 짐작을 했다. 이 근처에 훠궈집이 없었나요? 바로 이 앞 집인데 문 닫고 다른 주인이 들어왔어요. 그럼 이 근처에 추천할 만한 다른 훠궈집을 아는데가 있나요?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내리막길을 가르키며 저리로 내려가면 중국음식집이 있을 지도 모른다 했다.

우리는 일단 비가 더 오기 전에 빨리 자리를 이동해야 했고 어디든 가서 중국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에 가득차 있었다. 낮에 유명하다는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라는 세계최장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에 지나갔던 시장이 다시 나왔다. 시장길을 통해 소호가 됐든 란콰이퐁을 가든 아무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숙소 근처 K-POP이 나오는 잡화점에서 비싸다고 둘이 투덜대며 46원(한화 6200원 가량) 이나 주고 산 우산은 이미 반쪽이 짜부라져 있었다.

그나마 백반집 같은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식당도 문을 닫아버렸다. 시간은 9시가 넘었다. 지나가며 봤던 한 식당에 주방장 옷을 입은 아저씨가 문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우산 속에서 손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먹는 시늉을 하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급한 김에 그냥 마구잡이로 들어갔다. 아무도 주저하지 않았다.

메뉴를 보니 싸게 점심 저녁 메뉴를 파는 집이고 음식맛이 훌륭할 것 같지 않았다. 세트메뉴를 주로 파는 집이었고 면 전문도 밥 전문도 요리 전문도 아니었다. 볶음밥을 먹어보겠냐고 동행에게 물었다. 나의 동행은, 이런 식당에 들어올 일도, 들어와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대부분의 주문을 나에게 일임했으나 나는 항상 괜찮겠냐 되물어봤다. 빈 자리에 앉으려고 가방을 내려놓자 아저씨가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 주며 등이 다 젖었다고 조금이라도 닦으라고 했다.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두운 밤에 영업시간이 끝났는데 들어오라고 한 것도 뭔가 그냥 밥을 사먹는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볶음밥을 하나 시키고 요리를 하나 주문하고 싶다 하니 아저씨가 돼지족발을 추천했다. 그렇게 달라고 하고 국물이 필요한데 탕은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아서 국수를 한 그릇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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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푸짐한 볶음밥을 한 그릇 내주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볶음밥을 먹었다. 나의 동행도 맛있다며 잘 먹었다. 곧 홍콩 특유의 돼지족발이 나왔다. 중국의 돼지족발은 상당히 맛있는 편인데 역시나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가득해서 한국 사람 중엔 잘 못먹는 사람도 많다. 동행은 자기에게 약간 하드코어한 음식이라고 웃으며 조금씩 살점을 베어 먹었다. 홍콩 사람들이 잘 먹는 양배추 볶음에 굴소스를 얹은 야채 요리도 한 접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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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중에 식당 청소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왜소한 남자가 들어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곳을 빼고 다른 테이블엔 이미 의자가 올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또 들어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우리가 밥을 다 먹어가자 아저씨는 광동어가 가득 배인 부통화 (대륙의 표준어 / 普通話)로 나에게 대만사람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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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놀라워했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부통화를 잘 하느냐고 되물었다. 대륙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얘기했다. 아저씨의 식당엔, 아마 한국인이 들어오거나 외국인이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저씨는 중국 표준어를 하는 한국사람을 처음 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저씨는 의자를 옆에 놓고 앉아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광동어가 가득한 억양과 분명히 않은 발음을 알아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만은 했다. 홍콩 어때요? 홍콩 좋네요. 여기 사람들은 뭔가 좀 자유로와 보이고, 개방적인 거 같아요. 대륙에 비해서. 그렇지. 홍콩은 좀 그런 게 있죠. 하지만 여기 생활은 아주 고됩니다. 홍콩은 경찰이 아주 좋아요. 친절하구요. 우리는 경찰을 신뢰하죠. 아. 저는 어릴 때부터 홍콩영화를 많이 봤어요. 영화에 홍콩 경찰은 꼭 나오잖아요. 그렇군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도 몰랐어요. 직업상으로도 좋나요? 좋은 직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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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내내 담배를 피우며 왔다 갔다 했기에 나도 담배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은 터였다. 아저씨가 내 담배를 만지며 이건 한국담배냐고 물었다. 아니 이 담배는 영국담배인데 한국에서 가져온 거예요. 라고 얘기하자 앞에 앉은 나의 동행이 아저씨 담배 하나 드리라며 웃었다. 나는 두 가치를 꺼내 드렸다. 아저씨는 좋다며 고맙다 하고 품에 넣었다. 잠시 후에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아주 맑아서 좋다며 홍콩은 담배가 너무 비싼데 한국은 얼마나 하냐고 물었다. 홍콩은 수입담배가 한 갑에 50원(한화 6700원꼴) 정도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담배를 두 가치 줬으니 밥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게 어딨냐고 웃었다.

같이 온 이 친구도 한국 사람인가요? 한국에서 왔나요? 키가 무척 크네요. 라고 하시길래 이 친구는 한국사람인데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친구의 핸드백을 보고 와 이거 비싼 가방인데, 직업이 좋은 모양이라고 하시길래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친구라고 대답해드렸다. 아저씨는 대단하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여기서 밥을 먹고 어디로 갈건가요? 란콰이퐁에 가 볼 생각이예요. 아 거기 아주 번화하죠. 놀기 좋아요. 사람들이 많죠. 외국인도 많죠? 아저씨도 끄덕끄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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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자기가 만든 돼지족발에 기름기는 모두 빼고 영양가만 남은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주방에서 작은 양푼에 우리가 먹은 볶음밥을 해서 나오더니 우리 그릇에 몇 수저를 덜어주고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볶음밥을 싹싹 먹고 돈을 내려고 하자 이 아저씨가 정말 돈을 받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지 마시라고 재촉하자 120원이라고 밥값을 알려주었다. 적은 돈도 아닌데 받지 않으려 하다니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내 동행은 명함에 한자이름까지 적어서 아저씨에게 드렸다.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 하는데 괜찮냐 묻자 웃으며 V자를 그려주셨다. 우리는 돈을 내고 명함을 드리고 가게를 나오는데 앞쪽에 물걸레질을 해서 길이 미끄럽다며 우리가 나가는 길까지 따라나와 조심할 지점을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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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짜부러진 우산을 둘이 쓰고 팔짱을 끼고 어두운 시장통을 빠져 나왔다. 내 옆에 선 동행은 “좋다.” 라고 말했다.

“좋지?”

“응. 좋네. 좋은 사람이네.”

우리는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참 좋은 음식을 먹었고 란콰이퐁의 소란스러움은 우리를 감흥시키지 못했다. 란콰이퐁을 한 바퀴 돌아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한 사람의 친절이 오랫동안 홍콩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것을 알았기에, 비오는 어두운 길거리도 무척 정겹기만 했다.

 2013년 12월 14일의 일을 17일에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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